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일과 3일에 신도림 디큐브 아트센터에서 ‘2013 서울디지털포럼’이 진행되었다. 세계 연사들이 참가한 이 곳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은 인물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이었다. 5월 3일 기조연설 때 그가 전한 연설은 우리가 평생 매달려왔던 ‘성공’과 ‘행복’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현대 사회는 우리를 점점 미치게 만들고 있다. 이 사회는 ‘성공’의 잘못된 정의를 강요하며 나날이 우리 삶을 옭아맨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수많은 조건에서 비롯되는 성공, 돈, 관계에 대한 수많은 집착이 우릴 벼랑으로 몰아세운다.
알랭 드 보통은 행복과 성공의 그림은 사랑과 직업이란 두 분야를 기준으로 다르게 그려질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성공’은 정의 자체가 잘못 설정되었기 때문에 이 두 분야에서 또한 심각한 문제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현재 대다수 사람이 결혼을 해 배우자를 맞이하고, 직장에 취직해 생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진짜 배우자를 사랑하며 일 자체에 열정을 갖고 일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사랑과 열정이라는 가치와 의미를 망각해버린 채 그저 타인보다 더 높은 사회적 조건에 속하기 위해 일상에 매달리는 우리.
이러한 복잡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나름의 인생관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일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상업 분야에선 올바른 인생관을 전달해주고 경험하게 해줄 만한 방식을 구축하지 못한 실정이다. 삼성전자가 아름다운 핸드폰을 만드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배우자와의 관계 개선 문제를 해결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마트폰은 멀리 떨어진 할머니와의 통화는 가능하게 해주지만, 할머니와 진정 어린 교감을 하는, 관계의 내적인 부분에선 한계가 있다.
알랭 드 보통은 세계와 소통하는 작가이자 현대 사회를 바라보는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하면 인생관이나 행복과 관련된 상위적 차원의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지 고민했다. 그는 이의 해답을 이 사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기술'분야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기술자가 단지 기술적인 아름다움만 개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기본적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정신적, 내면적 과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다음에 제시되는 강연 내용에 분명하게 드러난다.
원래 우리가 겪는 일상의 정신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던 것은 <교육>이었다. 교육은 19세기 유럽, 한국 등 세계 곳곳에선 주로 종교계에서 맡았다. 종교 덕분에 사람은 기본적인 읽고 쓰는 활동 외에도 어떻게 더 나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을 진정으로 배려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더 이상 종교를 믿지 않게 되었으며, 멋진 낭만주의적 사랑에 대한 망상과 직장을 통해 버는 수익에만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우울증과 자살이 나날이 늘어만 가는 현재 사회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의 징조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됐던 것이다.
최초의 산업국가로 영국이 도약하던 시기인 1850년대, 역사상 최초로 교회에 가는 사람보다 안 가는 사람 수가 더 많아졌다. 세계 곳곳의 지식인이 모여 삶의 의미와 도덕성, 목적의식을 전달하는 희망이었던 종교가 버려진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예술, 시, 철학, 문학과 같은 ‘문화’를 꼽았지만, 이것이 모든 내적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않았다.
우리가 어느 날 갑자기 위기에 맞닥뜨렸다고 가정해 보자. 스스로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영혼이 지독히 슬픈 상태가 왔을 때, 이런 문제를 어디 가서 해결할 수 있을까. 문화의 대표적인 공간인 박물관에 가면 해결할 수 있나? 그 곳이 진정 삶의 의미를 줄 수 있는 곳일까? 대학에 가서 이런 문제를 의논하면 해결할 수 있나?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질 때 돌아오는 말은 아마 ‘시험엔 이런 게 안 나와’ 라는 대답일 것이다.
사실 많은 지혜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한다. 하지만 앞으로 1000년 간 우리를 지탱해줄 지혜가 있음에도 우린 그 지혜를 잘 찾지 못 하고 있다. 교육을 대표하는 기관이라 할 대학은 사회와 단절되어있기 때문에 지혜가 모아지지 않는다. 철학자에겐 지혜가 있으나, 그들은 몇몇 엘리트와만 대화를 나눌 뿐 이런 컨퍼런스나 TV 프로그램과 같은 바깥 세상에 나오지 않는다. 삶을 올바르게 이끌어줄 지혜들이 캄캄한 어둠 속에 갇혀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젠, 이 지혜들을 동굴에서 꺼내 세상에 전파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다. 우선, 종교계에서 어떻게 교육을 제공했는지 고민해 보자.
