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모가 말하는 서태지와 비틀즈, 그리고 20대

카테고리 없음 2012. 4. 24. 16:13

벚꽃이 만개했다. 그러나 요즘 대학생들에게 각종 벚꽃축제는 곧 중간고사를 알리는 종소리와 다름없다따뜻하게 번지는 햇살 아래, 흩날리는 분홍빛 꽃잎이 설렘이 아닌 걱정으로 다가온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봄은 이제 막 피어나려는 우리네의 청춘이다여기, 우리가 스스로에게 주어진 청춘을 만끽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다. 포근한 봄볕에도 살갗이 따가운 우리의 청춘들에게그가 전해준 편지 꾸러미를 펼쳐보려 한다.

 

 

 

명동예술극장에서 주관하는 명동연극교실은 매주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을 무대로 초청하여 우리의 삶에 대해 함께 소통하는 시간을 갖는다. 지난 16,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연극무대에 오르자마자 호탕하게 웃었다. 강연 내내 그는 웃었고 웃겼다. 그러나 그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세지에는 결코 웃을 수 없었다. 

 

영화 ‘Angst Essen Seele Auf’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임진모는 20대의 정서를 불안감이라 말한다. 당신의 20대 시절, 그는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았다. 대학 진학을 위한 사전 조사 설문지엔 장래희망을 음악평론가라 적었다. 담당 선생님께서는 그를 교무실로 불러 음악은 가난의 예약이라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는 오로지 음악만 들었다. 집안이 기울었을 때도, 학점이 바닥을 쳤을 때도 그는 음악만 듣고 또 들었다. 집안이 어려웠던 시기의 어느 하루였다. 그는 온종일 방안에 들어앉아 음악만 듣다가 거실로 나왔다. 마침 어머니께서 일일연속극을 보고 계셨다. 문득 그가 말했다엄마, 나 그냥 음악 듣다가 죽을까 봐.어머니께서 연속극을 보다말고 고개를 돌리셨다. 그리곤 버럭, 소리치셨다. 죽긴 왜 죽어! 음악이 좋아? 그럼 들어! 하고 싶음 해! 엄마가 있잖아! 엄마가 다 해줄게! 그래서 그는 계속 음악을 들었다.

 

그러나 지금의 20대의 얼굴엔 불안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했다. 하고 싶은 것, 뜻과 자아가 있어도 현실의 벽은 20대에게 불안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어떤 사람은 말했다. 요즘 20대들에겐 꿈과 로망이 없다고.

 

임진모는 말했다. 그건 우리 기성 세대의 잘못이라고. 우리가 만든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몰아갔다고. 한 명문대학 강의 중, 꿈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삼성전자라고 답하는 학생을 보며 그는 얼이 빠졌다. 가고 싶은 기업을 묻는 것이 아니었다. 마음껏 꿈꾸지 못하는 청춘을 보며 그는 미안함을 느꼈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을 ‘정’의 나라라 칭했다. 다른 나라의 눈으로 본 한국은, 역시 ‘정’을 핵심으로 하는 사회로 비춰지는 모양이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늘 둘로 나누어 대립, 갈등, 반목, 충돌한다. 항상 반으로 갈라진다. 한반도라는 조그마한 땅덩어리는 남과 북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더 작게 한 번 더 나눈다. 수도 서울을 오른쪽과 왼쪽으로, 또 위와 아래로 쪼개고 쪼갠다. 이것은 우리사회의 빈부격차를 분명하게 나누어 보여주는 지표라 임진모는 말한다.

 

