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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기업가정신, 세상에 없는 새로운 가치 만들다



기업가정신이란 마음가짐이 아닌 '행동'이다.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에 옮겨 세상에 없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내는 활동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기업가정신의 요체다.
- 안철수 (카이스트 석좌교수)


안철수 교수가 항상 강조하는 기업가정신을 가진 청년 기업가들을 한데 모아놓은 책이 나왔다. 이름하여 '청년 기업가정신'(2010, 토네이도). 책을 시작하기 전에 안철수 교수는 기업가정신을 올곧게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들이 못 보는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또 컨버전스 시대, 융합의 시대에 주역이 되고자 한다면 다음의 5가지 자질을 갖춰야 한다고 말한다.

*통섭
자기 분야의 지식만으로는 탁월한 성과를 낼 수 없다. 자기 분야만 알고 다른 분야의 사람과는 협조도, 이해도 안 된다면 아무런 성과도 낼 수 없다.

*커뮤니케이션 능력
전문가의 진정한 실력은 '전문지식 X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다른 분야의 전문가에게 자신의 지식을 전달하지 못하면 그 실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래서 안철수연구소의 인재상은 'A자형 인재'다. A자형은 각 개인(人)이 서로 가교(-)를 이루어 하나의 팀으로 협력한다는 의미다.

*긍정적인 사고방식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스스로가 즐거울 뿐 아니라 주변까지 밝게 만든다. 외부 환경이 어렵더라도 불평가기보다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기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습관적으로 남의 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

*끊임없이 공부하는 자세
세상에는 똑똑한 사람이 정말 많고 노력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No Pain No Gain.' 남들은 속일 수 있어도 자신은 못 속인다.

*자신의 한계를 끊임없이 높이는 자세
20~30대는 삶의 한계를 설정하는 시기다. 순간순간이 한계를 만드는 과정임을 명심하고 한계를 넓히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 책은 각자의 방식으로 기업가정신을 발휘하고 있는 20~30대 청년 기업가 29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IT 벤처, 온라인 쇼핑몰, 교육, 음악/영화/출반, 농수산물 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양각색의 꿈을 펼쳐나가는 이들이다. 작가의 말을 인용하면 이들의 공통점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자신의 꿈을 탑재한 로켓을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책에 나오는 청년 기업가 3인의 이야기를 잠시 들여다보자.

캐시카우를 버려라 _ 레인디 김현진 대표


지도 검색 서비스 회사인 레인디 김현진 대표는 32살에 벤처 창업 14년 경력의 소유자이다. 레인디는 2008년 구글맵 기반의 지역 정보 검색 서비스인 '플레이스트리트(www.playstreet.net)'로 본격적으로 궤도에 올라섰다. 이를 이용해 사람들은 번화가 위주의 지역별 지도 및 길거리 사진을 볼 수 있고, 지역 정보를 검색할 수 있다.

호주 유학 시절 전공인 호텔경영을 살려 주말엔 파티 기획을 했는데, 고(故) 김대중 대통령이 호주에 방문했을 때 푸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을 만들자고 결심했다. 한국에 아무 연고가 없음에도 현재 엄청난 마당발일 정도로 사교성이 좋은 김 대표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걸 만들라고 말한다. 끊임없이 경청하는 자세로 개선해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창업에 실패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아도취, 내가 만들면 사람들이 다 쓸 것이라는 환상이라고 말한다.

선배들의 경험을 적극 활용하라 _ 블로그칵테일 박영욱 대표


블로그 집합인 메타블로그 분야에서 1위 업체인 블로그칵테일(
www.blogcocktail.com). 각종 블로그에 올라온 정보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올블로그(www.allblog.net)가 블로그칵테일이 운영 중인 메타블로그이다. 현재 28살인 박영욱 대표는 2008년 <비즈니스 위크>가 선정한 '아시아를 대표하는 젊은 기업가 26인'에 선정된 바 있다.

책에서 박영욱 대표는 "누구나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미 경험한 선배의 지혜를 빌지 않고 실패하며 눈이 떠질 때까지 헤매곤 한다. 이 무슨 어리석은 짓인가. 뒤에 가는 사람은 먼저 간 사람의 경험을 이용하여, 같은 실패와 시간 낭비를 되풀이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한다. 선배들의 경험을 활용하자. 그것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가장 좋은 수익 모델은 행복이다 _ 인플래닛 염정봉 대표

염정봉 대표가 만든 흑인음악 사이트 리드머 http://blog.rhythmer.net/


인순이가 칭찬하는 가창력을 지닌 신인 가수 보니가 있다. 이 보니를 키우는, 국내 최초 무관객, 무MC 음악방송 '라이브세션(http://tv.sbs.co.kr/livesession)'을 제작하는 회사가 바로 인플래닛(http://blog.inplanet.co.kr)이다. 염정봉 대표를 만나면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인플래닛은 돈 되는 음악이 아닌, 자신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해보기 위해 뭉친 회사이다. 한 번 사는 인생, 남의 눈치 보며 살다간 삐뚤어져버릴 것만 같아서 2004년 인플래닛을 창업했다.

염 대표는 창업 초기 30만원을 벌었던 얘기를 할 때도 행복해보인다. 수익 모델은 돈이 아니라 행복이기 때문에 임대료 내고 나면 월급이 없는 상황이었지만 한 번도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또 현재 인플레닛은 음악 콘텐츠의 '웨타'이지만, 머지않아 음악 콘텐츠로 스스로 큰 판을 벌이는 '제임스 캐머런'이 되어볼 작정이다.

청년 기업가들은 가슴 뛰는 삶을 산다

사업을 하는 사람이나, 사업을 꿈꾸는 사람, 사업에 관심이 없는 사람 모두 이 책을 읽으면 확실히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꿈과 열정이다. 대부분의 청년 기업가가 처음에는 엄청난 고생을 했다. 하지만 그것을 즐기고 이겨서 현재의 자리에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은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 번 사는 나만의 인생. 지금도 남의 눈치를 보거나 대중이 가는 방향으로 휩쓸려가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에 나오는 어쩌면 무모한 그들의 도전기를 읽고 다시 한 번 자신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필자는 창업한 지 8개월에 접어들었다. 안철수연구소 사보 기자로서 이 책에 나오는 대표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앞으로 몇 분과 함께 재밌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들은 한결같이 나이를 생각 못할 정도로 동안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즐기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 아닐까? 또한 그들은 모두 후배에게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하나라도 더 나눠주려고 한다. 이들의 성공으로 더 많은 청년 기업가가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이 오길 기대한다. Ahn

대학생기자 전아름 / 서울여대 미디어학부
남들이 보기에 취업과 무관한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불리는 나, 대학생 CEO를 꿈꾸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도전을 사랑하는 여대생이다. 일을 할 때는 쿨한 모습을 유지하려 하지만 밴드, 바텐더, 미술 활동 등 예술적 생활을 일상으로 삼고 있다. 안랩을 통해서 많은 영감을 받길 바란다!  

 

영리 이상의 가치 실현하는 청년 CEO 2인

청년 실업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취업준비생들에게는 더욱 체감지수가 높다. 정부에서는 실업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창업을 지지하고 있다. 2030 청년 프로젝트를 통해 1000명에게 사무실을 임대해주고 월 활동비를 지원해주거나, 창업 아이템 공모전 등을 통해서 실제로 창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청년 벤처들 중에서도 조금 성격이 다른 것들이 있다. 바로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다.

사회적 기업이란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수익창출 등 영업활동을 수행하는 조직이라고 정의되어있다. 일반적인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나, 사회적기업은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 제공 등 사회적 목적을 추구한다.

청년 예비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재단도 있다. 함께일하는재단(
http://www.hamkke.or.kr/)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보다는,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들을 키워서 더 많은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저소득 여성가장과 중고령 실직 빈곤계층, 청년 등 다양한 취업 취약 계층의 대안 고용 모델인 사회적 기업을 발굴, 육성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 중 청년 사업 지원도 포함되어있다.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창의성을 가진 청년층을 중심으로 사회적 기업 모델을 발굴, 육성하기 위해 재단 3층에 인큐베이팅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홍보, 교육, 음악, IT 등 다양한 사회적 기업이 있었다.

댓글에 생명력을 불어넣자 악플이 사라지더라

대한민국 IT 분야 제 1호 사회적 기업인 CIZION(
http://cizion.tistory.com/)은 소셜 댓글 플랫폼 라이브리와 청소년 리더십·토론 교육을 제공하는 리더십 엔터테인먼트 캡틴팩토리를 운영하는 Communication Technology 전문기업이다. 이들은 사람과 사회, 자연이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과 온라인 세상에 관심이 많다.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끼리 만나서 하는 것만이 아니라 나무에서 쉬는 것도 나무와 소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온라인 세상에 문제가 무엇이며, 해결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기업이다.

(CIZION 김범진 대표)


현재 제공하는 서비스는 라이브리. 살아있는 댓글이라는 라이브 리플라이에 약자이다. 기존에 댓글은 댓글이 남겨지면 끝이었는데 이것을 어떻게 생명력을 가지게 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라이브리라는 댓글창을 설치를 하면 그 홈페이지에 가입을 하지 않더라도 기존에 다른 포털에 내가 가입한 아이디와 비번으로 댓글을 남길 수 있다. 또한 이 댓글을 트위터나 다른 SNS에 보낼 수 있다. 이들은 이런 라이브리의 서비스를 통해 댓글에 생명력을 불어넣자, 악플의 문화가 사라지고 온라인 세상이 변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블로터닷넷에 설치된 라이브리)


라이브리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언론과 블로터닷넷에 설치를 하고 난 후 반응이 엄청 빠르게 오고 있다. 댓글을 다는 사람들도 쉬운 이용성에 환호하고 더 많이 댓글을 달고 있다. 또한 이제는 다른 여러 곳에서 연락이 먼저와 서비스 설치를 빨리 진행하자고 한다고 한다.

