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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전문가 초대석

안철수연구소 사옥에는 스페인 광장이 있다?

‘세살이’를 면하고 ‘내집 마련’을 하는 것은 모든 이의 꿈이다. 기업이 자사 사옥을 갖는 것 또한 그에 견줄 만한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오는 가을이면 안철수연구소가 판교 사옥 시대를 연다. 1995년 조그만 벤처로 시작해 세계적인 정보보안 기업으로 성장하여 '판교 테크노밸리'에 터를 잡고 자사 사옥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안철수연구소 사옥은 업무용 빌딩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고유의 창업 철학과 기업 문화가 곳곳에 녹아든 작품으로 완성될 것이다. 그 핵심적인 요소가 인테리어 디자인이라 하겠다. 집에 들어설 때 집집마다 다른 분위기가 묻어나는 것은 주인의 생각과 취향이 인테리어에 녹아든 까닭이듯, 안철수연구소 사옥도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로비부터 소품 하나까지 고유한 색깔이 담길 것이다. 


이런 인테리어 디자인을 책임진 전문 업체 SL&A의 CEO 조나단 김을 만나 그간의 과정을 들어보았다. 그는 이번 프로젝트가 SL&A로서도 의미 있고 기대가 되는 프로젝트라며, 모든 직원들과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참 안철수연구소답다’는 말이 나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조나단 김이 설명한 내용을 요약 소개한다.

안철수연구소 프로젝트의 남다른 의미  

판교에 안철수연구소 사옥이 생긴다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안철수연구소는 여러 면에서 모범적인 기업이고, 설립자인 안철수 교수가 시대의 아이콘 역할을 하는 분이기에 이 프로젝트를 꼭 하고 싶었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꼭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이 공간에 호기심과 관심을 갖고 방문하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부담감도 있지만 그보단 우리가 ‘안철수연구소를 디자인한다’는 자부심이 더 크다. 
 

사옥을 지어서 이전하는 것은 회사로서는 리브랜딩(re-branding)을 할 좋은 기회가 된다. 기존 사무실 구조에선 일하는 방식이나 생각하고 미팅하는 방식,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과 방향을 바꾸기가 어렵다.

하지만, 공간이 변화하고 새로운 환경이 만들어지면, 업무 처리에서 새로운 방식이나 방향을 좀더 쉽게 제시할 수 있다. 리브랜딩은 단순히 로고뿐 아니라 CI(Corporate Identity), BI(Brand Identity), 직원의 행동 하나하나까지 포함한다. 이번 사옥 이전은 안랩이 더 새롭고 더욱 열린 기업으로 리브랜딩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한 공간 만들기에 고심  


안철수연구소를 처음 방문했을 때 가장 놀란 것은 안철수 교수의 개인 방이 없다는 것이었다. 설립자의 방이 없다는 것은 직원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 점에 신경을 많이 썼다.
 

예전에는 서 있어도 상대방 자리가 안 보일 정도로 파티션이 높은 게 일반적인 트렌드였는데 요즘은 점점 낮아지는 추세이다. 사무실 파티션의 높낮이에 따라서도 사내 의견 조율 과정이나 회사 분위기 자체가 굉장히 많이 달라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인테리어 디자인에서는 그런 것 하나하나가 고려의 대상이다. 새로 디자인하는 사무실 공간이 여러 모로 안철수연구소의 경영 방침을 품을 수 있도록 설계에 고심했다.  

안랩만의 색깔 표현하고자 설문조사, FGI, 사례 연구 거듭  


제일 처음에는 직원의 의견을 듣는 것으로 시작했다. 직원들이 느끼는 현재 공간의 좋은 점과 불편한 점부터 새로 생기는 사무실에는 어떤 환경이 조성되면 좋겠는지까지 귀 기울여 듣는 과정을 거쳤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니, 현재 업무 환경 중 가장 개선이 필요한 요소는 공용 공간의 부족이었다. 개인 책상 외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회의실이니, 결국은 회의실이 모자라다는 얘기이다. 또 신사옥에 적용되었으면 하는 몇 가지 컨셉을 제시한 것 중에는 ‘재밌게 일하면 좋겠다’는 ‘Fun & Joy’ 항목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했다. 컬러는 신뢰감을 주는 블루를 가장 선호했고, 업무 환경 만족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로는 개인 책상과 의자, 사무 기기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그 동안의 경험상 아무리 사무실을 좋게 디자인해도 책상과 의자가 바뀌지 않으면 직원들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고 느낀다는 것을 목격했다. 나머지 공간은 다 나눠 쓰지만, 책상과 의자는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사는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고 적용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그래서 설문 결과를 토대로 디자인 방향을 수립한 후에도 여러 가지 조사를 더 진행했다.

FGI(Focus Group Interview)에서 얻은 또 다른 결과 중 하나는 ‘양치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화장실에서 양치하는 것 말고 양치 전용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여직원을 위한 파우더 룸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여러 가지 위시리스트를 간추렸다. 이런 부분은 다른 인테리어 디자인 회사도 다 한 번쯤 고민해본 부분일 텐데 어떻게 해결했을까 알아보기 위해 사례 연구를 이어 진행했다.

스위스의 한 인테리어 회사는 ‘flexible’을 강조하는 곳으로 모든 사무 가구에 바퀴를 달아 상황에 따라 자유롭게 가구의 이동과 배치가 가능하도록 디자인했다. 공간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으니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용도를 변경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어떤 광고 회사는 open space, communication, green을 키워드로 회의실을 잔디밭처럼 만들어놓고 자유롭게 앉아서 미팅할 수 있도록 배려하기도 했다. 또 다른 회사는 ‘직원들이 만들어가는 공간’이라는 모토로 직원이 가진 특별한 것, 보여주고 싶은 것을 사무실 내에 전시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기업, 사무실마다 다른 공간의 성격을 어떻게 ‘안철수연구소만의 색깔’로 표현해낼 수 있을까 고심했다. 

