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후보가 안랩에 남긴 마지막 이야기

9월 19일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 안철수 후보가 9월 20일 오후 4시 경기도 판교 테크노밸리에 위치한 안랩(옛 안철수연구소)을 방문해 700여 직원들이 마련한 환송회에 참석했다.

안랩은 안철수 후보가 1995년 3월 창업해 2005년 3월까지 CEO로 재직했으며, CEO 퇴임 후 대선 출마 선언 전까지 이사회 의장으로 몸 담은 기업이다. 안랩은 안 후보가 1988년 개발한 보안 소프트웨어인 V3를 계승 발전시켜왔으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왔다. 

안 후보는 대선 후보로 나서는 것을 계기로 18년 간 이어왔던 인연을 정리하게 되었으며, 이날 직원들이 마련한 환송회에서 애틋한 마음을 나누었다.

안 후보는 안랩 사옥에 4시경 도착해 1층 로비 안랩 계단에서 회사를 창업해 CEO로서 보낸 10년과 이사회 의장으로 보낸 8년의 소회를 담담하게 밝히고, 직원들에게 “저는 안랩 여러분들과 그리고 또 변함없이 내려온 안랩 정신을 믿습니다.”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서 2층으로 이동해 직원들이 손수 준비한 메시지 보드에 적힌 응원 메시지를 하나하나 읽었다. 메시지에는 “당신은 우리에겐 영원한 의장님이십니다”를 비롯해 “의장님의 진심을 믿기에 결단과 용기를 열렬히 응원합니다” “의장님과 함께 변화를 이루어내는 ‘국민’이 되겠습니다”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공개 일정을 마친 안 후보는 직원들의 연구 개발 업무 공간으로 이동해 김홍선 대표와 티타임을 갖고 층별로 직원 자리에 직접 찾아가 일일이 악수하며 인사를 나눈 후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회사가 걸어온 18년 역사에 비해서는 아주 짧은 시간의 행사였지만 그 행사 안에서 묻어났던 안랩인의 아쉬움은 시간에 빗대기 어려울 만큼 진했다.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안랩 판교 사옥 앞에는 안랩인 외에 여러 대의 카메라와 취재진, 그리고 인근 회사의 직원들로 북적였다.

안랩 판교 사옥 로비에는 '안랩 계단'이 마련되어 있는데 이 안랩계단은 평상시에 회사의 행사가 있을 때 직원들이 모여 앉아 행사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이다. 300석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의장님이 오신 날은 300석이 모두 들어차고 옆쪽 계단까지 사람들로 꽉 들어찼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의장님도 직원들이 안랩계단에 이렇게 많이 모여있는 것은 처음 본다고 했다. ^^ 직원들의 모습을 보니 그 동안 의장님을 이 곳에서 얼마나 뵙고 싶어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곳에서 안랩인들을 위한 소회의 말씀이 있었다. 이 자리를 비뤄 안랩의 이사회 의장직을 사퇴하신 다는 말씀을 전할 때는 모든 이들의 눈에서 진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이후에는 그 동안 안랩을 위해 고생하신 의장님을 위해 준비한 케익과 꽃 전달식이 있었다. 저 꽃과 케익은 큰 뜻을 위해 안랩을 떠나는 의장님에게 전하는 직원들의 마음이었다. 

잠시 후에는 안랩계단에 모인 직원과 함께 단체사진을 찍는 시간이 마련되었다. 이 때 한 가지 재밌었던 것은 의장님 주변에 위치한 직원들이 셀카를 요청하자 카메라 하나하나를 보면서 사진 촬영에 임해주신 것이었다. 직원들은 이러한 소소한 배려에 더 깊은 감동을 받았다. ^^

단체 사진 촬영이 있은 뒤에는 매년 시무식에 찍어오고 있는 안랩인 단체사진을 관람하고 직원들이 준비한 응원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기회를 가졌다. 첫 번째로는 직원들이 의장님에게 하고 싶은 말을 간단하게 적은 메세지 보드, 두 번째로는 직원들과의 담소가 있었다. 응원 메세지 보드에는 의장님의 케리커처부터 사랑을 듬뿍 담은 메세지들이 적혀 있었다. 또 직원들과의 담소 시간에는 40대를 살아가는데 있어서의 조언을 구하는 개인적인 질문부터 공적인 질문까지 다양한 질문들이 오고 갔다. 

이후에는 10층 부터 6층까지 모든 층을 돌면서 직원들을 만나 한 명 한 명 악수와 인사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직원들의 자리까지 찾아와 인사를 전하는 의장님의 모습에 모든 직원이 감사함을 표했다. 또 어떤 이들은 야구공, 아이패드등을 가져와 의장님의 사인을 받기도 했다. 

보안이 철저하게 유지되는 SOC룸에서는 의장님 또한 예외없이 자신의 서명과 함께 연락처를 기재하고 나왔다. 이런 철저한 보안 유지가 있기 때문에 현재의 안랩이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

티셔츠에 사인을 부탁해서 의장님을 놀라게 한 직원도 있었다. ^^

회사를 꾸려오면서 오랫동안 보았던 반가운 얼굴들을 만나자 의장님과 직원들은 스스럼없이 포옹을 나누며 그 간의 아쉬움을 달랬다. 

IT계의 선두기업답게 태블릿 PC를 통해 사인을 받는 안랩인의 모습 ^^

안랩 사옥에서의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하고 나오는 직원들이 나와 배웅해주는 모습. 

직원들의 응원 메시지를 담은 메세지 보드를 전달하는 행사를 마지막으로 안랩에서의 공식 일정이 모두 마무리되었다. 

안랩을 떠나는 의장님을 위해 안랩인은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기보다는 축하와 함께 박수로 환송했다.

<안철수 의장이 안랩인에게 남긴 마지막 이야기>

여기 이렇게 많이 모인 것 처음 봤는데 행사할 때 이렇게 불러도 이렇게 차지 않는다는데 이렇게 많이 모인 것 처음인 것 같습니다. 추억이 많은데요. 회사 단체사진 전통이 언제부터인지 아세요? 99년부터입니다.

그러니까 95년 창립하고 세 해 정도를 안 찍고 99년부터 찍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전통이 되었는데요. 처음에 안 찍게 된 이유가 뭐냐면, 1년뒤에 회사가 살아있을지에 대한 자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차마 찍고 싶지 않아서 직원들에게 이야기는 안 했어요. 99년이 돼서 최소한 1년은 버틸 수 있겠다 생각해서 그때부터 사진을 찍기 시작한 것이 여태까지 이어오게 되었구요.

또 97년 98년 이럴 때 같은데, 남부터미널 쪽에 이렇게 조그만 사무실을 얻어서 안랩이 있었어요. 그때 아마 30명 됐을 땐데 어떤 보험 파는 아주머니가 굉장히 친절해 보여서 거기에 직원들이 거의 다 가입을 해버렸어요. 나중에 보니까 저만 보험 가입을 안 했더라고요. 그것도 왜 그랬냐면 직원들은 조건이 좋아서 다 가입을 하는데 저는 1년 뒤에 보험료를 낼 수 있을지에 자신이 없어서 가입을 못 했어요. 근데 말도 못 하고 보험 가입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그때가 그랬던 시절입니다. 그랬던 시절을 벗어나서 지금 이렇게 많은 분들이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컴퓨터 바이러스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저밖에 없었는데 이제 지금은 이 가족까지 합쳐서 생활터전이 되었습니다. 지금 보니 감개가 무량한 것 같습니다. 안랩은 정말로 제 열정의 뿌리였고 또, 임직원 여러분은 제 가족 같은 그런 분들입니다.

어제 중계를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앞으로 더 큰 소명을 위해서 이제 떠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처음 안랩이 생긴 것도 사실은 제가 의사로서 대학교수로서 그 일을 계속 할 생각이었는데 처음에 그랬어요, 처음에 이제 의대 전임강사가 됐을 때 그때 제 느낌이 어땠냐면, 저는 세상에서 재주라고는 공부밖에 없는데 공부만 하는데 월급을 주는 거에요. 그래서 세상에 나한테 이런 직업이 있을까 그래서 저한테는 대학교수가 소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더 큰 소명, 우리나라에서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할 수 있는 기술 가지고 계속 하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잖아요. 그래서 저한테는 정말로 맞는 직업을 버리고 소명을 따라 만든 회사가 안랩이고요. 근데 지금 또 아이러니하게 소명 때문에 안랩을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오늘 서울대 교수 사직서를 내고 그 다음에 또 수원에 있는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 가서 직원 학생들이랑 인사를 하고 오늘 여기서는 안랩 이사회 의장을 사퇴하러 왔습니다.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온 셈인데요. 오늘자로 안랩의 이사회 의장뿐만 아니라 제가 가졌던 모든 추억, 마음까지도 정리를 해야 될 것 같아요. 이제 제가 사직서를 내면 저한테 안랩은 우리나라의 수많은 좋은 기업들 중에 하나가 될 겁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리고 만약에 대통령이 만약에 제가 된다면 아마도 굉장히 엄중한 사회의 감시 속에서 세계 수준의 경영 투명성을 지키셔야 될 거예요. 절대로 어떤 특권이나 반칙 없이. 모든 사회가 지금보다 엄중하게 더 엄중하게 지켜볼 거예요. 정말 그런 점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아마도 제가 이런 말씀드리면 굉장히 야속하다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수 있는데요, 

저는 안랩 여러분과 그리고 또 변함없이 내려온 안랩 정신을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Ahn


 유남열 / 안랩 커뮤니케이션팀 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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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빌 게이츠가 만나 나눈 이야기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은 11일 오전(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전 회장을 만났다.


빌 게이츠는  MS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해 꾸준히 사회공헌 활동에 힘써왔다. 이 재단은 자선 단체로는 세계 최대인 한화 4천200억원 규모이며, 각종 질병과 빈곤 퇴치를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런 세계 최대의 자선 재단을 운영하는 만큼 안 원장은 대화 시간의 대부분을 자신이 설립 준비 중인 재단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는 데 할애했다. 다음은 안철수 원장이 빌 게이츠를 만난 후 기다리던 취재진에게 설명한 내용.

이번에 들은 여러가지 조언을 참고로 해서 좋은 방향으로 진행하겠다.

선진국에서는 기부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고 유명한 분이 아니고 대학교수라도 그런 쪽에 관심있는 분들이 많다.

게이츠 전 회장은 그냥 기부하는 데 그치지 말고 사회에서 중요한 문제들을 좀더 창조적이고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서 해결하는 재단을 만들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혼자 하지 말고 여러분들이 힘을 합치면 외롭지 않다는 말씀도 해줬다. 그리
고 "항상 평가하라. 배우려면 평가를 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재단 관련 내용 외에 세계 경제, 저소득층에 대한 보건과 가난 구제, 저개발국가에 대한 원조, 그리고 IT 산업의 동향 등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가까운 시일 안에 게이츠 전 회장이 한국을 방문해 기부재단에 조언을 해줄 것을 부탁했다.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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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와 에릭 슈미츠 만나 어떤 얘기 나눴나

1월 9일 오후(현지 시각)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 구글 에릭 슈미츠 회장을 만났다. 비공개 만남을 마친 후 안 원장은 기다리고 있던 특파원들에게 대화 내용을 간략히 설명했다. 다음은 안 원장이 말한 내용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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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슈미츠가 IT 전문가이고 여러 가지 자문 활동도 많이 하고 무엇보다 본인이 기부해서 재단도 갖고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공통점이 많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선 IT 기술의 흐름에 대해 관심이 집중될 수밖에 없어서 직접 하고 있는 구글의 제품들, 특히 한국과도 관련이 많은 안드로이드의 미래에 대해,
소셜 네트워크 쪽으로 구글 플러스각 강광받는데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지, 경쟁은 어떤지, 얼마나 많은 영역으로 확장되리라 생각하는지에 대해 얘기 나누었다.

