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박경철-김제동, 방송에서 못다한 이야기(최종)

1월 28일 방송된 'MBC 스페셜-2011 신년특집 안철수와 박경철편의 마지막 촬영은 지난해 12월 21일 김제동의 단골집인 방배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됐다. 1년 동안 안철수연구소 기자 활동을 하면서 안철수 교수의 특강, 매체, 책의 내용은 다 챙겨 봤는데 들을 때마다 느낌이 새롭고 얻는 게 많다. 그는 '정의란 무엇인가'이 베스트셀러인 이유를 '사회에 정의의 결핍을 느끼면서 정의의 의미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아진 게 아닐까.'라고 해석했다. 올곧고 정의로운 이미지 때문에 많은 사람이 안 교수의 강연에 열광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가 바라는 새해 소망은 무엇일까. 그날의 대화 후반부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김제동(이하 김): 그렇다면 작은 기업도 만장일치제는 아니더라도 좀더 많은 사람의 의견을 담아낼 수 있다는..

안철수(이하 안): 네,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한 거죠, 작은 의견이라도 소홀하지 않고 그것까지 결정해 함께 고려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속도를 빨리 내기 위해서 "내가 짐을 다 짊어지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다 나를 믿고 따르시오." 이건 이제는 안 맞는 것 같아요.

박경철(이하 박): 러시아 제정혁명 시대 때도 그런 게 있었죠. 브나로드 운동이라고.. 제정러시아 때 지식인이 농민을 계몽한다고 나섰죠. 그때 농민의 음식을 먹고, 옷을 입고 했는데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버렸어요. 그 이유가 뭐냐면 지식인이 먹는 시늉을 한다 해서 그 사람들의 마음인 건 아니죠. '대중은 계몽의 대상이고, 선택 대상이고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고, 대중의 선택은 항상 어리석고 우매하고, 엘리트가 끌고 가야 돼,' 이런 마인드로 대중의 아픔을 이용하고 대중의 어려움은 공감 못 하는 지식인을 따라야 할 이유가 없었던 거죠. 국가 사회의 개인 모두가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김: 저는 약간 가르쳐야 된다는 입장인데요. 이효리씨나 이런 점은 기분이 나쁘시더라도 제가 오늘 많은 걸 가르쳐드릴 테니까 노트 들고 오세요. ㅎㅎ
박: 네, 그런 것 같아요. 대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김: 음... 선덕여왕이란 드라마가 있는데 고현정씨와 이요원씨가 나왔던 시청률 40%가 넘은 국민 드라마입니다.

안: 고현정씨와 이효리씨가 같이 나와요?
김: 이요원씨요. 혹시라도 이 두 분에게 콤플렉스를 느끼신다면 전혀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걸 시청자에게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이분들 몰라도 너무 몰라요. ㅎㅎ 

박: 고현정씨와 이효리씨와 같이 등장했다고 묻는 건 격이 다른, 차원이 다른 문제라 결코 같이 비교할 수가 없어요. 

김: 모래시계는 아시죠?
안, 박: 네 알죠.

김: 네, 이제 두 분과 어떤 대화를 해야 하는지 감이 왔어요.^^ 고현정씨는 아시죠? 그 분이 선덕여왕에서 미실이란 역할을 했는데, 그 상대역 착한 역을 맡은 분이 똑같은 말을 해요. "국민은 계몽과 협박을 해야 할 게 아니라 서로 함께 협력하고 같이 살아가야 할 사람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확실한 정의가 명확하게 내려진 것 같습니다. 아마 그 드라마가 시청률 40, 50%를 넘고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시청한 이유는 정의가 결핍되었을 때 정의를 외친 것처럼 그 비슷한 느낌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안: 2, 3천 년 전 우리 선조를 보면 '참, 저런 바보 같은 실수를 했구나.' 하며 우리는 저런 바보 같은 실수를 안 할 거라 생각하는데 사실은 똑같은 실수를 또 하거든요. 옛날과 달리 지금은 쉽게 정보를 찾을 수 있는데도 중간에 어떤 결정을 할 때 빠지는 함정은 2, 3천 년 전 사람들과 거의 다를 바가 없는 것 같고요. 또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도 결국은 교만해져서 그런 것 같아요. 교만한 사람 특징이 남의 단점이 자기 단점보다 더 커 보이고, 자기가 최고라고 생각하죠. 그런 사람이 함정에 잘 빠지더라고요. 현대인도 그런 게 아닌 가 싶습니다.