이들은 사회적 기업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연 5천억에 따르는 비용이 온라인 공간에서 생긴다. 악플로 인해 자살, 정치적 갈등 등 이러한 문제들에 드는 비용을 이 서비스를 통해서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회적 비용을 줄여나가고 건강한 온라인 생태계, 좋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인디 뮤지션의 절친, 생태계도 살린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회적 기업은 사이러스(SYRUS). 이 곳의 비전 및 목표는 인디 뮤지션의 경제적 자립과 올바른 유통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제공하는 블레이어(
http://www.blayer.co.kr/)라는 서비스는 인디 뮤지션을 위한 트랙 중심의 퍼블리싱 플랫폼 서비스이다. 저작권자가 직접 자신의 음원을 관리하고 선택하여 퍼블리싱 할 수 있는 국내 최초의 저작권 직접 관리 서비스이다. 이 서비스를 통해서 아티스트는 자신의 곡을 직접 올려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제공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이용자는 다양한 음악을 무료로 듣고 다른 SNS에 링크할 수 있으며, 상업적인 음원이용을 저렴한 비용으로 할 수 있다.

(블레이어 홈페이지 메인화면)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가 음악시장의 96%에 달하는 저작권자에게 저작재작권을 신탁 받아 관리하고 있다. 기존의 디지털 음원 컨텐츠 시장에서 수익에 10~20%만 저작권료로 받을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인디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처럼 음원을 많이 팔지 못하는 이상 수익을 얻기란 힘들다. 때문에 블레이어는 저작권자가 자신의 음원을 직접 등록, 관리하여 저작권료 비율을 70%까지 높였다. 황룡 대표는 아티스트들이 한 달 100만 원의 수익만 있어도 자신의 본업에 충실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더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으며, 대중은 수준 높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고 말한다.

황룡 대표가 생각하는 사회적 기업은 비영리조직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시장의 논리로 해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로 녹내장 제거 사회적 기업을 들었다. 보통 녹내장 수술은 하루에 의사 1명이 환자 3명을 치료하는 것이 한계였는데, 컨테이너벨트 시스템을 이용해서 경험이 많지 않은 초보 의사라도 자신이 맡은 부분만 계속하여 속도를 내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빠르고 저렴하게 평상시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 또한 SYRUS는 온라인뿐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인디밴드에게 공연 장비를 무료로 대여해주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도 하고 있다.

이 밖에도 재미나고 멋진 청년 사회적 기업들이 많다. 단순한 영리를 추구하는 것을 넘어 사회를 혁신적으로 변화시키는 가치를 가진 그들을 통해 앞으로 사회가 더 좋은 모습이 되어있길 기대해본다. Ahn

대학생기자 전아름 / 서울여대 미디어학부
남들이 보기에 취업과 무관한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불리는 나, 대학생 CEO를 꿈꾸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 도전을 사랑하는 여대생이다. 일을 할 때는 쿨한 모습을 유지하려 하지만 밴드, 바텐더, 미술 활동 등 예술적 생활을 일상으로 삼고 있다. 안랩을 통해서 많은 영감을 받길 바란다!  

 

 

서른넷에 직장 때려치고 여행가로 변신한 김남희씨

"저는 여행을 통해 '긍정의 힘'을 많이 배웠어요. 여행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나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발견하면서 나 자신을 긍정하게 되었고요. 여행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타인의 삶을 사랑하고 긍정하게 되었어요."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도보여행가'라는 수식어가 함께 따라다니는 여행작가 김남희. 그녀는 서른넷의 나이에 잘 다니던 터키 대사관을 그만두고 전세보증금과 적금을 털어 무작정 세계 여행길에 오른 '용자'이다. 그것도 여자 혼자, 걸어서. 최근에는 일본을 여행하고 일본 여행기를 출간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서 지금까지, 여행을 하게 만드는 여행의 매력은 무엇일까. 햇볕이 내리 쬐던 평일 오후, 그녀의 자택이 있는 부암동의 한 까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안정적인 직장을 관두고 여행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터키 대사관을 다닐 때 여름 휴가를 한 달씩 줬는데, 그 한 달 동안 저는 한 나라를 여행하고 다녔어요. 갔다 오면 내년에는 어느 나라를 갈지 정하고 그것으로 직장 생활 1년을 버티고, 여행 갔다 온 에너지로 1년을 버티곤 했어요. 그런데 여행을 끝마치면 돌아오기 싫어서 항상 비행기 안에서 울고, 회사에 거짓말을 해서 못 간다고 할까 그런 생각도 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배낭 싸는 게 지겨워질 때까지 원 없이 여행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직장 생활이라는 게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더라고요. 안정적으로 월급이 나오니깐요. 그것 때문에 버티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은 여행을 미뤄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더 넓은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기 위해서 사표를 내고 여행을 떠나게 됐죠. 여행할 때의 내 모습이 제일 예쁘고, 또 여행을 하는 것이 내 가슴을 가장 뛰게 하는 일이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여행'만 생각하게 돼서 자연스럽게 사표를 냈던 것 같아요.


제일 처음으로 여행했던 곳은 어디인가요?

유럽이요. 대학생 때 67일 정도 혼자서 배낭을 메고 여행을 했죠. 그 당시에는 밤차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동하며, 씻지 않고 먹지 않고 잠을 안 자도 배부르고 행복했던, 놀라운 충격의 경험이었어요.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겠구나, 인생에 정답은 없는 것이구나, 남의 눈치 안 봐도 되지 않을까 등등 제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좁은 세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제 눈앞에 펼쳐진 거였어요. 그 여행이 결국 제 인생을 바꿨죠. 이때는 미술관, 박물관 위주로 다녔는데, 먹는 것 자는 것 아껴가면서 많이 보러 다녔죠. 단 1초도 헛되이 보낸 시간 없이 두 눈을 반짝반짝거리면서. 온 몸의 세포가 다 활기차게 움직인다고 할까? 그때의 저는 세계를 마구 빨아들인 스펀지였죠.

여행이라는 것이 각 나라의 유명한 관광지만을 찾아다니는 방식도 있고, 혹은 시골이나 오지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명소보다는 현지인들과 그들의 삶의 모습을 좀 더 구경하는 방식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굳이 미술관과 박물관을 여행 주제로 택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그 당시 유럽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했을 때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렇다면 유럽이라는 이 대륙이 쌓아온 역사, 문화를 만나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집약적으로 잘 드러내는 것이 미술관, 박물관이라고 생각했죠.

여행기를 쓸 때 롤 모델 혹은 벤치마킹 하는 작가가 있나요?
벤치마킹이라기보다는 나도 언젠가 이런 사진을 찍고 이런 글을 쓰면서 여행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작가가 있어요. 일본의 '호시노 미치오'라는 동물 사진 작가인데 굉장히 전설적인 분이에요.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알래스카 사진을 보게 돼요. 1970년대 일본에서 알래스카는 전혀 알려진 곳이 아니었어요. 호시노 미치오는 그 사진을 보고 감명을 받은 나머지 무작정 그 사진에 나온 알래스카 동네 주소로 편지를 보낸 거에요. 그 마을에 너무 가고 싶다고. 그런데 정말 1년 후에 그 마을에서 답장이 온 거에요. 그래서 이 사람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때인가 돈을 모아서 알래스카에 갔어요. 결국 알래스카에서 20년 넘게 살고, 거기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죠. 알래스카에 살면서 책도 여러 권 쓰고 사진집도 내며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알래스카 캄차카 반도에서 곰 사진을 찍다가 곰에게 물려 죽어요. 가장 자기답게 죽은 거죠. 그런데 이 사람의 글과 사진이 매우 담백해요. 그 어떤 꾸밈이 없으면서 담백하고 힘이 넘치고 아름다워요. 그래서 언젠간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내공을 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죠. 한때는 제가 이 사람한테 너무 빠져서 이런 남자와 결혼해서 이런 남자를 닮은 아들을 낳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에요.

여행에서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아주 많아요. '피스앤그린보트'라고 한국과 일본이 같이 띄운, 평화 환경 교육을 하는 크루즈가 있어요. 거기서 환경 운동, 평화 운동을 함께 하는 '스지 신이치'라는 선생님을 만났는데, 일본에서 '슬로우 라이프'라는 말을 처음 만든 분이에요. 그 이후로 일본 갈 때면 신이치 선생님 댁에 머물기도 하고 같이 여행을 하기도 했는데, 그 선생님에게 매우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는 "지금의 경제 시스템과 사회 시스템이 결국에는 붕괴하고 말 것이다. 그런 시스템이 붕괴되었을 때, 우리가 현재 찾는 대안적인 삶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까. 우리가 그걸 대체할 거대한 힘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사람들에게 다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저에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에요. 그래서 작년에 선생님과 같이 부탄도 여행했고 일본은 물론이고 다음 책도 같이 준비하고 있고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분이에요.

