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기억법>, 그리고 김영하

문화산책/서평 2017.09.03 23:05

독서가가 아니라도 김영하라는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특히나 최근 tvn의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해 더욱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1995년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등단한 그는 90년대 후반, 2000년대그리고 지금까지도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이전에 한국 문학에서 사용하지 않았던 소재들글 작법을 사용해 독자적인 김영하만의 문학 세계를 만들어냈다

첫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는 자살 조력자인 주인공이 등장하며, <퀴즈쇼>에서는 인터넷 채팅을 소재로 이야기를 전개해나갔다김영하의 작품을 호평하는 사람도혹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의 등장이 한국 문학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법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김영하 작가는 환상적인때로는 순문학에서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탈 현실적인 기법을 사용한다독자에게 장르소설을 읽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을 줄 정도로 말이다이와 같은 경향은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살인자의 기억법>과 단편 <옥수수와 나>와 같은 작품에서 두드러진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이 개봉을 앞둔 시점에서원작 소설과 작가 김영하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원신연 감독은 책을 읽자마자 영화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좋은 작품을 낼 수 있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한다. 그의 손에 다시 탄생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은 어떤 모습일까?

예전에는 연쇄살인범이었지만 지금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병수우연히 접촉사고로 만나게 된 남자 태주에게서 자신과 같은 눈빛을 발견하고 그 역시 살인자임을 직감한다.

병수는 경찰에 그를 연쇄살인범으로 신고하지만 태주가 그 경찰이었고아무도 병수의 말을 믿지 않는다.

태주는 은희 곁을 맴돌며 계속 병수의 주변을 떠나지 않고병수는 혼자 태주를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기록하고 쫓지만 기억은 자꾸 끊기고오히려 살인 습관들이 되살아나며 병수는 망상과 실제 사이에서 혼란스러워진다.

다시 시작된 연쇄 살인사건놈의 짓이 맞을까!

네 기억은 믿지 마라!

그 놈은 살인자다! (출처네이버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정보)


살인범이 치매에 걸렸다주인공이 스스로 말한 것처럼 이것은 인생이 던지는 짓궂은그리고 잔혹한 농담의 일종이다단편적인 기억을 가진 주인공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한다는 면에서 영화 <메멘토>와 유사점이 있다.

영화의 메가폰을 잡은 원신연 감독은 <세븐 데이즈>, <용의자> 등을 연출하며 스릴러 영화로 커리어를 쌓아왔다. 주연은 설경구, 설현, 김남길, 오달수가 맡았다. 영화 GV 행사에서 김영하 작가는 '설경구의 연기가 압도적이다. 결기, 독기가 느껴진다.'라고 평하며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살인자의 기억법>은 매끄럽고 잘 읽히는 작품이다. 스릴러적 요소도 지니고 있기에 영화의 몰입도가 굉장히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오히려 그 때문에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간과하고 넘어가기 쉽다.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었다면혹은 영화를 봤다면 이 글을 통해 김영하 작가의 다른 작품을 살짝 들춰보며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스스로 짐작해보자. <살인자의 기억법>과 김영하 작가가 낯설다면그의 작품에 취해볼 기회가 될 것이다.

 

1.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살인자의 기억법이전에 가장 유명했던 김영하의 작품이자첫 장편소설이기도 하다제목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유명한 프랑수아즈 사강의 변론에서 따왔다고 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사강이 마약 혐의로 기소되었을 때그는 자신을 변론하며 이렇게 말했다제목과 일맥상통하게 소설에는 자신을 파괴하려는 사람들이 등장한다주인공은 자살 카운슬러다자살하고 싶은 사람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해 주는 사람하지만 결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는다. ‘하지 않아야 할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아요.’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그에게도 일종의 신념이 있는 모양이다직업정신이라고나 할까.

액자식 구성을 가진 소설이다주인공이 자신의 의뢰자들 이야기를 소설로 적으며 이야기가 전개된다특별한 주제도기승전결도 존재하지 않는다그저 유디트라고 불리는 의뢰자와 그녀 주변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적어 나간다.