혁신을 가꾸는 게 중요한데 그 분도 한국에 대해 많이 알고 있고, "한국도 이제는 저가의 개도국은 이미 될 수 없다.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지식 정보에 기반한 산업을 해야 하고, 거기에 핵심적인 것이 혁신이다."라고 말해 나도 많이 공감했다.

혁신을 어떻게 하면 그 싹을 죽이지 않고 어떻게 잘 기르느냐가 국가 경쟁력인데 거기에 대해서는 내 생각과 똑같았다.
'한번 실패를 하더라도 용인을 하라.'하는 철학이었고 나도 전적으로 공감했다.

"앞으로 회사나 국가나 발전하려면 조그만 실수나 실패는 용납하면서 (단, 도덕적이고 성실한 경우에) 계속 기회를 주면 결국 그 사람은 실패를 딛고 성공해서 10배, 100배의 성공을 가져와서 전체 국가나 기업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의견들 듣고 공감했다.

"대기업 중소기업 상생에 관심 많은데 실리콘 밸리는 어떤가?" 물었다. 그랬더니
"여기서는 특별하게 작은 기업이라 해서 큰 기업이 불공정한 거래 등은 걱정을 안 한다."라고 했다.

"왜 그러냐, 많은 것을 갖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그런 방향으로 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런 것들 안 일어나고, 그런 것은 문화인 것 같다. 처음에 문화를 잘 정립해놓으면 국가가 감시를 강화한다든지 하는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더라도 잘 협력이 일어나고 중기 벤처들이 혁신을 일으키고 그 혁신을 흡수하면 대기업 자체에 굉장히 좋은 일이다. 그래서 결국 국가 산업 발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이런 시각이다.

세계 경제에 대해 그분 나름대로 시각이 있어 의견을 나누었다. 신자유주의가 세계적으로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것에 공감했다. 특히 요즘 같으면 성장은 하는데 직업 창출은 못 하는 Jobless growth 문제에 관심사가 일치했다.

“그냥 놔두면 필연적으로 그런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환경이 있다. 거기에는 세계화, 기술의 발전. 그 두 가지가 큰 이유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해결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직업 창출할 수 있는 방법까지도 같이 고민하다 보면 완전히 문제를 없앨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 해결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 세계 경제에서 중국과 인도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해질 텐데 미래는 어떨까 얘기 나눴다.
“인도는 5~10년 뒤에도 지금과 비슷할 것이다. 즉, 국가 내부적으로 혼돈스러운 것 같지만 경제 성장하면서 나름대로 역할을 지금처럼 지속할 것이고, 중국은 내부적으로 해결할 과제들을 잘 극복하면 미래 전망이 굉장히 달라질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정도 시각을 갖고 계셨다.

출국할 때 이야기한 것의 보도를 보고 약간 당혹스러웠다. 나는 고민을 할 때 고민이라는 단어를 쓰지, 미리 정해놓고 수순 밟기 위해 고민이라는 단어를 쓰는 사람이 아니다.  내 어법 자체가 그렇다. '고민을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으로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그게 진실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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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의 말, 신입사원에게 비타민 같았던

3박4일간의 합숙교육 중 3일째 되는 날 안철수 의장님의 강연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안철수 의장님을 평소 존경해왔기 때문에 어떤 말씀을 해주실까 매우 설레고 기대되었다.

의장님은 먼저 우리 8기 공채들의 나이를 물어보시고는 우리 나이 때에 의장님이 하셨던 고민이나 느꼈던 점 3가지 정도를 말씀해 주셨다. 같은 20대에 했던 고민들이라 그런지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다.

첫째는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이다. 의장님은 학교만 27년을 다녔는데 그렇게 오랜 기간 학생으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은 덕분이며, 의장님도 사회구성원으로서 한 역할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보답의 의무를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해왔다. 먼저 이 세상에 날 낳아주신 부모님에 대한 보답, 기쁨 슬픔을 함께 나눠준 친구에 대한 보답 등. 그런 점에서 의장님이 말씀해주신 사회에 대한 보답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둘째는 독서에 대한 내용이다. 의장님은 책을 많이 읽으셨다고 한다. 책은 다른 사람의 30년 노하우의 집합체라며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을 강조하셨다. 그리고 책을 읽을 때에 주의할 점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만약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두 권의 책을 읽었을 때, 첫 번째 책 외에 두 번째 책부터 다 배척해버린다면 그것은 자기 주변에 벽돌을 쌓는 것이고, 이렇게 되면 발전이 없다.
반대로 두 번째 책을 읽었을 때 그 의견에 쉽게 흔들려 버린다면 귀가 너무 얇아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따라서 다양한 의견들을 적절히 수용하여 간접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셋째는 20대의 도전정신에 대한 내용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20대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를 물어보면 아마 많은 사람들이 도전이라고 말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도전과 무모한 시도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회사 업무와 같이 해야 할 일이 있고, 갑자기 너무나 해보고 싶은 일이 있을 때 해야 할 일을 포기하고 해보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무모한 일일 뿐이다. 도전이란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고, 나의 다른 부분을 희생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한다. 그렇게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두 가지를 계속 하다 보면 두 가지 일 모두에 전문성이 생기는데, 그렇게 내가 전문성을 갖추고 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오게 되고, 그때 그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선택하는 것이 바로 도전이다.
의장님의 강연을 듣기 전까지는 ‘도전’을 ‘시도’ 정도의 의미로 가볍게 생각했는데, 도전이야말로 오랜 시간의 인내가 필요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질의 응답 시간 동안 좋은 얘기가 많이 오갔다. 그 중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원칙에 대한 내용이다. 원칙이란 남들이 봤을 때 멋있는 게 아니라 이 원칙대로 살면 손해가 나더라도 지킬 만한 가치가 있을 때. 그때부터 단단해져 죽을 때까지 가지고 갈 원칙이 되는 것이라고 하셨다.

원칙은 각각의 사람들이 그간 살았던 삶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일관성(예를 들어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일관성 있게 선택했던 부분과 같이)을 찾아 뽑아내는 것이다. 이렇듯 원칙은 이상적인 논리로 뽑아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진실의 울림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살면서 앞으로 많은 고민을 하고, 선택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질 텐데 고민하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민 끝에 선택을 함으로써 나를 알게 되고 이 과정들을 통해 나만의 원칙들이 점점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정도 원칙이 단단해지고 나면, 앞으로 갈등이 생겼을 때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인터넷이나 책,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의장님의 강연을 가까이서 직접 들으니, 다른 곳에서 이미 들었던 내용이라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어 한 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잔뜩 필기를 해 놓았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녹음을 해두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다. 3박 4일의 교육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고, 나중에 회사 일이 힘들어질 때 곱씹어보면 나에게 비타민 같은 추억이 될 것 같다. Ahn

강다솜 / 안철수연구소 전략제품개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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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CEO 퇴임 후 첫 전사 이메일에 담긴 의미

안철수연구소(안랩) 창업자이자 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인 안철수 교수는 2011년 11월 14일 600여 명의 안랩 임직원 전체에게 이메일을 보내 자신이 가진 안철수연구소 지분 중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다. 안 교수가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낸 것은 그가 퇴임하던 날 이후 처음이다.

*퇴임사 전문 http://www.ahnlab.com/company/site/about/founder_retire.jsp

이번 결심은 CEO 퇴임만큼 안랩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의 발언 이 일으킨 사회적 파장을 보면 이는 안랩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에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한 모델을 제시한 셈이다. 

그는 언젠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기업가 유일한(1889~1971) 박사를 존경한다고 말한 바 있다. 유일한 박사는 개인 주식을 기탁해 '한국사회 및 교육원조 신탁기금'을 발족하고 사후 전 재산을 이 기금에 출연함으로써 '건전한 기업 활동을 통해 얻은 기업 이윤은 그 기업을 키워준 사회에 되돌려야 한다'는 기업 이념을 몸소 실천했다. 안철수 교수는 존경의 뜻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한편으로 가히 충격적인 안 교수의 '통큰 사회환원'은 사실 그가 살아온 삶을 보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는 의대 재학 시절 수시로 무의촌 봉사 활동을 했고, 의대 박사 과정 중 브레인 바이러스 퇴치용 프로그램을 만든 이후 오로지 남을 위해 7년 간 잠을 줄여가며 V3를 개발해 무료 보급했다.

V3의 맥이 끊어질 위기에 처하자 전도유망한 의대교수의 길을 접고 미래가 불투명한 보안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고민 끝에 '기업은 혼자서 하기 힘든 의미 있는 일을 여럿이 함께 하는 것이고, 그 본질에 충실했을 때 결과로 나오는 것이 이윤이다.'라는 그 나름의 정의를 내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창업 이후에도 개인용 V3를 무료 보급하는 등 사회의 일원으로서 기업이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철학으로 공익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2000년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한다.'라는 '안철수연구소의 존재 의미'를 명문화했다.

기업 경영 10년 만에 퇴임한 후에는 한 기업의 성공이 사회적 자산이 되어 중소 벤처 업계 전체의 발전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두 번째 미국 유학을 갔다. 방문연구원, 연수 등의 쉬운 길이 아니라 정식 시험 과정을 거쳐 석사 과정을 밟은 것이다. 귀국 후에는 KAIST에서 기업가정신을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활발한 대외 강연으로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을 위로하고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지금은 불모지나 그의 삶을 움직이는 것은 '제가 이룬 것은 저만의 저만의 것이 아니라는' 부채의식인 것이다. 

그는 말했다.

"평생을 아버지처럼 의사로 살 줄 알았는데, 최선을 다해서 살다보니 오히려 의사를 그만둬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CEO를 그만둘 때도 마찬가지였다. 더 의미가 크고, 더 재미있고 보람 있게 일할 수 있고,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변치 않을 것은, 어떤 일을 하고 있든 간에 매 순간 의미 있고, 보람 있고, 잘하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50년을 걸어온 그의 삶이 그러했듯 앞으로도 그는 소신 있고 진중한 행동으로 감동과 신뢰를 줄 것이다.

-------<안철수 교수 이메일 전문>--------

더불어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며

안연구소 동료 여러분,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작은 결심 하나를 실천에 옮기려고 합니다.

그것은 나눔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의사와 기업인, 그리고 교수의 길을 걸어오면서
우리 사회와 공동체로부터 과분한 은혜와 격려를 받아왔고,
그 결과 늘 도전의 설렘과 성취의 기쁨을 안고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한 가지 생각을 잊지 않고 간직해왔습니다.
그것은 제가 이룬 것은 저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는 기업을 경영하면서 나름대로 '영혼이 있는 기업'을 만들고자 애써왔습니다.

기업이 존재하는 것은 돈을 버는 것 이상의 숭고한 의미가 있으며,
여기에는 구성원 개개인의 자아실현은 물론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보다 큰 차원의 가치도 포함된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가치를 실천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의 폐허와 분단의 아픔을 딛고 유례가 없는 성장과 발전을 이룩해 온
우리 사회는 최근 큰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건강한 중산층의 삶이 무너지고 있고
특히 꿈과 비전을 갖고 보다 밝은 미래를 꿈꿔야 할
젊은 세대들이 좌절하고 실의에 빠져 있습니다. 

저는 지난 십여 년 동안
여러분들과 같은 건강하고 패기 넘치는 젊은이들과
현장에서 동료로서 함께 일했고,
학교에서 스승과 제자로도 만났습니다.
또 그 과정에서 이상과 비전을 들었고 고뇌와 눈물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시련들을
국가 사회가 일거에 모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국가와 공적 영역의 고민 못지않게
우리 자신들도 각각의 자리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더 많은 혜택을 받은 입장에서,
앞장서서 공동체를 위해 공헌하는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실의와 좌절에 빠진 젊은이들을 향한 진심어린 위로도 필요하고
대책을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동체의 상생을 위해 작은 실천을 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이 시점에서 가장 절실하게 요구되는 덕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같이 없어질 동시대 사람들과 좀 더 의미 있고 건강한 가치를 지켜가면서 살아가다가 '별 너머의 먼지'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삶이라 생각한다." 

