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틀에 박혀 뻔히 눈에 보이는 스토리는 싫어한다. 대중들은 익숙한 것에 지루해하고 새로운 것에 재미를 느낀다. 90년대 이후 문화를 소비하는 대중들은 말처럼 ‘대중적’인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것에 눈을 돌리고 있다. 헐리웃 영화처럼 화려한 액션과 세밀한 CG효과를 자랑하는 영화들이 점령하던 극장가에는, 소소하지만 예술성이 있거나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거나 분위기가 잔잔한 영화들이 등장하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음원 사이트의 인기 차트에서는 거대 기획사에서 유명 프로듀서가 제작한 대중가요 뿐 아니라 거리에서 연주하고 노래하던 음악들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이 바로 인디 영화의 등장이며, 인디 음악의 열풍이다.
▲ 인디밴드 '브로콜리 너마저' 공연
인디 게임은 이러한 인디 트렌드를 타고 게이머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본래 인디(indie)란 인디펜던트 (Independent)의 약자로 '독립'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디 영화라고 하면 거대한 영화제작사의 자본 없이 감독이 독립적으로 제작하는 영화를 일컬으며, 인디 음악이라고 하면 기획사와 음반사의 막대한 투자로부터 독립한 음악을 말한다. 인디 게임에 대한 통상적인 정의는 아직 내려진 바가 없지만, 보통 개인이나 소규모의 집단, 혹은 독립 중소기업에서 개발한 게임을 인디 게임이라고 한다.
▲ 인디게임 '브레이드(Braid)'
인디 게임은 대체로 주요 게임사에서 만든 것보다 작은 편이고 유통 경로를 찾기 힘들기 때문에 디지털 배급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퍼블리싱 없이도 인디 게임이 점차 게이머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퍼블리셔의 승인 없이도 주제나 내용을 마음대로 구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기존의 현란한 그래픽과 복잡한 기술에 지루함을 느끼고 신선함을 찾는 대중들의 요구에 맞춰 개발자의 ‘혁신성, 창조성’을 담을 수 있다는 점이 인디 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는 포인트이자 인디 게임의 매력이다.
인디게임을 크게 둘로 나누어 보자면, 완벽한 스토리와 아날로그적 감수성을 담은 게임과 신선한 플레이로 시선을 사로잡는 게임으로 나눌 수 있겠다. 분류에 따라 게이머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는 인디게임 몇 가지를 살펴보겠다.
1) 투더 문(To the moon)
투더 문(To the moon)은 출시되자마자 게임스팟 2011년 최고의 스토리상, 2011인디게임페스티벌 최종결선 진출, 2011 IndieDB 최고의 싱글플레이어 인디게임상, RPGFan의 2011년 최고의 인디 RPG상을 휩쓸고, Wired의 2011년 최고의 20개 게임 중 하나로 뽑히는 등 게임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게임이다. ‘RPG만들기’ 툴로 만들어져 그래픽이 여타의 게임들보다 떨어짐에도 게이머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는 이유는, 탄탄한 스토리와 아름다운 OST가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만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몽환적인 배경과 분위기와 함께 잔잔한 오프닝 음악이 흐르며 게임은 시작된다. 죽음에 다다른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억을 심어줘 그 기억 속에서 못다 한 소원을 이루게 해준다는 소재는 참신하면서도 ‘꿈과 소원’이라는 감성적인 단어를 떠오르게 한다. 등장인물인 조니의 ‘달에 가고 싶다’는 소원, 그 소원을 이뤄주기 위한 여행에 플레이어는 어느새 같이 빠져들며 가슴 찡한 여운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어느 한 복선도 놓치지 않는 세밀함과 이러한 스토리의 감성이, 화려하지 않은 ‘인디게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을 열광시킨 요소가 아니었나 싶다.
2) 림보(LIMBO)
림보(LIMBO) 역시 2010년 비디오 게임 어워드(Video Game Award)를 비롯해 게임디벨로퍼컨퍼런스 어워드(GDC award)에서 총 7개 분야에 이름을 올리며 수많은 전문가들에게 ‘최고의 인디게임’이라 불리고 있다. 앞서 소개한 투더 문과는 사뭇 다르게 어두컴컴한 분위기이지만, 스토리나 게임성에 있어서는 그에 뒤지지 않는다.