예전에 마흔 살까지는 유목민으로 살고, 그 이후에는 한국에 정착해서 외국인 여행객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아직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신가요?
인생을 80년 정도까지 살게 되었으니 전반전 40대까지는 유목하고, 그 후에 정착을 하겠다는 거였어요. 아무래도 이번에 중남미를 갔다 오고 나면 제가 가고 싶었던 나라는 대충 다 둘러보게 되는 거니깐 내년 후반이나, 내후년부터는 정착해서 살아가게 될 거 같아요. 그렇다고 정착하고 나서 전혀 외국 여행을 가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만 지내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지금보다 여행을 하는 횟수는 줄어들겠지만 여행은 평생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돈이 없는 대학생, 20대에 값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여행지가 있다면?
저는 인도를 많이 추천해요.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도, 한 달에 50만원으로도 여행할 수 있는 곳이고 제가 1년 간 인도와 네팔을 여행했을 때 비행기 값 빼고 450만원을 썼거든요.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을 할 수 있는데다가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에요. 나라가 워낙 커서 대륙과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어서 다양성도 굉장하고 여러 가지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의 기회를 많이 줄 수 있는 곳이에요.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어떤 여행 방식을 추천하시나요?
저는 자기만의 주제와 스타일이 있는 여행을 많이 하라고 해요. 나한테 별로 의미도 없고 관심도 없지만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로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사진만 달랑 찍는 그런 여행은 하지 않았으면 해요. 유명한 여행지라도 나한테 의미가 없으면 그냥 과감히 포기하고 나만의 주제, 예를 들면 미술관 탐방, 음식 탐방, 영화의 소재와 배경이 되었던 곳 탐방 등. 혹은 여행 가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면, 뒹굴면서 책을 읽어도 되는 거고요. 즉,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주제와 스타일이 있는 여행을 창조하길 바래요.

여행을 하면서 무엇을 배우셨나요?
저는 '긍정의 힘'을 많이 배웠어요. 여행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나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발견하면서 나 자신을 긍정하게 되었고요. 여행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타인의 삶을 사랑하고 긍정하게 되고, 너무 거창할 수도 있지만 지구시민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어요.

여행 후 충만함이 굉장히 클 거 같아요.
성장하는 즐거움이 있죠. 이 여행을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끝없이 낯선 환경에서 생활을 함으로써 늘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은 많이 하죠. 내가 그대로 살았으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을지. 그것은 단순히 세상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정신연령이나 세상을 판단하고 보는 나의 눈조차 얼마나 좁고 얕았을까를 생각하면 아찔할 때가 있어요. 그나마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여행 덕분이에요. 그래서 여행은 저에게 그 어떤 교육보다 훨씬 뛰어난 스승이자, 학교였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여행을 통해 환경주의자,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어떤 소비 행위를 할 때 매우 꼼꼼하게 따지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싸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면 그냥 샀는데 지금은 이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혹시나 제 3세계의 아이들이나 여성을 착취하지는 않는지,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는지, 이 회사가 환경을 파괴하거나 아주 나쁜 일을 벌이는 회사는 아닌지. 그래서 혼자서 보이콧하는 물건이 매우 많아요. 너무 피곤하게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힘은 다 개인의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세상이 다 그런데'라는 말이에요. 스스로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이잖아요. 세상 탓이나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서 배웠어요.

단행본 <인생기출문제집>에 20대 때 고민해 볼 질문으로 '당신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미래를 위해 오늘을 생각하는 것을 미루고 있진 않나요?" "실패를 기꺼이 맞을 수 있나요?" "불편한 진실을 목격한 적이 있나요?"를 들었는데요. 어떤 생각을 거쳐서 그 내용을 넣게 되었나요?
강연에서, 여행에서 만난 대학생들을 보면서 20대의 활력과 도전의식, 용기가 없이 너무 경직되어 있고 안정적인 길을 가려고 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여행을 하면서 그렇지 않은 20대의 친구들도 많이 만났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난 평범한 대학생들을 보면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연애든 일이든 마음껏 도전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20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마음껏 썼어요.

김남희씨의 20대는 어땠나요?
저의 20대는 비교적 제 마음대로 살았던 것 같아요. 대학생 때는 집에서 반대했지만 열심히 데모하면서 길거리에서 대학 시절을 다 보냈어요. 그 이후에는 제가 원하는 길로 가고 싶었던 저와, 주변에서 원했던 제 모습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보냈어요. 그러나 남들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안정적으로 보이고 좋아 보여도 그것이 결코 나의 행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결국 30대가 넘어서야 남들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나올 수 있었죠. 그래서 전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나이 들어서 점점 행복해지고 있고 제 삶에 만족하게 되었거든요. 그러나 그렇게 방황했던 20대의 모습이 지금의 저를 만든 밑거름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20대의 시절도 그립고 소중해요.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김남희씨는 20대가 명예와 돈이 아닌,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길 바라시나요?
그럼요. 명예나 돈이라는 것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자연스레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해요. 설령 따라오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이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후회는 별로 없을 거 같아요. 그러나 그게 아닌 돈이나 명예만을 찾아가는 길은 너무나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망가뜨릴 위험도 내포하고 있고, 내 꿈을 포기한 상실감도 함께 따라올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20대는 명예나 돈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Ahn

   

대학생기자 박해리 / 성균관대 문헌정보학
사진. 사내기자 황미경 / 안철수연구소 커뮤니케이션팀 차장


  

생애 첫 트윗 번개, 민경욱 앵커를 만나다!

번개의 태동

내 타임라인을 볼 때 마다 센스 있는 멘션으로 웃음을 가득 주던 KBS 앵커 민경욱 기자(@minkyungwook). 항상 TV에서 보던 사람과 내가 바로 옆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정담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은 어느 날 올라온 그의 트윗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7 7일에 맞이한 저의 7,777번째 팔로워는 바로 @s~~ 이분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언제 여의도에 오실 일이 있으신지요? 제가 점심 대접 한번 하겠습니다.”

 

이 글을 본 몇몇 팔로워들은 저녁으로 시간을 옮겨 함께 할 것을 요구하였고, 엉겁결에 내가 그럼, 번개 할까요?”라는 트윗을 날리게 되면서 민경욱 기자와의 말 그대로 번개가 성사되었다.

D-Day 7 14, 그런데 참석자가 없다

본래 20대 시절부터 통신 동호회 모임도 많이 하고 회장까지 했던 나로서는 번개를 주선하고 참석하는 것이 그리 낯선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생소한 허허벌판 트위터 상에서 어떻게 모임을 공지하고, 참석자를 모으고 해야 할지 막막했다.


더구나 이날 오후까지 참석을 확답해 준 이는 나를 제외하고 고작 1,
그러나 그 분마저도 다른 모임에 참석한 후 늦게나 온다고 하니 그 분이 오기 전까지는 영락없이 민 앵커와 나, 단 둘! 손 발 오그라드는 어색한 상황이 연출될까 전전긍긍하던 중 8,000여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민 앵커가 번개 공지 트윗을 날려주었다. (휴~~) 그렇게 해서 평소 그의 방송을 애청하고, 그의 트친(트위터 친구)’이라 자부했던 팔로워들이 조심스럽게 참석 의사를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만나다. KBS 민경욱 앵커

모두들 귀가를 서두르는 오후 8 40, TV와 글로만 보던 민경욱 앵커는 과연 어떤 사람일지 그리고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갈 것인지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을 갖고 나는 모임 장소로 이동하였다.


9
시를 조금 넘긴 시각, 모임 장소에 도착하여 자리를 잡고 있으려니 첫번째, 두번째 트친이 도착하고, 곧이어 KBS 라디오에서 진행되는 <열린토론>을 막 마친 민경욱 앵커가 도착하였다.

모임 바로 전날 회사에서 스마트폰을 지급받아 한창 연구 중인 그의 이야기 화제는 자연스레 스마트폰에 대한 것으로 시작되었다. 각자 스마트폰을 소지하게 된 사연, 본인 폰의 좋은 점 나쁜 점,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 달라진 생활상 등그러는 사이 5명의 트친들이 더 합류하여 총 9명의번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가 기억하는 "안철수

민앵커는 8시 뉴스를 진행할 시절, “앵커가 만난 사람이라는 코너를 통해 안철수 박사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당시 안박사님에 대한 기억이 아주 인상적이었는데, 그 중에서 약속에 대한 인터뷰 일화를 하나 소개해 주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는 안박사님께 약속을 다 지킨다는 것이 어렵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래서, 전 약속을 잘 안 합니다.”라고 대답하셨던 것. , 지키지 못할 약속은 아예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헤어질 때 인사치레로 밥이나 먹자거나 연락하겠다는 등의 사소한 약속을 많이 하기 마련인데, 이런 사소한 약속마저도 지킬 자신이 없는 약속은 아예 하지도 않는다는 안의장님의 생각이 너무도 인상적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민앵커도 밥이나 먹자혹은 술 한잔 하자식의 인사치레 말 대신, 그 자리에서 바로 수첩을 꺼내 들어 약속 날짜를 잡는다고 한다.



대중과의 소통, 그리고 트위터

그는 어떻게 트위터를 하게 되었을까?

본래 대학 때부터 도서관’, ‘어학’, ‘컴퓨터 3가지를 가까이 하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탓에 컴퓨터를 가까이에 하게 되었고, 자연스레 이메일 à 홈페이지 à 미니홈피 à 트위터까지 이어져 왔다고 한다.

특히 8시 뉴스 진행 시절에는 뉴스 이면의 재미난 뒷이야기와 그날의 뉴스들을 간략히 정리하여 민경욱의 뉴스레터라는 이름으로 몇몇 지인에게 보내기 시작했는데, 점점 애독자가 늘어 급기야 10,000명이 넘어갔다고 한다. 요즘 KBS에서도 시청자들과의 쌍방향 뉴스에 대해 관심이 많고, 이에 트위터를 이용해 보고자 하는 움직임이 많다고 한다. 조만간 시청자들과 함께 소통하고 만들어가는 KBS를 기대해 본다.