10여 년 전 제가 책에 썼던 말을 다시 떠올려 봅니다.

그래서 우선 제가 가진 안연구소 지분의 반 정도를 사회를 위해서 쓸 생각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를 밟는 것이 좋을지,
또 어떻게 쓰이는 것이 가장 의미 있는 것인지는
많은 분들의 의견을 겸허히 들어 결정하겠지만,
저소득층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쓰여졌으면 하는 바람은 갖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의 핵심중 하나는
가치의 혼란과 자원의 편중된 배분이며,
그 근본에는 교육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선은
자신이 처한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해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고,
마음껏 재능을 키워가지 못하는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일에
쓰여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다른 목적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온 것을 실천한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오늘의 제 작은 생각이 마중물이 되어,
다행히 지금 저와 뜻을 같이해 주기로 한 몇 명의 친구들처럼,
많은 분들의 동참이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뜻 있는 다른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기대해 봅니다. 

감사합니다. 

2011년 11월 14일
안 철 수 드림

 

사내기자 황미경 / 안철수연구소 커뮤니케이션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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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이 사람만큼 '융합' 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사람이 또 있을까?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과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의 수장으로서, 청춘콘서트의 주역으로서 바쁜 일정을 보내는 안철수 교수.

6월 29일 열린 대전 청춘콘서트

그는 창업자로서 매년 8월 말 열리는 안철수연구소 전사 교육인 '안랩 스쿨'을 찾아 강연을 한다. 상상 이상으로 바쁜 일정 속에서 올해도 어김없이 '안랩 스쿨'을 찾은 그는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 방송인 김제동씨에 대한 이야기로 가볍게 시작했다.
"
박경철 원장은 아저씨의 탈을 쓴 여고생이에요. 조금만 슬퍼도 눈물을 흘리는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이지요. 김제동씨와는 이런 일이 있었어요. 강의를 다닐 때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인해 달라고 하면 쑥스럽다고 했더니 '아직 연예인 수준은 아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MBC스페셜 녹화하러 홍대 앞에 같이 갔는데 사람들이 저한테만 사인해 달라고 몰려서 김제동씨가 당황해했던 기억이 있네요. (웃음)"

이어서 개인과 안철수연구소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사회와 업계에 대한 부채의식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주요 내용. 
색깔(좌파, 우파) 논쟁을 아직도 하고 있는 유일한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 만약 교육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이고, 경제에 대해서는 진보적인 입장을 취한다면 그 사람은 보수인가? 아니면 진보인가? 

공정한 사회는 최소한 출발선이 같아야 하고, 경쟁 과정이 공정해야 한다. 그래야 떨어진 사람도 수긍할 수 있다. 그리고 떨어진 사람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의료 봉사, V3 무료 보급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은 '부채의식'이다. 의대 다닐 때 구로동이나 무의촌에서 봉사 활동을 했던 것, 7년 동안 V3를 무료 보급한 것, 의학 연구를 접고 안철수연구소를 창업한 것은 사회에 대한 부채의식이었다.

사회 구성원이 각자의 역할을 다해주었기 때문에 내가 학생 시절 의대 공부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처럼, 세상을 살아오면서 여태까지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것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의대 시절 의료 봉사 활동을 시작했고 이것이 바이러스 분석 및 무료 백신 제작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 여기서 개발자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생활인으로서 할 수 있는 도전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모두 그만두고 당장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하는 일은 유지하고, 퇴근 시간이나 주말 여가 시간을 기꺼이 할애해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도전이다. 여러 분야의 전문성을 모두 키운 후, 그 중 자신에게 맞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하는 것이다.

선택을 할 때 절대 남과 비교하지 말고, 어려움이 있을 때는 뒤나 아래를 바라보면서 여태까지 내가 해온 일을 살펴보면서 내가 아무것도 이룬 게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계획을 세울 때는 원대한 계획이 아니라, 계획을 잘게 쪼개야 하고, 그 계획을 달성했을 때는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등의 보상도 꼭 필요하다.

업계에 대한 부채의식으로 쓴소리 계속

1999년은 CIH 바이러스 대란, Y2K 바이러스 이슈가 있었고 '벤처 95% 망한다'는 발언으로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다. 내 밥그릇 챙긴다는 소리 안 들을 때 말할 수 있어야 그것이 신뢰를 얻는다. 눈먼 돈이 벤처로 흘러드는 때였고, 투자가 아닌 투기에 뛰어든 사람들이 손해를 보면 결국 벤처나 산업계가 망가질 것을 아는 사람은 알고 있었다. 아는 것을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던 때 금기를 깬 것은 업계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다.

근래에 중소기업이 대기업에 종속되는 것을 '동물원'에 비유해 비판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B2B 거래를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는 불공정한 거래 관행을 누군가는 말해야 한다. 안철수연구소가 동물원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어느 한 대기업에 치우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연 단위 계약이라는 수익 모델을 만든 것도 주효했다. 이 모델을 처음 만들고 고객을 이해시킬 때는 매우 힘들었지만 이제는 보안 업계에서 당연한 것으로 자리잡았다.
안철수연구소를 경영할 때 가장 기뻤던 순간은 2004년 안철수연구소가 규모나 매출액 등에서 비교도 할 수 없는 굴지의 대기업들과 함께 '존경받는 10대 기업'에 뽑혔을 때이다. '드디어 과정에 대한 평가를 받았구나' 생각했다. 의미 있는 일의 결과로 돈을 버는 것이 기업이다.
 
회사 경영이 잘되고 있을 때 사임한 것도 부채의식 때문이다. 다른 중소/벤처 기업이 어려운 것을 보면서 우리 회사만 잘되는 것에 안주할 수는 없었다. 쉬운 길로 가지 않고 토플, GMAT 다 보고 와튼스쿨에 입학했다. 경험을 체계화하고 지식 저변을 확대해야 남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Ahn


사내기자 권서진 / 안철수연구소 품질보증팀 주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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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강연 현장에서 답한 '이직할 때 고려할 점'

올 여름은 유난히 비가 자주 내렸다. 하지만 비구름 가득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설레는 날이 있었다. 바로 '청춘콘서트'가 있는 날. 기분 탓인지 아니면 날씨도 도와주었던 것인지 어두웠던 하늘도 점점 개어서 7월 8일 안산에서 열린 '청춘콘서트'를 보러 가는 발걸음은 점점 더 가벼워졌다.

'MBC 스페셜' 방송으로만 보았던 안철수 교수와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을 눈앞에서 실제로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오늘은 어느 이야기를 해주실지 몹시 기대가 되었다. '청춘콘서트'라고 해서 내 또래의 대학생들이 모여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마음속의 '청춘'을 간직하고 있는 4, 50대 어른들도 많이 참석한 것을 보았다. 이런 분들을 보면서 '나중에 40대가 넘어서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참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강연 내용도 좋았지만 이날의 주제가 '미국의 사례로 본 일자리와 고용의 문제'인 만큼 주제와 관련된 청춘들의 질문과 멘토들의 답변을 중심으로 정리해보았다.


Q. 이직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직 시에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하나?

안철수 :
외국의 어느 신문에서 '지금 시대에는 더 이상 한 사람이 한 가지 직업으로 살수는 없다.' 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처럼 한 가지 일을 하면서 평생토록 지내는 시대는 아니다. 하지만 이럴 때는 먼저 준비를 하면서 겹치는 시기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환경 운동에 정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제일해서는 안 될 일이 회사 일을 열심히 하다가 55세 정년퇴임을 하고 그 다음날부터 환경운동을 하는 것이다.
 
막상 퇴임 다음날부터 환경운동을 하려고 하면 한 번도 안 해본 일이어서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고 적성에 맞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리 자신의 적성에 맞는 사람이더라도 방황을 하게 되면서 하고 싶던 일에 대해 실망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의 경우 정년퇴임 전 최소 5~10년 동안은 주말 시간을 이용해서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 된다. 예를 들어 환경운동 단체에 가입해서 주말 동안 봉사활동을 나가는 것이다. 환경단체 가입해서 주말 동안 봉사활동을 하고 사람들도 사귀고 공부도 하는 것이다. 그래야 관련된 일을 해보면서 적성에 맞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 5년이 지나 정년퇴임을 했을 때에는 미리 경험과 준비를 한 상태이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 알고 있어서 그 다음날부터 바로 편하게 환경운동을 할 수 있다.

'도전'이라는 것은 이전의 것을 완전히 뿌리치는 것이 아니라 고생은 해도 병행하는 시기가 꼭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 한 쪽을 버리고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 성공확률이 높을 것이다.
 

Q.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곽수종
교과서적인 답으로 대체하자면
1. 기업의 투자가 필요하다.
2. 안정 기금도 좋지만 벤처기업, 중소기업 육성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펀드를 만들어야한다.
3. 스탠퍼드 대학 내의 바이오산업을 위한 벤처 기업처럼 대학 내 산학 협력의 실질적인 연구 기관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안철수 : 우선은 현행법으로 할 수 있는 한 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기존에 대한 설득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동물원 구조를 만들어서 제일 난감한 것은 동물원의 주인이다. 애플 아이폰을 여러 가지 규제로 막다가 갑자기 들어오면서 헤매고 있다. 모 전자업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핵심적인 부분은 구글에서 제공을 해주고 있다. 구글에서 안드로이드와 같은 운영체제를 만들지 못했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대기업은 더 힘들어하고 있다.

바로 주위에 생태계를 만들지 못한 것이 원죄이다. 특히 SW 산업을 발전 못 시킨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금이라도 이것이 교훈이 되어 앞으로 이런 실수를 안 하기 위해서 내부적으로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박경철
예전에는 누군가 하나가 성장하고 그 뒤를 따라 갔다면 지금은 그 질서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과거의 습관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한다.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해야 될 것이다. 그래야 기회가 생길 것이다.


Q. 정규직, 파견직, 계약직, 인턴 등 여러 종류의 직원이 있다. 나라에서 실업률을 낮추려고 청년 인턴을 취직시키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곽수종 : 방금 3가지 질문이 생각나서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려고 한다. 여러분과 같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1. 만약에 우리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구조가 내일 당장 미국처럼 바뀐다면 일자리 문제가 없어질 수 있을까? 일자리의 차별화는 없어질 수 있을까?
2. 노조가 만들어져서 단수노조, 복수노조가 된다면 노조가 없는 세상보다 더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질 것인가?
3. 행복을 찾기 위해 일자리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아니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일자리 문제를 논하는 것인가? 

미국에는 두 가지 형태의 일자리가 있다. 그 중 한 가지 형태는 주지사가 바뀌면 잘린다. 미국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만큼 노동자의 계층이 다변화하한다. 가장 큰 문제는 2년마다 바뀐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브로커가 끼어서 노동자가 받아야 할 임금을 브로커들이 돈을 갖고 가는 것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주어진다면 괜찮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 대우를 해준다고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박경철 : 제도적 측면에서 보면 시간제 근로는 복지가 잘 이루어져있는 북유럽에서 만들어졌다. 집에서 할 일이 없는 여성들을 위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나온 제도이다. 아이를 키우다가 자아실현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 만든 것이 시간제 파견 근무인 것이다. 하지만 요리사의 칼과 강도의 칼처럼 양면성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비정규직, 기간제 근로에 대해서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당당히 거부해야 된다. 그리고 엄격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시적인 사업인 경우 ,현재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기 위한 경우 ,퇴직 근로자의 경우에 재사용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정규직, 기간제 근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주권을 갖고 있고 옳고 그름과 본질에 대해서 간파하고 있다. 자각하고 탈환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안철수 : 실업률을 측정하는데 우리가 모르는 왜곡된 점이 있다. 바로 취업을 하려고 노력하다가 해도 해도 안 되어 포기하는 사람은 직업은 없어도 실업자가 아니다. 또 다른 맹점은 우리나라의 경우 자영업자 비율이OECD 국가 중 제일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자신의 피를 빨아서 먹는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거의 다 소진하면서 사는 경우가 많다. 실업자가 아니라고 보기 힘들다. 이런 왜곡된 점에 의해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OECD 국가 중 높은 편은 아니다.
 
