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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랩人side/안철수 창업자

MBC스페셜 안철수와 박경철2, 활자로 다시보기

“오늘 안철수 교수랑 박경철 원장이 TV에 나온대. MBC스페셜로...”
지난 1월 28일, 엄마의 다급한 환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족 모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귀 쫑긋 세우며 봤던 <MBC스페셜 신년특집 안철수와 박경철>이 후속편으로 다시 우리 곁으로 왔다.
지난 7월 29일 국민MC 김제동과 함께한 <MBC스페셜 안철수와 박경철2>는 더할 나위없는 따스한 여운을 선사했다. 안철수 교수, 박경철 원장, MC 김제동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와 눈빛 하나하나를 통해 마음에 따뜻함이 묻어져 어느새 눈물샘까지 돌았다. 좌절과 절망 속에 갇혀 있거나 마음에 건조한 바람만 불고 있던 시청자들에게 분명 희망과 위로, 따스한 햇살을 줬을 것이라 감히 확신한다.

 
방송이 재미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안철수 교수, 박경철 원장, MC 김제동 세 분이 나눈 다정한 농담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살짝 이 분들의 일상대화를 엿보도록 하자.

김제동 내레이션(이하 김): 누나들 밖에 없는 제게 형님이 생겼습니다. 그것도 두 분이나 생겼습니다. 시골의사로 잘 알려진 이분, 작은형님 “박경철 원장님”입니다.

박경철 원장(이하 박): 항상 여기서 안철수 교수님을 만나거든요. ‘위대한 투쟁’이라는 이 자리에서.
김제동(이하 김): 제가 안 그래도 이 말씀 드리려고 했습니다. 꼭 두 분은 만나도 저런 글이 쓰여 있는 곳에서 만나고. (차 안에 웃음이 가득)
김: 국민멘토, "안철수 교수님"은 제 큰 형님 되십니다. 네, 저 정말 복 받은 놈입니다.
김: 런데 오며가며 듣는 이 두 분의 대화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박: 제가 원래 먹는 것을 좋아해서 차 안에 먹을 것이 많아요. 너무 맛있죠? 우리 어릴 때 먹던 것이에요.
안철수 교수(이하 안): 그런데 저거는 없었잖아요. 우리 때는 노란색이었고 팥은 저도 처음 먹어봤네. 오리지널도 달콤하게 맛있는데....
박: 제가 오리지널하고 이거하고 한 박스씩 보내 드릴까요?

안: 하하.. 안 돼요.^^ 지금 콜레스테롤 때문에 안 돼요.^^
박: 그래도 너무 그러시지 말고 제가 보내 드릴게요. (차 안에 웃음 가득)
김: 사실 이 분 이렇게 망가지기만 할 분이 아닙니다. ^^
한국 벤처기업의 신화, 안철수 교수.

김: 세상사를 향해 촌철살인을 날리는 박경철 원장.

김: 막강한 이 두 사람이 또 뭉쳤습니다. 6개월 만에 돌아온 <안철수와 박경철 제 2탄>, 더욱 진한 소통과 공감을 향해 지금 시작합니다.

21세기 리더십은 대중이 주는 것

김: 사실 지난 겨울, 두 분의 강연 소식을 처음 들었습니다.

김: 괜찮으시면 저 한번 불러주십시오.
박: 같이 가시지요.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김제동씨 모시고 같이 가면 훨씬 더 좋겠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하시니까 반갑네요.
김: 그러면 제가 방해가 안 된다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김: 그런데 말이 씨가 돼버렸습니다. 2년 전부터 안철수, 박경철 두 사람은 지방 대학 순회 강연을 하고 있습니다. 앞선 세대로서 전하는 진심어린 걱정, 미안함 그리고 응원. 갈증이 컸던 만큼 반응은 뜨겁습니다.

안: 예전 20세기까지의 리더십은 카리스마를 가지며 굉장히 외향적인 성격이고 목소리도 큰 사람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높은 위치에 올랐어요. 이에 비해 21세기는 크게 바꿨어요.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재 본인들을 생각해 보시면 리더를 무조건 따라가지 않잖아요. 일반 대중은 리더를 쳐다봐요. 그리고 저 사람이 과연 내가 따라 갈만한 사람인가를 판단해서 따라 갈만한 사람이라고 판단할 때 따라가죠. 즉, 리더십은 일반 대중이 리더에게 주는 것이에요.

박: 공감과 연대, 수직이 아닌 수평, 직렬이 아닌 병렬의 마인드를 가진 사람만이 새로운 리더십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요체가 되는데요. 그런 맥락에서 놓고 보면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에서는 무언가 괴리가 좀 느껴지고 ‘진짜 그런 시대가 올까?’하며 생각해보죠. 제동씨한테 질문해 보겠습니다. 제동씨는 정의로움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런 질문할 줄 몰랐죠? (청중 비롯해 모두 웃음)

