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대생이 알려주는 역사영화“명량” 더 재밌게 보는 방법

문화산책/컬처리뷰 2014. 8. 2. 01:21




<출처: 네이버 영화>

최민식과 류승룡이라니. 너무 기대된다! 믿고 보는 최민식! 연기 얼마나 잘할까?”

영화를 기다리던 커플들이 나눈 대화를 엿들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 커플들에게 미안하게도, 기대감을 져버린다. 그건 이 영화가 역사영화이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에는 수 많은 우리나라 명품 배우들이 나온다. 하지만 그 뿐이다. 영화의 주인공은 그 배우들이 아니라, 우리 조상님들이고 이순신 장군님이다. 이 말은, 명량해전이 끝나고 난 뒤에 나오는 대사를 듣는다면 더 크게 와 닿을 것이다. 대사는 영화를 위해서 언급하지 않겠다. 대신, 영화를 더 재밌게 보는 방법을 소개할까 한다.

 

*더 재밌게 보는 방법 첫번째! “영화의 배경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6년간 일어난 사건이다. 여기서 1597년부터를 정유재란이라고 하는데, 명량대첩은 정유재란에서 초창기에 발생한, 이순신 장군의 수많은 해전 중의 하나이다. 영화에서는 바로 이 명량해전과 그 때의 이순신 장군님을 다루고 있다.

이순신 장군님은 일본에서도 따르는 자가 있을 정도로, 백성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인기가 너무 많았던 탓일까, 이순신을 경계하고 시기하는 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는 임금인 선조도 있었다. 이렇게 이순신을 멀리하려던 차에, 사건이 터졌다.

일본군 가토 기요마사가 이끄는 수군을 막지 못한 것이다. 첩보가 있었으나, 적의 첩보라는 이유로 이순신 장군님은 이를 믿지 못하고, 출정을 나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실제로 쳐들어 오게 되면서, 문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선조는 전시에 항명했단 이유로, 모진 고문을 겪게 한다. 고문으로 심신이 지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뿐만 아니라, 이순신 장군은 벼슬 없이 전투에 참여한다는 백의종군, 어머니의 임종까지 제대로 지키지 못하게 된다. 게다가 자기 스스로도 12척으로 330척을 싸워야 한다는 사실까지. 무엇 하나 편안한 상황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화는 시작한다. 이렇게 지치고, 힘든 상황에서 이순신 장군님은 묵묵히 장군으로써 불가사의하며, 기적적이라고 꼽히는 이 해전을 승리로 이끌어 나간다. 왜 기적적이라고 하는지는 영화를 통해서 직접 살펴 볼 수 있다.

 

*더 재밌게 보는 방법 두번째! “영화에서 용어

 

구선 : 거북선, 귀선과 같은 말이다. 이순신을 들으면, 거북선이 제일 먼저 떠오르겠지만. 명량해전 전에 원균이 칠전량 전투에서 너무 대패해서 남은 것이라고는 함선 12척 밖에 남지 않았다.

충파 : 사전적인 의미로는 먼바다에서 일어나는 파도라는 충파(沖波)와 적을 몹시 세차게 쳐부숨이라는 뜻의 충파(沖破)가 있다. 영화에서는 배와 배끼리 부딪힐 때를 충파라고 한다.

물의 흐름영화의 원래 제목은 명량:회오리 바다이다. 명량으로 제목이 수정되기는 했지만, 영화에서는 회오리가 중요하게 나온다. 이 회오리는 물의 흐름이 바뀌면서, 왜적의 배들과 바다의 암초까지 서로 엉키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바로 이 회오리가 명량해전의 중요한 승리요인이기도 했지만, 사실 물의 흐름이 바뀔지는 이순신 장군님도 몰랐다고 한다. 만약 물의 흐름이 변하지 않고, 왜적이 쳐들어 오는 방향으로 물살이 흘렀다면, 오히려 왜적은 속도를 내서 명량해전의 승리자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 정유재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승리의 징표로 조선군의 목을 가져오라고 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마저도 너무 무겁다고, 귀와 코를 베어오라 하는데, 이는 왜군들은 일반 백성들의 코와 귀까지 노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초요기 : 군사가 전진하거나 행진할 때 대장이 장수들을 부르고 지휘하던 깃발이다.

