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와 예술 사이, 여성미술의 현주소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

문화산책/현장속으로 2015.11.18 00:40

 

◈ 혐오의 시대, '여혐'과 '남혐'에 물드는 사회

  여성을 혐오하는 자들이 잔뜩 화가 나서는 비난을 거듭다. 이젠 여성을 혐오하는 것을 혐오하는 자들이 벌 떼처럼 모여들어 공격 작전을 개시한다그러자 여성을 혐오하는 것을 혐오하는 것을 혐오하는 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미움을 증폭시킨다. 이것이 2015년의 대한민국이다.

  우리 사회가 '혐오'에 물들게 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된장녀', '김치녀'와 '한남충', '김치남'은 끝도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 이제 문제의 본질은 사라지고, 싫어하고 미워하는 마음만 남았는지도 모른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각주:1]는 이러한 대립의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메갈리안들은 여성혐오에 쓰인 글과 프레임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꾸는 '미러링'을 표방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쓰였던 여성 혐오 언어들의 주체와 객체만 바꾸어 차별 상황을 재연하는 것이다. 그 수위는 상상 이상이다. '역시 한남충(한국 남자를 비하하는 단어)은 멍청한 게 종특(종족 특성)', '남자는 삼일에 한 번씩 패줘야 한다.' 등 다소 과격한 대화들이 펼쳐진다. 심지어는 그간 여성의 몸이 성적 대상화 되어 평가받아 온 것처럼, 남성 성기의 사이즈를 논하기도 한다. '전 세계에서 119위'라는 등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며 대상화하자 남성들은 분노하고 당황했다. 메갈리아의 주장은 이러하다. 미러링을 통해 똑같이 겪어 보아야 남성들 역시 여성이 받아온 차별적 대우를 인지할 수 있고, 몸소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메갈리아는 여성문제를 이슈화하는 데 성공했고, 다양한 의견들의 충돌과 화해 속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의식의 성장을 이끌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혐오에서 파생된 혐오가 건강한 논의가 될 수 없으며, 우리 사회에 피로감을 유발한다는 등의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 페미니즘을 외치는 이유

  '페미니즘'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정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여성우월주의'라고, '남성혐오사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바는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사회, 즉 '성평등 사회'이다.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온 여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차별과 억압에 맞서 여성의 권리를 되찾고, 궁극적으로는 남성과 여성이 함께 권리를 누리는 평화롭고 평등한 사회를 이룩하고자 하는 사상인 것이다. 근래에는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가 많아졌고, 책, 음악, 만화, 방송 등에서 끊임없이 다뤄지고 있다. 그러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접하기 보다는 비난과 논란으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더 잦고, 논란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끝내 이미지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처량한 예술가와 방송인만 남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 이야기하고, 대항하고, 주장해야 한다. 단순히 혐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저항하고 실천하며 변화를 이끌어가야 한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인식'이다. 다소 거칠고 서툰 움직임일지라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다 보면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어내고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해결될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페미니즘'을 말한다. '인식'과 '의식'의 성장을 기대하면서.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 포스터

 

◈ 의미와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전시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

  서울시립미술관(SeMA)은 지난 9월 15일부터 11월 8일까지 페미니즘 시각에서 동아시아 여성미술의 현재와 그 의미를 살펴보는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를 개최했다. 한국은 물론 중국, 일본, 싱가포르,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등지에서 초대된 14인 작가의 다양한 작품을 통해 동아시아 여성미술은 물론 페미니즘 미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전시였다. '페미니즘'이란 말이 아직은 조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사람이 많을 테지만 이 전시 속에서는 아주 편하고 가볍게, 대중적이고 친근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모두 페미니스트이거나 여자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싱가포르 출신의 남성 작가 밍 웡(1971년생)이 가장 눈에 띄었고, 페미니즘적 색채를 띠지 않은 채 담담히 여성의 일상적 삶을 표현한 작가들도 있었다. 급진적이기 보단 오히려 접근하기 쉽고 담담했던 작품들이 많아 의미와 대중성을 모두 잡은 전시라고 느꼈다. 특히나 볼거리가 풍부하고 구성이 잘 되어 있으며, 주제가 뚜렷해서 전시장을 한 바퀴 다 돌고 나면 마음에 남는 것이 많은 전시였다.


