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가 강연 현장에서 답한 '이직할 때 고려할 점'

올 여름은 유난히 비가 자주 내렸다. 하지만 비구름 가득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설레는 날이 있었다. 바로 '청춘콘서트'가 있는 날. 기분 탓인지 아니면 날씨도 도와주었던 것인지 어두웠던 하늘도 점점 개어서 7월 8일 안산에서 열린 '청춘콘서트'를 보러 가는 발걸음은 점점 더 가벼워졌다.

'MBC 스페셜' 방송으로만 보았던 안철수 교수와 시골의사 박경철 원장을 눈앞에서 실제로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오늘은 어느 이야기를 해주실지 몹시 기대가 되었다. '청춘콘서트'라고 해서 내 또래의 대학생들이 모여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마음속의 '청춘'을 간직하고 있는 4, 50대 어른들도 많이 참석한 것을 보았다. 이런 분들을 보면서 '나중에 40대가 넘어서 이런 기회가 생긴다면 참여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강연 내용도 좋았지만 이날의 주제가 '미국의 사례로 본 일자리와 고용의 문제'인 만큼 주제와 관련된 청춘들의 질문과 멘토들의 답변을 중심으로 정리해보았다.


Q. 이직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직 시에 어떤 것을 고려해야 하나?

안철수 :
외국의 어느 신문에서 '지금 시대에는 더 이상 한 사람이 한 가지 직업으로 살수는 없다.' 라는 기사가 실렸다. 이처럼 한 가지 일을 하면서 평생토록 지내는 시대는 아니다. 하지만 이럴 때는 먼저 준비를 하면서 겹치는 시기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환경 운동에 정말 관심 있는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제일해서는 안 될 일이 회사 일을 열심히 하다가 55세 정년퇴임을 하고 그 다음날부터 환경운동을 하는 것이다.
 
막상 퇴임 다음날부터 환경운동을 하려고 하면 한 번도 안 해본 일이어서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고 아는 사람도 없고 적성에 맞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리 자신의 적성에 맞는 사람이더라도 방황을 하게 되면서 하고 싶던 일에 대해 실망을 하게 된다.

이 사람의 경우 정년퇴임 전 최소 5~10년 동안은 주말 시간을 이용해서 그에 대한 준비를 해야 된다. 예를 들어 환경운동 단체에 가입해서 주말 동안 봉사활동을 나가는 것이다. 환경단체 가입해서 주말 동안 봉사활동을 하고 사람들도 사귀고 공부도 하는 것이다. 그래야 관련된 일을 해보면서 적성에 맞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후 5년이 지나 정년퇴임을 했을 때에는 미리 경험과 준비를 한 상태이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 알고 있어서 그 다음날부터 바로 편하게 환경운동을 할 수 있다.

'도전'이라는 것은 이전의 것을 완전히 뿌리치는 것이 아니라 고생은 해도 병행하는 시기가 꼭 있어야 한다. 그 다음에 한 쪽을 버리고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것이 성공확률이 높을 것이다.
 

Q.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곽수종
교과서적인 답으로 대체하자면
1. 기업의 투자가 필요하다.
2. 안정 기금도 좋지만 벤처기업, 중소기업 육성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펀드를 만들어야한다.
3. 스탠퍼드 대학 내의 바이오산업을 위한 벤처 기업처럼 대학 내 산학 협력의 실질적인 연구 기관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안철수 : 우선은 현행법으로 할 수 있는 한 해야 한다. 두 번째로는 기존에 대한 설득이 필요할 것이다. 
현재 동물원 구조를 만들어서 제일 난감한 것은 동물원의 주인이다. 애플 아이폰을 여러 가지 규제로 막다가 갑자기 들어오면서 헤매고 있다. 모 전자업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 핵심적인 부분은 구글에서 제공을 해주고 있다. 구글에서 안드로이드와 같은 운영체제를 만들지 못했다면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대기업은 더 힘들어하고 있다.

바로 주위에 생태계를 만들지 못한 것이 원죄이다. 특히 SW 산업을 발전 못 시킨 것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금이라도 이것이 교훈이 되어 앞으로 이런 실수를 안 하기 위해서 내부적으로 고민을 했으면 좋겠다.