김: 잘못 왔다. 이런 생각이.... (청중 비롯해 모두 웃음)
방금 변화하는 리더십 같은 경우에는, 사실 방송에서도 제 안경을 벗기는 스타일 속에 각 MC들의 리더십이 다 있거든요. 강호동씨는 소리를 지름으로써 분위기를 만들어 안 벗으면 안 될 것 같이 만들어요. 그 다음에 이경규씨 같은 경우에는 지위, 나이를 이용해서 ‘벗어!’하면 벗어야 해요. (청중 웃음) 유재석씨는 자기가 먼저 벗기 때문에 저도 벗어야 해요. (청중 웃음) 신동엽씨는 사전 작업이 좀 많아요. (청중 웃음) ‘김제동씨는 사람들이 못 생겼다고 하는데 별로 그렇지 않지 않아요? 안경 벗는다고 전혀 웃기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니, 벗으라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라고 말하면서요. (청중 웃음) 자, 유형별 리더십이 이렇게 있으면 사실 시청자들이 선택하는 것이죠. 그 힘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를 잊지 않고 자기를 위해서 그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받은 힘이니 돌려줘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리더로서 가져야할 정의로움이라고 생각합니다.

박: (안 교수 보면서) 잠깐 번외로 신동엽씨가 누군지 아십니까? ^ ^ (청중 웃음)

안:

지리산 고등학교의 학생들을 만나다

보면서 내내 입가의 번진 미소가 흩어지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지리산의 맑은 공기처럼 순수한 학생들과 함께한 안철수 교수, 박경철 원장, MC 김제동 세 분의 아름다운 모습을 느껴보자. 덩달아 마음속에 푸르른 지리산의 모습이 자리잡을 테니....

김: 영광스럽게 저도 살짝 숟가락을 얹고 이분들과 동급이 되었습니다. 물론, 학교성적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

이 날은 욕심을 좀 냈습니다. 멀리 간다고 차도 한 대 빌렸습니다. 이번 동행은 순전히 박경철 원장님의 강력한 추천 때문이었습니다. 지난 4월 지리산 자락에 있는 한 작은 학교에서 박 원장은 강의를 했습니다. 강연료는 고로쇠 물이었고요. 전교생이 편지를 써서 줬답니다. 그런 후 이 형님, 그 여운이 어찌나 크던지 거짓말 조금 보태 사흘간 밤잠을 설쳤다는 겁니다. 그 말을 듣고 지리산 고등학교엔 대체 어떤 매력이 있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긴 여행이 가져온 고단함은 한순간에 날아갔습니다. 아이들은 저희를 아주 뜨겁게 반겨주었습니다.

박: 다시 만나서 무지하게 반갑습니다 ^ ^(학생들, 박수치며 ‘우와아~’) 벚꽃 필 때 만났어요. 그때 여러분이 저한테 편지를 써서 줬잖아요. 안 선생님하고 제동이 형님, 오빠하고 같이 뵐 수 있는 기회가 언젠가는 있었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쓴 친구 분명 있었죠? 진짜 이 꿈이 과연 가능할까 생각했는데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동의 하셨어요. (학생들, 박수치며 ‘우와아~’)안: 누가 나와서 칠판에 있는 아홉 개의 점을 떼지 않고 4개의 선으로 연결해 보겠어요?
김:
문제 이해하셨습니까? 나란히 찍혀있는 점 9개를 손을 떼지 않고 4개의 선으로 연결하라는 겁니다. 안철수 교수가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매학기 마지막 수업 때마다 내준 문제라고 합니다. 

안: 만약에 일종의 사각형을 그린다면 사각형 내부에서만 선을 그으라고 누구도 이야기 한 적 없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기가 스스로 안에 선을 그어서 이 내부에서만 답을 찾으려고 해요. 그러면 답이 없어요. 누가 강요하지도 않았는데 사람들마다 자신의 편견 혹은 선입관이 있어요. 그것이 오히려 자유로운 생각을 방해하는 것 같아요. ‘상자 밖에서 생각하라’ 이런 영어 표현도 있잖아요. 'Think outside the box' 그런 표현인 것 같아요.

김: 매일같이 지리산 정기를 받아먹고 사는 복덩이들. 100명 남짓한 전교생이 옹기종기 모여 앉은 모습이 참 사랑스러웠습니다. 뜻밖의 선물도 받았습니다. 어젯밤 꼬박 밤 새워 그렸다는 캐릭터 티셔츠. 두 분 아주 신났습니다 ^ ^
안: 제 사진 뒤에다가 각자 꿈을 적었어요. 본인들과의 다짐, 결심 같은데요. ‘나는 자연과 인류의 생활을 위한 물질을 연구하는 신소재 연구원이 될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역사정치가가 될 것이다’
김: 고민의 흔적이 흠뻑 묻어나는 야무진 꿈들입니다. 사실 지리산 고등학교는 모든 것이 부족한 학교입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임시로 고쳐 쓰다 보니 일단 공간이 열악합니다.

참 고마운 후원자들이 지원해주는 후원회비로 급식비, 기숙사비 등 대부분의 경비를 충당하는 상황입니다. 사교육은 엄두도 낼 수 없고요.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루고자 하는 의지만은 누구보다 단단합니다.

학교를 벗어나도 마을 곳곳에서 지리산 친구들을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외롭게 지내시는 노인 분들을 찾아뵙기도 하는데요. 오늘은 할머니댁에 놀러 갔습니다. 온 마음으로 집안일도 돕고요. 자기 몫으로 나온 간식도 챙겨서 가지고 왔습니다.

