MIT에서 시작된 해킹은 어떻게 변화해왔나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를 통해 컴퓨터 시스템에 접근하여 원하는 정보를 얻고 원하는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지금, 원하는 정보를 몰래 빼앗고 서비스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행위도 계속되고 있고 우리는 흔히 이를 해킹이라고 부른다.

 

역사 속에서 변한 해킹의 정의


사실 해킹의 정의는 시간에 따라 변화했다. 초기에 해킹은 개인의 호기심이나 지적 욕구의 바탕 위에 컴퓨터와 컴퓨터간의 네트워크를 탐험하는 행위와 같이 지금의 부정적 의미와는 조금 달랐다


1960년대에 최초로 해킹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MIT의 모형 기차 제작 동아리 TMRC에서 자신들을 해커라고 부르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당시 MIT에는 정규 수업에 대부분 참여하지 않고 낮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고 밤에는 자신이 흥미 있어 하는 것에 심취해 그와 관련된 여려 활동을 하는 사람들을 해커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들은 당시 DEC 회사에서 동아리에 기증한 미니컴퓨터 PDP-1를 광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컴퓨터의 사용이 늘어나고 네트워크가 방대해지면서 악의적인 행동이 늘어나 지금의 크래킹의 의미가 생겨났다.


1950년대 이전~1970년대, 해킹의 등장


최초의 해킹 사건은 해킹이라는 단어가 태어나기 전인 1950년대 이전에 이미 나타났다. 1918년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에서는 애니그마라는 암호화 기계를 통해 전쟁 중 기밀 정보를 암호화하여 통신하였다. 송신자가 공유하던 코드북의 날짜별 키로 암호화시킨 암호문을 모스코드로 변환시켜 무선 통신하면 수신자가 받은 암호문을 그 날의 키로 복호화 시키는 구조였다


최초의 해킹은 연합군이 애니그마 암호문을 복호화하는 기계로 독일의 기밀 정보를 알아냈던 사건이다. 영국의 암호학자 앨런 튜링이 1943년 애니그마 암호문 해독을 위한 컴퓨터 콜로서스를 개발하였다. 초당 5천자의 암호문이 종이 테이프를 타고 들어가면서 애니그마의 암호와 일치할 때까지 비교하는 방식으로 한 차례에 17,576개의 조합을 점검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69년에는 Phreaking이라고 불리는 전화망 침입을 통한 무료전화 해킹이 이루어 졌는데, 조 인그레시아가 2,600Hz의 휘파람을 불면 장거리 전화를 무료로 쓸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우연한 사건이었다. 이후 1971년에는 존 드레이퍼가 군용 식량 시리얼에 들어있는 장난감 호루라기가 정확히 2,600Hz의 주파수를 발생시키는 것을 발견하였고 에스콰이어 잡지에 파란 상자의 비밀이라는 이름으로 방법이 공개되기도 했다.


1980년대 초, 네트워크 해킹과 정보 권리 논쟁의 시작


마이크로소프트에서 Basic DOS가 개발되고 IBM에서 CPU, 소프트웨어, 메모리, 유틸리티, 저장장치가 완전 장착된 컴퓨터(PC)가 개발된 198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네트워크 해킹이 시작되었다


미국 밀워키의 로날드 마크 오스틴을 포함한 6명이 운영했던 ‘414 Private’이라는 BBS의 일원들이 ‘414 Gang’이라는 해커 그룹을 만들어 암센터와 로스 알라모스 국리 연구소를 포함한 60개의 컴퓨터 시스템에 침입했다. 이들은 침투 이외 악의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으나 우연히 주요 파일을 삭제하고 1983 FBI에  체포되었다. 최초의 실형을 살았던 크래커는 이안 머피로 1981년 미국 최대 전화회사인 AT&T의 시스템에 침입해 전화요금과 관련된 시계를 바꿔 심야 요금이 대낮에 적용되도록 조작한 사건이었다


같은 해 독일의 전설적인 해커 그룹인 카오스컴퓨터클럽(CCC)이 결성되었는데 이들은 "정보 사회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와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새로운 인권이 필요하다. 인간 사회 및 개인에게 기술적 영향을 미치는 정보교류에서 국경은 사라져야 한다. 우리들은 지식과 정보의 창조에 기여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정보에 대한 권리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주장은 1983년에도 나타났는데, 리처드 스톨만은 소프트웨어의 저작권 개념에 처음부터 함정이 있었으며 Copyright가 아니라 Copyleft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85년에 FSF(Free Software Foundation)를 만들었는데 바로 이곳에서 리눅스의 탄생의 배경이 된 GNU (Gnu’s Not Unix)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1980년대 중반, 악명 높은 해킹 사건들