박경철
예전에는 누군가 하나가 성장하고 그 뒤를 따라 갔다면 지금은 그 질서를 바꿔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과거의 습관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한다.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우리 자신에게 해야 될 것이다. 그래야 기회가 생길 것이다.


Q. 정규직, 파견직, 계약직, 인턴 등 여러 종류의 직원이 있다. 나라에서 실업률을 낮추려고 청년 인턴을 취직시키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곽수종 : 방금 3가지 질문이 생각나서 여러분에게 질문을 하려고 한다. 여러분과 같이 풀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1. 만약에 우리 정치, 경제, 사회 모든 구조가 내일 당장 미국처럼 바뀐다면 일자리 문제가 없어질 수 있을까? 일자리의 차별화는 없어질 수 있을까?
2. 노조가 만들어져서 단수노조, 복수노조가 된다면 노조가 없는 세상보다 더 행복한 세상이 만들어질 것인가?
3. 행복을 찾기 위해 일자리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인가? 아니면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일자리 문제를 논하는 것인가? 

미국에는 두 가지 형태의 일자리가 있다. 그 중 한 가지 형태는 주지사가 바뀌면 잘린다. 미국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만큼 노동자의 계층이 다변화하한다. 가장 큰 문제는 2년마다 바뀐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브로커가 끼어서 노동자가 받아야 할 임금을 브로커들이 돈을 갖고 가는 것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문제는 '어떤 일을 할 때 행복할까?'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주어진다면 괜찮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 대우를 해준다고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다고 이야기할 것이다.   

박경철 : 제도적 측면에서 보면 시간제 근로는 복지가 잘 이루어져있는 북유럽에서 만들어졌다. 집에서 할 일이 없는 여성들을 위해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 나온 제도이다. 아이를 키우다가 자아실현의 기회를 살리기 위해 만든 것이 시간제 파견 근무인 것이다. 하지만 요리사의 칼과 강도의 칼처럼 양면성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비정규직, 기간제 근로에 대해서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당당히 거부해야 된다. 그리고 엄격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한시적인 사업인 경우 ,현재 부족한 인력을 보충하기 위한 경우 ,퇴직 근로자의 경우에 재사용 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비정규직, 기간제 근로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는 주권을 갖고 있고 옳고 그름과 본질에 대해서 간파하고 있다. 자각하고 탈환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안철수 : 실업률을 측정하는데 우리가 모르는 왜곡된 점이 있다. 바로 취업을 하려고 노력하다가 해도 해도 안 되어 포기하는 사람은 직업은 없어도 실업자가 아니다. 또 다른 맹점은 우리나라의 경우 자영업자 비율이OECD 국가 중 제일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자영업자들이 자신의 피를 빨아서 먹는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거의 다 소진하면서 사는 경우가 많다. 실업자가 아니라고 보기 힘들다. 이런 왜곡된 점에 의해 우리나라의 실업률은 OECD 국가 중 높은 편은 아니다.
 
반대로 고용률을 보면 명백히 낮은 편이다. 특히 청년 고용률은 OECD 국가 중 거의 최하위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상황은 좋지가 않다. 하지만 실업률 통계만 보면서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는 여성들은 가사만 돌보면 되었지만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일을 해야 한 가정을 꾸릴 수 있다. 어떤 계층에서 정말로 명백하게 몇 %가 일하고 있는지 확인해봐야 된다. 그리고 국가에서도 몇 %로 끌어올릴 것인지 목표를 세워야 한다. 이런 것이 맞는 접근 방법이라고 본다.


Q. 지금의 대학교나 대학원에서 배우는 지식이나 정보가 5년~10년이 지나면 무의미한 정보가 될 수 있는데 대학생은 어떤 것을 배워야 하고 이런 학생들을 위해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안철수 : '대학교에서 배우는 지식들이 얼마나 버틸 수 있나?' 라는 통계가 있다. 통계 결과를 보면 업종 평균 5년 정도 지나면 5년 전의 절반이 없어지고 바뀐다. 현재 세계 최고의 수준의 사람도 5년이 지나면 절반은 못 쓰는 내용이 되는 경우가 되니까 비전문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이다. 일반적인 분야는 5년이지만 변화가 빠른 IT분야는 2년이다. 힘들 수 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되는 것이다. 