내용은 상당히 충격적이고 지극히 비일상적이며 일탈적이다하지만 극단적인 일련의 사건이 일어나며 도출되는 혼란과 허무감은 역설적이게도 일상적이고 현실적이다특히나 길을 잃고 방황하는수차례의 실패를 맛본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90년대 중후반한국은 사회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혼란의 시기였다. IMF 경제 위기가 닥쳤으며 PC 통신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매체가 보급되기 시작했다일본 문화가 수입되기 시작했고 서태지를 중심으로 낯선 장르의 음악이 들어오기 시작했다위기그리고 새로운 물결이 한국에 몰아닥치고 있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그 시기의 혼란정체성의 상실허무의 감정을 적절하게 대변하고 있다.


2. 빛의 제국

<빛의 제국>은 김영하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자 만해 문학상 수상작이다하지만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검은 꽃>, <살인자의 기억법>의 인기에 가려있는 책이기도 하다.

<빛의 제국>은 남파 공작원 김기영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그는 1984년 운동권에 잠입할 목적으로 남한에 파견되었다허나 계획이 흐지부지되고 20여 년간 그는 평범한 한국인 김기영으로 살아가게 된다.

2005년 어느 날그는 24시간 안에 북한으로 귀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아내그리고 20년간 남한에 새긴 자신의 모든 흔적들을 뒤로하고 그는 사라져야할 처지에 놓인다. <빛의 제국>은 이념의 갈등그 속에서 이미 평범한 소시민이 되어버린 스파이 김기영의 하루를 쫓으며 이념 갈등이라는 거시 세계에서 발버둥치는 개인의 삶을 다룬다.

<빛의 제국>은 지극히 한국적인 작품이다. 21세기에 냉전식의 이념갈등그리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은 오직 한국뿐이다. 김영하 작가는 '20년 전 북한에서 파견된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독자와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평범한 한국의 남성으로 전락한 그를 보여주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빛의 제국>은 '이런 독특한 소재를 사용할 수 있는 작가가 김영하 말고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게끔 하는 작품이다.

 

3. [단편] 그림자를 판 사나이

<그림자를 판 사나이>는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에 실린 단편이다. 2012년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출간했을 때 작가 본인이 자선 대표작으로 내놓은 소설이기도 하다.

주인공 나는 독신 작가이다어느 날 아침 고등학교 친구였던 미경에게 만나자고 전화가 오지만 그는 소설 마감을 핑계로 만남을 미룬다그리고 곧 또 다른 고등학교 친구이자 신부인 바오로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온다하루에 두 번이나 옛 친구를 내칠 수 없었던 는 그와 만나 술을 마신다바오로는 자신의 신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이야기미경과 잤다는 이야기를 하고 떠난다.

는 소설의 발단과 말미에 새의 그림자를 상상한다그림자는 ’ 정신의 어떤 것을 상징한다주인공은 그 그림자를 피하려 한다그저 주변을 유유히 관조하는 소설가로 남고 싶어 한다하지만 흔들림은 그림자라는 모습으로 그 앞에 나타난다.

주인공은 그림자에 대한 모순된 욕망을 가지고 있다그림자를 기피하지만 동시에 친구들이 가진 멋진 그림자를 부러워한다약점을 보이기 두려워하지만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우리들처럼 말이다.

 

4. [단편] 옥수수와 나

<옥수수와 나>는 이상 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며신간 소설집 <오직 두 사람>에 실린 단편소설이다소설은 자신을 옥수수라고 믿는 사람에 대한 농담으로 시작된다. “선생님은 옥수수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거이제 그거 아시잖아요?” “글쎄저야 알지요하지만 닭들은 그걸 모르잖아요?”

주인공은 소설 작가다그리고 그에게 작품을 독촉하는 직원은아이러니하게도 이혼한 전 아내 수지다새로 온 출판사 사장은 주인공의 팬이라며 전폭적인 지지와 함께 소설을 써 줄 것을 부탁한다주인공은 친구인 철학교수에게 출판사 사장과 수지의 관계에 대한 의심을 털어놓는다.