어느 정도 서로 친숙해지고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민 앵커는 그동안 숨겨 놓았던 여러가지 마술을 보여주며 분위기를 한껏 고취시켰고, 12시가 훌쩍 넘긴 시각까지 이런 저런 일상사의 이야기들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트위터 묘미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들을 만나는 것은 나 같은 일반인에게는 상상 속의 일이었다. 그리고 막상 만나게 된다해도 쉽게 말 붙이기 어려운 것은 당연. 그러나, 트위터 번개는 달랐다. 유명 그룹의 총수도, 유명 연예인도, 자기 회사의 CEO도 모두 친구관계로 만들고, 또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곳. 그것이 바로 트위터이기에 이를 통한 '오프라인 급 만남^^' 또한 유명인, 일반인의 구분없이 유쾌하고, 즐거울 수 있는 것 같다. Ahn


진윤정 / 안철수연구소 마케팅실 서비스 플랫폼팀 차장

참이슬 손글씨 쓴 강병인, 한글의 아름다움 전도사

오랜 무명 연예인이 첫 번째 팬레터를 받았을 때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2001년 8월 17일 1호를 발행하기 시작해 올해로 만 10년을 맞이한 시큐리티 레터 앞으로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그것도 아름다운 글 꽃인 캘리그래피와 함께.  


편지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상수동에 위치한 캘리그래피연구소 ‘술통’ 사무실을 찾았다. 문을 연 순간 그윽하게 퍼지는 묵향. 시간마저 그 향기에 취해 천천히 흐르는 것만 같은 공간이다. 묵향이 그대로 살아나 향기를 뿜어내는 글 꽃들이 기자 일행을 가장 먼저 반긴다. 잠시 후 한글에 생명과 아름다움을 불어넣는 강병인 작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병인 작가는 ‘엄마가 뿔났다’, ‘세종대왕’, ‘내 남자의 여자’, ‘인생은 아름다워’ 등 인기드라마 타이틀 작업을 한 한국의 대표적인 캘리그래퍼.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진로 참이슬 Fresh, 보해 잎새주, 산사춘, 풀무원, 아침햇살 상품에서 볼 수 있는 손글씨도 그의 손길이 닿은 작품이다. 이 밖에도 ‘김대중 잠언집_배움’, 박지성의 자서전 ‘나를 버리다’를 비롯해 300여 권의 책 타이틀을 작업한 베테랑이기도 하다.  
 

붓을 잡는 순간, 운명이 되었다

“서예를 접하고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에 심취하면서 제 운명은 결정이 난 듯합니다. 기존의 정형화된 글씨와 달리 추사체는 글귀마다 글이 다릅니다. 글씨에 글의 느낌이 살아있죠. 선생이 한문 서예로 큰 발자취를 남기셨다면 저는 한글 서예에 승부를 걸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강병인 작가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캘리그래피.
“캘리그래피는 전통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아름다운 글씨를 쓰는 일이죠. 정보를 전달하는 문자의 기능을 뛰어넘어 다양한 이야기와 감성까지 전달할 수 있어 한글의 아름다움을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매력입니다.”

캘리그래피(Calligraphy)는 '아름다운 서체'란 뜻을 지닌 그리스어 '칼리그라피아(Kalligraphia)'에서 비롯된 말이다.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순수 서예는 말 그대로 ‘서예(書藝)’, 상업적인 서예를 캘리그래피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캘리그래피를 멋짓글씨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지독한 한글 사랑에 빠져 버리다

“글 모르는 백성을 위한 세종대왕의 지극한 사랑이 담겨 있는 한글,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문자입니다.”

강병인 작가는 한글과 훈민정음의 예찬론자이다. 한글의 모음은 인간과 자연의 조화, 자음에는 과학적이면서 체계적인 원리가 담겨 있다. 또 세계에서 가장 역동성 있는 아름다운 글이라며 한글에 대한 지식과 사랑이 끝이 없다. 그는 많은 이들이 훈민정음을 서문만 읽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V3를 제대로 쓰려면 매뉴얼을 읽어야 하듯 훈민정음을 읽어야 한글을 더 잘 알고 쓸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의견이다. 

“꽃, 봄, 술, 꿈, 춤 등 순 우리말은 말의 뜻과 소리가 너무도 곱고 정겨움이 가득합니다. 한글의 고운 자태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고 어떤 아름다움이 있는지를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봄이라는 글자에는 자연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녹일 수 있죠.
초성 자음 ‘ㅂ’은 꽃 봉우리나 활짝 핀 꽃으로, 중성 ‘ㅗ’는 나뭇가지로,
종성 ‘ㅁ’은 화분 혹은 뿌리가 자라는 땅으로 표현됩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화분에서 땅에서 나무가 자라 마침내 꽃이 피는 형상입니다.
한글 ‘봄’이 가지고 있는 조형성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도 아름답습니다.
                                                       - 강병인 저, 글꽃 하나 피었네 中에서

                           
안철수연구소에 감성을 선물하다

“V3 고객이 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안철수 의장과 안철수연구소에 애정이 깊었죠.”
강병인 작가는 특히 안철수 의장이 바이러스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V3를 개발했고, 그 창업자의 뜻을 이어 받아 무료 백신인 V3 Lite를 제공하는 안철수연구소에도 고마움을 전했다.  

“V3 Lite를 무료로 사용하는 고객으로서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주 목요일 받아보는 시큐리티 레터를 보다가 ‘추천하기’ 버튼에 제 글씨체인 봄날체가 쓰인 걸 봤습니다. 그걸 보고 안철수연구소에 감성적인 캘리그래피를 선물해보자고 용기를 냈습니다.”

강병인 작가는 자신의 손글씨를 바탕으로 한 한글폰트인 봄날체와 상쾌한 아침체, 수풀잎체를 출시했으며, 시큐리티 레터 ‘추천하기’에 쓰인 글씨체가 그의 작품인 봄날체였던 것이다. 

“시큐리티 레터는 붓이 아닌 펜으로 작업했죠. 펜은 감성과 이성 사이의 중간적인 느낌이 있습니다. 안철수연구소가 그런 느낌입니다. 어렵고 딱딱한 이성적인 보안을 다루지만 고객을 감성을 터치하는 따뜻함이 있죠. 이윤을 추구하는 이성적인 기업이지만 개인에게는 무료 백신을 제공하는 감성을 잃지 않는 기업이라는 생각을 반영한 것입니다.


매주 목요일 시큐리티 레터를 챙겨보다

강병인 작가는 매주 목요일 웹 메일로 받아보는 시큐리티 레터 애독자이다.
“솔직히 PC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기 쉬운 내용은 아닙니다. 하지만 시큐리티 레터를 통해 주요 보안 위험에 대한 이슈도 살펴보고, PC 활용 팁도 챙겨 봅니다. 최근에 다룬 DDoS 관련된 내용은 매우 유용했습니다.”

그는 PC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고객들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안철수연구소가 많은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한 시큐리티 레터에서도 독자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많이 소개해 달라고 강조했다.  
 


강병인 작가는 마지막으로 많은 이들이 캘리그래피를 통해 한글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한글이 더 넓은 세상 속으로 나갈 수 있기를 응원해달라고 부탁했다. Ahn
 

박정화 / 안철수연구소 서비스플랫폼팀 과장


 
 

다음 창업자 이재웅이 말하는 청년 창업 요건 3가지

지난 21일 포스텍(포항공대)에서는 ENP(Entrepreneurs' Network of POSTECH, 포스텍 기업가 네트워크)의 주최 하에 다음커뮤니케이션(한메일)의 창업자 이재웅 전 대표가 "기업가정신과 소셜 벤처"라는 주제로 강연을 열었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터넷 기업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은 1995년 2월 설립되어 무료 이메일 서비스와 카페 서비스로 전국을 인터넷 열풍으로 몰아넣었다. 우리 나라에서 인터넷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만한, 인터넷 산업의 핵심 플레이어 중 하나이다. 그 '다음'의 창업자가 소셜 벤처, 청년 창업에 필요한 요건 등을 들려주었다. 다음은 강의 요약문.



Entreprenuer(앙트러프루너)란 무엇인가?

Entreprenuer를 우리 말로 가장 가깝게 번역하자면 '기업가'일 것이다. 흔히 기업가라고 하면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나 현대그룹의 고 정주영 회장과 같은 대기업 CEO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하지만 Entreprenuer는 이와는 의미가 약간 다르다. 이 단어의 어원인 'entreprendre'는 프랑스어로 '무언가를 감수하다'라는 뜻이다. 기업가를 다음과 같은 두 개의 키워드로 정의할 수 있다.

1. Risk Taking

Risk taking이란 말 그대로 위험이 있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굳이 경제적인 위험뿐 아니라 자신에게 어떤 종류의 피해라도 올 수 있는 확률을 인정하고 이를 감수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렇게 위험을 감수할 때에는 뭔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일까?

2. System Innovation
 
바로 '시스템의 혁신'이다. 히말라야 등정이나 세계 일주와 같은 개인적인 목표를 위해서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는 지금 존재하는 어떤 체계를 새로운 가치가 있도록 바꾸어 내는 것을 말한다. 이는 기존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때의 파괴는
기존 시스템을 붕괴한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닌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내는 '창조적 파괴'를 말한다.

