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수천 년 전 나그네의 마음으로 걷다

문화산책/여행 2011.02.26 23:59

중국 서안에서 로마까지 이어지는 실크로드는 바닷길이 열리기 전까지 서역과 동방 세계를 잇는 유일한 통로였다. 12,000km에 달하는 실크로드는 서양과 동양, 두 세계의 상인들에게는 일확천금 기회의 길이자,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인생 최대의 모험과도 같은 길이었다. 비단을 향한 꿈의 길, 그리고 실크로드와 흥망을 함께한 도시 란저우와 둔황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실크로드의 길목, 서역에서 만나는 첫 도시 란저우

실크로드의 시발지인 시안을 출발해 서쪽으로 500km를 달려가면, 란저우에 도착한다. 란저우는 서역에서 만나는 첫 대도시이자, 신장위구르 자치구 그리고 티벳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봐왔던 중국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위치에서 알 수 있듯이 란저우의 역사가 곧 실크로드의 역사였다. 뿐만 아니라 세계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황하가 흐르기 때문에, 실크로드가 아니더라도 란저우의 중요성은 매우 크다. 란저우는 실크로드의 최고 전성기였던 당나라 때 황금기를 맞았고, 서양과 동양을 잇는 항로가 생김에 따라 그 역할은 점점 줄어들었다. 하지만 오늘날 란저우는 근처 유전을 바탕으로 중화학 도시로서 실크로드 시절의 위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무사 귀환을 소망하는 마음, 막고굴을 탄생시키다.

사막을 건너기 직전 마지막 오아시스 도시인 둔황에는 막고굴이 있다. 사막을 건너는 대상들에게 소망이 있다면 무엇일까?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세계 최대의 불교 석굴군 막고굴을 갔다온 내 생각에는 무사히 집에 돌아고가자 하는 그 소망이 하나하나 모여 만들어 진 곳이 바로 막고굴이다.
 

1,000여 년에 걸쳐 만들어진 735개의 동굴은 현재 492개만이 남아있다. 492개의 동굴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문은 마치 비둘기 집 같다. 그 옆의 높은 건물 안에는 딱 그 내부를 가득 채울 만한 크기의 불상이 있는데 그 위엄은 상상을 초월한다. 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부처님의 발가락 높이에도 미치지 못 한다는 그 느낌이란...(아쉽게도 내부는 사진촬영이 엄격하게 금지되기 때문에 촬영할 수가 없었다.)

한편, 막고굴의 역사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철저한 상업 도시였던 둔황은 십자군 전쟁으로 인해 막혀버렸고, 그 이후 막고굴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지워져버렸다. 하지만 1900년, 막고굴 16번 굴 안에서 숨겨진 17번 굴이 발굴되면서 전세계 도굴꾼, 문화재 사냥꾼이 모여들었고, 그 덕분에 막고굴은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3,000년 동안 한 번도 마른 적 없는 오아시스

둔황에서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명사산은 언덕의 모래가 날리는 소리가 마치 사람이 흐느끼는 소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게다가 명사산에는 전설이 하나 있다. 두 나라 군대가 명사산 아래에서 전투를 벌이다가 어디선가 불어 온 모래바람에 모두 파묻혀버렸다고 한다. 이런 저런 전설을 뒤로 하더라도, 사막은 그 존재만으로도 설레는 곳이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건넜던 대상들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사막을 건너는 방법을 모르는 내가 사막을 걷는 방법을 터득하기까지는 사막에서 살고자 하는 집념이 필요할 정도였다. 관광 삼아 간 내가 그 정도였으니, 그 옛날 실제로 실크로드를 건너던 사람들은 어땠을까? 그리고 그들이 이 오아시스를 발견했을 때는 과연 어땠을까? 그 느낌은 내가 무심코 사들고 간 콜라 한 병을 매우 감사히 여긴 것과 같지 않을까?
초승달 모양의 오아시스인 월아천은 해가 질 무렵 특히 더 예쁘다고 한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서 꼭 보고 싶다.

누구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길이었고, 누구에게는 가고 싶은 길인 실크로드. 실크로드의 그 신비함은 함부로 갈 수 없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닐까? 수많은 사람이 꿈꾸고, 그 꿈을 가지고 떠난 수많은 이의 희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실크로드. 앞으로 몇 십 년이 지나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이들의 소망은 여전히 우리 곁에 실크로드라는 신비함으로 남아있지 않을까? Ahn

대학생기자 최시준 / KAIST Mangement Science

안철수연구소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이라는 길을 향해 가고 있듯이,
저, 최시준은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이름'이라는 길을 향해 걸어갑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은 어떤 길을 향해 가고 있나요?


