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그 당위성에 물음표를 던지는 청년들.
불교 초기 경전인 <숫타니파타>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절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만났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리니 기쁜 마음으로 그와 함께 가라.
그러나 그와 같은 동반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마치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땅한 동반자를 만나지 못한 걸까요, 그런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일까요. 당당하게 홀로 나아가려는 청년들이 많아지고, 비혼에 대한 인식은 점점 보편화 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2016년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2008년 23.6%에서 12.5%로 8년 사이 절반 가까이 감소하였고, ‘해도 좋고 안 해도 좋다’는 응답자는 27.7%에서 42.9%로 증가했습니다.
비혼을 선택한 청년들의 목소리에서 변화된, 또 앞으로 변화될 세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안랩 기자단은 비혼주의 청년의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출처 : 무료 사진 저장소 pixabay]
Interviewee
※ 인터뷰 대상자는 설문지에 비혼에 대한 강한 의지를 표명한 집단군에서. 비혼에 대한 가치관이 오랫동안 자리잡고, 그것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고 체크한 설문자 중 인터뷰에 응할 의사가 있는 세 분으로 뽑았습니다.
김명훈 (24, 남, 대학생, 이하 ‘김’)
박하은 (27, 여, 직장인, 이하 '박')
Q1. 비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
[박] : 결혼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게 가장 적절한 표현일 것 같아요. 저는 현재 직장인인데, 원하는 회사에 어찌 저찌 오긴 했지만, 이 회사에 오기까지 서류탈락, 최종탈락 다 합치면 수십번은 될거에요 (웃음). 힘들게 잡은 자리인 만큼 이 자리를 지키고 싶은 생각이 가장 큽니다. 여담이지만 취준생때는 '힘들게 자리 잡으면 이제 한 숨 돌릴 수 있겠네' 라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는데, 회사에 오고 나니 여기도 나름대로 너무 정신없고 바쁘네요. 결혼은커녕 연애 생각할 틈도 없어요.
[이] : 나에게 집중하고 싶다는게 가장 큰 이유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대학생 4년, 저를 위해 투자한 시간들이 많은데, 오롯이 나에게 집중해 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스스로 시험해 보고도 싶고, 또 내가 원하는 분야에 도전했는데 만에 하나 실패했을 경우 그 책임을 오로지 내 삶 안에서만 국한시키는게 좋지 않을까 해서 비혼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김] : 저는 비교적 평범한 이유인데요, 전 단순히 누구랑 같이 있는 것 보다 혼자 있을 때 더 편하고 마음이 안정됩니다. 누굴 챙겨주기 귀찮아 하는 성격이기도 하고요. 또 제가 사는 공간은 '내 안식처, 누구도 침범하지 못하는 나만의 영역'이란 확고한 생각이 있는데요,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그 공간을 나눈다면 아무래도 눈치도 보이고 휴식을 취해도 온전히 나를 위한 휴식이 안될 것 같더라고요.
Q2. 결혼을 하지 않음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이]: 나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이 훨씬 늘어난다는 게 장점이겠죠? 집에 들어와서 청소를 하든 안하든, 아이돌 덕질을 하든, 책을 읽든, 직장과 병행하여 야간 대학원을 가든, 아침도 ‘내 시간’, 저녁도 ‘내 시간’이 될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요새는 옛날처럼 여자에게 가사노동을 모두 떠맡기는 악습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결혼을 하게 된다면 ‘역할분담’을 할 수 밖에 없잖아요. 그것조차도 저에겐 의무감으로 다가오고, 그런 의무감을 느끼고 싶진 않아요.
[김]: 앞서 언급했듯 나의 휴식시간과 공간을 침해받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께서는 맞벌이를 하셨는데, 제가 어렸을 때는 특히, 그리고 어머니께서 특히, 퇴근 후에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봐 왔어요. 직장에서도 충분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을 텐데 집에서도 피로에 시달리시는 걸 보면 속상한 마음과 동시에 저는 저렇게 살고싶지 않다는 마음이 동시에 들기도 했습니다. 또 취미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것도 정말 큰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박]: 내가 번만큼 내가(나만) 쓰니까, 상대적으로 주체적이고 여유있는 경제생활이 가능하다는 것도 큰 장점인 것 같구요, 직장을 유지하며 롱런할 여지가 주어진다는 것도 큰 장점인 것 같아요. 아무리 요즘은 많이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주변에 같이 일하는 기혼 동료나 상사들을 보면 많이들 힘들어하고 직장 유지에 위기가 찾아오더라고요.
Q3. ‘나이가 적당히 들면 결혼해야지’라는 눈치가 보이지는 않나?
[이] : 저희 집은 부모님부터가 ‘결혼 하지 싫으면 하지 마라. 엄마 아빠랑 평생 같이 살자’는 주의라서 딱히 그런 걱정은 없는 것 같아요.