회의실, 아이디어 내는 공간 아닌 의사결정하는 공간으로 


지금 안철수연구소 공간이 다른 회사에 비해 아주 많이 작은 공간은 아니다. 그런데도 좁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회의실, 공용 공간 등 소통할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소통 공간의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숫자를 늘릴 수도 있지만, 유연하고 효율적인 공간 배치로 체감 공간을 다르게 할 수도 있다. 우리는 전자보다는 후자에 중점을 두어 많이 고심했다.
 

사실 미팅 룸은 어떤 아이디어를 내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가지고 와서 검토하고 빨리 결정을 내리는 공간이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미팅한다’ 하고 나와서 하는 미팅보다는 지나가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누구를 만나서 ‘프로젝트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라고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오는 형태가 더 유연하게 의사를 나눌 수 있는 구조이다. 실제 그런 아이디어가 멍석 깔고 진행한 미팅에서 나온 제안보다 더 참신한 경우가 많다. 안철수연구소 회의실 중에도 이런 점을 고려해 테이블 없이 캐주얼하게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게 디자인한 곳도 있다.  

공간 활용 측면에서 재미있는 연구 결과가 있는데, 사람들은 낮게 앉을수록 공격적인 성향이 감퇴한다고 한다. 바닥에 앉아 미팅하는 것과 높은 의자에 앉아 미팅하는 것, 중간 높이 의자에 앉아 미팅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성향이나 미팅의 분위기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자동차 서비스센터에 불만을 갖고 방문하는 고객을 되도록 낮은 소파에 앉게 디자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목적 있는 로비,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계단  


안철수연구소 사옥을 가보면 다른 회사와 다르다는 것을 1층 로비에서부터 느낄 것이다. 로비는 사람들이 들어갔을 때 ‘이 회사가 어떤 회사구나’ 하는 1차적 이미지를 결정짓는 곳이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로비의 마감재나 컬러에 따라서도 방문객이 회사에 갖는 이미지의 상당 부분이 결정된다. 
 

우리나라 대기업 사옥 로비는 대부분 과시하고 싶어하는 부분이 많이 나타난다. 굉장히 서열화한, 위 아래가 명확한 수직 구조를 나타난다. 우리는 ‘안철수연구소 사옥이니까 보이는’ 특별한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어딜 가나 건물 로비는 임대료가 가장 비싼 공간임에도 비어있는 경우가 많다. 그냥 사람들이 지나가는 공간으로만 머물러 있다. 안철수연구소는 뭔가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우리 고민의 시작이었다. 
 

영화 ‘로마의 휴일’을 보면 스페인 광장과 계단이 나온다. 그 계단은 어디를 가기 위한 계단이 아니다. 계단 자체가 목적지다. 영화 때문에 유명해지기도 했지만 그 전부터 이 계단은 사람들이 모여서 얘기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활용되어 왔다. 점심 때는 점심을 먹고, 저녁 때는 기타를 치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수다를 떤다. 계단 자체가 연결 공간이 아닌 하나의 목적지고, 그 통로를 꽉 채울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것이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계단이 계단이 아닌, 공공 문화 공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우리도 안철수연구소 로비와 2층을 연결하는 계단이 그 자체로 복합적인 기능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계단이 기업의 부를 과시하는 용도가 아닌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점이 돼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생겨나고 모두가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공간이 되도록. 강연이나 만찬, 세미나도 하고, 라운지로도 쓰는 방안을 제안했다.  

탁 트인 계단, 감성 살리는 휴게 공간

‘그린 샤프트’라는 계단실이 있다. 로비에 담긴 아이디어가 계단에도 연결된다. 대형 건물 계단실은 보통 피난용 통로 역할밖에 못 하지만, 안철수연구소 사옥은 엘리베이터 홀 옆에 인간친화적 공간으로 마련된다. 쉽게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디자인됐고, 비상 계단처럼 꽉 막히고 답답한 공간이 아닌 채광이 잘되는 쾌적한 공간이다. 이 곳에서 간단한 런치 타임 토크나 티 타임, 짧은 강연도 가능할 것이다. 

각 층마다 약간의 휴게 공간도 더해졌다. 휴게 공간에 비치될 편안한 소파나, 미니 오락기, 다트 게임 등은 실제 사용 여부를 떠나서 직원의 감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옥상 공간은 접이식 문을 달아 날씨가 좋을 때 외부 공간과 사무실을 연결해 쓸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런 작은 공간의 변화도 직원으로서는 ‘회사에게 배려를 받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이번 인테리어 디자인에서 일반인이 안철수연구소에 갖는 통념을 깨고 싶었다. 보통 안철수연구소 하면 외부에서 ‘아, 거기는 컴퓨터 마니아만 있겠다. 컴퓨터 기계만 모여 있겠다’ 라고 생각할 텐데,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무실에서 종일 컴퓨터와만 대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소통하는 공간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안철수연구소가 컴퓨터만 고치는 게 아니라 사람의 감성까지 터치할 수 있는 회사,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Ahn
 

대학생기자 박미영 / 고려대 산업정보디자인과

언제나 가슴 속에 간직한 문구 "행복은 습관입니다^^"
습관이 모여 행동이 되고 행동이 모여 삶의 태도가 될 테니 늘 건강한 미소와 흔들림없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행복하고 싶다. '보안세상'에서의 활동이 인생에 행복을 쌓는 또 하나의 활력이 되길 기대한다.

 

사진. 사내기자 황미경 / 안철수연구소 커뮤니케이션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