훗날 이 아이들에게 이런 만남, 이 큰 자연이 얼마나 큰 자양분이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천재홍 학생(1학년): 혹시 추천하시는 공부 방법이나 시간 관리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김: 저는 없습니다. (학생들 비롯해 모두 웃음)
안: 제가 의대에 가서 박사과정 학생으로 열심히 공부를 하던 차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컴퓨터 바이러스가 발견됐어요. 근데 시간이 참 문제더라고요. 박사논문을 쓴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라 도저히 시간은 없는데, 이것은 해야만 되는 일이잖아요. 새벽 시간은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새벽 3시에 일어났어요. 그 다음날부터 새벽 3시에 일어나서 6시까지는 바이러스 백신 만드는 일을 하고 나머지는 의사로서의 삶을 열심히 살았어요. 처음에 한, 두 번 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바이러스 만드는 사람들이 항상 어딘가에서 계속 나왔어요. 7년 내내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바이러스 퇴치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보통 같았으면 없었을 시간이었어요. 자고 있었겠죠. 그렇게 그런 경험들을 몇 번 하다보니까 제가 깨달았던 것이 있어요. 시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더라고요. 시간은 절대적으로 주어지고 모든 사람한테 똑같은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을요. 시간은 만들면 만들어져요. 또 허투루 보내는 시간들도 다잡아서 관리하면 거기에서도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김남희 학생(2학년): 두 분 다 의사에서 전혀 다른 직종으로 직업을 바꾸신 분 아닙니까? 그런데 의사라는 직업이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이기도 하고 굉장히 안정적인 직업이기도 한데요. 다른 것을 선택할 때 성공할 거라는 확신과 보장도 없어서 많이 두려웠을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박: 저는 보통 이렇게 표현합니다. 개런티는 안심하고 물건을 사기 위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보통 개런티라고 말하는 것은 예를 들어 자동차의 개런티에는 품질보증이 있죠. 보증이라는 것은 자동차를 살 때 3년간 품질보증 개런티 카드를 받아요. 이는 물건에 대한 것이잖아요. 내 인생에 대한 책임을 개런티로 해결할 수는 없잖아요. 내 인생의 가치는 뭔가 달라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고 어제보다 오늘이 달라야 되고 오늘보다 내일이 달라야 되는데 어떻게 안정, 보증이 있겠어요? ‘현재 이것은 충분해’ 혹은 ‘난 이만하면 됐어’라는 보증과 안정이 내 삶을 결정짓는 요소는 전혀 아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안정된 직업’ 이라는 전제는 일단 틀린 것이라 볼 수 있어요.
두 번째는 다른 일을 할 때의 선택입니다. 현재 어떤 것을 소홀히 하거나 그것을 다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것은 자신 없으니까 다른 일을 해볼까?’, ‘이건 내 적성에 맞지 않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데서 사실은 적성에 맞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잘할 자신이 없는 것인가, 스스로 내가 위선을 떨고 있진 않는가에 대한 자문을 해 봐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충분히 잘 할 수 있을 때 다른 기회를 선택하는 것이지 현재를 회피하기 위해서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여기에서 말한 최선의 정의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완벽하게 하신 분은 조정래 선생님입니다. 그 분이 <태백산맥>이라는 책에서 ‘최선이라는 말은 이 순간 내 자신의 노력이 나를 감동시킬 수 있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돌아보는 겁니다. 내 노력이 나를 감동시킨 적이 얼마나 있는가?
김: 편집이 많이 돼서 그렇지. 저도 질문 좀 받았습니다 ^^

신경민 학생(2학년): 저는 김제동 아저씨께 질문하고 싶은데요. 제가 가끔 남들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떨리고 긴장돼서 말을 잘 못하겠거든요. 그래서 고민인데, 어떻게 하면 김제동 아저씨처럼 남들 앞에서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김: ^^ 잘했습니다. 자~ 다음 고민 ! ^^ (학생들 비롯해 모두 웃음) 그 정도면 충분히 잘했어요. 그 정도 능력 가지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많지 않아요. 지금 여기에서 질문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 막 떨려서 죽을 것 같죠? 그런데 안 죽었잖아요. 아무 이상이 없잖아요. 지금 아무 이상이 없죠. 이렇게 조금씩 해나가다 보면 알게 됩니다. 그리고 마이크를 겁내지 마세요. 마이크는 말하는 것을 도와주는 기구지, 터지는 기구가 아닙니다. 내리면 꺼지고 위로 올리면 켜지는 철저히 내가 조종하는 도구일 뿐이죠.