반대로 고용률을 보면 명백히 낮은 편이다. 특히 청년 고용률은 OECD 국가 중 거의 최하위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상황은 좋지가 않다. 하지만 실업률 통계만 보면서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여성들은 가사만 돌보면 되었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일을 해야 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 어떤 계층에서 정말로 명백하게 몇 %가 일하고 있는지 확인해봐야 된다. 그리고 국가에서도 몇 %로 끌어올릴 것인지 목표를 세워야 한다. 이런 것이 맞는 접근 방법이라고 본다.


Q. 지금의 대학교나 대학원에서 배우는 지식이나 정보가 5년~10년이 지나면 무의미한 정보가 될 수 있는데 대학생은 어떤 것을 배워야 하고 이런 학생들을 위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안철수 : '대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나?' 라는 통계가 있다. 통계 결과를 보면 업종 평균 5년 정도 지나면 5년 전의 절반이 없어지고 바뀐다. 현재 세계 최고의 수준의 사람도 5년이 지나면 절반은 못 쓰는 내용이 되는 경우가 되니까 비전문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일반적인 분야는 5년이지만 변화가 빠른 IT분야는 2년이다. 힘들 수 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제도권 교육보다는 대학 졸업 후의 평생공부에 비중을 많이 둔다. 직장 갖는 것을 보면 대학 때까지는 제도권 공부라고 보면 직장을 다니는 이후부터는 평생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전문성을 높이거나 다른 직업으로 잘 넘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생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OECD 평균에 비해 우리나라의 중, 고등학교 사교육비는 1위. 그리고 대학 등록금은 전 세계 2위로 미국 다음으로 높다. 반면에 평생 교육비는 OECD 국가 중 꼴찌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평생 교육비에 투자를 해야 하는데 평생교육에 대해서는 낮은 수준을 보이는 것일까? 이유를 보면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식들을 위해서 자신의 평생 교육비까지 중, 고등학교 사교육비에 뿌리는 것이다. 이런 것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전체 구조도 고쳐져야 되고 이런 관점에서 대비를 해야 될 것이다. 

박경철 : 덧붙여서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식은 외부와 함께 공유하지만 지혜는 내면이다. 지혜는 배울 수 없는 것이고 습관적인 삶은 지혜가 안 된다. 지혜는 치열하게 살고 내면의 불꽃을 흩뜨리지 않는 것이다. 지식을 활용하는 것은 지혜라고 본다. 그리고 나와 관계하면서 사색과 성찰을 통해 만드는 것 같다. 그래야 안목과 통찰과 직관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곽수종 :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투자한 것이 노동생산력과 GDP로 제대로 나오려면 17년이 걸린다.
지금까지 가졌던 패러다임은 '30년의 압축성장','빨리빨리', '공동체', '충성', '우리는 하나다' 이었다. 이제는 이 개념을 조금 느리게 가져야 하고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구사해야 될 것이다.


끝으로 안철수 교수의 정리

처음 사회문제, 리더십에 대한 강연 요청을 받았었다. 해보니까 단순한 지식전달이 아니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드리는 게 답인 것 같다고 느껴서 지금의 청춘콘서트 형태로 진행을 하게 되었다. 그 중 청춘 콘서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 처음 받았던 어떤 청중분의 고민이 기억난다.

'지금 28,29세인데 새롭게 전공을 찾거나 변화를 하려고 하니까 주변 친구들에 비해 늦은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그 분께 그 당시 나갔던 모임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모임의 주류가 70대 분들이었다. 이제 막 60인 분이 가장 어린 분이었다. 이제 환갑이 된 가장 어린 분에게 70대 분들이 둘러싸고 축하하면서 '자네가 부럽네, 자네 나이면 못할 것이 없겠네.' 라는 말씀을 했다. 70대 분들이 10년 후 뒤를 돌아보고 나니까 그 분들이 60이었을 때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였고 그때도 충분했는데 왜 스스로 주저앉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어르신들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로 세상에는 늦었다는 것은 없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60세도 새로 시작할 수 있고 더 나아가 70세도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고 본다. 혹시나 아직 젊은데도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이 분들의 대화가 조그만 격려가 되었으면 한다. Ahn 
 
대학생기자 김재기 / 한양대 안산 컴퓨터공학과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타고난 천재가 아닌 이상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항상 노력하는 대학생기자 김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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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진단, 경제 성장 아닌 일자리 창출이 핵심

나를 포함한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대학생의 최대 고민거리는 ‘취업’이다. 취업을 위해 우리는 학점을 올리고 어학 공부를 하며 대외 활동에 뛰어든다. 취업 시에 필요한 소위 ‘스펙’ 때문이다. 이 문제를 늘 고민하고 또 좌절하는 청춘을 위해 최고의 멘토 안철수 교수와 박경철 원장은 ‘청춘콘서트’를 마련했다. 두 멘토는 7월 8일 안산 문화예술회관에서 ‘미국의 사례로 본 일자리와 고용 문제’를 주제로 특별 게스트 곽수종 박사(삼성경제연구소 글로벌분석실 연구원)와 함께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했다.

금융 산업 중심 사회에선 노동 생산성 무의미


박 원장이 ‘글로벌 시장에 관해서 중요한 확견을 가진 분’이라고 소개한 곽수종 박사는 미국의 경제 상황과 우리나라의 현재를 비교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우리나라의 청년처럼 미국의 청년도 똑같이 힘드냐'라는 박 원장의 질문에 곽 박사는 “아들이 시립도서관 아르바이트에 지원을 했는데, 총 30명이 지원을 했다. 그 중 20명이 석사, 5명이 학사, 5명이 고졸 출신이었다. 단 1명을 뽑는 것이었고 또 고작 도서관 아르바이트 자리인데 뛰어난 학벌을 가진 사람조차 30:1이라는 경쟁률을 경험했다.”라며 미국의 상황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시사했다.

2000년부터 미국의 경제 규모가 20% 늘어났다면 그만큼의 이익이 발생했을 텐데 왜 그만큼 일자리가 늘어나지 않았을까? 곽 박사는 그 이유를 제조업이 아니라 금융 산업 쪽에서 부가가치가 발생했고, 그 때문에 ‘노동 생산성’의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 부가 모든 직원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상위 계층에만 돌아가는 임금 체계이다 보니 부의 불균형으로 인한 양극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을까? 곽 박사에 따르면 80년대 이전에는 정부가 노동 임금이나 노동자의 복지에 개입해왔지만, 80년대 이후부터는 달랐다. 미국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주장한 ‘신자유주의’ 때문이다. 1·2차 오일 쇼크를 겪으면서 미국의 경제가 주춤하자 그는 정부의 무능력함을 꼬집고 정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시장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두자는 그의 주장이 부의 불균형을 초래한 것이다. 

자본주의에는 국가 이외 다른 권력 존재


그런데 이 신자유주의가 왜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것일까? “우리나라 대학생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 1위가 삼성이다. 그런데 만약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입사를 한다면, 2년 안에 60% 이상이 그만둘 것”이라며, 이러한 모순이 발생하는 것은 우리 사회 구성원이 정치 체제와 경제 체제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헌법에 대한민국은 ‘공화국’이다. 즉, 권력은 대통령이나 헌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에게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제 측면에서 볼 때, 자본주의에서는 국가와는 다른 권력 구조가 존재한다. 미국이 시민 혁명으로, 프랑스는 프랑스 혁명으로 또 영국은 권리장전으로 이 두 속성을 제대로 정리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30년 간의 압축 성장 때문에 이 두 가지 속성이 정리될 틈이 없었던 것이다. 더 심각한 상태를 초래하기 전에 두 속성을 정리할 수 있는 ‘개혁’이 필요하다. 이 개혁 중 하나는 ‘투표’가 될 수 있다. 즉, 이 사회의 구성원 중 하나인 우리의 역할이 중요하다." 

경제 성장 아닌 일자리 창출에 초점 맞춰야


일자리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만들어질 수 있는 수에 한계가 있다. 특히 대기업의 고용은 포화 상태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중소기업이나 벤처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할 필요가 있다.

안철수 교수는 ‘현재 기업이 국가보다 경제력이 훨씬 커졌다. 이런 상황에 기업은 정부가 혜택을 굳이 주지 않아도 살아남기 위해서 스스로 성장을 할 것이다. 그러니 일자리를 더 만들어낸 기업, 새로 창업하는 기업, 그 기업이 같이 일을 하는 중소기업에 혜택을 주자. 그러면 전체 일자리가 늘 것이다. 사실 경제 성장의 목표는 기업이 이루는 거니까, 그렇게 하면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인텔의 전 CEO 앤디 그로브의 말을 인용했다. 이어서 곽수종 박사에게 “앤디 그로브는 정부가 경제 성장에 목표를 두지 말고 고용 창출에 둬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이 한국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곽 박사는 ‘리좀(Rhizome; 자유롭게 이어진 뿌리)’이라는 용어를 언급했다. “안 교수님 말씀대로 리좀 방식으로 중소기업과 벤처가 우후죽순으로 자랄 수 있도록 토양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측면으로 볼 때, 정부와 기업은 중소기업과 벤처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어야겠다.”

곽 박사의 말에 덧붙여 박 원장은 대기업의 약탈적 구조를 지적했다. “요즘 청년들이 중소기업을 안 가는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 내가 힘들고 어렵더라도 미래가 밝다는 전망만 있으면 뛰어들 것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지금도 미약하고 또 미래가 밝을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약탈적 구조를 없애는 것도 중요하다.”

이어서 기회의 균등을 강조했다. "세상에는 권력가 혹은 재벌가가 어쩔 수 없이 존재한다. 하지만 혜택을 받을 기회가 균등한 사회를 우리가 만들었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또, 그 혜택의 차별이 균등한 기회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느냐, 그리고 그것이 깨졌을 때 또 다른 기회가 만들어지느냐는 국가가 법으로 규제하고 우리가 함께 나서서 해야 할 일이다." Ahn

대학생기자 변정미 / 세종대 식품공학과
대학 입시에 실패한 후, 방황하던 저에게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0대의 1년은 30대의 10년과도 안 바꿀 만큼 소중한 시간이다. "
머나먼 미래에 찾아올 10년 보다 더 소중한 2011년, 안철수연구소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올 한 해, 10년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년 뒤, 더 성장한 저를 기대해주세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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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제친 시청률 1위, MBC스페셜의 비결

3월 즈음 학교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에게 투표하는 이벤트가 있었다. 후보는 셋이었는데 안철수 교수님 자리만 유난히 파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무 스티커가 많아서. 교수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인기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교수님께서 학생들에게 주시는 영향이 크다는 뜻 아닐까? 그래서인지 교수님은 고민하는 청춘을 위해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과 함께 강연을 여러 번 했는데 안타깝게도 기회가 되지 않았다. 아쉬워하던 차에 교수님 말씀을 TV에서 방영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MBC스페셜이 지난 1월에 이어 '안철수와 박경철 2탄'을 제작한 것. 올레! 방송은 7월 29일 밤 11시에 전파를 탔다. 이날 방송은 10.9%의 시청률로 시사교양 프로그램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동시간대 예능 프로그램을 누르고 시청률 1위를 했다. 이른바 대세인 예능 프로그램을 제치고 뜨거운 호응을 얻은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기대어 위안과 격려를 받고 싶은 세 사람의 진정성 있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시너지 효과일 것이다.

틀을 깨고 생각을 넓히자!