박: 더 쇼킹한 말은 개혁이라는 말 같아요. 주역이란 책에서 하고자 하는 말은 "변해라."이거든요. 3천 년 전 사람들이 왜 그런 생각을 했냐면 사람들이 옛날에 맘모스를 잡기가 힘든 것을 보고 만약 "신이시여, 왜 맘모스는 거대하게 만든 것입니까?" 하고 소원만 빌었다면 전혀 발전이 없었을 텐데,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자기들끼리 발전해 나간 거죠. 변하는 것이 삶의 원리라고 생각하는데, 혁신과 동등한 뜻 같아요. 우린 그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해라."라는 말을 하는데, 다른 점은 우리는 말만 한다는 거죠. 그만큼 안 변하고 정체되어 있습니다.

 

김: 음... 어떻게 연결해보자면 TV나 이효리씨를 보면서 그런 쪽으로 변할 생각은 없으신가요?


안: 취미의 접점이 생기면 언젠가 연결이 되겠죠.


김: 그것도 참 중요한 일이죠. 소녀시대 좋아하는 것처럼 사회 현상에도 관심을 가지고 미술 등을 좋아하면 알 수 있다 하셨는데 접점이 생기는 게 힘들지 않습니까?

"호기심, 선의 있으면 갈등 구조 해결할 수 있어"


안: 그래서 호기심, 선의를 가지고 접근하는 게 참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거면 갈등 구조 속에서도 접점을 만날 수 있으니 세상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 같아요.


김: 서로에게 호의를 가지면 문제를 인식하고 풀어나갈 수 있고. 우리가 살면서 모두가 부딪히는 문제를 모두가 선의와 동심을 가지고 들여다보고 의사결정 구조를 가지고 보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이군요.

박: 예를 들어 제동씨가 스티브 잡스에게 선의를 안 가져도 되고, 안 선생님도 이효리씨에게 선의를 안 가져도 되지만, 제동씨와 안 선생님이 다같이 선의를 가져야 하는 것은 일상에서 만나는 이웃일 수 있겠지요.


안: 어떤 갈등 구조가 나타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요. 하나는 가치관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고, 또 하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이 다른 경우예요. 방법론에 대한 의견이 다를 때는 선의와 호기심을 가지고 서로 이야기하면 해결되고 서로 접점이 생겨요. 그러나 가치관이 다르면 어느 가치관이든 다 소중하고 정답은 없기 때문에 문제 해결이 힘들어요. 사실 대부분은 가치관 문제보다 방법론 문제가 많기 때문에 많은 문제는 그쪽에서 보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김: 평화에 대한 생각도 그런 것이겠죠. 궁극적으로 평화는 가치관의 문제고 그 나머지가 방법론일 것 같은데, 그것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안:
핵심적인 부분은 가치관인데, 실제로 가치관 충돌보다 방법론 충돌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나 정도 되니까 이 정도 어려움도 다 해냈지, 다른 사람은 이런 것 못 할 거야.' 하는. 교만함에서 비롯되는 게 이런 표현인 것 같아요. 사실은 난이도가 높지도 않고 현장에서 훨씬 더 능력 있는 사람이 많은데, 일종의 선민의식 같은 게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것 아닌가 싶어요. 결국 그런 것이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거죠.

김:
 선민의식이 깔려있으면 더 많은 방법론을 배제하게 된다는 거죠.

안:
'너희는 몰라서 그러는 거야.' 라고 미리 생각을 깔고 이야기를 하면 그건 넘을 수 없는 벽이죠, 절대로 설득도 안 되고 타협도 안 되는.

박:
예를 들면 대기업의 성과에서 잘못되어 위기가 오면 대외 변수, 글로벌 충격 때문인 거고, 좋은 성과가 나왔을 때는 탁월한 리더십 때문이고, 모든 영광은 위로 모든 잘못은 아래로. 이게 우리나라의 가장 큰 단점이죠. '모든 잘못은 위로 모든 영광은 아래로.' 라고 말하는 게 중요한데 말이죠.

김:
 지도자가 기득권 입장에서는 그게 쉽지 않겠지요. 

박:
우리가 누리는 걸 잘못 배워서 그래요. 리더가, 나 혼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이렇게 능력 있고 괜찮은 사람들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면, 그로 인해 자기가 더 나아지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런 모습은 겸손이라고 볼 수 있죠.

안:
무거운 책임감을 더 느낄 수 있다면 좋은 리더라고 할 수 있죠.

김:
권력의 달콤함을 어떻게 버리셨어요?