김: 좀처럼 질문이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습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김진섭 학생(1학년): 이병철 삼성 전 회장께서 ‘기업은 사람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있는데요. 사회를 이끌고 세계를 품을 수 있는 그런 인재상을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안: 인재상에 정답이 있지는 않잖아요. 인재상은 시대마다 바뀌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존재다’라는 의식을 갖고 있는 인재인 것 같아요. 어떤 재벌 회장님이 앞으로는 만 명의 먹을거리를 만들 수 있는 인재가 중요하다고 했는데요. 거기에서 빠진 것이 있어요. 만 명의 먹을거리를 만드는데 그 만개의 먹을거리를 전부 독식하며 차지하고 심지어는 남의 것 까지도 다 자기가 가져가버리면 그 사람은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전혀 도움이 안 되죠. 그래서 기업으로 따지면 이런 것이 있잖아요. ‘기업의 목적은 수익창출이다’ 그것이 다 국민 상식 같죠? 사실 그건 틀린 말이에요. 왜 그런가 하면 기업의 목적이 수익창출이라는 것을 지나치게 믿고 그쪽 방향으로만 가다보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수익만 창출하면 된다며 스스로 정당화 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불량식품을 만들어요. 그러면 자신은 돈을 버는데 그 불량 식품을 먹고 수많은 어린이들이 아프고 사회가 나빠지잖아요. 즉, 혼자서는 목적 달성하고서 잘 먹고 잘 사는데 사회 전체로 보면 그것은 오히려 없는 것이 더 좋은 암적인 존재, 범죄 집단이잖아요. 가장 중요한 것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인식하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이 인재 같아요. 능력이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김: 함께 살아가는 사회, 안철수 교수는 CEO시절에도 그 가치를 언제나 가슴 속에 품었다고 합니다.

잘 자라는 교목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이 친구들이 언젠가는 하늘을 가득 덮을 거목으로 성장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손잡고 더불어 숲이 되어 서로를 지킬 것도 믿습니다. 그래서 제게는 지리산을 좋아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습니다.

착한 비빔밥 집에서 나눈 가족 이야기

소박한 비빔밥 집이 풍기는 편안한 분위기에서 나눈 세 사람의 대화는 정겨웠다. 그 속에서 나온 안철수 교수의 교육법과 박경철 원장의 교육법도 볼 수 있었으며 그들의 진심어린 가족 사랑도 느낄 수 있었다.

김:
같이 밥 한끼 먹고 싶었습니다. 오늘은 특별히 우리 큰 형님께서 진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볼까요? ^^

안: 지난번에 질문하실 때 이런 카드는 없었죠?
김: 네 없었죠.
안: 컨닝 페이퍼 같아요.(웃음) 아마 걱정이 돼 제작진에서 저만 주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지난주, 주말에 재미있는 일 있으셨나요?
: 저는 계속 ‘나는 가수다’를 녹화 했어요. 바로 어제 녹화했거든요. 어제 탈락자가 나와서 사실은 술을 많이 마셨습니다. 왜냐하면 탈락자가 나오면 안 마실 수가 없어요. 저의 가수가 탈락을 하든, 다른 사람이 탈락을 하든 실제로 슬프기도 하고 또 아쉽기도 하거든요. 근데 형님 트위터 보니까 지하철 막말 동영상에 대한 글을 올리셨던데요?
박: 트위터에 막말동영상이 너무 많이 떠 있어서 이게 뭘까 하고 봤어요.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청년의 젊은 시기에 있을 수 있는 일탈의 문제가 아니고 완전히 궤도를 이탈한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이 아이를 키웠던 부모님은 어떤 생각이실까?‘ 이런 생각이 했고요.
안: 그러면 그 주위 사람들은 그냥 놔뒀어요?
박: 함께하면 어떤 부당한 일도 제제할 수 있는데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주변을 피했어요.
안: 그런 것이 어쩌면 사회적인 책임의식의 분산 같기도 해요. 이런 일이 있데요. 길 한복판에 한 사람이 다쳐서 누워있는데 주위에 한 사람만 지나가는 경우에는 거의 백 퍼센트 그 사람에게 도움을 준답니다. 하지만 주위에 100명이 있으면 한사람도 도와주지 않게 된다고 해요. ‘나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있으니깐’, ‘정의감이 더 투철한 사람이 도와주겠지’하며 지나치는 것이지요. 결국은 그 많은 군중 속에서 쓰러진 사람은 도움을 못 받고 죽어간대요. 실제로 그런 사건이 뉴욕에서 있었거든요.
박: 그래서 ‘부당한 일에 대해서 적극적인 처벌과 교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나중에 유리창이 곳곳에서 깨지게 되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순간 굉장히 많이 들더라고요.

자식을 향한 그들의 사랑 교육법


김: 저번 1탄에서 제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지금까지 살면서 느껴왔던 가장 큰 행복의 천 배 내지 만 배라고 생각하면 된다. 자식을 가진다는 것은. 그래서 당신은 아직 당신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경험을 하지 못했다’
안: 저도 동의해요.
김: 안교수님은 외동따님이 있으시죠?
안: 네 ^^
김: 따님의 멘토도 안철수 교수님이세요? 저 그게 좀 궁금합니다.
안: 예. 그렇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데 저를 포함한 대한민국 부모님들은 자식에게 미치는 부모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 같더라고요. ‘부모가 열심히 노력하면 아이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 부모님들의 공통적인 생각이며 사회 곳곳에서 많이 볼 수 있잖아요. 사실은 아이가 십대만 되더라도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부모님 말씀보다 주위의 친구들 이야기 또는 아이가 처해있는 환경에 영향을 더 많이 받아요. 우선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할 듯싶어요. 그러면 이제 부모님들이 할 일도 거기서 나와요. 왜 그러냐면 어차피 부모의 영향력은 친구나 주위환경보다 크지 않으니 부모가 최대한 할 수 있는 것은 그 아이의 환경을 제대로 만들어 주는 일 아니겠어요?