<판타시아> 전시장 내부 계단/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 폭력과 아픔을 그려낸 오색 빛깔 패치워크

 2, 3층에 걸쳐 펼쳐진 전시는 인도 출신 여성 작가 '쉴라 고우다'(Sheela Gowda)로 부터 출발했다. 그녀는 종교와 지역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주류 경제에서 소외된 지역 여성들의 전통적 공예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실, 천과 같은 전통적이고 일상적인 재료로 수공작업을 한 자수와 패치워크 등을 작품으로 내놓았다. 여성적 재료이자 양식으로 자리잡은 것들을 통해 약자에게 가해지는 정치적 폭력을 표현하기도 하고, 전쟁의 아픔을 그려내기도 했다. 그녀의 작품에서 눈에 띄는 것은 예쁜 색감과 그 속에 담긴 상징성이었다. 천 하나를 덧댈 때도 그녀는 표현하고자 하는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 점이 이 작품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한 번 더 눈길이 가게끔 하고 한 번 더 생각하게끔 했기 때문이다.


'쉴라 고우다'의 작품/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 북한 장인들이 수놓은 아주 특별한 모나리자

  다음으로 살펴본 작품은 한국 작가 함경아가 그려낸 한반도의 자화상이었다. 무엇보다 눈에 들어온 것은 <입체적 모나리자>(2015)라는 작품이었는데, 이는 작가가 북한 장인들에게 직접  의뢰한 자수 작품으로써,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명한 작품<모나리자>를 입체적으로 재해석한 흥미로운 전시였다. 멀리서 보면 그림 같아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일일이 자수 처리되어 있고 각 모나리자가 조금씩 생김새나 비례가 달라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다양하게 표현된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놀랐던 것은 북한 장인들을 직접 인터뷰한 영상이었는데 작가는 이를 통해 모나리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는 탈북 예술가들이 보여주는 새롭고 실제적인 해석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 같다. 그들은 북한에서의 기억과 생활을 모나리자와 연관짓기도 하고, 기존의 단편적인 인식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함경아'의 작품 <입체적 모나리자>/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함경아'의 작품 <탈북작가 인터뷰>/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 바느질을 싫어했던 소녀, 은실에 삶을 담다!

  계속해서 시선을 잡아 끈 것은 중국 작가 '린 티안미야오'(Lin Tianmiao)의 <많거나 적거나 마찬가지>(2011)라는 작품이었다. 중국 전통문화에서 실크가 가지는 의미와 수공예적인 작가의 노동이 결합되어 탄생한 조각작품인 이것은 '뼈'를 망치, 식칼, 절단기 등과 같은 일상의 오브제와 결합시킨 후 은실로 감은 것이다. 이 작가는 어릴 때부터 배워왔던 바느질을 무척이나 싫어했다고 들었지만, 결국 이를 고단한 여성의 삶을 표현하는 예술적 수단으로 사용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쉴라 고우다의 작품에서도 느꼈듯이, 결국 여성적 재료, 여성의 오브제라고 여겨지는 실, 천과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작품들이 여성의 삶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주는 것 같다. 작가들 역시 자신들의 일상과 결부되어 있는 소재들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한편으론 여성으로서 제한되었던 삶과 고단한 노동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예술로서 승화되어 아름다운 오브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놀랍고 의미 있는 일이다.


'린 티안미야오'의 작품 <많거나 적거나 마찬가지>/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 원초적 섹슈얼리티, 그 속에서 사랑을 구하는 적극적 여성상

  다음으로는 장파(Jang Pa)의 다소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작품이 발길을 멈추었다. 무시무시하고 거친 화폭은 현실과 비현실, 실재와 상상, 그리고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다층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레이디 엑스 Lady-X>(2015) 시리즈인데, 작가가 나무를 사랑하는 덴드로필리아(dendrophillia)를 통해 여성의 성적 판타지와 원초적인 섹슈얼리티를 그려낸 작품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그로테스크하고 적나라한 그림에 조금 거북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지만, 이를 통해 솔직한 성과 여성의 주체적 섹슈얼리티를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훌륭한 것 같다. 항상 '성'에 있어서 수동적인 약자의 위치에 놓여있던 여성이 스스로의 성적 판타지를 찾아 나서고 사랑을 적극적으로 구하는 모습에서 새로운 여성상과 페미니즘을 읽을 수 있었다.