선진국일수록 제도권 교육보다는 대학 졸업 후의 평생공부에 비중을 많이 둔다. 직장 갖는 것을 보면 대학 때까지는 제도권 공부라고 보면 직장을 다니는 이후부터는 평생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전문성을 높이거나 다른 직업으로 잘 넘어갈 수 있게 하는 것이 평생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OECD 평균에 비해 우리나라의 중, 고등학교 사교육비는 1위. 그리고 대학 등록금은 전 세계 2위로 미국 다음으로 높다. 반면에 평생 교육비는 OECD 국가 중 꼴찌이다. 급변하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평생 교육비에 투자를 해야 하는데 평생교육에 대해서는 낮은 수준을 보이는 것일까? 이유를 보면 우리나라 부모들이 자식들을 위해서 자신의 평생 교육비까지 중, 고등학교 사교육비에 뿌리는 것이다. 이런 것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전체 구조도 고쳐져야 되고 이런 관점에서 대비를 해야 될 것이다. 

박경철 : 덧붙여서 지혜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식은 외부와 함께 공유하지만 지혜는 내면이다. 지혜는 배울 수 없는 것이고 습관적인 삶은 지혜가 안 된다. 지혜는 치열하게 살고 내면의 불꽃을 흩뜨리지 않는 것이다. 지식을 활용하는 것은 지혜라고 본다. 그리고 나와 관계하면서 사색과 성찰을 통해 만드는 것 같다. 그래야 안목과 통찰과 직관을 키울 수 있다고 본다.
 

곽수종 : 경제학적인 측면에서 투자한 것이 노동생산력과 GDP로 제대로 나오려면 17년이 걸린다.
지금까지 가졌던 패러다임은 '30년의 압축성장','빨리빨리', '공동체', '충성', '우리는 하나다' 이었다. 이제는 이 개념을 조금 느리게 가져야 하고 새로운 전략과 전술을 구사해야 될 것이다.


끝으로 안철수 교수의 정리

처음 사회문제, 리더십에 대한 강연 요청을 받았었다. 해보니까 단순한 지식전달이 아니라 깨달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드리는 게 답인 것 같다고 느껴서 지금의 청춘콘서트 형태로 진행을 하게 되었다. 그 중 청춘 콘서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 처음 받았던 어떤 청중분의 고민이 기억난다.

'지금 28,29세인데 새롭게 전공을 찾거나 변화를 하려고 하니까 주변 친구들에 비해 늦은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그 분께 그 당시 나갔던 모임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모임의 주류가 70대 분들이었다. 이제 막 60인 분이 가장 어린 분이었다. 이제 환갑이 된 가장 어린 분에게 70대 분들이 둘러싸고 축하하면서 '자네가 부럽네, 자네 나이면 못할 것이 없겠네.' 라는 말씀을 했다. 70대 분들이 10년 후 뒤를 돌아보고 나니까 그 분들이 60이었을 때 뭔가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나이였고 그때도 충분했는데 왜 스스로 주저앉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 것이다. 

어르신들의 말씀을 듣고 보니 '정말로 세상에는 늦었다는 것은 없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60세도 새로 시작할 수 있고 더 나아가 70세도 시작할 수 있는 나이라고 본다. 혹시나 아직 젊은데도 늦은 나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이 분들의 대화가 조그만 격려가 되었으면 한다. Ahn 
 
대학생기자 김재기 / 한양대 안산 컴퓨터공학과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타고난 천재가 아닌 이상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항상 노력하는 대학생기자 김재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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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최승호 2011.08.31 11:39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멘트 옆에 있는 사진들이 마치 현장을 보는듯 하네요ㅎㅎ
    센스 최고이십니다 ^^

  2. 너서미 2011.08.31 17:10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아~ 저도 현장에 가봤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지난 번 MBC스페셜 그 프로도 관심있게 봐서 그런 지
    포스팅도 마치 방송 프로를 정리한 느낌입니다.

    • Jack2 2011.08.31 21:58 신고  Address |  Modify / Delete

      9월 달에도 청춘콘서트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확인하시고 가까운 지역 있으시면 http://cafe.daum.net/chungcon 여기에 들어 가셔서 신청하시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방송에서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점이 있으므로 강추합니다 ^^

  3. 러브멘토 2011.08.31 20:44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구구절절 느끼는바가 많네요.
    잘 읽었습니다.