"여기 점이 아홉 개 있습니다. 네 개의 선이 이 아홉 개의 점을 한 번씩만 다 통과하도록 그릴 수 있나요? 단 네 개만 그려야 합니다~!"

이전에 해본 적이 있는 사람에게는 쉬운 문제이겠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대략 난감'한 상황이 될 것이다. 여러 번 중복도 아니고 단 한 번씩이라니…. 여러 가지의 경우를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답은 쉽다. 이 문제를 푸는 열쇠는 '외부'를 생각하는 데에 있다. 문제에서는 사각형 안에서만 선을 그리기는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틀을 만들어 버리고 그 안에 우리를 거둔다. 이 안에서는 창의적인 생각을 하기 어렵다.

이 얘기를 들으면서 문득 생각난 이야기가 있었다. 벼룩은 가만히 있을 때는 1m도 뛸 수 있지만 30cm 높이의 병에 가두어 놓으면 기껏해야 병의 높이만큼만 뛸 수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데 본인이 처한 여건 때문에, 혹은 사회적 편견 때문에 그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 하는 것 아닐까? 안 교수는 우리에게 이 사실을 재확인시켜주려 한 것 같았다. 

시간은 만들려고 노력하면 만들어진다

시간 관리와 공부 방법은 고등학생 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기는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사라지지 않는 고민인 것 같다.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안 교수는 공부 방법이나 시간을 관리하는 방법과 함께 자신의 경험 하나를 말해주었다.

"제가 박사 논문을 준비할 때의 일이었어요. 이 때 컴퓨터 바이러스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이러스 백신을 연구하는 것은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박사 논문 준비'라는 해야 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아침 6시까지 세 시간을 백신 연구에 투자했습니다. 이런 나날이 매일 반복되면서 들었던 생각이 '시간은 상대적이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이러스를 연구하기 전이나 후나 저에게는 똑같은 24시간이 주어졌지만 저는 한 가지 일을 더 할 수 있었죠. 시간은 만들려고 노력하면 만들어집니다. 상대적, 심리적인 것일 뿐이에요. "


새벽 세시라니……. 아마 내가 저 상황에 있었다면 해야 하는 일을 하기 위해 하고 싶은 일은 과감히 버렸을 것이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면서 말이다. 예전에 다니는 성당의 신부님이 한 강론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학교 때 공부를 하면서 '아, 고등학교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더 좋은 대학교를 갔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사실 우리는 못 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까지 시간을 낸다는 것을 상상을 못 하거나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본인이 편한 방향으로 생활하는 것일 뿐. 그래서 시간은 상대적이라는 말이 많이 와 닿았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존재임을 인식하는 인재가 필요

방송 중 지리산 학교에서 한 학생이 ‘세계를 이끌 인재상’에 대해 질문을 했다. 안 교수는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인재야말로 진짜 인재라고 대답했다. 만 명의 먹거리를 독식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방송 말미에는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 필요한 자세를 언급했다.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다른 하고 싶으면 그 일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 일을 버려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불행해 하는데요. 사실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요. 어떤 회사원이 있는데, 이 사람이 환경 운동 쪽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고 쳐요. 흔히 떠올리시는 것처럼 55세까지 열심히 직장 다니다가 정년퇴임을 하면 바로 그 다음날 환경운동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 아는 것도 하나도 없고 그 일이 자신한테 맞을지 아닐지 알 수가 없어요. 막연히 자기가 하고 싶다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해서 만족스러운 것은 다르거든요. 잘 할 수 있는 것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에요. 고민만 하지 말고 주말이나 일주일 중 하루 저녁에 시간을 내서라도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 보는 겁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그 시간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도전해보시라는 것이지요. 고민을 하는 것은 좋은데 고민을 하면서 계속 세월을 보내지는 마시라고 충고하고 싶습니다."

 

때로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면서도 현재와는 많이 다른 상황에 처하게 될까 봐 두려워서 도전을 못 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안정된' 직업이라는 의사로서의 직업을 뒤로하고 다른 일을 택한 두 사람은 오죽했을까. 박경철 원장도 도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보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인생을 개런티만으로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저의 이야기를 하자면 먼저, 의사가 안정된 직업이라는 명제는 틀린 명제입니다. 또 두 번째, 어떤 직종의 안전성이나 급여 등 외적인 조건 때문에 직종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이 최선을 다했고 본인이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다른 선택이 가능해지는 겁니다. 여기서 최선이란 본인의 노력이 스스로를 감동시킬 수 있는, 그런 노력을 말합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보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모습이 더 감동적이다. 어느 개그 프로에 나오는 말처럼 우리는 1등만 기억한다. 그런데 실패했을 때 후회가 되는 것은 도전 자체가 아니라 더 노력하지 못했던 스스로의 모습이다. 1등을 했더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았을 때에는 무언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우리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못하는 이유인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은 그저 노력하기 싫은 스스로의 변명일 뿐일지도 모른다.

자녀는 부모의 말이 아니라 모습에서 배운다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부모가 아이를 혼내는 소리가 하루도 그칠 날이 없을 것이다. 사춘기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가 자칫하면 어긋난 길로 들어설 수 있는데 한 번도 딸을 혼내본 적이 없다는 안 교수는 어떻게 했을까?


“부모는 스스로 자식에 대한 영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작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아이는 부모보다는 친구 혹은 주변 환경으로부터 더 큰 영향을 받습니다. 이 점을 부모 스스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바라볼 수는 없죠. 부모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면 됩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50이 넘어 전문의 시험에 합격하셨습니다. 이를 지켜보면서 나이 들어서도 공부하고 도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지금도 이를 따라하고 있습니다.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 것 같습니다."


아직 자녀가 어린 박경철 원장도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부모의 생각을 아이에게 강요하기보다는 스스로 가치관을 형성할 수 있도록 결론 짓는 답변은 안 한다고 한다. 대신 매일 진보 성향의 신문과 보수 성향의 신문을 읽게 하여 같은 현상을 여러 방면에서 볼 수 있도록 돕는다고 했다. 아이들이 사랑 받고 자랐다는 기억을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다. 어렸을 때는 그저 아이가 공부를 잘할 수 있도록 이사 간 것이라고만 받아들였으나, 안 교수의 말을 듣고 보니 부모가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것에 해당하는 말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문제 해결을 위해 공감대 형성을

말미에 박 원장은 대기업 위주의 사회 구조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요즘 취업난에 대해 말들이 많죠. 요즘 청년들 어려움이 많아요. 취직하기 어렵다고 하면 창업을 하라든가 중소기업에 취직을 하라고들 하는데, 먼저 창업은 성공하면 좋지만 실패하면 재기하기가 너무 어렵습니다. 만일 중소기업에서 시간이 지나면 성과를 인정받고 발전 가능성이 높으면 중소기업에 취직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겁니다.

그렇지만 대기업이 최근 2~3년 간 최고의 수익률을 올린 반면 많은 하청업체-일종의 중소기업-들은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이익을 내면 대기업에서 단가를 낮추라고 할까 봐 일부러 이윤을 낮추는 것이라고 합니다. 중소기업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에는 아직 환경이 많이 열악합니다. 결국 젊은이들이 대기업으로 쏠리게 되고 그 결과 스펙 쌓기에만 여념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본질은 단순합니다. 사회의 부가 독․과점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대기업의 자녀가 광고회사를 차렸다고 해요. 그 대기업의 광고를 다 가져가고 외부의 광고도 여럿 가져간다고 하면 광고회사를 차리고 싶은 다른 누군가의 기회를 앗아가는 셈이 됩니다.

또한 안 교수는 역사적으로 망하는 나라의 공통점을 짚으며 우리 사회가 이대로 가면 공멸할지도 모른다고 진단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문제 의식을 공유하자고 역설했다.

역사에서 보면 망하는 나라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하고 기득권이 과보호되었으며 사회 전반적으로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그 당시 사람들은 이런 착각에 많이 빠지더라고요. 지금은 우리가 옛날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이 알고 있고 현명하기 때문에 똑같은 실수는 안 한다는 자신감과 오만함, 착각에 빠집니다. 바로 그런 생각이 역사를 반복시키는 것 같아요.

현재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이런 격차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벌어져 있는데요. 이 상태가 계속 가면 공멸할 것 같아요. 문제를 풀기 위해서 가장 선제 조건은 그 문제인식의 공유거든요. 문제가 있다고 같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문제해결은 아예 시작이 안 됩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함께 공유해 보자는 것이 강연의 목적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아픈 사람한테 네가 잘못해서 아픈 거라고 하면 무슨 도움이 될까? 청년들이 어른들에 비해 경험이 적어서 힘이 드는 건지 아니면 정말로 사회의 구조가 부조리하여 힘이 드는 건지 나는 분간할 수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고민이 우리만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어려움을 공감해주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도전하는 청춘들에게 너무나도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현실의 청춘은 너무 아프다고. 지금 청춘들에게 함께 아파하고 손을 잡아 주자는 김제동씨의 마지막 멘트까지 한 곳도 덜어낼 수 없는 강연이었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말씀 더 많은 청년들, 청춘들에게 전파해주었으면 좋겠다. Ahn

대학생기자
임성현 / 서울대 공학계열
Sing, like nobody's listening
Dance, like nobody's watching you
Love, like you've never been hurt
항상 그 순간에 최선을 다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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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스페셜 안철수와 박경철2, 활자로 다시보기

“오늘 안철수 교수랑 박경철 원장이 TV에 나온대. MBC스페셜로...”
지난 1월 28일, 엄마의 다급한 환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족 모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귀 쫑긋 세우며 봤던 <MBC스페셜 신년특집 안철수와 박경철>이 후속편으로 다시 우리 곁으로 왔다.
지난 7월 29일 국민MC 김제동과 함께한 <MBC스페셜 안철수와 박경철2>는 더할 나위없는 따스한 여운을 선사했다. 안철수 교수, 박경철 원장, MC 김제동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와 눈빛 하나하나를 통해 마음에 따뜻함이 묻어져 어느새 눈물샘까지 돌았다. 좌절과 절망 속에 갇혀 있거나 마음에 건조한 바람만 불고 있던 시청자들에게 분명 희망과 위로, 따스한 햇살을 줬을 것이라 감히 확신한다.

 
방송이 재미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안철수 교수, 박경철 원장, MC 김제동 세 분이 나눈 다정한 농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살짝 이 분들의 일상대화를 엿보도록 하자.

김제동 내레이션(이하 김): 누나들 밖에 없는 제게 형님이 생겼습니다. 그것도 두 분이나 생겼습니다. 시골의사로 잘 알려진 이분, 작은형님 “박경철 원장님”입니다.

박경철 원장(이하 박): 항상 여기서 안철수 교수님을 만나거든요. ‘위대한 투쟁’이라는 이 자리에서.
김제동(이하 김): 제가 안 그래도 이 말씀 드리려고 했습니다. 꼭 두 분은 만나도 저런 글이 쓰여 있는 곳에서 만나고. (차 안에 웃음이 가득)
김: 국민멘토, "안철수 교수님"은 제 큰 형님 되십니다. 네, 저 정말 복 받은 놈입니다.
김: 런데 오며가며 듣는 이 두 분의 대화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박: 제가 원래 먹는 것을 좋아해서 차 안에 먹을 것이 많아요. 너무 맛있죠? 우리 어릴 때 먹던 것이에요.
안철수 교수(이하 안): 그런데 저거는 없었잖아요. 우리 때는 노란색이었고 팥은 저도 처음 먹어봤네. 오리지널도 달콤하게 맛있는데....
박: 제가 오리지널하고 이거하고 한 박스씩 보내 드릴까요?

안: 하하.. 안 돼요.^^ 지금 콜레스테롤 때문에 안 돼요.^^
박: 그래도 너무 그러시지 말고 제가 보내 드릴게요. (차 안에 웃음 가득)
김: 사실 이 분 이렇게 망가지기만 할 분이 아닙니다. ^^
한국 벤처기업의 신화, 안철수 교수.