'장파'의 작품 <레이디 엑스>/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 웨딩드레스를 옭아맨 남성 중심적 관습과 제도

  이번 전시의 포토 존은 단연코 일본 작가 '치아루 시오타'(Chiharu Shiota)의 작품 <꿈의 이후>(2015)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0명의 인원이 100시간에 걸쳐 현장 설치한 이 작품은, 웨딩드레스로 표상되는 여성 판타지의 기표인 순백색 드레스를 거미줄처럼 감싼 검은 실을 통해 '여성의 부재와 억압'을 이야기하고 있다. 전시실에 들어서는 순간 눈부시게 흰 드레스를 꽁꽁 감싸고 있는 검은 실들이 숨을 턱 막히게 한다. 그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성을 옭아매고 있는 사회적 관습, 제도, 시선 그리고 부계 사회 속에서 비가시적 타자화 된 여성들 자신의 모습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단순히 눈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예술작품 이라기엔 그 속에 담겨있는 의미와 생각할 사안이 사뭇 무거운 느낌이다.  

 

'치아루 시오타'의 작품 <꿈의 이후>/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 해체적 성의 개념, 여성이 펼쳐낸 솔직한 성적 판타지

  한편, 가장 기억에 남았던 전시를 꼽으라면 정금형 작가의 <휘트니스 가이드>(2011)을 선택하고 싶다. 항상 퍼포먼스가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보니 아쉽게도 직접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영상을 통해 충분히 그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어떻게 보면 장파 작가의 작품과도 일면 비슷한 부분이 있다. 여성에게 금기시되어 온 주체적 섹슈얼리티를 주제로 파트너가 필요 없는 자기애적인 성적 판타지를 연출하고 있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작가 자신의 성적 욕망과 자기애적 유사 성행위를 보여주며 통상적인 성의 개념을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일상의 오브제들, 즉 러닝 머신, 스트레칭 도구 등 그저 평범한 피트니스 도구들에 성적 파트너를 대입하여 스스로 자신의 성욕을 해소하는 이러한 퍼포먼스는 조금 당황스럽기도 하고 경악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흥미롭게 다가왔고 인상 깊었다. 여성 작가로서 솔직하고 당당하게 성을 표현하고, 굉장히 창의적이고 새로운 발상을 통해 예술적 표현을 했다는 점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정금형의 작품 <휘트니스 가이드>/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정금형'의 <휘트니스 가이드> 퍼포먼스 영상/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 남성작가가 던지는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성찰

  3층 전시장은 이번 전시의 유일한 남성 작가, 밍 웡(Ming Wong)이 맞아주었다. 그는 싱가포르 출신의 남성으로, 부계적 의미의 남성성을 위반하여 양성으로 규정된 성의 틀을 깼다고 평가 받고 있다. 특히 재미있었던 부분은 홍콩에서 여장을 한 채 아름다움의 의미를 되묻는 <홍콩 다이어리>(2011)였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를 들으며 현대사회에서 꼭 생각해보아야 할 시사점을 많이 던져주는 발언이라고 생각했다. 그 속의 밍 웡은 굉장히 유머러스하면서도 강경한 태도로 전통적이고 정형화된 미의 개념과 성의 개념에 도전하고 있었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떠나 진취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한 인간상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동성애에 대해 다루기도 했고, 트렌스젠더들의 삶을 사진과 영상에 담기도 했는데 그의 당당하고 솔직하며 포용적인 태도는 오늘의 '혐오사회'와 대비되며 한층 빛났던 것 같다. 다름을 인정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 그것이 이 전시가, 또 우리 사회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일 것이다.

 

'밍 웡'의 작품/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밍 웡'의 작품/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 '심청가'의 재해석, "과연 심청이는 행복했을까?"

  정은영 작가의 <소상팔경>은 내가 알고 있던 '심청가'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과연 심청이는 효녀이고 심봉사는 그런 심청을 사랑했던 따뜻하고 가여운 아버지였을까. 작가는 심청에게 여성으로서 주어진 가혹한 상황과 윤리의식으로부터 가해지는 폭력성에 주목하고, 전통적인 재현의 문제를 비틀어 다시 쓰는 작업을 했다. 유교적 사회 아래서 여성의 희생이 강요되고 또 아름답게 미화되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이 이야기를 재고해보면 그저 가족간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라기엔 억울하고 속상한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인 것 같다. 정은영 작가는 주로 여성 국극(1940년대 말에 시작하여 1950~60년대 인기를 끌었던 창무극)을 통해 부계적 재현과 젠더 역할에 관한 다양한 페미니즘 작업을 선보여 온 작가라고 한다. 이번 전시에서도 그녀의 페미니즘적 재해석을 비디오 영상 매체를 통해 감각적으로 표현해두니 더 눈에 잘 들어왔던 것 같다. 