김: 예를 든다면?
안: 책 읽으라고 말하지 말고 부모가 직접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죠. 또는 제 아버지께서 쉰이 넘은 나이에 전문의 시험공부를 하시고 합격을 하셨어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나이가 들면 공부와는 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게 됐어요. 아버님이 깨주신 것이죠. 어쩌면 제가 나이 40 중반에 다시 학생의 신분으로 외국에 유학을 갔었던 것도 아버지의 영향력에 의해서 아닐까 해요. 옛날에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셨기 때문에요.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마음 속 구석 어딘가에 가지고 있다가 후에 발현이 되는 것 같아요.
김: 무의식적으로 잠재되어 있다가 그것이 나오는?
안:

김: 안철수 교수의 아버지는 부산의 한 판자촌에 들어가 병원을 열고 가난한 이웃들을 치료했습니다. 진료비는 절반만 받았습니다. 아버지의 모습은 어린 안철수에게 말없는 가르침이었다고 합니다.

김: 집에 손자가 있어요. 우리 큰 조카가 아이를 낳았거든요. 저보고 할아버지라고 첫마디를 뗐어요. 그런데 그렇게 기쁘지 않습니다.(웃음ㅋㅋㅋ) 다른 이야기이긴 하지만 박 원장님 어떻습니까? 그... 딸하고의 스킨십을 우리말로 표현하면 가장 좋은 단어가 뭐가 있을까요?
안: 부비부비? (웃음ㅋㅋㅋ)
김: 하하하.. 좋은데요 ^^ 딸하고의 부비부비.
어감이 잘못 혼동될 수도 있는데요. 홍대 인근에서만 쓰이고 있어서 그렇지 사실 부비부비라는 말이 나쁜 말은 아니죠. 부비부비가 제일 좋은 말인 것 같아요.
그럼 박 원장님, 딸하고의 부비부비는 어떤 유대관계인가요?
안: 근데 박 원장님이 사진을 계속 올려요. 사진들이 정말 보기가 좋은데 어떻게 찍으셨어요? 연출했기보다는 너무 자연스러워서요.
박:
아~ 하루 종일 아이하고 놀다보면 다른 가족들이 보고 너무 볼썽사납다며 사진을 계속 찍어요. (웃음) 아이와 음악을 듣고 같이 놀아주는 것은 어떤 부모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여기서 제가 이 아이에게 무엇을 더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예를 들면 같이 만나서 ‘아빠 사랑해’ 라는 것도 우리끼리 약속을 정해서 해보기도 합니다. 7가지 약속을 정해서요.

박: 세상 어느 누구도 아닌, 나와 이 아이만 누리는 약속이잖아요? 이 아이의 어린 시절에서 ‘내가 참 많이 사랑 받았구나. 그래서 나는 귀한 사람이구나’라는 기억이 가득했으면 해요. 저는 끊임없이 이 기억을 남겨주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성장을 하고 세상을 살다보면 난관에 부딪히겠죠. 때에 따라서 힘들고 때에 따라서는 좌절 할 텐데, 그땐 제가 없겠죠. 그 순간에 사랑받았다는 기억이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김: 박경철 원장에게 돌아가신 아버지는 큰 기둥이자 힘이라고 했습니다. 지난번 만났을 때 아버지 이야기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그의 눈빛이 새삼 떠올랐습니다.

박: 아버지는 매일 퇴근해서 돌아오시면 손발을 씻고 할아버지 영정 앞에 앉아서 대화를 하셨어요.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시면서요. 태연하게 30분을 이야기 하시는 아버지를 옆에서 보면서 ‘진짜 귀신이 있다. 어른 눈에만 보이나 보다’라고 생각했거든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저희 아버지께서 갑자기 쓰러지시고 중환자실에서 3일간 인공호흡기를 달고 계셨어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아버지께서 지금 말을 못하고 계시니까 얼마나 답답하고 마음이 아프실까 그래서 이 마음을 읽어보자’라고 했어요. 아버지께서 이런 질문을 했다고 생각하고 아버지 옆에서 약속을 했어요. ‘앞으로 이렇게 하겠다’. ‘이렇게 살아 가겠다’라며 아버지와 3일 동안 대화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리고 3일 후에 떠나셨죠. 저는 지금 서재에 아버지 영정을 모시고 있는데 어려운 일이 생기면 또 대화를 해요. 그것이 습관이 됐는데,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답은 안 돌아왔지만 ‘이렇게 하면 되겠죠?’라며 아버지 사진 앞에 이야기를 해요. 아버지께서 마음속에 계속 중심이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언젠가 한번 아들 녀석이 그런 제 모습을 보고는 아버지 눈에는 할아버지 귀신이 보이느냐고 물었죠. 그것이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는 부모와 자식 사이에 무형의 유산인 것 같아요. 그래서 아버지라는 것은 사회적인 성취의 문제가 아니라 자식에게 보여주는 뒷모습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김: 그러니까 두 분은 어떤 느낌이랄까?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사랑 같은 것이 깊이 느껴집니다. 부럽기도 하고요. 사실 저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단어로만 봤지 실체로 접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에 어떤지 정말 궁금해요. 술 마시고 집에 들어가면 정말 한 번씩 연습해 봅니다. 거울 보면서 ‘아빠?, 아버지?’라고 실제로 부르면 어떤 느낌이 들지 궁금해서요. 제가 만약에 ‘아빠’라고 불리어지는 존재가 되면 그 느낌이 어떨지 궁금합니다.