안:
 사장이 누릴 수 있는 혜택과 권한이 있고, 많은 사람의 생활을 책임져야 하는 책임감이 있었는데, 책임의 무게가 워낙 커서 언제나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어요. 10년 정도 CEO 하면서도 (책임감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기 때문에 지난 시간은 정말 힘들었던 시간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제가 학생들한테 해주는 이야기가 몇 개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실수는 당연하다. 실수를 하더라도 자신에게 실망하지 말고 자기에게 기회를 줘라."예요. 저도 그랬고, 살다 보면 실수를 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데, 실수를 하면서 자기가 뭔가를 배울 수 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실수는 값진 경험이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불량 어른이 있어서 불량 청소년이 생기는 거잖아요. 사회 제도가 도전정신 강하고 모험정신이 있어야 할 청소년에게 자꾸 안전을 강요하니 그들이 안전지향적으로 나가는 것이니, 사회 전체를 바꾸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어른들이 느껴야지, 애들에게 자꾸 이공계 기피하지 말라고 야단치는 게 해결책은 아니거든요. 청소년은 어른의 거울이니까, 기성세대는 청소년에 대한 비판 기사가 나올 때마다 사회를 한 번씩 돌아보고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는지 계속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따스한 시선으로, 또는 남 탓하기보단 자신의 잘못을 바꾸려는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김:
위로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고, 우리도 이런 것 고칠 테니까 너희도 발맞춰 같이 가자." 무조건 몰아붙이고 훈계하는 게 아니라.

박:
초등학교 1~2학년만 되면 '우리 집은 몇 평이고 너희 집은 몇 평이고' 하는 식의 차별을 인식합니다. 그것이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고교생 대상 강연 하면서 충격적이었던 게,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 손 들어보라고 했더니 1500명 중에 2명이 손을 들고,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70% 정도, 나머지 29%는 행복한지 불행한지 답을 못 하더라고요. 이 차이가 왜 왔을까 생각해보니 상대적인 것, 차별적 우위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기성 세대가 갖고 있는 성공과 실패의 가늠자를 17~19세들도 똑같이 갖고 있다는 거죠. 이것을 바꿔야죠.

김: 
얼마 전에 인천 가서 수능 시험 끝낸 학생들 만났는데, 강당에 2000명 정도 모아놓고 재밌게 보냈어요. 제가 아이돌도 아닌데 마이크 하나 들고 농담하는 것에 그렇게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짠한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안:
지금 사회 구조나 청소년을 지배하는 의식 구조가, 개인들끼리 경쟁해서 한두 명만 살아남고 행복을 느끼는 것 같아요. 골든벨 울린 학생만 존재의미가 있고 그 학생만 행복한 게 아닌데도.  

"새해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 관대함 충분해지길"


김: 새해를 맞아 '올 한 해는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소박한 희망을 말씀해주신다면요.

안:
올해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충분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거든요.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한 번쯤은 뒤돌아보는 자세, 그래서 나에게 기회를 준, 일할 여건을 준 사회를 돌아보고 '이 사회에는 나만큼 소중한 사람, 나만큼 소중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들이 작은 노력이 아닐까 싶고 그런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우리나라 행복지수가 1점이라도 올랐으면 좋겠어요.

박:
조금만 더 관대해졌으면 좋겠어요. Ahn

 

대학생기자 양희은 / 성신여대 컴퓨터정보학부
사진. 사내기자 황미경 / 안철수연구소 커뮤니케이션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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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기름 2011.02.06 12:27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안녕하세요.
    좋은 방송 보고 이렇게 좋은 글 1편에서 완결편까지, 새해 선물 한가득~ 받은 기분입니다.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

    허락해주시면, 출처+블로그 주소 당근(!) 포함해서
    제 블로그에도 발췌해 정리해두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여쭤봅니다. ^^

    아, 새해 복 많이많이 받으세요. ^^

  2. cfono1 2011.02.06 22:54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상식적인게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닐텐데... 참 안되는 세상이네요^^;

  3. 하나뿐인지구 2011.02.07 10:32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황희 정승의 반...반기문 UN사무 총장의 반...만큼만...정치인 분들이 해주신다면...좋아지겠지요...
    ...
    ps>물론...저 역시 능력 같은 것도 없지만요...^^;...
    ...
    새해 떡국들 많이 드셨겠지요? (신정 지내는 분들은...긴 연휴 잘 보내셨을 것 같구요...)
    방송이...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방송이 많이 짧던데...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안철수-박경철-김제동, 방송에서 못다한 이야기(5)

지난해 12월 21일 연말을 앞두고 안철수, 박경철, 김제동이 방배동의 한 카페에 모였다. 'MBC 스페셜'의 마지막 촬영을 하기 위해서다. 크지 않은 눈, 작지 않은 머리, 경상도 억양이 묻어나는 말투. 서로 닮은 세 사람의 이야기는 90분 간 멈출 줄을 몰랐다. 예술과 소통, 소녀시대와 이효리를 넘나든 그날의 전반부 대화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김제동(이하 김) : 어떻게 이효리 씨를 모를 수 있습니까?
안철수(이하 안) : 95년까진 잘 따라갔는데, 회사 만들면서 이후로는 문화생활 쪽엔 신경을 못 썼어요.
김 : 현빈 씨는 아십니까?
안 : 현..빈..? 영화배우 아닌가요? 
아, 원빈, 현빈... 누군지 모르겠어요. 영화에서 본 것 같은데.
김 : 둘이 다른 사람인 건 모르시죠?
안 : 전쟁 영화에 나온 건 누구죠?
김 : 원빈 씨요.
안 : 아, 그럼 그 사람은 알아요. 어떻게 생겼는지.
(정적)
김 : 이런 분에게 올 한 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웃음)
박경철(이하 박) : 안철수 교수님은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로는 칠순을 넘기신 분...김 : 팔순으로 정정하는 게...(일동 웃음)