  4. 香格里拉 2011.09.21 16:01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한양대 안산 컴퓨터공학과 김재기 님, 굳이 안산은 붙이지 않으셔도 돼요. 공대인은 학교나 지역이 아닌 실력과 노력으로 말하는 겁니다. ㅎㅎ

    • Jack2 2011.09.21 17:59 신고  Address |  Modify / Delete

      ㅎㅎ 서울 캠퍼스로 오해하는 분들이 있으셔서
      다시 서울 아니라 안산 캠퍼스에요
      이런 말을 자주하게 되어서 처음부터 쓰게 되었어요
      그냥 사실그대로 알리기 위할 뿐 다른 뜻은 없습니다.
      당연히 실력과 노력으로 말하는
      공대인이 되야죠 ^^

이직 후 전 직장 동료에게 보내는 애틋한 편지

 

[V3 개발 22주년] 전 안랩인의 '그땐 그랬지' (2)



안녕하세요. 네트웍 유닛에서 일했던 김태형입니다.

제가 안철수연구소를 떠난 지 벌써 3년이 지났군요. 이 글을 보실 안랩의 식구들 중에는 저와 함께 일한 적이 없는 분도 꽤 많을 것 같습니다. 요즘 월드컵이 한창입니다만, 저는 2002년 월드컵이 있던 그 해 봄에 안랩에 입사했습니다. 그 후로 월드컵이 두 번 지났으니 정확하게 8년 전이군요. 월드컵의 함성 소리를 들으면 2002년이 떠오르고 그 해는 제가 안랩과 인연을 맺었던 해이 시기에 맞춰서 마침 안랩 식구들에게 인사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안랩에 있던 5년 동안 이런저런 일들을 했습니다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제가 PM(프로젝트 매니저)을 맡았던 '트러스가드' 프로젝트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안랩에서도 네트웍 보안 사업이 상당 부분 차지하는 비중이 있겠습니다만, 제가 안랩에 다니던 당시에는 그러한 네트웍 어플라이언스 제품은 라인업에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던 안랩이 내놓은 최초의 어플라이언스 장비가 '트러스가드'였습니다. 덕분에 나름대로 고생도 많이 하고 보람도 많이 있었습니다만 (실수도 있고 책망을 들은 일도 물론 많았습니다만 그런 것들은 접어두기로 하고… )

지금 돌이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사건 중 하나는 처음으로 큰 사이트인 **제철에 제품설명회를 하러 가던 날의 일이네요
트러스가드라는 네트웍 보안 제품을 우여곡절 끝에 출시하긴 했는데, 안랩이라는 회사 자체가 V3 제품군으로만 워낙 각인이 깊게 되어 있고, 전통적인 네트웍 보안 하드웨어 제품 시장에서는 신인이었던지라 당시에는 레퍼런스 사이트가 될 만한 고객을 잡는 게 참 힘들었고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중이었습니다.

그런 중에 그런 큰 규모의 사이트와 컨택이 된 거였죠.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당시의 담당자들이 열심히 제품설명회를 준비했는데 막상 그 사이트로 출장 가기로 한 날태풍이 온 겁니다. 예약했던 비행기는 물론 결항이 되었고요. 그쪽에서도 일기가 매우 나쁘니 다음에 보자는 연락이 왔더군요.

 