안: 저는 아이가 어떤 일을 할지, 거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야기 한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본인이 궁금해 해요. 제가 뭘 원하는지를 알고 싶대요. 거기에 ‘나는 정말로 원하는 것이 없고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라’고 말했고, 본인이 이제 찾았어요. 지금 본인이 원하는 길을 가고 있어요.
김: 한 번도 원하는 것을 강요하거나 주입했던 적이 없으세요?
안: 네, 없어요.
김: ‘책 읽어라’ 이런 말을 하신 적도 없어요?
안:
김: ‘공부해라‘ 이런 말을 하신 적도 없고요?
안: 아~ 그건 있죠 ^^ ㅋㅋㅋㅋ
김: 네 알겠습니다 ㅋㅋㅋㅋ

박: 제일 중요한 것은 평범한 말 같지만 ‘가치관’인 듯싶어요. 부모가 ‘이것이 가치 있는 것이야’라고 말하는 것은 세뇌라고 봅니다. 아이가 ‘제가 생각할 때 이것이 가치 있어요’라고 말하며 자기 스스로의 건강한 가치관을 만들고 성장하도록 도와줘야 되는 것 같아요. 그것이 가치관을 아이에게 심어주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아이들과 이야기할 때는 답을 하지 않아요. 답을 안 한다는 것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이며 결론을 내려서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겁니다.
김: 주입하지 않는 거네요?
박: 그러니까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어보는 것이지요.
김: 물어보는 거예요?
박: 네, ‘어떻게 할래?’라고 물어봐요. 그래서 과제 부여 하는 것은 딱 세 가지가 있습니다. 큰 아이한테 주는 과제인데요.
첫 번째, 신문은 종이신문으로 진보지, 보수지를 각각 꼭 읽어라.
두 번째, 일주일에 1권씩 아빠가 지정하는 책을 읽어라.
세 번째, 너로 인해 다른 가족을 힘들게 하지 마라.제가 큰 아이에게 말하길, ‘이 3가지는 아빠가 너한테 강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의무로 부과하고 저도 감당하며 나머지 부분은 맡겨둬요. 제가 제 자식을 믿지 못하면 그 아이를 누가 믿어주겠습니까? 나머지는 믿어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김: 자~ 이제 밥 좀 먹읍시다 ^^ (웃음)

안: (MC 진행카드 보면서) 밥 먹을 시간이 여기에 있나? (모두 웃음)

김: 메뉴는 유기농 비빔밥입니다. 세 가지 재료를 담고 된장국도 한 술 담고 된장 색깔 좋죠? 네, 제 얼굴 색깔 같잖아요. 각자가 먹을 양만큼 가져가서 먹으면 됩니다. 이 밥집은 이윤을 사회로 환원하는 참 맛있고 착한 밥집입니다. 점심시간 이곳을 찾는 손님은 동네 주민과 직장인들부터 노숙인, 외국인 노동자, 생활이 어려운 독거노인까지 다양합니다. 가장 큰 특징은 형편에 맞게 돈을 내면 된다는 것. 돈이 부족하면 부족한데로, 많이 내고 싶으면 얼마든지 내도 좋습니다.

안: 이제.. 어쨌든.. 마무리를 하라고 하시니깐.. 어떠셨어요? 두 번째 만남인데.
박: 자연스러운데요. ^^
김: 아주 좋은데요. ^^
박: 질문을 던지시네요. ^^
김: 자연스러우신데요 ^^ 질문을 하시면서 마무리 하시는데요. 경력이 아주 오래된 분들이 주로 하는 건데.. ^^
안: 저도 사실은 사회적인 기업이 어떻게 되는지 실제적으로 와서 본 것은 처음이에요. 근데 저한테도 여러 가지로 인상 깊었던 만남이었던 것 같습니다.

김: 나중에 아빠가 되면 이런 착한 밥집에 제 아이를 데려오고 싶습니다. 밥도 먹고 나눔에 대해서 이야기도 해주고. 도와주세요. 일단 아내랑 같이 와야 할 것 아니에요 ^^

