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D. 이 세글자를 한 번도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18분의 마법이라는 이름으로 언젠가부터 한국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고, TEDx 열풍이 불면서 우리나라에도 많은 사람들이 접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수많은 TEDx 행사가 열리지만, 정작 TED 행사가 실제로 어떻게 열리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알 수 없었다. 그 이유는 TED가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열리고, 참가비가 7-800만원에 이를만큼 무척 비싸며, 에세이를 써서 통과되어야 참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봄, 독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되었고 우연히 좋은 기회를 얻게 되어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2013년 6월 10일부터 14일까지 열렸던 TEDGlobal 2013에 참가하게 되었다. TEDGlobal에 참여했던 5일은 그 어떤 놀라운 수식어를 붙여도 모자르지 않을 여정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동안 제대로 깨닫지 못했던 불편한 부분도 알게 되었다. 지금부터 그 5일간의 여정을 짧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TEDGlobal 2013에는 전 세계 66개국에서 900여명이 참가하였고, 80여명의 연사가 무대에서 강연을 하였다.
TEDGlobal 2013의 주제는 Think Again이었다. 세상의 변화하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고, 우리가 확신하던 것과 당연시 여겼던 것들이 매일매일 도전 받고 있는 환경에서 잠시 멈추고 다시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주변에서도 그러한 사례를 많이 찾아볼 수 있었다. 과학계에서만 해도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 발견되는 것들 때문에 기존의 지식이 틀리게 되는 경우를 볼 수 있고, 새로운 기술의 개발로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것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컨퍼런스 시작 하루 전, 하루 종일 있었던 워크샵에 참여하고 난 뒤 첫째날이 되었다. 첫째날 오전에는 여러가지 투어 프로그램이 제공되었다. 건축 투어, 실험실 투어, 야생의 음식을 체험하는 투어 등이 있었는데 그 중 건축 투어를 선택하여 에딘버러의 몇가지 인상적인 건축물들을 설명과 함께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투어를 마친 후 오후에는 기업 관계자가 연사로 서는 TED Institute 세션이 있었고, 컨퍼런스 참가자가 직접 연사가 되는 TED University 세션이 있었다. 특히 TED University 세션에서는 Airbus의 엔지니어도 직접 발표를 하기도 했고, 태어날 때부터 병이 있었던 아이가 그것을 극복한 이야기, TED에 처음 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TED를 즐길 수 있는지에 대해 소개해주는 내용이 있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국립스코틀랜드박물관에서 Welcome Reception이 있었다. 박물관을 통째로 빌려서 박물관의 전시도 보면서 로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하는, 그동안 해보지 못했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둘째날 아침은 TED University 두번째 세션으로 시작했고, 드디어 본 행사의 첫번째 세션을 만날 수 있었다. 본 행사 이전에는 모두 별도의 공간에서 진행되었는데 이제서야 본 행사장의 무대를 확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특별한 일이 있었는데, 그리스 전 국무총리가 TEDGlobal의 연사로 서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어서 참가자들의 안전을 조심하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 시위는 큰 충돌없이 끝났고, 약간 뒤숭숭한 분위기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많은 강연들은 꽤나 흥미로웠다. 특히 두번째 세션에서는 요즘 많이 주목받고 있는 드론에 대해서 주로 언급되었고, 취리히 공대에서 온 교수의 시연은 항공우주공학을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에서 정말 대단했다. 또한 뇌과학, 심리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세션도 많아서 꽤나 흥미롭게 들을 수 있었다.
이후 금요일까지 진행되는 세션도 모두 비슷했다. 특정 분야에만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 강연으로는 중국의 벤쳐캐피탈리스트인 Eric X. Li의 민주주의와 중국의 정치체계에 대한 이야기, 스위스 로잔공대 교수의 척수 손상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 Sandra Aamodt라는 뇌과학자의 다이어트에 대한 이야기, Joseph Kim이라는 탈북자의 이야기, 마이클 샌델 교수와 마이클 포터 교수의 토론 등 정말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다.
그런데 이런 강연 말고도 거기에 온 참가자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무척 귀한 시간이었다. 전 세계 각지에서 온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사람 중 한 명은 바로 연사로 섰던 Joseph Kim이었는데, 지금까지 북한에서 태어난 사람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었던 탓이었다. 더구나 Joseph Kim의 경우 6-7년 전에 힘들게 북한을 빠져나와 미국으로 보내졌는데, 그래서 처음에는 영어로 대화를 하다가 이내 곧 한국어로 대화를 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서로의 말은 알아듣기 쉬웠고, 한편으로 한국과 북한이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도 바로 볼 수 없고, 이렇게 먼 타지에서 처음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참 씁쓸했다.
이 밖에 몇가지를 더 소개하면, TED에서는 오직 TED에서만 만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많이 제공한다. 앞서 언급한 투어프로그램을 비롯하여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제공한 저녁, 각종 체험 환경 등 TED의 행사장에는 각종 부스들이 많이 마련되어 있었다. 앞서 강연에서 소개했던 드론의 동작을 직접 시연하기도 하고, 바퀴벌레에 전기 자극을 주는 것을 시연하거나, 3D Printer 시연 등 다양한 것들을 직접 체험해볼 수 있었다. 또한 각종 음료나 간식들이 무제한으로 제공되었고, 지하에는 편하게 누워서 볼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이것은 배고픔이나 졸음 등 다른 걱정 없이 편하게 컨퍼런스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렇게 마지막 날까지 5일 간 모든 세션이 끝나고, Farewell Picnic으로 꿈 같았던 날들이 마무리되었다. 사실 이 글에 강연에 대한 내용이 많이 언급되어 있지 않은 이유는 이 모든 강연 내용이 온라인에 공개되어 있거나, 공개될 예정이고 그곳에서 들었던 강연의 숫자가 100개에 육박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강연과 참가자들간의 교류에만 신경쓸 수 있었던 5일이었다. 또한 한 가지 인상적이었던 점은 TED 관계자나 연사, 참가자 사이에서 어떤 우위의 관계가 없이 행사 중에 동등한 대우를 받으며 동등한 위치에서 교류가 이뤄진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또는 다른 행사에서는 쉽게 보지 못한 모습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다녀오게 되고 나서 그 모든 것이 꿈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비판적인 시선도 많이 갖게 되었다. 아무리 강연에서 좋은 이야기를 한다지만, TED 자체는 참가비도 지극히 비싼데다 너무나도 호화스러웠다. 물론 온라인으로 무료로 시청할 수 있게 하는 비용이 컨퍼런스 참가자와 후원사를 통해 충당된다고도 생각할 수 있는데, 조금 이중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또한 어떤 강연은 너무나도 수준이 낮은 숫자놀이에 불과한 강연임에도 다들 열심히 박수치면서 보는 것을 보고 정말 실망스러웠고, 모든 것을 무조건적으로 좋게 받아들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다. TED는 너무나도 미국스러웠고, 미국의 자본주의에서 온 하나의 산물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은 TED라는 플랫폼 안에 들어있는 강연의 내용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영감을 주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기 때문이 아닐까. 앞으로도 평소에 쉽게 접하지 못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TED를 통해 얻을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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