중국 쿠부치 사막에 나무를 심고 생명을 키우다

현장속으로/세미나 2009.06.04 11:40

한중문화청소년협회 녹색봉사단 활동 후기

나는 5월 18일부터 22일까지 한중문화청소년협회 미래숲에서 진행한 녹색봉사단의 일원으로서 나무 심기 및 학술문화교류 활동에 참여했다. 중국 방문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그 어느때보다도 설렘이 더 컸다. 단순한 관광이 아닌, 뜻깊은 일을 하러 다녀왔기 때문이다. 
 
한중문화청소년협회(한중미래숲)은 국내 최초로 유엔환경계획(UNEP)의 옵저버 자격을 얻은 NGO이다. 중국 공청단, 다라터치 인민정부와 협약을 체결하여 식수 활동 및 중국 우수 청년들과의 학술문화교류를 진행해왔다. 

이번이 여덟번째 방중 활동이며 나는 이번에 8기 녹색봉사단의 스태프이자 단원으로 참여했다. 1, 2차를 걸쳐 선발된 70명의 대학생들과 언론, 환경, 기업 등 각 방면의 전문가로 구성된 30명의 VIP들이 이번 방중활동을 함께 했다. 

현지에서 만난 중국 대학생들로 구성된 스태프와 함께 우리는 '제 3회 한중대학생엘리트포럼'을 개최하고, 문화 교류의 시간을 가졌다. 포럼이 열린 인민대학교에서는 양국 청년들의 열띤 토론의 장이 열렸다. 포럼은 환경, 문화, 기업경영, 청년창업의 네 가지 주제로 각 주제당 중국 1팀, 한국 1팀, 총 8팀의 발표로 진행되었다. 


첫째날 밤, 북경에서의 만찬에는 한중 양국 대표 단장의 축사와 함께 한국 학생들의 사물놀이, 노래, 댄스, 아카펠라, 태권도 등의 공연과 중국 학생들의 연극, 노래, 전통무, 패션쇼 등의 다채로운 공연이 있었다. 마지막날 밤, 내몽고에서의 만찬에서는 내몽고 전통 노래를 감상하기도 했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1시간 반의 거리인 북경에서의 3일, 또 그 곳에서 약 12시간 가량 기차를 타면 도착하는 내몽고.


그 곳엔 우리의 목적지 쿠부치 사막이 있다. 쿠부치 사막은
북경에서 서쪽으로 2,000km 정도 떨어져 있다. 면적은 우리나라의 5분의 1정도인데, 모래사막이 61%이고 나머지는 자갈이나 흙먼지로 이뤄져 있다. 중국에서 7번째로 큰 사막으로 내몽고자치구의 다른 사막과 합치면 세계에서 9번째로 큰 사막이다. 이곳은 200년 전까지 푸른 초원이었다. 하지만 무분별한 벌목과 개간으로 황량하게 변해버렸고, 매년 서울의 5배 면적이 사막화한다. 이곳이 바로 우리나라 황사의 발원지로 매년 봄 수천 톤의 모래가 한국으로 유입된다.


 

이 생명이 없는 땅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을 하러 갔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예전에 초원이었던 곳이기 때문에 이 주변에는 황하지류가 있어 사막의 흙을 조금만 파도 축축한 흙이 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등 여러 나라의 조림지가 있다. 매년 심각해지는 황사 문제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삽으로 직경 30cm, 깊이 60cm인 구덩이를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이 곳에는 백양나무와 사류를 심는다. 이 나무들은 황폐한 사막에서도 잘 자란다. 완전히 자랐을 때는 키가 30M, 굵기가 1M에 달한다. 약 100명의 아름다운 손들로 심어진 나무들을 보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리고 이동한 곳은 그동안의 사람들의 보살핌을 받은 나무들. 85%의 놀라운 생착률을 보인다고 한다. 우리가 오늘 심은 나무들도 저 나무들처럼 잘 자라는 모습을 상상하니 기뻤다.



우리가 심은 것은 나무뿐이 아니다. 희망도 심었다. 넓은 사막에 나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직은 미약하다. 하지만 매년 늘어나는 나무들은 나비 효과처럼 결국에는 큰 변화를 만들 것이라는 희망. 그 희망이 있기에 보람되고 즐거운 경험이었다.
Ahn

 


대학생기자 유선화 / 성신여자대학교 컴퓨터정보학부
한 곳보다는 넓은 시야를 보길 추구하며 한정된 시간 속에서 좀 더 많은 담금질을 하고 싶다. 사람을 향한,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인생의 행복으로 여기며 남들이 닦은 길보다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걷고자 한다. 이과적 이성과 문과적 감성, 예술적인 감각을 고루 섞어 앞으로 점점 완성할 그녀만의 미래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