1980년대 중반, 7명의 미국 소년들이 뉴저지 소재 미 국방부 컴퓨터에 침입해 통신위성 위치를 변경하는 코드를 포함한 극비 군사 통신 데이터를 빼내는 사건이 발생하고 큰 화제가 되었다. 심각성을 인지한 미 의회에서는 1986년 컴퓨터 범죄 관련 최초의 처벌 규정인 컴퓨터 사기와 오용에 관한 조항을 통과시켰다


다음 해인 1987년에는 희대의 해커 케빈 미트닉이 등장한다. 캐빈 미트닉은 Condor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5년 이상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현상수배범이었던 해커로 모토로라,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NEC등이 그에게 해킹 당했고, 미국 국방성 펜타곤과 국가안보국(NSA)의 전산망이 그에 의해 여러 차례 침투했다는 루머도 있다. 그는 특히 사회공학공격을 탁월하게 이용한 해커였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는 테이크다운이라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컴퓨터 해킹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건은 1987년 서독 해커들이 전세계 300여 기관에 불법적인 접근을 시도해 군사 기밀정보를 탈취했던 사건으로 NSA, CIA 등에 의해 이들이 구 소련 KGB의 자금 지원을 받는 해커임이 밝혀졌다. 이 사실은 캘리포니아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의 클리프 스톨이 컴퓨터 계좌에서 컴퓨터 사용요금이 75센트의 오차가 생기는 이유를 알아보던 중 우연히 발견되었다. 이 공적은 해커들의 수법이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부화된 새끼는 다른 새에게 마치 진짜 자식인 양 먹이를 얻어먹으며 진짜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떨어드리는 뻐꾸기가 부화하는 수법과 비슷하다 하여 뻐꾸기 알(The Cuckoo’s Egg)이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고 순식간에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해커들은 시스템에 누가 들어와 있는지 살핀 후 뻐꾸기의 알을 부화시켜 시스템의 관리자권한 (previlige)를 가진 다음, 자기만이 아는 새로운 계정 혹은 장기간 사용하지 않은 계정을 찾아내 필요한 정보를 살펴본 후 복사하고 연결되어 있는 다른 컴퓨터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또 다른 컴퓨터에 침입하는 전형적인 작업 순서를 보였다.


1980년대 후반, (Worm)의 등장


1988년에는 최초로 웜(Worm)에 의한 인터넷 마비 사건이 발생했다. 웜은 1982년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의 과학자 존 쇼크와 존 허프가 작성한 논문에서 처음 등장한다. 원래는 네트워크에서 놀고 있는 프로세서들을 찾아 그들에게 업무를 할당하고 연산처리를 공유하여 전체적인 네트워크의 효율을 높이도록 연구 프로젝트 목적으로 웜을 설계했다고 한다. 이후 코넬 대학교의 대학원생 로버트 테펜 모리스이 개발한 모리스 웜이 인터넷에 연결된 수많은 컴퓨터를 빠르게 감염시켰다. 웜에 의해 네트워크로 연결된 6000여대의 컴퓨터가 감염되고 정부 및 대학의 시스템이 마비되었다. 이에 같은 해 11월 미 국방부는 카네기 멜론 대학에 컴퓨터 비상 대응팀(CERT)을 설립한다.


1990년대 이후, 급격하게 늘어나는 해킹과 막으려는 노력


1990년대로 넘어가면서 해킹의 사건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건수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현재의 해킹 기술들도 이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또 최초로 데프콘 해킹 회의가 개최되었다. 1994년 넷스케이프가 개발되고 웹 정보 접근이 가능하게 되자 다양한 해킹 정보와 사용이 편리한 해킹 툴들이 웹을 통해 본격적으로 공개되었다


일부 사용자들은 패스워드 스니퍼 같은 툴을 사용해 개인정보를 캐기도 하고 은행 컴퓨터의 계좌정보를 변조하는 등의 해킹이 이루어졌고 언론이 이들을 해커라고 불렀다. 해커라는 용어가 더 이상 순수한 목적으로 시스템의 내부를 연구하는 컴퓨터광을 지칭하지 않게 된 것이다. 1999년에는 다양한 보안 패치들이 발표되고 보안 회사들이 해킹 방지 프로그램을 발매하는 등 보안 사업의 확대가 이루어졌다.

 

해킹의 시작은 컴퓨터에 대한 광적인 연구로부터였지만 악의적인 의도와 함께 계속해서 진화하고 수많은 피해를 낳고 있다. 이제는 악명 높은 해킹의 역사보다는 뛰어난 보안 기술의 역사가 쓰이길 바란다. Ahn


대학생기자단 김지원 / 이화여대 컴퓨터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