김: 세상사를 향해 촌철살인을 날리는 박경철 원장.

김: 막강한 이 두 사람이 또 뭉쳤습니다. 6개월 만에 돌아온 <안철수와 박경철 제 2탄>, 더욱 진한 소통과 공감을 향해 지금 시작합니다.

21세기 리더십은 대중이 주는 것

김: 사실 지난 겨울, 두 분의 강연 소식을 처음 들었습니다.

김: 괜찮으시면 저 한번 불러주십시오.
박: 같이 가시지요.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김제동씨 모시고 같이 가면 훨씬 더 좋겠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시니까 반갑네요.
김: 그러면 제가 방해가 안 된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김: 그런데 말이 씨가 돼버렸습니다. 2년 전부터 안철수, 박경철 두 사람은 지방 대학 순회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앞선 세대로서 전하는 진심어린 걱정, 미안함 그리고 응원. 갈증이 컸던 만큼 반응은 뜨겁습니다.

안: 예전 20세기까지의 리더십은 카리스마를 가지며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이고 목소리도 큰 사람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높은 위치에 올랐어요. 이에 비해 21세기는 크게 바꿨어요.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재 본인들을 생각해 보시면 리더를 무조건 따라가지 않잖아요. 일반 대중은 리더를 쳐다봐요. 그리고 저 사람이 과연 내가 따라 갈만한 사람인가를 판단해서 따라 갈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할 때 따라가죠. 즉, 리더십은 일반 대중이 리더에게 주는 것이에요.

박: 공감과 연대, 수직이 아닌 수평, 직렬이 아닌 병렬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만이 새로운 리더십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요체가 되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놓고 보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서는 무언가 괴리가 좀 느껴지고 ‘진짜 그런 시대가 올까?’하며 생각해보죠. 제동씨한테 질문해 보겠습니다. 제동씨는 정의로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런 질문할 줄 몰랐죠? (청중 비롯해 모두 웃음)

김: 잘못 왔다. 이런 생각이.... (청중 비롯해 모두 웃음)
방금 변화하는 리더십 같은 경우에는, 사실 방송에서도 제 안경을 벗기는 스타일 속에 각 MC들의 리더십이 다 있거든요. 강호동씨는 소리를 지름으로써 분위기를 만들어 안 벗으면 안 될 것 같이 만들어요. 그 다음에 이경규씨 같은 경우에는 지위, 나이를 이용해서 ‘벗어!’하면 벗어야 해요. (청중 웃음) 유재석씨는 자기가 먼저 벗기 때문에 저도 벗어야 해요. (청중 웃음) 신동엽씨는 사전 작업이 좀 많아요. (청중 웃음) ‘김제동씨는 사람들이 못 생겼다고 하는데 별로 그렇지 않지 않아요? 안경 벗는다고 전혀 웃기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니, 벗으라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라고 말하면서요. (청중 웃음) 자, 유형별 리더십이 이렇게 있으면 사실 시청자들이 선택하는 것이죠. 그 힘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를 잊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그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받은 힘이니 돌려줘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리더로서 가져야할 정의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안 교수 보면서) 잠깐 번외로 신동엽씨가 누군지 아십니까? ^ ^ (청중 웃음)

안:

지리산 고등학교의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서 내내 입가의 번진 미소가 흩어지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지리산의 맑은 공기처럼 순수한 학생들과 함께한 안철수 교수, 박경철 원장, MC 김제동 세 분의 아름다운 모습을 느껴보자. 덩달아 마음속에 푸르른 지리산의 모습이 자리잡을 테니....

김: 영광스럽게 저도 살짝 숟가락을 얹고 이분들과 동급이 되었습니다. 물론, 학교성적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

이 날은 욕심을 좀 냈습니다. 멀리 간다고 차도 한 대 빌렸습니다. 이번 동행은 순전히 박경철 원장님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4월 지리산 자락에 있는 한 작은 학교에서 박 원장은 강의를 했습니다. 강연료는 고로쇠 물이었고요. 전교생이 편지를 써서 줬답니다. 그런 후 이 형님, 그 여운이 어찌나 크던지 거짓말 조금 보태 사흘간 밤잠을 설쳤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지리산 고등학교엔 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긴 여행이 가져온 고단함은 한순간에 날아갔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를 아주 뜨겁게 반겨주었습니다.

박: 다시 만나서 무지하게 반갑습니다 ^ ^(학생들, 박수치며 ‘우와아~’) 벚꽃 필 때 만났어요. 그때 여러분이 저한테 편지를 써서 줬잖아요. 안 선생님하고 제동이 형님, 오빠하고 같이 뵐 수 있는 기회가 언젠가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쓴 친구 분명 있었죠? 진짜 이 꿈이 과연 가능할까 생각했는데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동의 하셨어요. (학생들, 박수치며 ‘우와아~’)안: 누가 나와서 칠판에 있는 아홉 개의 점을 떼지 않고 4개의 선으로 연결해 보겠어요?
김:
문제 이해하셨습니까? 나란히 찍혀있는 점 9개를 손을 떼지 않고 4개의 선으로 연결하라는 겁니다. 안철수 교수가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매학기 마지막 수업 때마다 내준 문제라고 합니다. 

안: 만약에 일종의 사각형을 그린다면 사각형 내부에서만 선을 그으라고 누구도 이야기 한 적 없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스스로 안에 선을 그어서 이 내부에서만 답을 찾으려고 해요. 그러면 답이 없어요.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마다 자신의 편견 혹은 선입관이 있어요. 그것이 오히려 자유로운 생각을 방해하는 것 같아요. ‘상자 밖에서 생각하라’ 이런 영어 표현도 있잖아요. 'Think outside the box' 그런 표현인 것 같아요.

김: 매일같이 지리산 정기를 받아먹고 사는 복덩이들. 100명 남짓한 전교생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습니다. 뜻밖의 선물도 받았습니다. 어젯밤 꼬박 밤 새워 그렸다는 캐릭터 티셔츠. 두 분 아주 신났습니다 ^ ^
안: 제 사진 뒤에다가 각자 꿈을 적었어요. 본인들과의 다짐, 결심 같은데요. ‘나는 자연과 인류의 생활을 위한 물질을 연구하는 신소재 연구원이 될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역사정치가가 될 것이다’
김: 고민의 흔적이 흠뻑 묻어나는 야무진 꿈들입니다. 사실 지리산 고등학교는 모든 것이 부족한 학교입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임시로 고쳐 쓰다 보니 일단 공간이 열악합니다.

참 고마운 후원자들이 지원해주는 후원회비로 급식비, 기숙사비 등 대부분의 경비를 충당하는 상황입니다. 사교육은 엄두도 낼 수 없고요.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루고자 하는 의지만은 누구보다 단단합니다.

학교를 벗어나도 마을 곳곳에서 지리산 친구들을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외롭게 지내시는 노인 분들을 찾아뵙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할머니댁에 놀러 갔습니다. 온 마음으로 집안일도 돕고요. 자기 몫으로 나온 간식도 챙겨서 가지고 왔습니다.

훗날 이 아이들에게 이런 만남, 이 큰 자연이 얼마나 큰 자양분이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천재홍 학생(1학년): 혹시 추천하시는 공부 방법이나 시간 관리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김: 저는 없습니다. (학생들 비롯해 모두 웃음)
안: 제가 의대에 가서 박사과정 학생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던 차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컴퓨터 바이러스가 발견됐어요. 근데 시간이 참 문제더라고요. 박사논문을 쓴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라 도저히 시간은 없는데, 이것은 해야만 되는 일이잖아요. 새벽 시간은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새벽 3시에 일어났어요. 그 다음날부터 새벽 3시에 일어나서 6시까지는 바이러스 백신 만드는 일을 하고 나머지는 의사로서의 삶을 열심히 살았어요. 처음에 한, 두 번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바이러스 만드는 사람들이 항상 어딘가에서 계속 나왔어요. 7년 내내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바이러스 퇴치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보통 같았으면 없었을 시간이었어요. 자고 있었겠죠. 그렇게 그런 경험들을 몇 번 하다보니까 제가 깨달았던 것이 있어요.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더라고요. 시간은 절대적으로 주어지고 모든 사람한테 똑같은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을요. 시간은 만들면 만들어져요. 또 허투루 보내는 시간들도 다잡아서 관리하면 거기에서도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김남희 학생(2학년): 두 분 다 의사에서 전혀 다른 직종으로 직업을 바꾸신 분 아닙니까? 그런데 의사라는 직업이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기도 하고 굉장히 안정적인 직업이기도 한데요. 다른 것을 선택할 때 성공할 거라는 확신과 보장도 없어서 많이 두려웠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박: 저는 보통 이렇게 표현합니다. 개런티는 안심하고 물건을 사기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보통 개런티라고 말하는 것은 예를 들어 자동차의 개런티에는 품질보증이 있죠. 보증이라는 것은 자동차를 살 때 3년간 품질보증 개런티 카드를 받아요. 이는 물건에 대한 것이잖아요.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을 개런티로 해결할 수는 없잖아요. 내 인생의 가치는 뭔가 달라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고 어제보다 오늘이 달라야 되고 오늘보다 내일이 달라야 되는데 어떻게 안정, 보증이 있겠어요? ‘현재 이것은 충분해’ 혹은 ‘난 이만하면 됐어’라는 보증과 안정이 내 삶을 결정짓는 요소는 전혀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안정된 직업’ 이라는 전제는 일단 틀린 것이라 볼 수 있어요.
두 번째는 다른 일을 할 때의 선택입니다. 현재 어떤 것을 소홀히 하거나 그것을 다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것은 자신 없으니까 다른 일을 해볼까?’, ‘이건 내 적성에 맞지 않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데서 사실은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잘할 자신이 없는 것인가, 스스로 내가 위선을 떨고 있진 않는가에 대한 자문을 해 봐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때 다른 기회를 선택하는 것이지 현재를 회피하기 위해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한 최선의 정의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완벽하게 하신 분은 조정래 선생님입니다. 그 분이 <태백산맥>이라는 책에서 ‘최선이라는 말은 이 순간 내 자신의 노력이 나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아보는 겁니다. 내 노력이 나를 감동시킨 적이 얼마나 있는가?
김: 편집이 많이 돼서 그렇지. 저도 질문 좀 받았습니다 ^^

신경민 학생(2학년): 저는 김제동 아저씨께 질문하고 싶은데요. 제가 가끔 남들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떨리고 긴장돼서 말을 잘 못하겠거든요. 그래서 고민인데, 어떻게 하면 김제동 아저씨처럼 남들 앞에서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김: ^^ 잘했습니다. 자~ 다음 고민 ! ^^ (학생들 비롯해 모두 웃음) 그 정도면 충분히 잘했어요. 그 정도 능력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많지 않아요. 지금 여기에서 질문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 막 떨려서 죽을 것 같죠? 그런데 안 죽었잖아요. 아무 이상이 없잖아요. 지금 아무 이상이 없죠. 이렇게 조금씩 해나가다 보면 알게 됩니다. 그리고 마이크를 겁내지 마세요. 마이크는 말하는 것을 도와주는 기구지, 터지는 기구가 아닙니다. 내리면 꺼지고 위로 올리면 켜지는 철저히 내가 조종하는 도구일 뿐이죠.

