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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세미나

성년의 날에 전통 성년례 경험해보니


성년의 날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생일이야 내년에도 돌아오고 내후년에도 돌아오지만 성년의 날은 그것이 아니니 말이다. 나는 장미와 향수의 유혹을 물리치고 전통 성년례에 참여하리라 작정했다.

전통 성년례에는 남자가 하는 성년례를 관례, 여자가 하는 성년례를 계례라고 한다. 관례는 시가례(처음 관을 씌워주는 것), 재가례(갓을 씌워주는 것), 삼가례(유건(儒巾)을 씌워주는 것), 초례(술을 마시는 것), 자관자례(자(字)를 지어주는 것), 현우사당(조상에게 고하는 것) 순으로 진행되는데 관례와는 달리 계례는 삼가(三加) 를 줄여 시가례(始加禮)만 행했다. 그 후 초례(술을 내리는 의식)와 자관자례(호를 내리는 의식)가 진행된다.


5월 18일 1:00 AM, 아침형 인간인 나는 잠을 깨기 위한 필사적인 분투를 시작했다. 성균관 명륜당으로 8시까지 도착해야 하는데 빨리 가는 순서대로 예쁜 한복을 입을 수 있다는 말에 지방에 사는 나는 5시 45분 첫차를 타야만 했다. 달밤의 체조와 카페인 섭취 덕분에 결국 첫차를 탈 수 있었고 1등으로 도착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한복은 선택권이 없었다. 사이즈 선택 권한도 없이 모두가 노란 저고리와 붉은 치마였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상황에 같이 참여한 친구가 사준 녹차라테를 벗삼아 겨우 공허한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그건 서곡에 불과했다. 이번엔 
1년 365일 이마에 햇빛 한 번 쬐어준 적 없는 나에게 앞머리를 올리고 5대 5 가르마를 타고 올림머리를 하란다. 눈물을 머금고 머리 손질을 받았다. 그때까진 괜찮을 줄 알았다. 안철수연구소 대학생기자인 유선화 언니가 취재 온다는 생각을 미처 못하고 있었으니까. 그 후 언니가 온다는 걸 알았을 때 매직으로 앞머리라도 그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ㅠ



그러나 곧 나는 내 투정은 어디서도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정해준 자리에 앉았다. 5대 5 가르마에 올림머리, 노란 저고리와 붉은 치마를 입고 한 번도 벗어본 적이 없는 안경도 벗고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허심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나니 뜨거운 햇빛보다 더 뜨거운 빛들이 나에게 쏟아졌다. 전통 성년례에 참여한 학생은 40여 명이었는데 내 자리를 좌표로 나타내면 (1,1) 자리라 모든 카메라의 플래시를 한몸에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다른 자리는 카메라가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대한제국 시절 카메라가 사람의 혼을 뺏아간다고 해서 사진 찍는 것을 꺼렸다고 하지 않던가. 정말 혼이 빠지는 줄 알았다. MBC에서 시작해서 지나가던 사람들까지 플래시 세례는 끊이질 않았다. 

머리 올리고 당의를 입는 데 도움을 주는 분들도 카메라를 의식했던지 조금이라도 흐트러진 것이 있으면 와서 바로잡아주고 수시로 고름을 고쳐주었다. 처음엔 치기어린 눈빛으로 전통례에 임했는데 예식이 진행되면서 내가 정말 어른이 되는 건가 하는 두려움에 겁이 났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 있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선화언니가 사진을 찍어줄 때 V도 하고 윙크도 하며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그날 내가 받은 호는 愿恭堂(원공당)이다. 공손하기를 원하다, 공경하기를 바라다 이런 뜻인 것 같다. 어린 마음을 버리고 어른스럽게 행하라는 그런 뜻이 아닐까 싶다.

전통 성년례에 참가해서 다행히 우리 학교 관례인, 모든 세균이 다 있다는 연못에 빠지는 관례를 면할 수 있었다. 절을 한 번 할 때 남자는 두 번을, 여자는 네 번을 했다. 리허설을 비롯해 본 예식에서 너무 많은 절을 해 지금 나는 다리 근육통 때문에 고생하고 있다. 그래도 다리는 아프지만 다시는 못할 경험을 했다는 것, 그리고 기사 곳곳에 내 사진이 있다는 것에 그냥 웃음이 절로 나온다. Ahn
 

대학생기자 구슬 / 충북대 경영정보학과

서툴지만 열정과 도전 정신 그리고 많은 꿈을 가졌다. 편지쓰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니 '안철수연구소' 사보기자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아직은 작은 수족관에 살고 있지만 안랩을 통해, 그리고 사회를 통해 수족관을 깨뜨리고 바다로 나아가려 한다. '대통령 앞에서는 당당히, 문지기 앞에서는 공손히'를 모토로 삼고 열정과 발품으로 '보안세상'에 감흥을 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