시스템 혁신은 기존 시스템을 파괴하는 것이다. 이는 합리적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을 부정하는 과정으로 기존 관점에서는 '비이성적-unreasonable'일 수밖에 없는데, 성공한 기업가들은 모두 비이성적이다. 주어진 시스템에 잘 적응하고 순응하는 사람들은 '창조적 파괴'를 실행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의 힘과 창의성

요즘 '소셜 네트워크'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예전부터 페이스북이나 싸이월드 같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는 존재했는데, 왜 요즘 소셜 네트워크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가. '아이러브스쿨'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는 초중고 동창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로, 한때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서비스되지 않는다. 반면 전세계 사람들과 의사소통할 수 있는 트위터(twitter)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두 서비스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미 아는 사람과의 네트워크는 그 가치에 한계가 있다. 네트워크의 가치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연결되어 있는지, 그들이 얼마나 다양한지, 그리고 그 네트워크에서 어떤 정보가 오고가는지에 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서 얻는 정보와, 전세계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당연히 그 질과 양에서 엄청나게 차이가 날 것이다. 정보의 양과 질, 다양성의 한계점을 확장해 사람들이 원하는 정보를 주고받게 하는 것이 소셜 네트워크의 목적이며, 트위터는 이런 목적을 잘 충족하기 때문에 화제인 것이다.

네트워크는 창의력의 원천이기도 하다. 한국의 획일적인 교육 제도는 예전부터 끊임없이 제기되던 문제이지만,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의 한류 열풍이나, 한국 사람이 만들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UCC 등의 컨텐츠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창의성이 없다는 말은 별로 믿을 수 없다.

이 두 가지 사실의 거리에는 '인터넷'이라는 비결이 숨어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르게 초고속 인터넷망을 설치했다.
인터넷으로 세계 여러 나라의 음악, 영화, 드라마 같은 다양한 콘텐츠를 접할 수 있었고, 이에 따라 문화 수준이 향상되면서 새로운 것들을 창조하는 힘이 생겼다. 다양성은 창의성의 원천이며, 따라서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는 것이 곧 창의력을 기르는 것이다.

'타임 머신을 타고 100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뭘 발명할 수 있을까?'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얼핏 생각하기에는 자동차, 휴대폰, 컴퓨터 등 엄청나게 많은 발명을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대 문명은 한 명의 천재가 아닌 여러 분야의 지식을 가진 전문가의 상호 작용으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사람들의 '집단 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을 이끌어내는 것, 서로의 지식이 융합되어 집단 지성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 네트워크의 존재 의미 중의 하나다.

소셜 벤쳐(Social Venture)와 지속가능한 기업

벤처란 무엇일까? 벤처 기업을 많이 이야기하지만, 이 질문에 명확히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좋은 아이디어가 있더라도 창업을 하지 않은 상태를 벤처라고 말하지 않는다. 반대로, 특출한 아이디어 없이 일반적인 사업을 하는 회사 역시 벤처 기업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벤처는 '
꿈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벤처는(venture) '모험'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대단한 목표가 있더라도 직접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모험이 아니라 꿈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자면 벤처는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이며,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다. 이윤이나, 다른 사람의 인정 같은 것은 모험의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얻어지는 산물에 불과하다. '소셜 벤처'란 사회적인 혁신이 목적인 기업을 말한다. 단순히 자신이 해보고 싶은 일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사회적으로 꼭 필요하거나 사회적인 의미가 있는 것의 교집합을 성취하기 위한 단체가 소셜 벤처라고 할 수 있다.

흔히 기업은 이익 창출을 위한 단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윤을 많이 내는 기업일수록 좋은 기업일까? 소셜 벤처라면 기업의 이익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이익까지도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업은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이 이익은 회사의 이익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이익까지 고려한 개념이다.

하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사회적 이익이 기업에 손해가 되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빈번히 일어난다. 이러한 경우에는 두 이익 간의 관계를 최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 쪽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단체는 지속가능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소위 '닷컴 열풍'을 타고 창업한 수많은 회사들이 망한 것도 같은 이유로, 지속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기업이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 생산비를 줄여가면서 이익을 최대화한다면 결국 그 기업의 상품을 살 사람이 없어져 결과적으로 기업의 이익이 줄어들 것이다. 반대로 노동자에게 과도하게 많은 임금을 지급한다면, 기업의 이익이 줄어들어 결국 망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기업은 두 이익 사이의 관계를 조정함으로써 지속가능성을 유지해야 한다.


창업을 원하는 젊은이들에게

1.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냥 두지 말고, 그 아이디어에 집중하여 어떻게 해야 실현 가능하게 만들지 고민하라. 막연한 생각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김으로써 리스크를 떠안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실행하기 전에 충분히 생각하라.

2. 산업이 아닌 기술 위주로 생각하라. 요즘같이 기술이 우리 생활을 크게 변화시키는 시대 상황에서 기술 기반이 아닌 산업으로 사람의 생활을 변화시키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기술에 기반하여 생활을 바꾸는 것이 제일 가치 있고 훌륭한 일이다.

3. 실현 가능한 꿈을 꾸어라. 예전에는 선진국과 후진국 사이에 정보의 격차가 존재했지만, 요즘은 한국 대학에서 배우는 내용과 미국 대학에서 배우는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차이는 무엇일까? 바로 '어떤 꿈을 꾸느냐'이다. 실현 가능한 구체적인 꿈을 꾸고, 단계적인 목표를 세워 실행해나가라.

벤처 기업이 창업 후 5년 간 생존할 확률은 10%도 되지 않는다. 그 안에 들지 못했을 때, 만약 돈을 목적으로 창업을 했다면 매우 괴로울 것이다. 하지만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면, 실패해도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다.

창업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권해보고 싶은 일이다. 나는 95년에 다음(한메일)을 창업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잘한 것도 있고 잘못한 것도 있지만 정말 재미있었고 앞으로 다시 경험하기 힘들 것 같은 경험들을 했다. 특히 내가 생활을 변화시킨다는 짜릿한 느낌, 내가 생각하는 대로 변화가 이루어지는 느낌은 단순히 돈을 목적으로 창업해서는 느끼기 힘든 것이다. 또한 사람들의 습관과 생활, 사회를 바꾸어 나가는 데 일조하는 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경험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사회의 이익과 기업의 이익, 두 사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굉장히 어렵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면서 이 문제에 도전하는 것은 굉장히 재미있는 일이다. 이 재미있는 과정을 한 번쯤 경험해 보기를 바란다. Fun, Enjoy! Ahn

대학생기자
한대희 / 포스텍 컴퓨터공학과

사람은 누군가가 되어가는 작은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저의 작은 과정이 되어주실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국내 해커 1호에서 명문대 교수로 변신한 사연

대한민국 해커 1호에서 정보보안 벤처기업 CEO로, 게임 업체 보안관리자에서 대학원 교수로 끊임없이 변신한 이가 있다. KAIST 해킹 동아리 출신으로 A3시큐리티컨설팅을 창업하고 엔씨소프트 정보보안실장을 거쳐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조교수가 된 김휘강.

그가 독학으로 해킹을 공부한 사연과 우리나라 정보보안 상황, 인재 채용 때 꼭 했던 질문, 미래 보안전문가를 위한 조언을 허심탄회하게 들려주었다. 보안전문가로서는 보안 솔루션이 알아서 모든 걸 해결해준다는 환상을 버리라고 강조하고, CEO로서는 3년, 5년 후의 비전을 명확히 가지라고 요구했다. 또한 미래 보안전문가에게는 정말 보안전문가가 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하고, 보안 이외 기반 지식을 쌓으라고 조언했다. 또한 정보보안에 대한 건전한 관점을 갖추고, 학창 시절 때부터 진로를 짜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독학으로
해킹을 공부하셨는데 어떻게 독학에 성공했는지 알고 싶습니다.

사실 그 시절은 저뿐 아니라 해킹을 배우는 사람 대부분이 독학을 할 수 밖에 없었죠. 저는 유닉스를 PC보다 먼저 배웠는데, 책도 물론 구매해서 보았지만 주로 유닉스 내의 온라인 매뉴얼 페이지를 보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예를 들어 도스 명령어 DIR과 유사한 것으로 “ls” 명령어가 있는데 옵션이 15가지가 넘습니다저는 이것들을 직접 하나하나 실행해가며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살펴본 경우라고 할까요.

개발자로 출발해서
OS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해킹 기술을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자연스레 습득하는 사람도 있고, 시스템 관리를 많이 하다 보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해킹 방식을 터득할 수도 있는데 저는 후자에 속합니다. 시스템을 알게 된 후부터 여러 가지 보안 관련 영감이 떠올랐고, 이와 관련해 좀더 즐거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전과학고에 다니던 당시 선배 중에는 해킹을 공부하며 몇 가지 초보적인 장난을 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컴퓨터 수업 시간, 서버에 로그인을 한 같은 반 학생의 채팅을 유닉스 "talk" 명령어를 이용해 몰래 보거나 선생님의 계정을 탈취하여 수업을 중단하고, 지연시키기도 했습니다. 또한, 당시 학생에게 제한적으로 주어지는 디스크 용량 제한을 풀어서 무제한으로 쓰기도 하고. 그런 선배들에게 어깨 너머 이것저것 배우기도 하고 여러 가지를 직접 시험해보면서 독학했습니다. 

 

해커 출신으로 밴처기업 창업, 글로벌 기업의 보안 총괄 책임자를 거쳐 대학교수로 부임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흔한 사례는 아닐 것 같은데요. 

정말 운이 좋았죠. 제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업을 시작함과 동시에 벤처 붐이 불었고, 큰 회사에서 일하고 싶을 때 마침 기회를 얻었고, 일을 하는 도중에 학교에서 마침 저와 관련된 분야로 신임 교원 모집을 하고 있었어요.

