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찬 기합으로 가득한 축제, 춘천코리아오픈 국제태권도대회를 가다

문화산책/현장속으로 2015.09.04 15:11

2000년 부터 춘천에서는 코리아오픈 국제태권도대회가 2년에 한 번씩 열려왔다.

태권도는 우리나라의 전통 무예로서 한국인이 자부심이 고스란히 들어간 스포츠이다.

올림픽 정식 종목이기도한 태권도의 가장 권위있는 대회인 이번 대회 이번 2015년 다시 춘천에서 열렸다.

이번 대회에는 50개국, 2500명의 선수단이 참여한 명실상부한 세계 규모의 대회였다.

(출처 : http://tong.visitkorea.or.kr/cms/resource/17/718317_image2_1.jpg)

대회의 규모와 역사에 관한 이모저모를 살펴보기보다는,

태권도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경기장 밖에서 바라보는 내용으로

먼저 나와 태권도의 지극히 개인적인 사연과 함께 소개해 보고자한다.


어렸을 적 내가 살던 동네에는 태권도를 배우지 않았던 아이들이 드물었다.

당시 동네에는 그래서 태권도복을 입고 축구를 하거나, 심지어는 피아노 학원에서 도복을 입고 피아노를 치는 재밌는 광경도 연출하기도 했다. 

나 또한 삼촌께서 태권도 장을 운영하시는 바람에 울며 겨자먹기로 태권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 '삼촌이니까 나한테는 잘해주겠지?'라는 기대가 무색하게 삼촌은 태권도장을 고함소리로 채웠고, 

결국 어느 순간부터 명절 때마다 삼촌의 참석여부에 대해 귀기울이곤 했다.

삼촌에게 당한(?)것들을 울분의 돌려차기로 수련하며 태권도를 배운지 어언 2년째 되던 초등학교 5학년, 태권도 겨루기 대회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게 되었다.

당시 우리 초등학교에서는 시 단위의 대회에서 상을 타면 아침 조회시간에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상장을 수여했었는데, 그 때 그 상을 받으러 올라가는 동안의 설레임과 약간의 창피함, 뿌듯함의 오묘하게 조합된 그 감정은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르리라.

아무튼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 내내 나는 태권도와 함께하였고, 6학년이 되자 태권도를 진로로 고려해볼 정도로 나는 태권도에 심취해있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는 태권도의 미래와 운동선수로서 삶의 어려움을 어린 나에게 설득하셨고, 나 또한 여러부분에 동의하였기 때문에 그 때를 계기로 나는 태권도를 더 이상 하지않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 나는 대학생이 되었고 이번 방학을 맞아 대회기간동안 춘천코리아오픈 국제태권도대회에서 태권도 용품을 판매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나로서는 비록 선수는 아니지만, 내가 과거 나간적이있었던 대회에서 어떤 일이 되었간에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로웠다.

나는 대회 기간 내내 선수들이 태권도 관련된 용품을 살 수 있는 야외부스에서 일을 하였다.


내가 소개할 첫 손님은 아프리카의 베넹에서 온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1시간동안 자기들끼리 자신들의 언어로 어떤 것을 살지 열띤 토론을 하였다.

무슨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이들이 같은 사이즈의 보호대 하나를 서로의 팔에 착용해보는 모습을 보며, 하나의 물건으로 여럿이 사용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음씨 좋은 직원분께서는 과거 베넹에서 태권도를 가르칠 때의 추억이 떠오르신다며, 아이들에게 선물을 따로 주시기도 하였다. 선물을 받으며 약간을 어리둥절하며 신나하는 아이들의 그 큰 눈망울이 예뻤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손님들은 중동의 요르단에서 온 아이들이다. 

이 친구들은 매번 올 때마다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My Friend~"라고 우리를 불렀고, 항상 무리한 할인을 요구하였다.

또한 일부 러시아 아이들이와서 러시아어로 서로 낄낄 거리며 우리를 놀리는 듯한 말을 했던 것과는 상반되게, 이 친구들은 언제나 예의바르게 행동하려고 노력하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아래 사진을 보면 추측해 볼 수 있다. 오른쪽에 있는 친구는 'Bahaa'인데 얘는 경기중에 손을 다친 상태로 우리 부스로 천진난만하게 쇼핑을 하러왔다.

손이 너무 부어있길래 의사를 만나봤냐고 물어봤는데, 의사가 어디있는지 모른다고해서 내가 직접 직원분들께 양해를 구하고 의무진을 찾으러 갔다.

의사선생님께서는 병원에 가봐야 될 것 같다고 말씀하시며 요르단 대표팀 감독님께 허락을 받아야 된다고 하셨고, 나는 '바하'와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감독님을 찾았다.

결국 감독님과 병원에 갔던 바하는 사진에 보이듯이 큰 붕대를 감고 돌아왔고, 선물로 첫 번째 사진의 요르단 선물을 주었다.


세 번째 손님들은 몽골에서 온 손님들이었다. 이 아이들은 형으로 보이는 아이 한명과 어린 아이 둘이었는데, 정말 코묻은 돈으로 부모님께 줄 선물을 샀다.

물건을 사고 다시 경기장 안으로 돌아갈 때 마침 소나기가 내렸는데, 비가 내리자 자기는 괜찮다는 듯이 동생 둘의 머리를 자기 자켓으로 가려 비를 안맞게 해주는 형의 모습에 적잖이 감동했었다. 그 이후 '센베노'라는 인사말을 외워두워 몽골인 손님들에 대한 서비스에 박차를 가했다.


  

마지막 손님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온 손님들이다. 손님이 친절하다는 생각을 해보기는 처음이었다. 

난 정말 아무것도 한게 없는데, 단지 어떤 좋은 브랜드를 형성해서 그 제품을 판매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렇게 고객이 즐겁게 만들 수 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경영학을 전공하는 나로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한 물건을 팔며 내가 선물을 받는 다는 것 또한 상상못했던 일이라 더욱 감동했는지 모르겠다.



 

해외에서 한국인들이 아직까지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당신은 중국인이냐 아니면 일본인이냐 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브라질, 노르웨이, 코트디부아르, 호주 등 정말 다양하고 먼나라에서 이 작은 대한민국의 고유 스포츠에 열광한 세계인들을 이날 볼 수 있었다.

가장 한국적인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되내이며 태권도에 스며들어있는 조상의 얼을 잃지 않아야 되겠다라고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글. 사진 / 대학생기자 전영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