종교가 교육을 위해 활용한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방법은 ‘반복’ 기법이었다. 현재 대학의 교수님은 학생들의 머릿속에 마치 물을 붓듯 새로운 지식들을 쏟아낸다. 전달되는 그 수많은 내용들이 앞으로 40년간 기억될 것이라 착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종교계는 이와 달리, 같은 교훈을 10번 15번 매일 매일 똑같이 얘기하지 않으면 우리가 잊어버릴 것이라 생각하여 아침 점심 저녁 때마다 같은 기도문을 읽게 하였다.
종교가 교육을 위해 이용한 또 다른 방법은 바로 ‘캘린더(Calendar)’였다. 어떤 종교든 기본적인 절기(캘린더)를 갖추고 있다. 특정 절기가 되면 그 때와 관련된 현상을 곰곰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에는 랍비와 함께 들에 나가 처음으로 피는 꽃을 보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는 절기가 있다. 그런 절기가 있어야 봄을 누리는 것은 아니지만, 스마트폰을 이용해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며 시간을 보낼지언정 실상 밖에 나가 봄을 누리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는 불교 또한 마찬가지다. 선불교에는 가을에 달을 보는 절기가 있다. 이때가 되면 친구들과 함께 밖에 나가 달을 바라보며 자신의 주변 관계에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다. 아무 때나 달을 볼 수 있지만 쉽게 잊어버리는 우리에게 삶을 되돌아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종교는 이런 기회를 특정 절기로 만들어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또한 훌륭한 선교자의 설교와 아름다운 건축물로 감동을 전하는 교육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켰다.
우리 삶의 심리적, 내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또 한 가지 중요한 사항은 바로 <연습>이다. 우리는 내적 문제에 대한 대담을 너무 낯설게 느낀다. 누군가 내게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라는 질문을 건넸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이번 주에 저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라는 대답을 할 경우 상대방은 나를 이상하게 바라볼 것이다. 하지만 ‘저는 좀 더 건강해 지기 위해 매일 아침 조깅을 하고 운동을 합니다.’라고 대답할 땐 상대방은 고개를 끄덕거릴 것이다. 스스로를 개선시킨다는 개념을 낯설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종교계에서 ‘자기 계발’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었으며 언제나 선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을 강조했다. 우리 인간은 계속 자극을 받고 삶의 지시를 받아야만 개선이 가능하단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선 ‘선(善)’에 대한 암시(reminder)가 일상에 전혀 없다.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시켜줄 만한 공공체제가 존재하지 않는다. 영국의 인생학교는 여러 가지 도덕적 가치(인간성, 회복력, 인내력, 희망, 희생, 용서와 같은 가치)를 중심으로 광고회사가 상품 광고를 하듯 내적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캠페인을 한다. 이에 뒤따라 누군가 그 가치를 상기시켜주길 바란다는 수많은 사람의 반응이 SNS를 타고 뜨겁게 퍼져가고 있다.
알랭 드 보통은 강연이 끝날 무렵, 관객에게 이러한 질문을 건넸다.
'한 80세 할머니가 있다고 가정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 할머니는 아름답지도 않으며 훌륭한 직업도 많은 재산도 갖추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말 사랑이 가득 차 있는 화목한 가정을 평생 꾸려 오신 분이었죠. 현대사회의 성공 필요조건을 갖추지 못한 그녀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일까요? 오로지 돈과 사회적 조건에 걸 맞는 직업만이 성공의 조건이라니, 그 얼마나 메마른 세상인가요.'
일생의 '성공'은 누구든 누릴 수 있는 삶의 가치여야 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십 억 개의 삶들 각각에 맞춰진 수많은 형태의 성공이 존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일상에서 삶의 내적 가치를 상기시켜줄 만한 Reminder가 필요하다. 과거에는 '종교'가 도덕적 가치를 상기시켰으나, 이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철학자들은 이 역할을 ‘문화’가 대신 수행할 수 있을 거라 보았으나, 문화가 주말에 누리는 사치 정도로 여겨지는 현재, 이 또한 분명한 한계가 있다.
알랭드 보통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이제는 <기술>이 나설 때라 말한다.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는 똑똑한 기술자가 일상의 모든 공간에서 의미 있는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삶의 지혜를 포함한 기술이 개발되어 기술과 지혜가 합쳐진 세계가 찾아왔을 때, 비로소 우리가 현재 당면한 삶의 과제들을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Ahn
대학생기자 윤덕인/ 경희대 영미어학부
항상 배우는 자세를 잊지 말고 자신을 아낄 것
온몸을 던져 생각하고, 번민하고, 숙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