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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랩人side/안랩!안랩인!

이직 후 전 직장 동료에게 보내는 애틋한 편지

 

[V3 개발 22주년] 전 안랩인의 '그땐 그랬지' (2)



안녕하세요. 네트웍 유닛에서 일했던 김태형입니다.

제가 안철수연구소를 떠난 지 벌써 3년이 지났군요. 이 글을 보실 안랩의 식구들 중에는 저와 함께 일한 적이 없는 분도 꽤 많을 것 같습니다. 요즘 월드컵이 한창입니다만, 저는 2002년 월드컵이 있던 그 해 봄에 안랩에 입사했습니다. 그 후로 월드컵이 두 번 지났으니 정확하게 8년 전이군요. 월드컵의 함성 소리를 들으면 2002년이 떠오르고 그 해는 제가 안랩과 인연을 맺었던 해이 시기에 맞춰서 마침 안랩 식구들에게 인사를 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안랩에 있던 5년 동안 이런저런 일들을 했습니다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래도 제가 PM(프로젝트 매니저)을 맡았던 '트러스가드' 프로젝트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안랩에서도 네트웍 보안 사업이 상당 부분 차지하는 비중이 있겠습니다만, 제가 안랩에 다니던 당시에는 그러한 네트웍 어플라이언스 제품은 라인업에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던 안랩이 내놓은 최초의 어플라이언스 장비가 '트러스가드'였습니다. 덕분에 나름대로 고생도 많이 하고 보람도 많이 있었습니다만 (실수도 있고 책망을 들은 일도 물론 많았습니다만 그런 것들은 접어두기로 하고… )

지금 돌이켜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사건 중 하나는 처음으로 큰 사이트인 **제철에 제품설명회를 하러 가던 날의 일이네요
트러스가드라는 네트웍 보안 제품을 우여곡절 끝에 출시하긴 했는데, 안랩이라는 회사 자체가 V3 제품군으로만 워낙 각인이 깊게 되어 있고, 전통적인 네트웍 보안 하드웨어 제품 시장에서는 신인이었던지라 당시에는 레퍼런스 사이트가 될 만한 고객을 잡는 게 참 힘들었고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던 중이었습니다.

그런 중에 그런 큰 규모의 사이트와 컨택이 된 거였죠. 이런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당시의 담당자들이 열심히 제품설명회를 준비했는데 막상 그 사이트로 출장 가기로 한 날태풍이 온 겁니다. 예약했던 비행기는 물론 결항이 되었고요. 그쪽에서도 일기가 매우 나쁘니 다음에 보자는 연락이 왔더군요.

 

하지만 저희는 괜찮습니다를 외치며 그 태풍으로 인한 비바람을 뚫고 출장을 강행했습니다. 제품설명회를 위한 발표자료는 물론이고 시연과 시험 설치를 위한 트러스가드 박스들을 어깨에 하나씩 메고 기차를 탔지요.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네트웍 장비가 결코 가볍지가 않습니다우산을 들 손은 부족하고 비바람은 엄청나게 몰아치는 그 상황에서도 다들 한 생각은 다 하나였습니다.
'
몸은 젖어도 되는데, 장비는 젖어서 시연 못하면 안 된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게 무슨 70년대 새마을 운동 같기도 한데 그때 우리 생각은 정말 그랬습니다. 정말로 양복들은 거의 젖었는데 장비 박스는 최대한 비를 피해서 무사히 제품 설명 및 시연과 시범 설치를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습니다.

 

**제철 분들은 그 태풍을 뚫고 굳이 왔느냐고 놀라셨고 그런 성의를 보였던 때문인지 제품설명회 분위기는 상당히 좋았고 시범 설치에서도 좋은 성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워낙 큰 사이트에 대규모 사업이었던지라 이런저런 추가 요구 사항도 있고검토 과정도 워낙 오래 걸리고 하다보니 결국 그로부터 2년 여가 지나서 제가 안랩을 떠날 때까지도 가시적인 결과물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결국 그 **제철과 트러스가드 사업이 진행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안랩을 떠나있긴 합니다만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르면서 뿌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이 일화를 생각하면서 떠오른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실 제가 안랩에서 트러스가드 프로젝트를 맡기 이전에도 안랩에는 네트웍 보안 사업을 추진하던 팀이 두 개 있었는데 결과를 못 맺고 해당 팀이 해체되었습니다. 그 팀들이 해체된 후 제가 입사했으니 당시의 저로서는 히스토리를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자취를 나중에 맞닥뜨리게 되었으니 트러스가드 프로젝트를 한참 진행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창고에 버려져(?) 있던 테스트 장비의 존재 때문이었습니다. 아마도 지금도 안랩의 QA에서 사용하지 싶은데 '스마트비트'라는 네트웍 부하 테스트 전문 장비였죠. 트러스가드 같은 네트웍 보안 장비의 개발에는 필수적이면서도 매우 비싼!!!“ 테스트 장비였는데, 예전 팀에서 장만해놓은 것이 그대로 남아있었던 겁니다.

 

추측이긴 합니다만, 몇 천 만원 짜리 테스트 장비를 회사 돈으로 구매하는 절차가 쉬웠을 리는 없었죠? 게다가 언제 제품을 낼지 어떤 제품을 내야 할지 명확한 계획이나 일정이 확정된 것도 아니었고, 실제로 그런 장비가 안랩의 이름을 달고 나오기까지는 그 후로 여러 해가 지난 후였으니 아마도 그 당시에 장비 구매의 당위성을 설득하기가 정말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담당자는 아마도 제가 태풍을 뚫고 장비를 어깨에 메고 지방 출장을 갔던 그런 심정으로 그 장비를 사놓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 테스트 장비는 제가 트러스가드를 만들 때 큰 도움이 되었고, 제가 했던 그때의 제품설명회는 제가 퇴사한 후에 정식 사업으로 열매를 맺은 것 같습니다.

 

이제는 안랩 식구들을 떠난 사람으로서 이런 말씀을 드리기가 쑥스럽기는 합니다만, 언제 어디에 있건, 그리고 지금의 자리를 언제 어떻게 떠나게 되든, 그 자리에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소중하게 뿌린 씨앗은 언젠가는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안랩에 있을 때 좀더 잘했으면 좋았겠다는 후회도 많이 있습니다만,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던 그 몇몇 순간들은 이제는 비록 제가 그 열매와는 직접 관련 없는 자리에 있을지라도 제가 지금 있는 자리에서 또 한번 열심히 살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도 가끔 그때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만나곤 하는데 우리가 왕년에 태풍 뚫고 포항 가던 때를 얘기하곤 합니다. 생각해보면 나중에 사업의 성과가 있었던 얘기를 못 들었더라도 이미 열매는 그때의 우리들 안에서 맺었던 것 같네요. 지금의 안랩 식구들 모두 그런 열매를 풍성하게 맺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월드컵 코리아도 파이팅이고요.^^ 어쩌면 팔불출의 자식 자랑 같기도 한 이야기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P.S. 그 시절 함께 일했던 트러스가드팀의 멤버들, 네트웍 유닛 식구들 모두 그립습니다. Ahn 

 

김태형 / SK커뮤니케이션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