하지만 저희는 괜찮습니다를 외치며 그 태풍으로 인한 비바람을 뚫고 출장을 강행했습니다. 제품설명회를 위한 발표자료는 물론이고 시연과 시험 설치를 위한 트러스가드 박스들을 어깨에 하나씩 메고 기차를 탔지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네트웍 장비가 결코 가볍지가 않습니다우산을 들 손은 부족하고 비바람은 엄청나게 몰아치는 그 상황에서도 다들 한 생각은 다 하나였습니다.
'
몸은 젖어도 되는데, 장비는 젖어서 시연 못하면 안 된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게 무슨 70년대 새마을 운동 같기도 한데 그때 우리 생각은 정말 그랬습니다. 정말로 양복들은 거의 젖었는데 장비 박스는 최대한 비를 피해서 무사히 제품 설명 및 시연과 시범 설치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철 분들은 그 태풍을 뚫고 굳이 왔느냐고 놀라셨고 그런 성의를 보였던 때문인지 제품설명회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고 시범 설치에서도 좋은 성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워낙 큰 사이트에 대규모 사업이었던지라 이런저런 추가 요구 사항도 있고검토 과정도 워낙 오래 걸리고 하다보니 결국 그로부터 2년 여가 지나서 제가 안랩을 떠날 때까지도 가시적인 결과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결국 그 **제철과 트러스가드 사업이 진행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안랩을 떠나있긴 합니다만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면서 뿌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이 일화를 생각하면서 떠오른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제가 안랩에서 트러스가드 프로젝트를 맡기 이전에도 안랩에는 네트웍 보안 사업을 추진하던 팀이 두 개 있었는데 결과를 못 맺고 해당 팀이 해체되었습니다. 그 팀들이 해체된 후 제가 입사했으니 당시의 저로서는 히스토리를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취를 나중에 맞닥뜨리게 되었으니 트러스가드 프로젝트를 한참 진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창고에 버려져(?) 있던 테스트 장비의 존재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지금도 안랩의 QA에서 사용하지 싶은데 '스마트비트'라는 네트웍 부하 테스트 전문 장비였죠. 트러스가드 같은 네트웍 보안 장비의 개발에는 필수적이면서도 매우 비싼!!!“ 테스트 장비였는데, 예전 팀에서 장만해놓은 것이 그대로 남아있었던 겁니다.

 

추측이긴 합니다만, 몇 천 만원 짜리 테스트 장비를 회사 돈으로 구매하는 절차가 쉬웠을 리는 없었죠? 게다가 언제 제품을 낼지 어떤 제품을 내야 할지 명확한 계획이나 일정이 확정된 것도 아니었고, 실제로 그런 장비가 안랩의 이름을 달고 나오기까지는 그 후로 여러 해가 지난 후였으니 아마도 그 당시에 장비 구매의 당위성을 설득하기가 정말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담당자는 아마도 제가 태풍을 뚫고 장비를 어깨에 메고 지방 출장을 갔던 그런 심정으로 그 장비를 사놓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테스트 장비는 제가 트러스가드를 만들 때 큰 도움이 되었고, 제가 했던 그때의 제품설명회는 제가 퇴사한 후에 정식 사업으로 열매를 맺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안랩 식구들을 떠난 사람으로서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쑥스럽기는 합니다만, 언제 어디에 있건, 그리고 지금의 자리를 언제 어떻게 떠나게 되든, 그 자리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소중하게 뿌린 씨앗은 언젠가는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안랩에 있을 때 좀더 잘했으면 좋았겠다는 후회도 많이 있습니다만,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던 그 몇몇 순간들은 이제는 비록 제가 그 열매와는 직접 관련 없는 자리에 있을지라도 제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또 한번 열심히 살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도 가끔 그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우리가 왕년에 태풍 뚫고 포항 가던 때를 얘기하곤 합니다. 생각해보면 나중에 사업의 성과가 있었던 얘기를 못 들었더라도 이미 열매는 그때의 우리들 안에서 맺었던 것 같네요. 지금의 안랩 식구들 모두 그런 열매를 풍성하게 맺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월드컵 코리아도 파이팅이고요.^^ 어쩌면 팔불출의 자식 자랑 같기도 한 이야기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그 시절 함께 일했던 트러스가드팀의 멤버들, 네트웍 유닛 식구들 모두 그립습니다. Ahn 

 

김태형 / SK커뮤니케이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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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라이너스 2010.06.22 09:05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따뜻한 정이 느껴집니다.^^
    멋진글 잘보고갑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 litlwing 2010.06.24 14:48  Address |  Modify / Delete

      "애틋한 편지" 같은 제목은 제 손으로는 닭살스러워서 못 붙였을텐데 안랩사보팀에서 붙여줬군요. 손발이 오글오글 거립니다. ^^
      잘보셨다니 감사합니다.