 

언제부터 어떻게 컴퓨터 보안에 뜻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스스로 평가해본 결과 남들보다 개발을 뛰어나게 잘할 것 같지는 않고, 남들이 잘 모르는 분야인 보안 분야는 상대적으로 많이 아니까 계속 이쪽 분야를 한다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쿠스(KUS, KAIST UNIX Society)라는 해킹 동아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때부터 보안 분야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죠당시 교과서나 문서 위주로 공부를 잘하는 사람에 비해 저는 실전에 강했고 꾸준히 연구하고 실력을 키워가며 보안 분야를 많이 공부했습니다.

 

대학원에 진학한 후에는 더욱 자유롭게 보안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은 전공이나 학업에 신경 쓸 것이 너무 많아 나처럼 한 분야에만 매진하기 어렵지요.  

당시 대학원 진학은 면접과 필기 시험만 통과하면 됐기에 지금보다 수월했고, 덕분에 한 분야에 깊이 있는 공부가 가능했습니다경영정보시스템을 공부해 IT를 경영에 접목, 비즈니스를 활성화하는 것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학교 다닐 때 조직론이나 사람의 행태를 연구하는 수업은 나중에 정보보호 전문기업을 창업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1996년에 포스텍(포항공대)와 카이스트 사이에서 해킹 대결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의 보안 실력은 얼마나 향상됐다고 평가하십니까.  

기술적인 면에서는 큰 발전을 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90년대 학생들은 아무 기반도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우리나라 보안 기술의 취약점을 연구하고 공부해 문서를 만들어 인터넷에 알리고 보급하면서 보안 산업의 첫 장을 열었다고 생각합니다우리나라 초기 보안 산업에 많은 기여를 했죠. 기업의 보안 인식이 부족했던 당시에는 보안 사고라도 나면 취약점을 분석할 수 있는 조직이나 정보보호 전문 기업이 없었기 때문에, 저 같은 학생이 나서서 취약점을 분석하고 공격을 막아주기도 했어요. 기술력만 보면 지금 친구들이 월등히 높은 수준과 실력을 발휘하지만, 정보보호 인프라 자체가 없던 과거의 학생들이 보안에 대한 열정이나 연구하는 자세는 지금보다 더 진지하고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96년도에 일어났던 해킹 대결은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보안 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기업을 경영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지요?

사실 한두 가지가 아니죠. 늘 자금이 아쉬웠습니다. 저는 외부 차입금을 전혀 쓰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고수하려 했죠. 우리가 가진 자금으로 회사를 얼마나 운영할 수 있는지 매일 체크했어요보유한 현금으로 수입 한 푼 없이도 회사가 최소 6개월에서 1년을 버틸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으로 재무 관리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지요. 자본금 5000만원으로 시작해 자본금 20억이 넘는 회사를 만들었지만 그 과정에선 늘 자본금 여유가 없어 어려움이 많았고, 수주를 못할 경우를 생각해 항상 노심초사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자본을 투입해서 공격적인 경영을 해야 할 시점이 분명히 있었는데, 그러한 시점에 보수적인 경영 원칙을 고수하느라 좀더 공격적인 경영을 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또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2000년 이후 점차 경기가 안 좋아지고 벤처 열기가 꺼져가면서 투자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기도 했어요.

 

기업에 계실 때 직원 채용 시 가장 중점적으로 보신 부분과 가장 많이 한 질문은 무엇인지요?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력서가 하나 있는데학력이 높지는 않은데 정말 온 힘을 다해 이력서를 쓴 게 눈에 보였어요. 겸손하면서도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앞으로 무엇을 할지 목표가 뚜렷했어요. 20MB가 넘는 용량의 본인 개발 포트폴리오 다운로드 경로도 잘 정리되어 있었고요. 한눈에 업무를 위한 목적에 부합하다고 판단해 당장 채용했죠.

 

또한, 저는 면접을 할 때 3년 뒤나 5년 뒤에 무엇을 할 것이냐는 질문을 꼭 합니다. 3년 뒤나 5년 뒤 꿈이 없는 사람은 목표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절대 뽑지 않죠. 그리고 "3년 뒤 사업을 하고 있겠습니다" 혹은 "5년 뒤 더 큰 회사에 입사할 것입니다." 이렇게 대답해도 뽑지 않죠우리 회사에 입사하면서 3년 뒤, 5년 뒤에 다른 회사를 위해 일한다고 말하는 사원을 뽑는 곳은 아무 데도 없겠죠.


우리나라 보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는 항상 스팸과 악성코드 배포지로 10위 안에 들어요. 미국은 변함없이 1위이고. 우리나라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실제 악성코드 배포 시스템은 중국에 있지만, Script Tag 입력을 허용하는 우리나라 게시판 등에 악성코드 유도 스크립트가 존재하는 경우가 많아서 악성코드 배포가 급증합니다. 우리나라 자체의 문제점이라기보다는 해외 시스템을 경유한 사용자 접속 쿠키 정보 노출과 제로데이 취약점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통계를 보더라도 1위와 2위의 편차가 크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문제가 세계로 확대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럼에도 99% 안전해도 1%의 취약성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게 보안이니, 기술과 관리 측면의 노력이 효과적으로 융합하여 보안 위험을 줄여나가거나 피할 수단의 개발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또한, 모바일 시대에 걸맞는 통제 방식 기준도 수립하는 게 중요하고요. 개인도 보안 솔루션이 뭐든 것을 알아서 해줄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야 해요. 가끔 다른 사무실에 가면 모니터에 시스템 접속용 ID, 패스워드를 붙여놓은 경우를 많이 보는데, 이런 경우 보안이 지켜질 리가 없죠. 물론 사용자는 서비스 제공자가 알아서 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지만, 결국 PC, 내 시스템을 지키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인식에서 보안이 시작됩니다. 실제로 사람의 고의적, 비고의적 실수가 보안 사고의 발생 원인 분석 측면에서 항상 상위에 랭크되곤 합니다.
 

스마트폰 시대에, 인증 기술이 스마트폰 발전의 저해 요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글쎄요. 인증 기술을 간소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사람들 보면 아직 피해를 당하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일 텐데요. 막상 피해를 당하면 높은 보안 수준을 요구할 거라고 봅니다. 누구나 편리하고 안전한 서비스를 원하지만, 편리함과 안전함은 공존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요.

그리고 기술적 보안 외에 다른 측면도 봐야 해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제가 G마켓에 오픈마켓을 하나 열어요. 제품을 구매할 때 회원가입 등으로 개인정보를 넣게 해요. 그리고 며칠 뒤 사이트를 닫아버리고 실제 배송을 하지 않아요. 결제가 되지 않게만 하고 사이트를 닫아버리면 금전적인 부정행위가 일어난 것이 아니니 앱을 만든 측에서도 사이트에서 물건 조달을 못해서 사이트를 닫았다고만 알거든요. 하지만 사용자는 이미 개인정보를 많이 빼앗긴 것이죠. 이런 식으로 사회 공학적 피싱까지 이어지는 것은 앱 개발자가 책임지지 않기 때문에 OS 레벨의 보안만 너무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악성으로 악용될 가능성도 챙겨봐야 한다고 봅니다.

 

많은 공공기관이나 은행에서 보안 솔루션의 이용을 강제합니다이러한 보안 솔루션이 PC의 오작동이나 부하를 증가시킨다는 불만도 상당한데, 이러한 불편을 줄일 방안이 없을까요? 

예전에 어떤 게임 회사에서 무료 보안 솔루션을 제공했어요. 한 번이라도 악성코드가 감지되면 치료하겠냐고 관련 정보를 묻는 식으로요. 자동 치료도 되지만 치료가 되면 기록이 날아오게 했거든요. 그래서 일주일 동안 이 툴로 얼마나 많은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감지되었느냐 조사해보니 몇 만 건이 넘어가요사용자가 불편해하는 이런 툴로 구제받는 컴퓨터가 무시할 수치는 아니라는 거지요. 불편함은 있겠지만, 그렇다고 보호장치를 무시하거나 보안 프로세스 절차를 없애가면서까지 서비스를 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우리나라 보안 회사의 규모가 크지 않고 개발자나 품질 테스트 인력이 많지 않다보니 천차만별인 PC 환경을 모두 충족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요그래픽카드, 랜 카드만 해도 종류가 많은데 그 많은 환경을 모두 갖춰놓고 품질 테스트를 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어요. 최대한 테스트를 해서 내보내지만 충분하지 않은 거지요. 그러다 보니 설치했는데 또 설치하라거나 재부팅을 하라고 해서 인터넷 뱅킹 5분을 쓰기 위해서 프로그램을 20분 동안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에요. 이러한 부분은 업체가 개선할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일부에서는 외국은 우리나라같이 보안 프로그램 없이도 뱅킹을 잘만 쓰는데, 왜 우리나라만 이러냐는 시각도 있습니다 

사고 건수의 정확한 통계를 가진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다만 사고 건수 중 실제 신고 건수는 10% 미만이라는 게 정설이지요. 다만 은행권에서 발생하는 보안 사고는 대부분 은행 쪽보다는 개인의 잘못이 더 많다고 봅니다

사실 외국 시스템도 다르지는 않아서
, 외국도 피해 규모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것만 가지고 외국에서는 보안 솔루션을 덜 적용했기 때문에 더 취약했다고 얘기하기는 어려워요규모 자체가 다르니까요그렇다고 근거가 없다고 얘기할 수도 없어요. 정확한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이런 보안 솔루션이 고객 PC를 보호하기 때문에 치명적인 사고를 막아낸 경우도 있고 보안카드, 원타임 패스워드, 인증서로 방어하는 공격도 분명히 있어요

마침 근래 들어 모바일 환경이 갖춰지면서 공인인증 모델이나 접근 제어와 차단 시스템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많은 시도가 있습니다만, 그렇다고 기존 정보보호 시스템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사용자 중에는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정보보호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쓰는 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당장 속단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안전문가를 꿈꾸는 많은 청소년이 순차적으로 무엇부터 배워 나가야 할지 알려주십시오.