김: 좀처럼 질문이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김진섭 학생(1학년): 이병철 삼성 전 회장께서 ‘기업은 사람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있는데요. 사회를 이끌고 세계를 품을 수 있는 그런 인재상을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안: 인재상에 정답이 있지는 않잖아요. 인재상은 시대마다 바뀌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인재인 것 같아요. 어떤 재벌 회장님이 앞으로는 만 명의 먹을거리를 만들 수 있는 인재가 중요하다고 했는데요. 거기에서 빠진 것이 있어요. 만 명의 먹을거리를 만드는데 그 만개의 먹을거리를 전부 독식하며 차지하고 심지어는 남의 것 까지도 다 자기가 가져가버리면 그 사람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되죠. 그래서 기업으로 따지면 이런 것이 있잖아요. ‘기업의 목적은 수익창출이다’ 그것이 다 국민 상식 같죠? 사실 그건 틀린 말이에요. 왜 그런가 하면 기업의 목적이 수익창출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믿고 그쪽 방향으로만 가다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익만 창출하면 된다며 스스로 정당화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불량식품을 만들어요. 그러면 자신은 돈을 버는데 그 불량 식품을 먹고 수많은 어린이들이 아프고 사회가 나빠지잖아요. 즉, 혼자서는 목적 달성하고서 잘 먹고 잘 사는데 사회 전체로 보면 그것은 오히려 없는 것이 더 좋은 암적인 존재, 범죄 집단이잖아요.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인식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인재 같아요. 능력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김: 함께 살아가는 사회, 안철수 교수는 CEO시절에도 그 가치를 언제나 가슴 속에 품었다고 합니다.

잘 자라는 교목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이 친구들이 언젠가는 하늘을 가득 덮을 거목으로 성장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손잡고 더불어 숲이 되어 서로를 지킬 것도 믿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지리산을 좋아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착한 비빔밥 집에서 나눈 가족 이야기

소박한 비빔밥 집이 풍기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나눈 세 사람의 대화는 정겨웠다. 그 속에서 나온 안철수 교수의 교육법과 박경철 원장의 교육법도 볼 수 있었으며 그들의 진심어린 가족 사랑도 느낄 수 있었다.

김:
같이 밥 한끼 먹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우리 큰 형님께서 진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볼까요? ^^

안: 지난번에 질문하실 때 이런 카드는 없었죠?
김: 네 없었죠.
안: 컨닝 페이퍼 같아요.(웃음) 아마 걱정이 돼 제작진에서 저만 주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지난주, 주말에 재미있는 일 있으셨나요?
: 저는 계속 ‘나는 가수다’를 녹화 했어요. 바로 어제 녹화했거든요. 어제 탈락자가 나와서 사실은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왜냐하면 탈락자가 나오면 안 마실 수가 없어요. 저의 가수가 탈락을 하든, 다른 사람이 탈락을 하든 실제로 슬프기도 하고 또 아쉽기도 하거든요. 근데 형님 트위터 보니까 지하철 막말 동영상에 대한 글을 올리셨던데요?
박: 트위터에 막말동영상이 너무 많이 떠 있어서 이게 뭘까 하고 봤어요.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청년의 젊은 시기에 있을 수 있는 일탈의 문제가 아니고 완전히 궤도를 이탈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이 아이를 키웠던 부모님은 어떤 생각이실까?‘ 이런 생각이 했고요.
안: 그러면 그 주위 사람들은 그냥 놔뒀어요?
박: 함께하면 어떤 부당한 일도 제제할 수 있는데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주변을 피했어요.
안: 그런 것이 어쩌면 사회적인 책임의식의 분산 같기도 해요. 이런 일이 있데요. 길 한복판에 한 사람이 다쳐서 누워있는데 주위에 한 사람만 지나가는 경우에는 거의 백 퍼센트 그 사람에게 도움을 준답니다. 하지만 주위에 100명이 있으면 한사람도 도와주지 않게 된다고 해요. ‘나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있으니깐’, ‘정의감이 더 투철한 사람이 도와주겠지’하며 지나치는 것이지요. 결국은 그 많은 군중 속에서 쓰러진 사람은 도움을 못 받고 죽어간대요. 실제로 그런 사건이 뉴욕에서 있었거든요.
박: 그래서 ‘부당한 일에 대해서 적극적인 처벌과 교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나중에 유리창이 곳곳에서 깨지게 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순간 굉장히 많이 들더라고요.

자식을 향한 그들의 사랑 교육법


김: 저번 1탄에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지금까지 살면서 느껴왔던 가장 큰 행복의 천 배 내지 만 배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식을 가진다는 것은. 그래서 당신은 아직 당신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경험을 하지 못했다’
안: 저도 동의해요.
김: 안교수님은 외동따님이 있으시죠?
안: 네 ^^
김: 따님의 멘토도 안철수 교수님이세요? 저 그게 좀 궁금합니다.
안: 예. 그렇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저를 포함한 대한민국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미치는 부모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 같더라고요. ‘부모가 열심히 노력하면 아이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며 사회 곳곳에서 많이 볼 수 있잖아요. 사실은 아이가 십대만 되더라도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모님 말씀보다 주위의 친구들 이야기 또는 아이가 처해있는 환경에 영향을 더 많이 받아요. 우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할 듯싶어요. 그러면 이제 부모님들이 할 일도 거기서 나와요. 왜 그러냐면 어차피 부모의 영향력은 친구나 주위환경보다 크지 않으니 부모가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은 그 아이의 환경을 제대로 만들어 주는 일 아니겠어요?

김: 예를 든다면?
안: 책 읽으라고 말하지 말고 부모가 직접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죠. 또는 제 아버지께서 쉰이 넘은 나이에 전문의 시험공부를 하시고 합격을 하셨어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나이가 들면 공부와는 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게 됐어요. 아버님이 깨주신 것이죠. 어쩌면 제가 나이 40 중반에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외국에 유학을 갔었던 것도 아버지의 영향력에 의해서 아닐까 해요. 옛날에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에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마음 속 구석 어딘가에 가지고 있다가 후에 발현이 되는 것 같아요.
김: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다가 그것이 나오는?
안:

김: 안철수 교수의 아버지는 부산의 한 판자촌에 들어가 병원을 열고 가난한 이웃들을 치료했습니다. 진료비는 절반만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안철수에게 말없는 가르침이었다고 합니다.

김: 집에 손자가 있어요. 우리 큰 조카가 아이를 낳았거든요. 저보고 할아버지라고 첫마디를 뗐어요. 그런데 그렇게 기쁘지 않습니다.(웃음ㅋㅋㅋ)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박 원장님 어떻습니까? 그... 딸하고의 스킨십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가장 좋은 단어가 뭐가 있을까요?
안: 부비부비? (웃음ㅋㅋㅋ)
김: 하하하.. 좋은데요 ^^ 딸하고의 부비부비.
어감이 잘못 혼동될 수도 있는데요. 홍대 인근에서만 쓰이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 부비부비라는 말이 나쁜 말은 아니죠. 부비부비가 제일 좋은 말인 것 같아요.
그럼 박 원장님, 딸하고의 부비부비는 어떤 유대관계인가요?
안: 근데 박 원장님이 사진을 계속 올려요. 사진들이 정말 보기가 좋은데 어떻게 찍으셨어요? 연출했기보다는 너무 자연스러워서요.
박:
아~ 하루 종일 아이하고 놀다보면 다른 가족들이 보고 너무 볼썽사납다며 사진을 계속 찍어요. (웃음) 아이와 음악을 듣고 같이 놀아주는 것은 어떤 부모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제가 이 아이에게 무엇을 더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예를 들면 같이 만나서 ‘아빠 사랑해’ 라는 것도 우리끼리 약속을 정해서 해보기도 합니다. 7가지 약속을 정해서요.

박: 세상 어느 누구도 아닌, 나와 이 아이만 누리는 약속이잖아요? 이 아이의 어린 시절에서 ‘내가 참 많이 사랑 받았구나. 그래서 나는 귀한 사람이구나’라는 기억이 가득했으면 해요. 저는 끊임없이 이 기억을 남겨주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성장을 하고 세상을 살다보면 난관에 부딪히겠죠. 때에 따라서 힘들고 때에 따라서는 좌절 할 텐데, 그땐 제가 없겠죠. 그 순간에 사랑받았다는 기억이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김: 박경철 원장에게 돌아가신 아버지는 큰 기둥이자 힘이라고 했습니다. 지난번 만났을 때 아버지 이야기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그의 눈빛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박: 아버지는 매일 퇴근해서 돌아오시면 손발을 씻고 할아버지 영정 앞에 앉아서 대화를 하셨어요.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시면서요. 태연하게 30분을 이야기 하시는 아버지를 옆에서 보면서 ‘진짜 귀신이 있다. 어른 눈에만 보이나 보다’라고 생각했거든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저희 아버지께서 갑자기 쓰러지시고 중환자실에서 3일간 인공호흡기를 달고 계셨어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께서 지금 말을 못하고 계시니까 얼마나 답답하고 마음이 아프실까 그래서 이 마음을 읽어보자’라고 했어요. 아버지께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고 아버지 옆에서 약속을 했어요.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 ‘이렇게 살아 가겠다’라며 아버지와 3일 동안 대화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3일 후에 떠나셨죠. 저는 지금 서재에 아버지 영정을 모시고 있는데 어려운 일이 생기면 또 대화를 해요. 그것이 습관이 됐는데,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답은 안 돌아왔지만 ‘이렇게 하면 되겠죠?’라며 아버지 사진 앞에 이야기를 해요. 아버지께서 마음속에 계속 중심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언젠가 한번 아들 녀석이 그런 제 모습을 보고는 아버지 눈에는 할아버지 귀신이 보이느냐고 물었죠. 그것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무형의 유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아버지라는 것은 사회적인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자식에게 보여주는 뒷모습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 그러니까 두 분은 어떤 느낌이랄까?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사랑 같은 것이 깊이 느껴집니다. 부럽기도 하고요. 사실 저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단어로만 봤지 실체로 접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어떤지 정말 궁금해요. 술 마시고 집에 들어가면 정말 한 번씩 연습해 봅니다. 거울 보면서 ‘아빠?, 아버지?’라고 실제로 부르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해서요. 제가 만약에 ‘아빠’라고 불리어지는 존재가 되면 그 느낌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안: 저는 아이가 어떤 일을 할지, 거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야기 한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본인이 궁금해 해요. 제가 뭘 원하는지를 알고 싶대요. 거기에 ‘나는 정말로 원하는 것이 없고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라’고 말했고, 본인이 이제 찾았어요. 지금 본인이 원하는 길을 가고 있어요.
김: 한 번도 원하는 것을 강요하거나 주입했던 적이 없으세요?
안: 네, 없어요.
김: ‘책 읽어라’ 이런 말을 하신 적도 없어요?
안:
김: ‘공부해라‘ 이런 말을 하신 적도 없고요?
안: 아~ 그건 있죠 ^^ ㅋㅋㅋㅋ
김: 네 알겠습니다 ㅋㅋㅋㅋ

박: 제일 중요한 것은 평범한 말 같지만 ‘가치관’인 듯싶어요. 부모가 ‘이것이 가치 있는 것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세뇌라고 봅니다. 아이가 ‘제가 생각할 때 이것이 가치 있어요’라고 말하며 자기 스스로의 건강한 가치관을 만들고 성장하도록 도와줘야 되는 것 같아요. 그것이 가치관을 아이에게 심어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는 답을 하지 않아요. 답을 안 한다는 것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이며 결론을 내려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겁니다.
김: 주입하지 않는 거네요?
박: 그러니까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어보는 것이지요.
김: 물어보는 거예요?
박: 네, ‘어떻게 할래?’라고 물어봐요. 그래서 과제 부여 하는 것은 딱 세 가지가 있습니다. 큰 아이한테 주는 과제인데요.
첫 번째, 신문은 종이신문으로 진보지, 보수지를 각각 꼭 읽어라.
두 번째, 일주일에 1권씩 아빠가 지정하는 책을 읽어라.
세 번째, 너로 인해 다른 가족을 힘들게 하지 마라.제가 큰 아이에게 말하길, ‘이 3가지는 아빠가 너한테 강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의무로 부과하고 저도 감당하며 나머지 부분은 맡겨둬요. 제가 제 자식을 믿지 못하면 그 아이를 누가 믿어주겠습니까? 나머지는 믿어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김: 자~ 이제 밥 좀 먹읍시다 ^^ (웃음)

안: (MC 진행카드 보면서) 밥 먹을 시간이 여기에 있나? (모두 웃음)

김: 메뉴는 유기농 비빔밥입니다. 세 가지 재료를 담고 된장국도 한 술 담고 된장 색깔 좋죠? 네, 제 얼굴 색깔 같잖아요. 각자가 먹을 양만큼 가져가서 먹으면 됩니다. 이 밥집은 이윤을 사회로 환원하는 참 맛있고 착한 밥집입니다. 점심시간 이곳을 찾는 손님은 동네 주민과 직장인들부터 노숙인, 외국인 노동자, 생활이 어려운 독거노인까지 다양합니다. 가장 큰 특징은 형편에 맞게 돈을 내면 된다는 것. 돈이 부족하면 부족한데로, 많이 내고 싶으면 얼마든지 내도 좋습니다.