백병전 : 적에 육박해서 칼, 총 등으로 직접 싸우는 것이다. 화포로 멀리서 공격과 방어를 한다면, 백병전은 직접 붙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내에서는 조금 잔인할 수 도 있으므로, 백병전이라는 말이 들리면 눈을 너무 동그랗게 뜨지는 말 것!

 


*기사를 마치며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후기는 잘 안 읽는 편이다. 생각이 고정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예외다. 오히려 이 영화는 특정 관점으로 봤으면 좋겠다. 배우들의 연기와 화려한 CG에 대한 기대보다도, 역사 영화라는 사실에 관심을 갖고. 선조들의 노력을 헛되지 않게 하는 그런 마음을 갖고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영화를 봤으면 좋겠기에, 이렇게 기사를 작성하게 되었다






 안랩대학생기자단 홍수영 / 서울여대 정보보호학과


 omnia tempus hab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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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武) 그리고 문(文) 의 이순신장군

문화산책/서평 2014. 7. 27. 22:56

   최근 12척의 배로 133척의 왜군의 배를 물리친 명량해전을 모티브로 한 <명량>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순신 장군은 100원 동전에도 새겨질 만큼 엄청난 업적을 남기신 분이다. 45번의 전투를 치러 모두 승리로 이끌었고, 한반도에 쳐들어온 왜군의 군량미 수송로였던 전라도 앞바다를 막으면서 파죽지세로 올라오던 왜군들에게 더 이상의 진격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순신 장군은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업적을 남겼고 최고의 제독이라고 칭송받아 마땅한 명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순신 장군이 이렇게 모든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기 때문에 무인적 기질을 타고 났던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순신이란 인물은 문무 모두에 출중했다.

 

 

  "살고자 하면 죽을것이,요 죽기를 각오하면 살것이다."

 

 

= 명문가 집안에서 나온 무관 이순신

 

  이순신의 집안은 조선 명문가인 덕수 이씨집안이었다. 대대로 훌륭한 학자와 관리들을 배출했던 집안이었다. 중종 때는 개혁정치가 조광조 일파에 속했는데,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죽음을 맞이한 이 후 집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후 이순신의 아버지였던 이정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해 일상생활까지도 어려운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순신은 32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무과에 급제하였다고 한다. 무과 급제 당시 그리 우수하지 못한 성적이었고, 좋은 집안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은 말단 관직을 맴돌다가 왜란 발발 4년 전에서야 죽마고우였던 유성룡의 도움으로 벼슬길이 열리기 시작했고 우여곡절 끝에 전라좌수사까지 올랐다.

 

 

= 활을 잘 다뤘던 이순신 장군

 

  이순신 장군은 쉬는 시간이면 시문을 즐기셨다고 한다. 또한 검술을 익히기 보단 활을 자주 쏘았다. 검과 활 모두 무예를 익히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예로부터  활쏘기는 선비들의 덕목을 기르기 위한 수단으로 중요시 여겨 졌다. 활쏘기는 평정심을 잃으면 과녁에 빗나가게 되기에, 공자님께서도 활쏘기를 통해 평정심을 유지하는 훈련을 중요시 하였다.

 

 『난중일기』를 보더라도 칼을 빼들고 검술을 연마했다는 구절은 없다. 그저 그는 활시위만을 당기고 또 당겼던 활을 든 선비였다.

 

 

 

 

= 조선군에게 군량미를 조달했던 이순신

 

  임진왜란 당시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군자금을 지원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렇게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전쟁을 하던 이순신에게 조정은 다른 장수들에게 지급할 군량과 일본에 보낼 사신의 배를 만들어라는 명령을 내리기 까지 했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이순신 장군은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끄셨다.

 

  원래 수군의 군량은 바닷가에 설치된 여러 고을이 책임지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비상시에는 원활할 리가 없었다. 이를 알고 이순신 장군은 일찌감치 자급자족의 방책을 마련했다. 농지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은 빈 땅을 찾아 수군이 직영하는 농장을 설치했다. 이렇게 군량을 조달할 농장을 경영했으며, 멀리 제주도까지 사람을 보내어 농사지을 소를 사오기도 하고, 전투가 없을 떄에는 고기잡이를 하여 고기를 비축하였다.

 

 

 

  대학생 기자단 배성영 /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정보통신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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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4.08.07 14:19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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