첫째는 자기가 정말 보안전문가가 되고 싶은지 생각을 다시 해보는 게 좋아요. 보안전문가의 길은 상당히 힘들어요. 다른 IT 분야도 워낙 변화무쌍하지만 보안 분야는 하루도 새로운 지식이나 책을 읽지 않으면 금방 뒤처지고 제가 3년 전 알던 것은 어디 가서 발을 못 내밀어요. 그건 이미 옛날 지식이 되어버려서요. 따라서, 항상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OS뿐만 아니라 데이터베이스, 웹개발, 일반적인 C언어나 이런 것을 이용한 개발이라든지, 또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이라고 해서 어셈블러 지식과 네트워크 지식같이 보안은 어디서나 연관되기 때문에 알아야 하는 것이 매우 많아요.

둘째, 보안 이외 기반 지식을 쌓아야 합니다. 보안 쪽 일을 하려면 필요한 지식이 적어도 5개 영역(네트워크, 시스템, 애플리케이션, DB, PC)이에요. 이 분야는 기본적으로 다 알아야 해요. TCP/IP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보안을 배우고 싶다고 하면 참 곤란한 일이 많이 생기겠죠?

셋째, 정보보안에 대한 건전한 관점이 필요해요. 얼마 전 일본에 투채널이라는 카페와 우리나라 네티즌이 도스 공격으로 공방전으로 벌였는데, 그런 공격은 아무런 지식이 없어도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여기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이 큰일을 한 것으로 알아요. 물론 지식을 알고 한 사람도 있지만 그 툴을 내려받아서 공격에 참여했고 집단 활동에 참여했다는 것에 더 크게 만족하더라고요. 이런 사람은 안 좋은 길로 빠질 확률이 엄청 커요. 

 

넷째, 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미리 진로를 학창 시절 때부터 짜봐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공부를 언제부터 하고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 말이죠. 이런 것을 배우려면 어떻게 공부하고 어떤 학과를 가야 하고 굳이 대학을 그곳에 가지 않더라도 그 분야의 공부를 어떻게 독학할 것인지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Ahn

대학생기자 이가현 / 서울여대 미디어학부
대학생기자 장효찬 / 고려대 컴퓨터통신공학

 

대학생기자 박미영 / 고려대 산업정보디자인과
언제나 가슴 속에 간직한 문구 "행복은 습관입니다^^"
습관이 모여 행동이 되고 행동이 모여 삶의 태도가 될테니 늘 건강한 미소와 흔들림없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행복하고 싶다. '보안세상'에서의 활동이 인생에 행복을 쌓는 또 하나의 활력이 되길 기대한다.


 

청년 CEO가 말하는 창업 과정의 어려움 3가지

인터뷰이로 그를 선택한 것은 순전히 '호기심' 때문이다.

지난 겨울 오사카 여행을 준비하며 많은 블로그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안현진씨의 블로그(http://
sunshinyceo.tistory.com)를 발견했다. 여행 관련 정보뿐 아니라 삶에 대한 자신감과 창업을 준비하는 모습이 신선해 보여서 즐겨찾기에 등록을 해두었다. 안철수연구소 기자단에 선발된 후 나에게 자극이 되는, 혹은 멘토가 되는 이와 인터뷰를 하겠다는 다짐을 하던 찰나에 즐겨찾기에 등록해둔 블로그가 문득 떠오른 것이다. 


안현진씨는 현재
서울시 청년창업센터의 지원을 받아 온라인 커뮤니티 사업을 준비 중이다. '
놀이하루'(http://cafe.naver.com/noriharu/)라는 이름처럼 이왕이면 잘! 노는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놀거리를 제공해보자 시작했다.

"잘노는 것으로 제시하는 자기계발 프로그램이 총 6개인데요. 메인이 '당일치기 하루여행'입니다.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당일로 여행하는 정보를 제시하고, 그때의 소회를 사진과 함께 간직할 수 있도록 하는 맞춤 책과 루트 수첩 제작을 준비중입니다. '국내당일여행'을 중심으로 개별적인 프로그램을 정착시킨 후에는 모두를 묶어 패키지화하는 것도 계획 중입니다."

PC방에서 하루 종일 게임만 하거나, 집에서 웹 서핑만 하거나, 술만 저녁 내내 마시는 것 대신 우리의 실행 프로그램들이 진정한 놀이거리가 되었으면 한다고.


스물 다섯 나이의 그가 요즘 보통의 대학생과 다르게 안정을 좇지 않고 창업을 준비한 계기는 무엇일까?

창업을 결심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이다. 2학년 때부터 학교라는 사회가 너무 작다고 생각해 좀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싶어 기업에서 하는 활동에 많이 참여했다.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는 미장센 스타일테이너 활동.

"오늘 하루를 얼마나 스타일리쉬(stylish)하게 살았는지 매일 UCC를 찍어서 올리는 활동이었는데, 다양한 사람을 만나 함께하는 즐거움도 느끼고 마케팅에 흥미를 느낀 보람찬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활동이 쌓이자 자연스럽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생각할 기회가 생겼고, 다양한 활동의 연장선 상에서 4학년 때 노동부가 주최한 '소셜벤처창업대회'에 지원했다. 시골의 노인과 서울의 청년을 연결해주는 홈스테이 프로그램을 기획서로 제출했는데, 운 좋게도 서울 권역에서 합격해 프레젠테이션까지 할 수 있었다. 

그 다음달에 
서울시에서 주최한 '2030 창업 벤처 프로젝트'가 열렸는데
, 지금의 사업기획서가 합격했다. 공교롭게도 중간고사와 면접 프레젠테이션 날짜가 겹쳐 고민이 되었지만 과감한(?) 선택으로 면접에 참가하여 일반 창업 분야에 최종 합격했다. 그 덕분에 송파구 가든파이브 내 사무실도 무상으로 지원받고 매달 지원금도 받게 됐다.

하지만 지원을 받는다고 창업이 순조롭지만 않을 터. 안현진 씨는 진행 과정에서 겪은 세 가지 어려움을 꼽았다. 

"
온라인 사업이라 진행이 더디고, 커뮤니티의 운영진을 구하기가 힘들어요. 그리고 자금과 인건비 문제가 있습니다. 다행히 운영진은 개인적인 친분을 바탕으로 각 분야 전문가를 구할 수 있었고, 나머지 부분도 차차 커뮤니티가 본 궤도에 오르면 해결되리라고 봅니다."

그는 행정학/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전공이 창업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했다. "
언뜻 보기에 행정학이나 신문방송학이 지금 하는 사업에 아무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행정학에서 국가를 경영하고 모두의 이익을 생각할 수 있는 자세를, 신문방송학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스킬배웠어요. 두 학문은 각기 지향점이 다른 만큼 균형잡힌 시각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특히 행정학은 단순히 이익을 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 즉 내가 하는 일의 차원을 넓게 생각하게 해주었어요. 학교->기업->국가 순으로 시야를 넓히고 좀더 장기적 측면을 보게 해주었죠."

당찬 선택을 한 그의 좌우명은 뭔가 특별할 것 같다. 예상대로 좌우명이 두 가지나 된다는 것, 그리고 둘다 거침없는 추진력의 뉘앙스를 풍긴다는 점에서 특별했다. 첫째는 '된다고 생각하고 된다고 행동하면 반드시 된다' 둘째는 '뒤흔들자(뒤집어 흔들자)'.  뒤집어 흔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삶을 살고 싶다는 의지가 반영된 좌우명이란다. 

롤 모델도 좌우명과 맥락이 같다. 박경림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을 깨는 삶을 산다는 점이 좋아 롤 모델로 삼았다. 절정의 인기를 얻은 시점에도 안주하지 않고 사업, 가수, 유학에 도전하고, 도전한 분야에서 성공하는 모습이 많은 안현진씨에게 영감을 주었다. 거기다가 멋진 남편까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장벽 앞에서 고민만 하지 않고 꿋꿋하게 하나씩 장벽을 격파하는 모습이 도전한 분야마다 성공한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박경림 씨처럼 자기 아우라(Aura)를 가지고 도전하는 삶을 즐기고 싶습니다."

그는 대학생들에게 잘쓴 이력서 1장, 토익 900점은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창업 또는 취업 그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다고 강조한다.

"얼마 전 고려대 여학생이 붙인 대자보의 문구가 생각납니다. '꿈을 찾는 게 꿈인 이 시대가 너무 슬프다' 취업, 토익 900점이 인생의 목표인 삶... 얼마나 슬픈가요. 대학생에게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본인이 진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찾고, 그 길로 나아갈 용기를 가지는 시간이.
내가 어디로 달려야 할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뛰는 건 정말로 미련한 일입니다. 장기적인 방향을 잡은 후에 자신감을 가지고 올인하세요!!" Ahn

이재일 / 연세대 경제학과

스티브 잡스가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 축사에서 했던 한마디.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YOUR TIME LIVING SOMEONE ELSE'S LIFE.

나만의 방식으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해서
최선의 결과를 얻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뉴욕 타임스퀘어 독도 광고의 숨은 주역 만나보니

3월 1일 미국 뉴욕 한복판 타임스퀘어 광장. 그 한가운데 옥외 광고판에는 독특한 광고가 올려졌다. 독도가 우리나라 땅이라는 카피였다. 퍼즐 형식으로 풀어낸 독도 광고는 '참신하다'라는 평과 함께 인터넷에 빠른 속도로 퍼졌다. 