임진모는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수많은 갈등 중 가장 큰 갈등을 세대격차로 보고 있다. 임진모 세대에 우리나라는 세대간에 가장 큰 학업적 차이를 겪었다. 국민학교조차 나오지 못한 부모가 태반이었지만 자식의 대학진학률은 30%를 웃돌았다. 곧 이들이 부모가 되었다. 과거, 부모들 역시 당신의 자식을 사랑하고 잘되길 바랬지만, 배움의 끈이 약해 조직적으로 아이들을 지배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이 시대의 부모는 배울 만큼 배웠다. 아이들을 조직적으로 지배하여 손에 쥐었다. 아이들은 부모가 쳐 놓은 틀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 임진모는 아이들의 것은 아이들의 것으로 남겨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고통기를 겪지 않고 온전하게 자란 아이들에게선 새로운 것, 도발적인 것, 파격적인 것이 나올 수 없다. 이것은 한국사회의 미래로 직결된다. 정체되고 도태되기 쉬워진다취직해서 먹고만 살면 된다는, 안정만을 추구하는 사회에 도전정신이란 없다. 청년의 도발정신을 불안함으로, 안정을 추구하라는 가르침으로 가려선 안 된다. 10대와 20대의 핵심가치는 뜨거운 것, 동적인 것, 흥분되는 것이다. 이제 임진모는 이것을 정확히 짚어낸 이들을 예시로 든다.

 

20대의 도발을 정확히 짚어낸 서태지

 

서태지의 출현은 90년대 한국 대중문화 사회에 충격을 가져왔다. 서태지 이전에도 랩(Rap)은 존재했다. 그러나 이는 영어를 고스란히 가져온 형태의 랩이었다. 랩은 곧 영어라는 공식이었다. 그 누구도 랩을 한국어로 부른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서태지는 발라드가 주류였던 한국 사회를 도발했다. 뜨거운 것, 새로운 것을 원하는 10대와 20대의 키워드를 정확히 짚어낸 것이다. 그의 음악은 파격적이었고 갇혀있던 청년들의 에너지는 뜨겁게 달아올라 뿜어져 나왔다. 혹자는 말했다. '난 서태지 나오고서부터 음악 안 들었어.'

 

임진모는 이것을 세대 간 단절의 시작으로 본다. 서태지는 청년들의 도발, 도전, 창의, 파격을 대변했다. 그렇기에 서태지의 음악을 거부한다면, 이는 한국 사회의 젊은이들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과 같다. 때문에 문화에서의 세대간의 단절을 단순히 문화적 범주에서의 문제로 국한할 수 없다고 임진모는 말한다. 청년의 돌파력을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사회의 돌파력 역시 없다는 것이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자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비틀즈

 

영국의 극빈층이었던 비틀즈의 성공은 꿈과 고통과 노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비틀즈가 아니었다면 알려지기 어려웠을 작은 항구 리버풀,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한 청년들이 모였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꿈꿨다. 배고프고 고된 하루는 허름한 술집에서 노래하는 것으로 시작해 노래하는 것으로 끝났다. 하루 10시간이 넘는 연주와 무한 반복적인 연습에도 그들에게 보장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꿈꾸는 것을 귀중히 여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꿈을 믿었다. 결과적으로 비틀즈는 세계 최고의 밴드가 되었다. 꿈을 이룬 후, 비틀즈는 새로운 꿈을 꾸었다. 그리고 ‘love and peace’ 타이틀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들은 세계 평화를 위해 노래했다. 비틀즈를 단순히 성공한 밴드로만 여길 수 없다. 그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꿈을 노래한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비틀즈의 수많은 노래가 지금까지도 명곡으로 추앙받으며 불려지는 것이다. 꿈을 꾸고, 꿈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꿈을 꾸지 않는 사회에 희망으로 물든 내일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이렇게 음악평론가 임진모씨의 강연이 끝났다. 한국 청년문화의 어제와 오늘이라는, 처음엔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강연 주제가 강의 끝 무렵엔 가슴 한 구석으로 깊이 파고 들어왔다. 임진모씨는 지식을 전달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우리 시대의 청년에게 함께 이야기를 나누자며 손을 뻗어왔다. 청중은 그가 내민 손을 잡고 90분간 함께 발을 맞춰 걸었다. 한 청중이 그에게 물었다. 보상받지 못하는 배고픈 꿈을 꾸는 것이 행복할까요? 그녀에게 답을 내주는 임진모씨를 보며, 문득 철이 든다는 것은 더 이상 꿈꾸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닐까, 하는 철 없는 생각을 했다Ahn

 

대학생기자 송주연 /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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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통통이21 2012.04.26 15:38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꿈이 없어 불안한 청춘....비단 오늘날 청춘들만의 문제는 아닌 거 같아요~~
    보안세상님 오늘도 너무 좋은 포스트,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