하고 싶은 것을 지금 시도해 보기



박: 안 선생님이 의사로서 좀 시원찮았고 저처럼 의사로 성공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 바이러스 쪽으로 급 방향을 트신 것이라고 여러분이 생각하기 쉬운데요. 사실은 제가 아는 한 대단한 면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의사로서도 국내 최연소 의과 대학학과장 출신이셨기 때문이에요. 그때 나이가 몇 살이었습니까?
안: 네. 27살이었어요.
박: 스물 일곱살. 제가 스물 여섯살에 졸업했어요. (청중 웃음)
제가 이것을 도전이라고 표현 했는데요. 왜 그런 선택을 했고, 그때는 어떤 심경으로 어떤 가치 판단이 있었기에 그런 선택을 했습니까?
안: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있는데 다른 무언가가 하고 싶으면 그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현재 일을 버려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많이 불행해 하시는데요. 사실은 그렇지가 않은 것 같아요. 어떤 회사원이 있는데, 이 사람이 환경 운동 쪽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고 쳐요. 그렇게 예가 나왔어요. 그러면 이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흔히 떠올리시는 것처럼 55세까지 열심히 직장 다니다가 정년퇴임을 하면 바로 그 다음날 환경운동으로 넘어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고요. 아는 것도 하나도 없고 그 일이 자신한테 맞을지 아닐지 알 수가 없어요. 막연히 자기가 하고 싶다는 것과 실제로 그것을 해서 만족스러운 것은 다르거든요. 잘 할 수 있는 것은 다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충고를 드리고 싶은 것은 고민만 하지 말고 오히려 주말이나 일주일 중 하루 저녁에 시간을 내서라도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 보는 겁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그 시간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를 다양하게 경험해보고 도전 해보시라는 것이지요. 고민을 하는 것은 좋은데 고민을 하면서 계속 세월을 보내지는 마시라고 충고 드리고 싶습니다.

도전은 계속되어야 한다

김: 만약 도전의 달인을 선발하는 서바이벌 대회가 있다면 이 분 분명히 우승입니다. 제가 장담합니다. 지난 5월, 안철수 교수는 3년간 몸담았던 카이스트에서 마지막 수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곳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안: 지금 이제 출근이 5일째인데요. 짐도 안 풀었고 오자마자 일부터 시작해서 저도 정신이 없어요.
김: 여기 이름을 정확하게 봐도 잘 모르겠습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장으로 오신 것이죠?
안:
김: 힘드시진 않습니까?
안: 뭐...힘들게 살려고 온 것이니까요. 예전 같으면 1년에 학생 100명 정도 가르치고 나머지 시간은 저한테 주어지는 시간이었죠. 책을 본다고 치면 굉장히 많이 볼 수도 있고 해야 되는 다른 일은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렇게 편하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유는 많은 분들이 역할에 대해서 기대도 하는데 제가 책임을 더 맡고 일을 많이 해야 된다는 고민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그때 서울대에서 학교 행정 쪽을 제안 해주셨습니다.
김: 작업복을 입고 열심히 뛰겠다는 뜻일 겁니다.

김: 박 원장님과 함께 가서 산 선물입니다. 풀어보십시오.
안: ^^ 아~네. 우와~ 배낭이에요? 제 배낭이 하도 낡아서 안쓰러워 주시는 것 같은데..
아~고맙습니다.
김: 우리 영남대학교 갔을 때, 역에서 내렸는데 안 교수님께서 양복에 등산용 배낭을...(웃음)

김: 절 몹시 심란하게 만든 가방입니다.

안: 이 가방도 편해요. 여기 보면 노트북을 따로 넣을 수 있고요. 등산용 배낭인가요? 컴퓨터 넣는 곳이?
김: 컴퓨터를 넣는 것이 아니고, 살펴본 바론 이 가방은 그냥 등산용 백입니다.^^ (웃음)

김: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큰 형님의 메모도 구경 좀 했습니다.
안: 문제가 가끔 제가 쓴 글씨를 제가 못 알아봐서 답답할 때가 있어요.
김: 무슨 내용인지는 봐도 모르겠습니다만 이 메모는 안교수의 오랜 습관.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는 모두 메모로 남긴다고 합니다.
안: 항상 사람들이 쫓기다보면 바쁜 일만 하게 되고 중요한 일은 빼먹어요. 그런데 사실은 중요한 일을 먼저 해야지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어요. 그런 중요한 일들을 메모 해둔다면 바쁜 일에 휘둘러서 못하고 넘어가는 일은 많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문제의 본질을 보고 문제의식을 공유하자

김: 27살의 나이로 국내 최연소 의대 학과장이 되지만 안 교수는 작은 벤쳐의 사장으로 새롭게 인생을 시작합니다. 그의 나이 33살이었습니다.
안: 참 안타까운 것들 중 하나가 기회가 없어요. 원래 학생들이 대학교를 졸업한 다음에 취업하고 싶으면 취업을 하고 창업을 하고 싶으면 창업할 선택이 주어져야 돼요. 취업을 할 때도 꼭 대기업뿐만 아니라 자기와 맞는 중소기업에도 취직할 그런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야 하는데요. 현재 창업 쪽은 한번 실패하면 다시는 재기를 못하는 그런 사회구조 때문에 실은 그 길이 보통사람한테는 막혀있는 것이고 중소기업으로 가는 쪽은 워낙 대우가 열악합니다. 그곳도 막혀있다 보니깐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공기관 아니면 대기업 취직에만 목을 매고 있죠.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전체가 스펙사회로 빠지게 돼서 선택의 자유가 없는 것 같아요. 이런 현상을 어떻게든 해결해야 하는 것이 지금 우리나라가 가진 가장 큰 과제인 것 같습니다.
김: 누군가는 말합니다. 청춘이고 나발이고 나는 백수, 찌질이다. 단군이래 사상 최대 스펙을 자랑하면서도 청년실업자 백만 명 시대, 우리가 마주한 먹먹한 현실입니다.