 

'정은영'의 <소상팔경>/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 일상의 스토리텔링, 그 안에 자리한 기억

  이진주 작가의 그림은 그냥 그 자체로 아름다운 구석이 있었다. 그녀는 페미니즘적 색채를 띠고 있지는 않았지만 여성으로서 그녀 자신의 삶을 화폭에 생생히 담아두었고 그림의 색감이나 묘사 등이 훌륭하여 오래도록 바라보며 서 있었던 것 같다. 그녀의 그림은 한 마디로 '스토리텔링'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녀 그림 속에는 어린 시절 썼던 물건부터 지금 현재 그녀 곁에 자리한 사물들까지 다양한 장치와 소재들이 산재되어 있고, 그 디테일을 잘 살펴보면 여성의 삶과 그녀의 내적 탐구, 기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그녀의 작품에서 특징적인 것은 여성이 옷을 벗고 있고 머리카락이 없다는 점인데, 이는 그 여성이 우리 중 어느 누구라도 될 수 있고 또 어느 누구도 아니라는 점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라고 한다. 친숙한 세계를 낯설게 하는 왜곡되고 압축된 공간에 놓인 우울하고 고독한 여성의 헐벗은 신체는 한편으론 자신 외의 누구와도 관계 맺지 못하는 타자적 소외감과 불안한 분위기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진주'의 작품/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이진주'의 작품/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물지 못한 상처

  강애란 작가의 작품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것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유난히 잊혀지지 않는다. 그분들의 생생한 증언과 흔적이 담겨 있는 비디오방 <응답하라 Re-Voice>는 치하루 시오타 작가의 <꿈의 이후>만큼이나 숨이 턱 막혔다. 워낙 잘 알고 있듯이 참혹하고 비인간적인 행위로 인해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는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의 문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다. 마치 선연한 핏빛을 드러내며 벌어져 있는 상처와 같다. 누군가가 그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위로해주고 아물 때까지 돌봐주어야만 하는데 결국은 그 상처가 덧나서 큰 병이 되어버릴 때까지 아무런 사과도, 행동도 받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강애란 작가가 수집해온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위안부 여성들의 자료는 인류애적 연대를 제안하며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강애란'의 작품 <응답하라>/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강애란'의 작품/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 추천! 열정이 담긴 도슨트

  서울시립미술관은 도슨트 제도가 굉장히 잘 되어 있고 다른 미술관, 박물관에 비해 설명이 풍부하고 재미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대학 강의실에서 강의를 듣고 있는 것만큼 질 높은 전시 설명과 지적으로 성장하는 느낌이 들만큼 깊이 있는 분석이 곁들여져서 정말 만족스러웠다. 평소 전시회의 도슨트 설명을 즐겨 듣는 편은 아니었다 해도, 이곳에서 만큼은 꼭 이용해보는 것이 좋겠다. 듣는 만큼 배워갈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의 도슨트 /사진: 대학생 기자 최유경

 

◈ 변화의 시작은 '인식'에서부터

  '여혐', '남혐'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중요한 사회 이슈로 자리잡았고,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여성 인권과 노동은 문제가 되고 있으며, 여성들에게 주어진 삶의 굴레와 억압이 아직도 그들을 짓누르고 있다. 근래에 회자되었던 몇몇 사건들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생각보다 혐오는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무심코 말한 것과 생각한 것이 사실은 타인인 여성 혹은 자기 자신을 억압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점, 또 그것은 지속적인 저항과 실천을 통해서만 바뀌어 나갈 것이라는 점까지 인식했다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첫 발을 내디딘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 전시에서 말하고자 한 것 역시, '우선 인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인 폭력과 혐오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타자화된 여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시켜야 할 것이다. 이러한 확장은 비단 여성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소수자들에 대한 인식으로까지 나아가 우리 사회가 진정한 평등사회를 이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혐오가 만연한 우리사회에 대한 도전과 비판의 메시지를 던졌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 전시 정보

<동아시아 페미니즘: 판타시아> 전시정보




 

 

대학생 기자 최유경 /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내가 '되고 싶은' 나와

내가 '될' 나의 거리를 좁히는 게 열정이다."

sera712@naver.com


 


 



 

  1. 메갈리아(Megalia)는 대한민국의 웹사이트로 2015년에 생성되었다. 초기에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여성혐오에 대항함을 기조로 삼는 것으로 시작했으나, 현재는 남성혐오 성향을 보이는 대표적 커뮤니티 사이트로 꼽힌다. 여성혐오에 쓰인 글과 프레임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꾸는 '미러링'을 표방하고 있다. 사이트 명칭은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서의 '메르스'와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의 합성어이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