<옥수수와 나>를 끝까지 읽으면소설 첫 장에 나오는 옥수수에 대한 농담이 섬뜩하게 느껴진다분명 나는 옥수수가 아닌데왜 닭은 나를 쫓아올까나는 옥수수인가 사람인가?

<옥수수와 나>는 장편 <살인자의 기억법>과 여러모로 닿아있다두 작품 모두 인간의 근원적인 믿음내가 라는 믿음을 전복시킨다. 이젠 무얼 신뢰해야 하는지 조차 알기 어렵다현실이라는 닭은 우리를 옥수수로 알고 계속 쪼아 먹으려고 한다왜곡된 현실과 타자 속에서 우리 자신을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아니그럴 수는 있을까?

 

허무그러나 삶.

제가 이십대 후반에 쓴 소설에 나타난 허무주의에 대해서 많은 분들이 젊어서 그럴 거야라고 생각했지만지금까지 계속 보신 분들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을 거예요앞으로도 저는 별로 변하지 않을 것 같아요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으니까요.” (출처: 도정일(2008), <글쓰기의 최소원칙>, 경희대학교출판국)

김영하 작가 자신의 말마따나그는 허무주의자다허무주의를 담은 문학은 자칫 진부해지거나 속 빈 강정이 되기에 십상이다하지만 김영하는 무언가 다르다.

그의 작품은 환상적이면서 현실적이다. 비현실적이면서도 굉장히 현대적이며 한국적이다. 마치 한국의 누군가는 김영하의 작품 주인공처럼 살아가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독자들은 그에게서 굉장히 현실적인 허무를 느낀다이른바 공감할 수 있는 허무주의인 것이다.

신작 소설집 <오직 두 사람>에서 김영하는 많이 변했다이제까지의 그가 허무혼란고통의 과정을 그렸다면 <오직 두 사람>에서의 김영하는 그 이후의 삶을 그린다날카로운 필치로 필사적인 우리의 삶을 구구절절이 묘사한다이전의 작품이 그가 생각하는 세계라면최근작들은 그 세계에서 살아가는 인간이다김영하 작가는 마치 우리에게 그럼에도 살아가야만 한다.’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삶이 팍팍할수록 결국 인문이 밥 먹여준다

문화산책/서평 2013.01.08 07:00

살기 어려울수록 사람은 본능에 따라 살게 된다. 당장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추구하고, 직접 도움이 되는 것을 유용하다고 여기며, 간접적 혹은 우회적으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것들에 회의하게 되는 것이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의 파산으로 유럽에도 닥친 금융위기 이후 비교적 "아낌없이" 투자되어왔던 오스트리아 국영방송의 음악부서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한 편곡자의 수입이 그 전 해 대비 무려 10분의 1로 떨어지는가 하면 방송 확정 상태에서 아예 제작 자체가 취소된 프로그램도 있었고, 지금까지 쌓아온 레퍼토리로 대부분의 방송을 대체해야 했다.

이러한 현상은 예술 분야뿐만 아니라 인문 분야에도 자주 나타난다. 시대가 어려울수록 철학이나 미학, 문학 등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이상하거나 우스워" 보이기도 한다. 당장 내일 먹을 것이 없고 집이 없는데도 인간의 존재를 고민한다든가, 가족을 부양하기도 벅찬데 예술에 대한 연구와 비판 그리고 미학적 고찰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차라리 그 시간에 어디가서 몸을 써서라도 돈을 벌어오지!" 라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극단적인 비유일 뿐이고 현실에서는 상당히 복합적인 형태로 나타나고 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대에는 그야말로 순수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하지만 이런 전반적인 인식을 강력하게 비판하며 "어려운 세대일수록 인문이 필요하다"고 성토하는 책이 있다. "살아가면서 인문이 왜 필요한데?" 혹은 "인문이 밥 먹여주냐?" 라고 누군가가 물어오면 분명 그 일차원적인 사고의 맹점을 지적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어떻게 시작할지 몰랐던 이에게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줄 책, 제목에서부터 저자의 "내공"이 느껴지는 박민영 씨의 "인문 내공"이다. 