김: ‘늘 도전하라, 용기 내라, 또 과감히 남이 가지 않을 길을 가라‘라고 말하기엔 좀 미안한 시대. 개개인이 열심히 노력만 하면 이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 있을까요?
박:
현상을 바라보지 않고 본질만 보면 본질은 굉장히 단순합니다. 무언가 “독점”과 “과점”이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전체를 다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 기회 문제만 보죠. 재벌 기업을 보세요. 큰 따님이 광고회사를 차립니다. 그 그룹의 모든 광고를 가져갑니다. 심지어는 해외광고까지 다 가져갑니다. 순식간에 국내 1, 2위의 광고회사로 성장을 하죠. 큰 따님은 큰 부자가 되시죠.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광고를 꿈꾸며 ‘작은 광고회사로 성장해 언젠가는 내가 광고를 제패하겠다’라는 젊은 청년들의 기회는 사라지고 맙니다. 둘째 따님이 캐피탈 회사를 차려서 제품 구매시 모든 할부의 거의 85%를 독점합니다. 세 번째, 아드님이 탁송사업을 혼자 다해서 부자가 되지 않습니까? 그런 기회들을 전 대기업들이 만들면 벤처를 꿈꿨던 수많은 젊은이들과 벤쳐 기업들은 아무것도 없이 그 밑에 종속됩니다. 그들은 미래, 희망 없이 주저앉고 기회의 좁은 문 속에 갇혀 버리지 않습니까? 이런 일들이 독점 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는 거대한 피해잖아요.
김: 그런 이야기도 합니다. 사실 어떤 분들은 ‘눈높이를 좀 낮춰라, 중소기업에는 일할 사람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박: 중소기업도 내가 가서 일을 했을 때 지금은 미약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높은 성과가 인정받고 회사가 성장하며 나의 미래도 발전할 수 있다고 믿으면 저는 과감하게 청년들에게 이야기하겠습니다. ‘명문대에 비싼 학비 내서 가지 말고 중소기업으로 가세요’라고요. 그런데 ○○대기업 수익률은 2010년, 2009년 이후로 창사 이래 최고입니다. 그러면 그에 관련된 협력업체나 하청업체는 창사 이래 최대의 수익을 내리는 것이 맞잖아요. 그런데 3년간 적자입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까 더 재미있습니다. 혹시 이익을 냈다고 하면 단가를 낮추라고 할까봐 어떻게든지 이윤을 줄여야 했다고 합니다. 이 모습에서 보이는 중소기업의 미래, 그런 회사를 다니겠습니까?
안: 그런데 대기업, 중소기업 간의 대우 격차가 지금 정도로 과도하고 비정상적으로 심하지 않은 상태라면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택할 수 있어요. 그런 구조만 된다면 사람들이 행복해 질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현재 대학교까지 졸업한 사람들을 보고 이런 말을 하죠. ‘막노동판에 일자리가 있는데 왜 거기는 가지 않느냐?’ 그것은 굉장히 잘못된 사고방식이라고 봅니다. 그 사람들의 수준에 맞는 일자리를 만들려고 하는 노력들은 그 전체 조직 시스템을 관장하는 분들이 고민해야 되는 몫입니다.

김: 현실을 바꾸는 것이 이상론에 불과하다면 지레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박: 투 트랙이 필요합니다. 투 트랙으로 한쪽에서는 자기 자신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듭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그 토양을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지금까지 부당하게 편중되어 왔던 시혜와 특혜 그리고 그에 따른 관용까지도 평등화해서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투 트랙으로 맞는 방법입니다. 이제 이것을 고민하고 나아가면 되는 것이지요.
안: 역사에서 보면 망하는 나라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로마도 마찬가지고 망하는 나라들은 항상 계층 간의 격차가 심화되고 기득권이 과보호되었으며 사회 전반적으로 부패가 만연했습니다. 그런데 항상 그 당시 사람들은 이런 착각에 많이 빠지더라고요. 지금은 우리가 옛날 사람들에 비해서 훨씬 더 많이 알고 있고 현명하기 때문에 똑같은 실수는 안 한다는 그런 자신감과 오만함, 착각에 빠집니다. 바로 그런 생각이 역사를 반복시키는 것 같아요. 현재 우리나라는 지난 10년간 이런 격차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벌어져 있는데요. 이 상태가 계속 가면 공멸할 것 같아요. 문제를 풀기 위해서 가장 선제 조건은 그 문제인식의 공유거든요. 문제가 있다고 같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문제해결은 아예 시작이 안 됩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가 있다는 것을 함께 공유해 보자는 것이 강연의 목적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김: 누구에게나 청춘이 있습니다. 추억 속의 청춘은 푸릇푸릇하지만 현실의 청춘은 너무 아픕니다. 지금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참으라는 말 대신, 젊어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 대신 함께 아파하며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것이 안철수, 박경철 이 두 사람이 무대에 오르는 이유일 겁니다. Ahn

대학생기자 류하은 / 강남대 경영학과 
 
거거거중지(去去去中知),  행행행리각(行行行裏覺)
가고 가고 가는 중에 알게 되고, 행하고 행하고 또 행하면서 깨닫게 된다.
- 노자의  <도덕경> -
제 글이 조금이나마 당신이 가는 그 길에 빛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