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보이체크에서 21세기 88만원 세대를 보다
이 연극은 폴란드 출신의 세계적인 거장, 타데우시 브라데츠키 연출의 <보이체크>란 작품으로 원작은 게오르그 뷔히너라는 독일 문학사 상 보기 드문 천재적 작가가 남긴 희곡이다. "어렵다" 혹은 "어려워 보인다"라는 반응을 일으키는 작품 소개다.
"보이체크는 이제 당나귀야!"
두 개의 철제기둥 주변을 쉴새없이 왔다갔다하는 보이체크는 단순한 블루컬러의 하층계급인 노동자 청년이 아니었다. 빚까지 얻어 대학을 졸업해도 사회적 약자인 비정규직과 실업자가 되는 현대의 청년의 모습과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보이체크는 2011년을 살아가는 이 시대의 젊은이들의 이야기인 셈이다. 권력과 착취, 비인간적이고 부당한 대우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은 분명한 주제 의식을 바탕으로 생기와 유머, 페이소스를 이끌어내며 관객과의 호흡에 성공했다.
88만원세대로 일컬어지는 대한민국 20대의 이야기는 더 이상 새롭지도 충격적이지도 않다. 대학교 캠퍼스에 낭만은 사라지고, 그 어느 때보다 학점 관리와 취업 준비에 열을 올리는 소위 한국 역사상 가장 "부지런한" 젊은이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들에게 한국은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정의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아니다. 보이체크에게 세상이 그렇지 않았던 것처럼. 오히려 매일매일 돈을 벌기 위해 발로 뛰는 보이체크에게 소장(권력층)은 '결혼 비용이 없어 결혼식을 올리지도 않았음에도 아이가 있는' 보이체크에게 '도덕적으로 살 것'을 강조한다. 그러자 보이체크는 말한다.
“도덕 좋지요. 그렇지만, 우리같이 천한 인간은 도덕을 가질 만한 형편이 못 됩니다. 우리 같은 놈에겐 본능밖에 없습니다. 저도 신사라면 모자도 있고, 시계도 있고, 예복도 있고 그리고 점잖게 말할 줄만 안다면, 저도 도덕적이고 싶습니다. 도덕이란 좋은 거지요. 대위님, 그러나 전 가난한 놈인걸요.”
가족과 사랑은 보이체크에게 절대선이고, 그를 인간으로 만드는 최소의 조건이다. 하지만 그것을 빼앗겼을 때 그는 모든 인간세계의 질서와 도덕을 파괴하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것이 현대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범죄자, 가장 하등한 인간, 보이체크인 것이다.
아내를 죽이기 전에 보이체크가 읊조린 이 대사는 세상에서 이방인으로 분류된 한 인간의 무력함을 적나라게 드러낸다.
고전연극이지만 결국 고전적이진 않다. 사회 구조의 부조리로 인해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일어나는 참사들. 바로 내 주변에서, 내 이웃에게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이 누가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매하게도 그것을 느끼지 못 하고 살아간다. 분명 연극 <보이체크>를 보면서 우리는 소장과 의사를 손가락질할 것이다. 하지만 극장 밖으로 나오면 결국, 우리는 이 사회의 소장과 의사와 같은 존재, 그리고 그들로 인해 핍박당하는 우리들에 대해 까맣게 잊고 만다.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왜 하찮은 그 이발병은 자신의 아내를 죽였는지" Ahn
'삐뚤어질 수 있으니 청춘이지'라고 항상 스스로 되새기곤 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어른'이란 인식이 사회에 맞춰가는 바른 상(像)이라면
저는 아직까지는 사회를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청춘'이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도 제 청춘을 버라이어티하게 디자인하는 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