 


<출처: 다음 책>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인문이다

"모두가 비슷하게 생각할 때, 아무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월터 리프먼의 짧은 한 문장은 강력한 메시지이다. 주체적인 자아이기를 포기한 현대인의 자화상을 꼬집은 그의 한 마디는 인간 고유의 능력인 "사유"의 위기를 말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동물과 인간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사유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간이 사유하기를 멈춘다면 그 때는 어떻게 될까? 사유로 정의되어왔던 인간이 사유를 귀찮아하거나 사유하는 능력을 상실한 시대, 바로 인문 고갈의 시대가 아닐까 한다.

전문지식을 배우며 기술을 익혀 경쟁력을 기르기도 바쁜 현대인에게 갑자기 인문 능력을 계발하라는 것은 "배부른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아직 배가 덜 고프고 절실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사치스러운 말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인문 내공"은 바로 이 부분에서 시작한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사회비평가인 얼 쇼리스로부터 시작된 노숙자 인문학 과정이 우리나라에서도 진행된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 규모와 횟수가 많이 아쉬운 실정이지만 꾸준히 뜻을 이어가려는 노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내고 싶은 일이다. 저자는 당장 경제적 지원이 급한 노숙자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비판에 경희대 철학과 우기동 교수를 인용한다.

"인문학은 삶의 조건 가운데 가장 본질적인, 인간의 품격과 관련된 것이에요. 한 사람이 가난하다고 해서 인문학을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를 '비인간'으로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p.18)

우기동 교수의 답변은 인문학 본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차별부터가 큰 문제임을 지적한다. 인문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인문으로써 얻어질 수 있는 삶의 가치를 외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노숙자처럼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인문 결핍 현상을 겪는 모두에게 닥친 위험이다. 스스로가 내면의 가치를 인정하고 그것을 개발해나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 혹은 타인의 필요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는 꼭두각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인문적 사유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생활의 압력, 자기 집단의 논리, 사회의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굴복하게 된다." (p.24-25)

우리 사회는 지식인을 갈망한다

"묻지마" 범죄는 물론 가족 혹은 친구 간의 살인, 강간 등 신문에 대서특필될 만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분노"에 가득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소한 시비가 살인으로 이루어지는가 하면, 가장 안전해야 할 가정 안에서도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에는 분명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한 사회학자는 이런 분석을 내놓았다.

"대한민국이 분노에 가득차 하나의 시한폭탄처럼 위험해진 것은, 공공연히 발생하는 부정하고 불공평한 사회적 이슈에 대한 결과다."

정치인, 기업인의 비리와 수많은 사기 사건. 연예인이 누리는 특혜나 불공평한 처사 등은 사람을 분노케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만들고, 이 부정적인 감정들은 결국 극적인 행동으로 표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불의가 처벌받지 않고 옳고 그름의 기준이 아닌 권력의 유무 기준으로 돌아가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그 소용돌이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 세대는 궁지에 몰릴 수밖에 없다. 체제에 순응하여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체념하는가, 극한 상황으로 몰고가 분노를 마음껏 발산하는가의 문제라는 것이다.

하다못해 페이스북 타임라인만 조금 훑어보아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현 정권을 비판하고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부조리에 분노하는지 알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치 사회운동가 혹은 젊은 혁명가 같은 발언을 쏟아내지만 정작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움직임은 거의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적인 방법을 찾지 못 하고 불특정다수에게 호소하는 외로운 메아리가 울릴 뿐이다.