  2. 안현진 2010.06.22 18:00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김책임님. 잘 계시죠?
    코끝이 찡해요. 보고퍼요..
    김책임님이 뿌린 아이디어큐브도 씨앗이 움터 잘 운영되고 있어요.^^

    • litlwing 2010.06.24 14:49  Address |  Modify / Delete

      반갑습니다. ^^
      종종 찾아뵙고 싶습니다만 직장에 매인 몸이... 그렇게 잘 안되는군요. 가을이 오기 전에 한번 뵈요~

  3. 박근우 2010.06.24 17:06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감동스런 글입니다.
    김 책임님 같은 분이 있어 안랩이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겠지요.
    지금은 다른 곳에 계시지만 건승하세요.

    • litlwing 2010.07.07 13:11  Address |  Modify / Delete

      언제나 "사람 좋은 미소"와 눈웃음으로 사람들을 대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그렇게 부드러운 말씀과 눈웃음으로 사람들을 편하게 대해주고 계시겠죠? ^^

다른 회사 이직 후에 돌이켜보는 전 직장의 추억

[V3 개발 22주년] 전 안랩인의 '그땐 그랬지' (1)


2005년 여름 안철수연구소에 입사해 2008년까지 안랩인으로 약 3년을 지낸 후 안랩을 떠나 다른 곳에 몸 담은 지 벌써 2년이 되어간다. 입사부터 퇴사까지 안랩에서 나는 온라인 보안 서비스인 AhnLab Online Security의 PM(프로젝트 매니저)으로 근무했다.

 

대개의 회사에는 공통적으로 주 매출원이 되는 제품과 그렇지 못한 기타 제품이 있다. 안랩 역시 여러 가지 제품 라인과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V3가 당시 주 매출원이었고 ASP(온라인 보안 서비스) 영역은 개발된 지 얼마 안 된 터라 매출에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또한 사용자가 1000만 명 이상에 달하고 커널 레벨의 드라이버에 접근해야 하는 제품의 특성상 장애 빈도가 높을 수밖에 없었다. ASP 파트는 PM, 영업, 마케터, 개발자 할 것 없이 장애가 발생하거나 보안 이슈가 발생하면 어김없이 고객사인 금융권에 방문해 해명하거나 대안을 제시해야 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때로는 사내에조차 ASP제품군을 애물단지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었다.

 

돌이켜보면 ASP 파트의 많지 않은 인원이 수많은 이슈를 해결해 나간 시간은 기적이었다. 이것은 당시 팀원들의 담당 제품에 대한 뜨거운 애증과 개발자로서의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 때문에 가능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ASP 제품에 대한 불신과 부당한 대우가 있을 때면 성격 급한 내가 먼저 화를 내버렸기 때문에, 정작 개발자들은 화를 제대로 내보지도 못하고 서로를 위로하거나 농담으로 분위기를 돌렸을 것이라는 생각에 문득 미안해진다

 

업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회사는 물론, ASP 파트 내부에서도 가장 말 많고 탈 많고 고생 많던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마이키디펜스(MyKeyDefense; 키보드로 입력되는 정보의 유출을 방지하는 보안 서비스)를 빼놓을 수 없다. 그 많은 크로스 해킹(cross-hacking)과 금융권 이슈들, 회의들, 임신으로 부른 배를 안고 외부 회의에 들어간 약간 민망했던 기억들. 

 

Cross-hacking에서 타 제품 개발자가 MyKeyDefense의 보안 체계를 뚫지 못했을 때의 쾌감이란 고생을 함께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AhnLab Online Security가 멕시코 등 남미 지역에 판매되고 구축될 때도 담당 제품 PM으로서 매우 뿌듯했다. 임신이 아니었다면 멕시코로 날아가서 직접 영업을 도왔을지도 모른다. 해외 시장에서 얼마만큼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지금도 참 많이 궁금하다.

 

사실, 안랩의 ASP 제품들은 훌륭하다. 당시 그 분야의 기술력도 타 제품 대비 최고였고, 개발자도 최고였고, 열의도 최고였다. 아마 지금도 ASP 제품과 담당자들은 그러할 것이다. 그렇지만, 시장에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다른 문제였고, 현실적인 제약 상황과 과열 경쟁으로 낮게 책정된 시장 가격 때문에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으리라 믿는다. 후임 PM인 지창해 책임과 ASP 파트 개발자들이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기를...
   

난 성격이 별로 사교적이지 못해 업무적으로 알던 분들 말고는 친한 동료가 많지 않았던 점이 안랩을 떠난 후 가장 아쉬운 점이다. 고객만족센터 진화정 과장이 임신 후에 갑자기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어서 좀 가까워진 정도랄까.