시사IN, 2010년 3월 13일자


이처럼 우리나라 문화나 이슈가 외국 미디어에 노출되는 일이 종종 화제가 되곤 한다.  미국 유명 신문에 비빔밥 광고가 실려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실제로 실행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기자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리는 숨은 주역을 찾아나섰다. 그는 바로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서경덕 객원교수이자 국가브랜드위원회 자문위원, 국가보훈처 나라사랑 정책자문위원, 아리랑국제방송 전략기획위원, 독립기념관 홍보대사 등을 맡고 있다. 독도가 워낙 첨예한 이슈라 독도 광고로 유명하지만, 그는 무한도전 팀과 함께 한 비빔밥 광고처럼 우리나라를 대표할 소재를 가지고 대한민국을 알린다. 또한 세계적인 유명 박물관에 한국어 브로셔(brochure) 제작을 자문하고, 한국어를 알리는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서 교수는 이렇게 1인 다역을 하는 바쁜 와중에도 흔쾌히 '보안세상'에 인터뷰해주었다. 약 100명이 듣는 대형 강의를 마친 후에도 힘든 기색 없이 성의껏 대답해주었다.


Q. 우리나라 홍보전문가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대학생이 되면 해보고 싶은 일이 많았는데, 그 중 가장 해보고 싶었던 게 배낭여행이었습니다. 그 때 세계화, 글로벌화 이런 단어가 매체에 자주 등장했는데, 세계화를 배우려면 내가 눈으로 직접 보고 느껴야지 한국에 머물러서만은 안 되겠다고 느꼈죠. 여행을 딱 갔는데! 유럽에서 제 얼굴을 보고 "중국인?" 아님 "일본인?" 이렇게 묻더군요. 한국이 88 올림픽도 개최해서 외국인들이 우리를 알 줄 알았는데 몰라서 놀랐습니다. 거기서 큰 충격을 받아 그때부터 한국 알리기에 전념했어요. 사실 대학교 때 전공과는 지금 일과 거리가 멀어요. 그때의 해외 여행이 저의 직업을 바꿨지요.

Q. 한국 홍보는 회사에 속해서 하는 일인가요?
A. 아니오. 아직 젊기 때문에 자유롭게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한국 홍보에 대한 일을 계획하다 여기저기서 뜻이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어요. 다들 직업은 따로 있는데 한국 알리기를 위해 저녁에 자원봉사로 일을 하죠. 한글 프로젝트팀, 광고 제작팀, 박물관팀 등 각자 힘을 보태서 함께 해요. 이들 모두 한국의 문화, 역사와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합니다.

또한 G20 블로그를 공동으로 운영하면서 여러 나라 국어로 한국 홍보 서비스를 해요. 이번 G20 같은 행사는 앞으로 다시 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한국을 세계에 강하게 어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일을 하는 중에는 기업이나 정부 또는 김장훈씨, 여러 독지가, 무한도전 팀 등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해주세요.

Q. 다른 곳도 아니고 미국 뉴욕타임즈에 광고를 낸 계기는 무엇인가요?
A.
2005년도에 독도 광고를 시작했어요. 일본이 다케시마의 날에 조례 제정을 하는 것을 보고 이것은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 당시 뉴욕에서 한국 홍보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활동 중이었는데, 뉴욕타임즈에 독도에 관하여 광고하면 큰 효과를 보지 않을까 싶어 기획했어요. 독도 광고 외에 고구려 문제, 한국 대표 음식인 비빔밥을 월스트리트 저널(Wall street journal) 등 세계 유명 매체에 광고를 냈습니다.

Q. 작년에 청소년 대상 설문에서 반 이상이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럽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또한 기본적인 국사 지식도 잘 모르는 것으로 나타났는데요. 이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일단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역사가 선택 과목이 된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일본은 초등학교부터 국사 과목을 필수로 가르쳐. 젊은이들이 역사에 무관심한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강요로 되는 것은 아니죠. 결론은 독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일본이 아니라 우리가 무관심으로 행동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이들이 나라가 없다면 어떻게 살 수 있겠어요? 모두 애국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를 알아나가고 배우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Q. 마지막으로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A.
요즘 대학생들은 직장을 선호하지, 직업을 선호하는 거 같지 않아요. 안타깝죠. 젊은이들에게 항상 탁상공론보다는 직접 부딪혀 보라고 말합니다직접 해보고 얻는 것, 즉 경험으로 얻는 것이 가장 좋아요. 창업, 동아리 운영 모두 좋은 경험을 할 토대가 될 수 있습니다. 겁내지 말고 대학생의 패기로 들이대세요!  



인터뷰 후에도 한국 홍보 프로젝트 팀을 만나러 가야 한다며 소탈하게 웃는 그 모습에서 열정과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 올해가 '한국 방문의 해'인 만큼 G20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위상을 세계에 알리고, 외국인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아! 참고로 나, 우리부터 우리나라를 알아가는 공부를 꼬옥 할 것을 약속드린다. ^^  
Ahn

대학생기자 양희은 / 성신여대 컴퓨터정보학부
대학생기자 전아름 / 서울여대 미디어학부

일본과 한국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은 사야까씨

우리는 '우리나라'가 아닌 '한국'을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요?

태어날 때부터 하나의 문화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구성원보다는 새롭게 구성원이 된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많은 부분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이 아마도 사야까씨가 자신의 블로그인 '내눈으로 본 한국, 한국인(
http://sayaka.tistory.com/)에 올리는 글들이 많은 공감을 이끌어내는 한 이유일 것입니다.

사야까씨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우리는 미처 몰랐던, 혹은 당연하다고 넘어갔던 '한국'의 단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녀는 때로는 (대부분) 즐겁고 명랑한 시선으로 우리사회를 바라보고 관찰하며, 이를 구수한(?) 우리말로 위트있게 풀어내고, 때로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우리가 그동안 외면했던 문제들을 직관적으로 제기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면 댓글란은 토론의 장으로 변신하기도 하죠.

또한, 그녀는 일본의 생생한 생활상도 함께 소개해 한국과 일본이 온라인을 통해 서로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런 그녀가 대한민국 대표 소프트웨어 기업 안철수연구소를 찾아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일본 나가노현에서 온 고마츠 사야까입니다. 올해로 한국 생활 10년째이고 부산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한국 사람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한국관광공사 해외마케팅 외국인 자문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 블로그를 시작한 계기?
처음 한국 친구들을 만난 것은 뉴질랜드 어학연수 중이었어요. 그때 만난 한국 친구들에게 저의 재미있는 한국 생활을 보여주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지금도 그 친구들은 친하게 만나고 있습니다. 대학 졸업 후 한국어를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 안철수연구소를 알고 계셨나요? 어떻게 처음 알게 되셨나요?
사실은 예전까지는 잘 몰랐어요, 보안에 대한 전문지식도 별로 없고요. 하지만, '무릎팍도사'에 나온 안철수 교수님을 무척 재미있게 봤어요. 그리고 그 방송을 보고 안철수 교수님에 대한 존경심도 생겼고요. 특히 가족에게 군대 간다는 말도 안 하고 그냥 간 부분이 기억에 남아요. 그분이 만드신 회사에 꼭 한번 와보고 싶었습니다.  

- 한국에서 느낀 가장 큰 문화적 충격이 있다면?
음... 일본과는 많은 부분 닮은 듯 달라요. 처음에 와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운전이었어요. 택시나 버스를 탈 때 너무 공격적으로 운전을 해서 무서웠어요. 아직도 버스나 택시를 탈 때면 조금 천천히 여유있게 운전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부정적인 충격이었지만 한국 음식이나 음주 문화, 전통 문화 등 사랑스러운 문화적 충격도 많았답니다~

-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과 후를 비교해 가장 달라진 점은?
한국어 실력일까요^^ 블로그에 글을 쓰기 위해 저는 당연히 다른 분들보다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립니다. 하나하나 뜻을 찾기 위해 사전을 애용하기도 합니다. 그 덕분에 한국어 실력이 쑥쑥 느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블로그에 많은 분들이 방문해 주시면서 인터뷰나 방송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어요. 그걸 통해서 새로운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되었어요.

-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좋았거나 안 좋았던 에피소드는?
좋았던 일은 한국 분들이 한국어 잘한다고 말해줄 때와 사야까 덕분에 일본이 좋아졌다는 의견들을 봤을 때 기뻤어요. 제 블로그가 단순 개인 취미에 그치지 않고 어떤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나빴던 일은 역시 악플입니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을 때는 악플이 엄청났거든요. 지금은 많이 줄었고 별로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악플을 보면 어쩔 수없이 슬퍼집니다. 제 글의 오류나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시는 건 고맙지만 근거없는 악플은 자제를..

- 블로그 운영에 자신만의 원칙이 있다면?
원칙같이 거창한 것이라기보다는 일주일에 몇 번이라도 꾸준히 올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한 포스트 당 최소 한 장 이상의 사진을 올리는 것도 지킵니다. 나머지는 최대한 진솔하게 글을 쓰려고 노력 중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나의 한국 생활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자' 일까요^^

-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한국에 살 수 있다면 계속 살고 싶어요. 한국에 살면서 한국 사람들에게 일본어도 가르치고, 블로그로 한국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가능하다면 한국 남자와 결혼을 하면 좋죠^^ 장기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을 연결하는 다리가 되고 싶어요.

- 블로그를 시작하려는 분들께 한 마디
블로그는 인터넷에 쓰는 일기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과 그것을 공유하고 의견을 나누는 것이 정말 즐겁습니다. 아직 블로그를 안 해보셨다면 꼭 한번 이 즐거움을 느껴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이 즐기는 것이에요.


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