[김] : 나이가 들면 그런 느낌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은 들어요. 그런데 지금 비혼도 하나의 트렌드로 인정받기 시작한걸 보면, 제가 더 어른이 되었을 때엔 지금보다 더 자유로워져서, 당당하게 비혼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박] : 저의 아버지쪽 어른들이 조금 전통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셔서 ‘나중에 내가 싫다는데 억지로 결혼하라고 강요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요, 제가 앞서 언급했듯 힘들게 회사에 들어오고, 이 삶에 좀 더 집중하고 싶은 모습을 많이 보여 주니까, 부모님들도 ‘건강은 챙겨라’ 라는 말 외에는 딱히 강요하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제 생각엔 아무리 확고한 가치관을 가진 부모님이 있을지라도, 자식이 자신의 삶에 주체적이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자식의 의지를 굳이 꺾으려는 부모는 없을 거 같아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잖아요. 물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겠지만.
Q4. 비혼에 대한 이점만큼 부각되는 단점은 ‘외로움’인 것 같다. '외로움'에 대해서?
[이] : 저도 그 생각을 좀 많이 해 보았어요. 계속해서 ‘나만 중요해, 내 성공만을 바라보겠어!’ 하고 살다가 나중에 꼬부랑 할머니 되어서 아무도 내 곁에 없어지면 어떡하나.. 하고요. 근데 제가 내린 결론은, 외로움은 1차원적으로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드는 감정’은 아니라는 거에요. 주변에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외로움을 느낄 사람은 느끼고, 수십년을 같이 산 가족이 있음에도 외로워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거 아니겠어요? 결국 외로움은 주변에 사람들이 없어서 생기는 감정이라기 보단, 주변에 사람들이 ‘어설프게 존재해서’ 생기는 감정인 것 같아요. 결혼은 안해도, 다가오는 인연들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들과 얕은 연을 맺기보다는 깊은 진심을 나누면 나이가 들어도 외로움을 느낄 것 같진 않아요.
[박] : 앞서 한 이야기랑 일맥상통하는 얘기 같기는 하지만, 하는 일에 정신이 없다보면 그런 감정을 느낄 새도 없지 않을까요..? 이게 꼭 바람직한 삶인지는 의문이 들지만, (웃음) 적어도 지금까지 저는 이렇게 살아왔고 큰 불만은 없었어요. 앞으로도 이런 삶을 살 것 같기도 하고요.
[김] : 사람이니까 당연히 누구나 외로움을 느낄 순 있지만 그 외로움을 꼭 ‘사람을 찾아서’, 또 ‘사람한테’ 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종교가 있는데, 종교에서 외로움을 풀 수도 있는 것이고, 반려동물이 있다면 나를 반겨주는 귀여운 반려동물을 보며 풀 수도 있는 거고.. 그래서 ‘나중에 외로울 까봐 걱정되서 하기 싫은 결혼을 하겠다’는 생각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생각 같아요.
Q5. 나에 대한, 남에 대한 책임에 억눌려 사는 청년들에게 한마디?
[박] : 음, 뉴스 책 어딜 봐도 한 눈에 볼 수 있는게 ‘요즘 청년들이 살기가 많이 퍽퍽하다’는 것일텐데요,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놓쳐선 안되는 자신만의 행복 하나쯤은 갖고 있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소확행이라는 말, 요새 많이들 쓰잖아요. (소확행 =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 또는 그러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의 경향) 인생의 진도나 커리큘럼을 따라잡는데 급급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소확행을 찾아 그걸 지켜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결혼이 무조건 행복에 직결될거라 생각하고 결혼을 한다거나, 이 나이쯤 결혼하는게 내 ’인생의 진도‘에 맞으니까 결혼한다면 행복에 직결되지 않을 수도 있을 거에요.
[김] : 모든 선택은 본인의 행복을 기준으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난 죽어 눈감는 그 순간까지도 나를 위한 삶을 살겠다’는 생각이 이기적인 생각은 아니거든요. 법이나 도덕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한, 자기 행복한 걸 자기가 선택하는게 큰 잘못은 아니에요. 나에 대한 책임은 이왕 태어난거, 제대로 잘 살아보기 위해 져야 하는 거겠지만, ‘남에 대한 책임’은 내가 행복한 선에서만 지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필요 이상의 책임감을 가져서 자신의 행복을 놓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 인터뷰 주제가 비혼이지만 역설적으로 저는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를 많이 다졌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요새 TV나 뉴스를 보면 청년 실업률도 한없이 오르고, 취직이 되었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는데, 이런 고단한 청년들의 삶이 비혼주의 인식이 확산되는 것과 무관하진 않다고 생각해요. 결혼을 하고 안하고는 본인 자유지만, 고단한 삶의 고통은 결국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경감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하는게 다 정답이고 맞는 말은 아닐 수 있지만, 제가 앞서 외로움에 대해 말씀드렸던 것처럼, ‘어설프고 얕은 관계’를 최대한 피하고 다가오는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면 결혼의 여부를 떠나 모두가 힘든 세상을 행복하게 견딜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문화산책 > 현장속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내 최대 규모의 개인정보행사 를 다녀오다! (0) | 2018.06.06 |
---|---|
젊은 소프트웨어 인재가 미래다! 2018 SW마에스트로 100+ 컨퍼런스 (0) | 2018.05.31 |
경복궁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 경복궁 야간 개장 (0) | 2018.05.31 |
자동화, 무인화의 시대? 편의점 무인점포에 가보다! (1) | 2017.11.28 |
가을바람타고 다녀온 '송도세계문화관광축제' (0) | 2017.09.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