 

그렇지만, 안랩에서 함께 일한 개발자들은 아직도 친구 같고 선배 같고 동생 같다. 함께 오래 일한 당시 ASP개발자들, 양재갑 선임, 이연조 선임, 김한주 선임, 홍성진 선임최종두 선임, 김영민 주임과 입사 동기인 김창희 차장, 처음에 MyKeyDefense의 중심 잡아주신 기반기술팀 김성현 팀장, 사투리 억양의 표준어를 정중하게 구사하는 김점갑 수석 등 고마운 분들 다 나열하고 한 마디씩 전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다. 아마 그분들도 가끔은 내 소식이 궁금하지 않을까.

 

언젠가 이곳 팀 동료가 회사 포털 서비스 로그인 화면에 서비스 중인 AhnLab Online Security 업데이트 공지를 참고하라며 메일을 전달해주었는데 참 기분이 묘했다. 세상은 너무나 좁다. 지금 회사에서는 안랩에서 무슨 일이 있다고 기사가 뜰 때마다, 혹은 보안 이슈가 있을 때마다 나에게 물어보곤 한다. 안랩의 미스테리한 매력은 여기 사람들에게도 어필하는 것 같다. 당황스러운 것은 안랩 출신이면 바이러스 분석쯤은 거뜬히 하는 줄 안다. 그래서였을까, 팀 내 서버들에 동작하는 애플리케이션의 메모리 문제들을 프로파일링, 분석하고 패치한 후 들은 소리가, "안랩에서 오셔서.." 였다.

 

나는 여기서 서버 모듈 개발을 담당한다. 이곳도 나름대로 여러 가지 개발 프로세스를 적용하고는 있지만, 아직 채워야 할 빈 틈이 많아서 종종 안랩의 융통성 없기까지 한 개발 프로세스가 많이 그립다안랩 개발팀의 그 치열함과 진지함, 그리고 얕은 계산 할 줄 모르는 고지식함과 순박함이 그립다안랩은 자타가 공인하는 개발자들의 최고의 일터인 것 같다.

 

밖에서는 백신에 대해 어떤 제품은 특정 악성코드를 잡는데 V3는 못 잡는다 류의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지지만,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으니 안타깝다. 요즘 ASD(AhnLab Smart Defense)로 진단률을 많이 올릴 수 있다니 다행이다.

역시 아직도 안랩은 백신 업체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안랩에 애정을 갖고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서 안랩이 백신 이외의 여러 보안 분야에서도 선구자 위치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Ahn

 

 

김진영 / 다음커뮤니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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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ch 2010.06.18 16:34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실행력 최고였던 멋진 분이셨죠. ^^ 엉크러진 이슈들을 한올 한올 멋지게 풀어나아가시던 모습이 아직도 선 합니다.
    바로 옆 PM이다 보니 많이 비교 당했어요 ... ㅜㅜ;;
    암튼.. 결혼을 하셔도.. 아이를 둘이나 낳으셔도 한결같으시네요~~ 화이팅~!!

    • 김진영 2010.06.24 19:11  Address |  Modify / Delete

      아...저야 말로, 비교 많이 당했었죠. ^^
      그래도, 같이 일했던 시간들이 많이 생각나요. TDM 도 그렇고.. ㅎ~ 언제 함 안랩에 가보고 싶은데, 통 건수가 안 만들어 지네요~ 쩝.

  2. LJY 2010.06.23 13:54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와..오랫만에 글을 뵈니까 꼭 옆에서 이야기 듣는것 같네요. 같이 일할 기회도, 친해질 기회도 없었지만 워낙 칭찬이 자자하셔서~~잘 알고지냈던것 같은 느낌이네요.
    안랩 미인중 한분이셨고 ~ ^^ 어찌되었건..........계시는 곳에서도 빛을 발하고 계시리라 생각되요. 언제나 화이팅입니다.

    • 김진영 2010.06.24 19:16  Address |  Modify / Delete

      이니셜로는 누구실까.. 추측이 어렵네요.. ㅜㅜ 계실동안 많이들 도와주시고, 부족한 부분 채워주셔서 큰 사고(?) 안 칠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미인이라니.. 백만년만에 듣는 말이라,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