림보는 '죽은 사람들 중 그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 또는 연옥 그 어디에도 가지 못한 사람들이 머무르는 장소.'를 뜻한다고 한다. 우울한 제목과 어울리게 이 게임의 모든 색은 검은색과 흰색, 회색으로 이루어져 있다. 분위기는 음침하고 무겁게 흘러가고, 조용한 가운데 뚜벅뚜벅 거리는 발소리가 플레이어의 심장을 고동치게 만든다. 거창한 설명도 대사도 없다. 그저 ‘누이의 자살, 그리고 그것을 인정할 수 없는 한 소년’이 누이를 찾으러 가는 과정만이 있을 뿐이다. 림보는 좀비 게임처럼 무작정 잔인하지만은 않지만, 오소소 소름이 돋게 한다. 적당히 어려운 퍼즐을 풀고 거미에 쫓기며 이 어린 소년이 겪게 되는 이 게임의 세계 안에는 깊이 숨겨져 있는 뜻이 있다고 하니, 게임을 하면서 하나하나씩 알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1) 마인크래프트(Minecraft)
마인크래프트는 사용자들이 만든 다양한 맵, 그리고 모바일 버전까지 나올 정도로 남녀노소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이다. 맨 몸으로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서바이벌 게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사는 모습처럼 ‘살아남는’ 모습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그만큼 높은 자유도를 자랑하고 있어 실로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운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지구만한 면적을 가진 맵 안에서 건축을 할 수도 있고, 모험을 할 수도 있고, 사냥을 할 수도 있다.
샌드박스에 RPG요소를 결합한 마인크래프트 역시 그래픽은 평범하다 못해 단순하다. 그러나 심즈(Sims)처럼 실제와 같은 그래픽으로 컴퓨터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세계를 마음대로 창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심지어 외국의 한 학교에서는 수업 교재로 마인크래프트를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이들이 즐기고 있는 이 게임 역시, 독립적인 개발자로부터 창조된 인디게임이다.
2) 더 바인딩 오브 아이작(The binding of isaac)
더 바인딩 오브 아이작(The binding of isaac)에 나오는 캐릭터들이 아기자기하고 귀엽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하면 안 된다. 이삭의 구속, 아이작의 구속이라고도 불리는 이 게임은 고어하고 그로테스크하다. 징그러운 몬스터들과 그들을 잔인하게 죽이는 아이작, 그리고 자신을 죽이려는 엄마를 거꾸로 죽이러 간다는 스토리 설정은 보통의 게임 스토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충격적인 설정이다.
게임은 총 12개의 엔딩으로 이뤄져 있고, 엔딩을 차근차근 깨나가는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장난감을 좋아하는 어린아이인 아이작은 어머니와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작이 사탄이라는 신의 계시(혹은 환청)를 들은 아이작의 어머니가 무작정 아이작의 장난감을 빼앗고 가두고 심지어 아이작을 죽이려고까지 한다. 방에 갇혀 있던 아이작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괴물들이 득실대는 지하통로로 도망간다. 그리고 괴물들을 물리치며 결국은 자신을 죽이려던 엄마를 죽이는 것이다. 보통은 쉽게 도전하지 못할 소재에 게임성을 덧붙여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점이 바로 이와 같은 인디게임의 특징이자 매력이기도 하다.
소개한 게임 외에도 동굴 이야기(Cave story), 개리모드(Garry's mode), 테라리아(Terraria), 베스티언(Bastion), 브레이드(Braid) 등 많은 인디게임들이 독창적이고 감성적인 매력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레벨만 올리는 온라인 RPG 게임, 무작정 총만 겨누는 FPS 게임에 싫증을 느끼고 있다면, 인디게임의 신선한 플레이를 한번 경험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학생기자 김가윤 /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정의로우면서도 가슴에는 늘 인간적인 사랑을 품은 기자가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