안: 이제.. 어쨌든.. 마무리를 하라고 하시니깐.. 어떠셨어요? 두 번째 만남인데.
박: 자연스러운데요. ^^
김: 아주 좋은데요. ^^
박: 질문을 던지시네요. ^^
김: 자연스러우신데요 ^^ 질문을 하시면서 마무리 하시는데요. 경력이 아주 오래된 분들이 주로 하는 건데.. ^^
안: 저도 사실은 사회적인 기업이 어떻게 되는지 실제적으로 와서 본 것은 처음이에요. 근데 저한테도 여러 가지로 인상 깊었던 만남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 나중에 아빠가 되면 이런 착한 밥집에 제 아이를 데려오고 싶습니다. 밥도 먹고 나눔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주고. 도와주세요. 일단 아내랑 같이 와야 할 것 아니에요 ^^

하고 싶은 것을 지금 시도해 보기



박: 안 선생님이 의사로서 좀 시원찮았고 저처럼 의사로 성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 바이러스 쪽으로 급 방향을 트신 것이라고 여러분이 생각하기 쉬운데요. 사실은 제가 아는 한 대단한 면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의사로서도 국내 최연소 의과 대학학과장 출신이셨기 때문이에요. 그때 나이가 몇 살이었습니까?
안: 네. 27살이었어요.
박: 스물 일곱살. 제가 스물 여섯살에 졸업했어요. (청중 웃음)
제가 이것을 도전이라고 표현 했는데요. 왜 그런 선택을 했고, 그때는 어떤 심경으로 어떤 가치 판단이 있었기에 그런 선택을 했습니까?
안: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다른 무언가가 하고 싶으면 그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 일을 버려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많이 불행해 하시는데요. 사실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요. 어떤 회사원이 있는데, 이 사람이 환경 운동 쪽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고 쳐요. 그렇게 예가 나왔어요. 그러면 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흔히 떠올리시는 것처럼 55세까지 열심히 직장 다니다가 정년퇴임을 하면 바로 그 다음날 환경운동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요. 아는 것도 하나도 없고 그 일이 자신한테 맞을지 아닐지 알 수가 없어요. 막연히 자기가 하고 싶다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해서 만족스러운 것은 다르거든요. 잘 할 수 있는 것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충고를 드리고 싶은 것은 고민만 하지 말고 오히려 주말이나 일주일 중 하루 저녁에 시간을 내서라도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 보는 겁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그 시간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도전 해보시라는 것이지요. 고민을 하는 것은 좋은데 고민을 하면서 계속 세월을 보내지는 마시라고 충고 드리고 싶습니다.

도전은 계속되어야 한다

김: 만약 도전의 달인을 선발하는 서바이벌 대회가 있다면 이 분 분명히 우승입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지난 5월, 안철수 교수는 3년간 몸담았던 카이스트에서 마지막 수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곳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안: 지금 이제 출근이 5일째인데요. 짐도 안 풀었고 오자마자 일부터 시작해서 저도 정신이 없어요.
김: 여기 이름을 정확하게 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장으로 오신 것이죠?
안:
김: 힘드시진 않습니까?
안: 뭐...힘들게 살려고 온 것이니까요. 예전 같으면 1년에 학생 100명 정도 가르치고 나머지 시간은 저한테 주어지는 시간이었죠. 책을 본다고 치면 굉장히 많이 볼 수도 있고 해야 되는 다른 일은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편하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유는 많은 분들이 역할에 대해서 기대도 하는데 제가 책임을 더 맡고 일을 많이 해야 된다는 고민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그때 서울대에서 학교 행정 쪽을 제안 해주셨습니다.
김: 작업복을 입고 열심히 뛰겠다는 뜻일 겁니다.

김: 박 원장님과 함께 가서 산 선물입니다. 풀어보십시오.
안: ^^ 아~네. 우와~ 배낭이에요? 제 배낭이 하도 낡아서 안쓰러워 주시는 것 같은데..
아~고맙습니다.
김: 우리 영남대학교 갔을 때, 역에서 내렸는데 안 교수님께서 양복에 등산용 배낭을...(웃음)

김: 절 몹시 심란하게 만든 가방입니다.

안: 이 가방도 편해요. 여기 보면 노트북을 따로 넣을 수 있고요. 등산용 배낭인가요? 컴퓨터 넣는 곳이?
김: 컴퓨터를 넣는 것이 아니고, 살펴본 바론 이 가방은 그냥 등산용 백입니다.^^ (웃음)

김: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큰 형님의 메모도 구경 좀 했습니다.
안: 문제가 가끔 제가 쓴 글씨를 제가 못 알아봐서 답답할 때가 있어요.
김: 무슨 내용인지는 봐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메모는 안교수의 오랜 습관.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는 모두 메모로 남긴다고 합니다.
안: 항상 사람들이 쫓기다보면 바쁜 일만 하게 되고 중요한 일은 빼먹어요. 그런데 사실은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지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어요. 그런 중요한 일들을 메모 해둔다면 바쁜 일에 휘둘러서 못하고 넘어가는 일은 많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문제의 본질을 보고 문제의식을 공유하자

김: 27살의 나이로 국내 최연소 의대 학과장이 되지만 안 교수는 작은 벤쳐의 사장으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의 나이 33살이었습니다.
안: 참 안타까운 것들 중 하나가 기회가 없어요. 원래 학생들이 대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취업하고 싶으면 취업을 하고 창업을 하고 싶으면 창업할 선택이 주어져야 돼요. 취업을 할 때도 꼭 대기업뿐만 아니라 자기와 맞는 중소기업에도 취직할 그런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데요. 현재 창업 쪽은 한번 실패하면 다시는 재기를 못하는 그런 사회구조 때문에 실은 그 길이 보통사람한테는 막혀있는 것이고 중소기업으로 가는 쪽은 워낙 대우가 열악합니다. 그곳도 막혀있다 보니깐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공기관 아니면 대기업 취직에만 목을 매고 있죠.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전체가 스펙사회로 빠지게 돼서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것 같아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가 가진 가장 큰 과제인 것 같습니다.
김: 누군가는 말합니다. 청춘이고 나발이고 나는 백수, 찌질이다. 단군이래 사상 최대 스펙을 자랑하면서도 청년실업자 백만 명 시대, 우리가 마주한 먹먹한 현실입니다.

김: ‘늘 도전하라, 용기 내라, 또 과감히 남이 가지 않을 길을 가라‘라고 말하기엔 좀 미안한 시대. 개개인이 열심히 노력만 하면 이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있을까요?
박:
현상을 바라보지 않고 본질만 보면 본질은 굉장히 단순합니다. 무언가 “독점”과 “과점”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전체를 다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 기회 문제만 보죠. 재벌 기업을 보세요. 큰 따님이 광고회사를 차립니다. 그 그룹의 모든 광고를 가져갑니다. 심지어는 해외광고까지 다 가져갑니다. 순식간에 국내 1, 2위의 광고회사로 성장을 하죠. 큰 따님은 큰 부자가 되시죠.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광고를 꿈꾸며 ‘작은 광고회사로 성장해 언젠가는 내가 광고를 제패하겠다’라는 젊은 청년들의 기회는 사라지고 맙니다. 둘째 따님이 캐피탈 회사를 차려서 제품 구매시 모든 할부의 거의 85%를 독점합니다. 세 번째, 아드님이 탁송사업을 혼자 다해서 부자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 기회들을 전 대기업들이 만들면 벤처를 꿈꿨던 수많은 젊은이들과 벤쳐 기업들은 아무것도 없이 그 밑에 종속됩니다. 그들은 미래, 희망 없이 주저앉고 기회의 좁은 문 속에 갇혀 버리지 않습니까? 이런 일들이 독점 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는 거대한 피해잖아요.
김: 그런 이야기도 합니다. 사실 어떤 분들은 ‘눈높이를 좀 낮춰라, 중소기업에는 일할 사람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박: 중소기업도 내가 가서 일을 했을 때 지금은 미약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높은 성과가 인정받고 회사가 성장하며 나의 미래도 발전할 수 있다고 믿으면 저는 과감하게 청년들에게 이야기하겠습니다. ‘명문대에 비싼 학비 내서 가지 말고 중소기업으로 가세요’라고요. 그런데 ○○대기업 수익률은 2010년, 2009년 이후로 창사 이래 최고입니다. 그러면 그에 관련된 협력업체나 하청업체는 창사 이래 최대의 수익을 내리는 것이 맞잖아요. 그런데 3년간 적자입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까 더 재미있습니다. 혹시 이익을 냈다고 하면 단가를 낮추라고 할까봐 어떻게든지 이윤을 줄여야 했다고 합니다. 이 모습에서 보이는 중소기업의 미래, 그런 회사를 다니겠습니까?
안: 그런데 대기업, 중소기업 간의 대우 격차가 지금 정도로 과도하고 비정상적으로 심하지 않은 상태라면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택할 수 있어요. 그런 구조만 된다면 사람들이 행복해 질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대학교까지 졸업한 사람들을 보고 이런 말을 하죠. ‘막노동판에 일자리가 있는데 왜 거기는 가지 않느냐?’ 그것은 굉장히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봅니다. 그 사람들의 수준에 맞는 일자리를 만들려고 하는 노력들은 그 전체 조직 시스템을 관장하는 분들이 고민해야 되는 몫입니다.

김: 현실을 바꾸는 것이 이상론에 불과하다면 지레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박: 투 트랙이 필요합니다. 투 트랙으로 한쪽에서는 자기 자신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듭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 토양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부당하게 편중되어 왔던 시혜와 특혜 그리고 그에 따른 관용까지도 평등화해서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투 트랙으로 맞는 방법입니다. 이제 이것을 고민하고 나아가면 되는 것이지요.
안: 역사에서 보면 망하는 나라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로마도 마찬가지고 망하는 나라들은 항상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고 기득권이 과보호되었으며 사회 전반적으로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그 당시 사람들은 이런 착각에 많이 빠지더라고요. 지금은 우리가 옛날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이 알고 있고 현명하기 때문에 똑같은 실수는 안 한다는 그런 자신감과 오만함, 착각에 빠집니다. 바로 그런 생각이 역사를 반복시키는 것 같아요. 현재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이런 격차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벌어져 있는데요. 이 상태가 계속 가면 공멸할 것 같아요. 문제를 풀기 위해서 가장 선제 조건은 그 문제인식의 공유거든요. 문제가 있다고 같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문제해결은 아예 시작이 안 됩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함께 공유해 보자는 것이 강연의 목적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김: 누구에게나 청춘이 있습니다. 추억 속의 청춘은 푸릇푸릇하지만 현실의 청춘은 너무 아픕니다. 지금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참으라는 말 대신,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대신 함께 아파하며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것이 안철수, 박경철 이 두 사람이 무대에 오르는 이유일 겁니다. Ahn

대학생기자 류하은 / 강남대 경영학과 
 
거거거중지(去去去中知),  행행행리각(行行行裏覺)
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또 행하면서 깨닫게 된다.
- 노자의  <도덕경> -
제 글이 조금이나마 당신이 가는 그 길에 빛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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