저자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오직 "국민이 똑똑해지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것이 현대 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길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접수될 만한 사회적 변화가 있고, 엘리트들이 새로운 지적 대안들을 제출한다 하더라도, 대중이 그를 판단하고 지지해주지 않으면 건설적인 미래는 있을 수 없다. 그 대안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 그것은 대중의 인문적 사유 능력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판단이 역사의 길을 결정한다." (p.314)

누군가가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명쾌하다는 것을 아는 것은 그 문제와 해답을 모두 이해하는 사람들뿐이다. 즉, 지금의 상황이 한심하고 대책없다고 비판하고 싸울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인문적 사유 능력을 기르고 스스로가 자신을 더욱 개발하여 국민이 현명해져야 비로소 사회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제안은 다소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그가 제시하는 길이 조금 돌아가더라도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깊은 통찰력과 사유 능력을 가진 지식인을 갈망하고 있다.

"집단은 그냥 존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끊임없이 '집단의 논리'를 개발한다. 집단의 논리는 집단에게 이익이 되는 논리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집단 전체에게 골고루 이익을 주지 않는다. 집단 논리의 가장 큰 수혜자는 대개 지도층이다. 그들의 이익이 집단 전체의 이익으로 포장되는 경우가 많다. 나아가 집단은 논리는 보다 고차원적인 도덕적 규범으로 포장된다. 예를 들어, 국가의 이익은 애국의 이름으로, 종교 집단의 이익은 순교의 이름으로, 사회의 이익은 정의의 이름으로 포장된다." (p.104)

"의식적인 존재인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합리성을 부여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사회 환경에 적응하면 그 환경을 합리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어떤 사회나 집단에 ‘적응’한다는 것은, 그 질서, 논리, 체제, 문화 등을 내면화한다는 것을 말한다. 환경이 불합리하더라도 그것을 내면화하는 데 성공하면 비판적 의식이 줄어든다." (p.132)

진심으로 불의한 사회를 걱정하고 그것이 나아지길 바란다면,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단순한 현상이나 표면적 이슈들을 욕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문제를 이해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는 인문 내공을 기르는 것이다.

인문적 사고로 경쟁력을 길러라

한 권의 책을 읽었는데 마치 몇십 권의 책을 읽은 것 같은 감동과 깊이를 체험하는 책들이 있다. 이런 책을 만나는 것은 독자로서 큰 기쁨이자 도전이기도 하다. "인문 내공"은 제목 그대로 오랜 세월 수많은 경험과 독서, 그리고 사유를 통한 저자의 "내공"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총 세 부로 나뉘어져 평균 5~6쪽 정도 분량의 글들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쉽게 소개하고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한 인문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시대적 이슈부터 역사적 이슈까지, 독서의 방법에서부터 학문의 연구까지 넓은 분야를 섭렵하고 있음에도 글 하나 하나가 간결하고 불필요한 말 없이 핵심을 찌르고 있어 읽는 내내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수많은 테마를 통해 우리에게 여러 번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래도 스스로 사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하겠습니까?" 우리는 지구에 사는 60억 인구 가운데 한 사람에 지나지 않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또 사회를 바꾸어나갈 수 있는 유일한 구성원이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 무언가를 개선하고 바꾸길 원한다면 먼저 "내공"을 쌓아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전체적 틀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통찰할 수 있을 때 정치인은 함부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리를 저지르지 못 할 것이다. 기업이 자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국민을 우롱하거나 이용하지 못 할 것이다. 공허한 불평과 대상 없는 비판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 한다. 진정으로 사회를 바꾸고 싶다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나아지고자 하는 노력이 분명히 필요하다.

"의식의 양도는 정치적 권리의 양도보다 위험하다. 주체 의식의 위기에 처한 현대인들은 '세계 또는 인류가 왜 이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하는 적극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으며, 유능한 대중 조작 전문가가 조종하는 기술 체제 속에서 장기판의 졸처럼 움직이고 있다. 지배적인 규칙과 체제에 무조건 순응하는 '창조적 자의식의 상실'. 그것은 미래의 재앙을 무한 확대할 수 있는 위험한 조짐이다." (p.314) Ahn

 

 대학생기자 허건 / 고려대 행정학, 경영학

 

"사람을 좋아하고, 도전을 즐기는 감동적인 삶을 사는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