세 사람의 대화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국민요정 이효리에, 까도남 현빈까지 모른다니. 안철수 교수는 대체 무슨 낙으로 사는 걸까? 마침 김제동도 궁금했던 모양이다.


김 : 취미생활은 무엇입니까? 일과 전혀 관련 없는 일 중에 가장 재미있는 일은?

안 : 영화 보는 일, 소설책 보는 일. 그런 게 제일 좋죠. 그런 계기를 통해서 지금 고민하던 문제를 잊어버리고, 다른 세상에 가서 간접경험을 하고 다시 돌아오면 그 전에 고민했던 문제가 이미 생각이 정리된 경우도 많더라고요. 다른 영화를 볼 때 제 무의식에서 계속 정리하고 작업을 하나 봐요. 그래서 오히려 더 좋은 결론을 얻기도 하고요.

김 : 근래에는 무슨 영화를 재밌게 보셨어요?

안 : 저는 밝은 영화 좋아하거든요. <헤어 스프레이> 같은 뮤지컬이라든지, <주노> 같은 그런. 복잡한 주제일 수도 있는데 가슴 따뜻하게 끝나잖아요. 끝날 때 청소년 둘이서 같이 엉성하게 노래 부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참 좋더라고요.

박 : 전 가끔 공연, 전시 정도. 그림 보러 가는 게 핵심이고요.

김 : 그림도 거의 전문가 수준이라고 하던데요.

박 : 전문가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내가 좋으면 되는 거죠. 사람들이 물으면 “나는 이래서 좋아.”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냥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사실 똑같은 건데도 “이래서 좋아.”라고 말하는 사람을 더 우러러보고...(일동 웃음) 단지 그것일 뿐이죠. 저는 “이래서 좋은 것 같은데.”라고 말하다 보니 마치 미술에 전문가 수준이라고 말하는 분도 있지만. 예전에 미술관에 갔는데 그림 앞에 어떤 분이 한 시간 정도 서 계시더라고요. 그런 분들이 진짜 예술을 훨씬 더 즐기는 거죠. 문화적 허영심이 아니고 그냥 봐서 좋으면 즐기는 거죠. 대중문화든 순수예술이든 내가 좋으면 아름답게 감상하는 거죠.

김 : 좋아하면 그 분야에 더 파고들어가서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고등학생들 보면 좋아하는 가수가 생기면 외우라 하지 않아도 생일, 가족관계가 쭉 들어오듯이. 미술 작품도 한 작품이 좋아지면 이 작가는 어떻고 이런 것들이 쭉 들어오는 것 같아요.

박 : 아이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는데. 평소에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소녀시대 좋아하면 팬클럽 만들고, 생일 챙기고 하다보면 더 좋아하잖아요. 그림도 마찬가지로 작품이 마음에 들면 작가 이야기를 찾아보고, 만나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이렇게 하다보면 정말 깊이 이해할 수 있어요. 텍스트를 가지고 공부하는 게 아니라 호기심과 흥미를 가지고 접근하면 예술이든 학업이든 할 수 있어요. 소녀시대 팬클럽 하듯이. 결국 재미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 팬클럽 만드는 기분으로 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안 : 다만 자기가 좋아하는 의견에 동조하지 않거나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적대감을 갖고 배척하는 것은 안 좋은 것 같거든요.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은 이 영화를 굉장히 감명깊게 봤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또 별로일 수도 있잖아요. 그건 서로의 기호가 달라서 그런 거고, 그 사람이 영화 보기 전에 기분 나쁜 일이 있어 집중을 못 했다든지 여러 가지 상황이 있는데 그걸 이해를 못 하고 “왜 당신은 이걸 안 좋아하느냐. 난 도저히 당신의 사고 구조를 이해를 못 하겠다.”면서 싸우고 수준이 낮다고 하는 건 굉장히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요. 충분히 다를 수 있는 것에 관용이 없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많더라고요.

“자신에게만 매몰되지 않는 새해 되었으면”

김 : 사실은 제가 두 분 처음 뵈었을 땐 ‘미술 사조를 줄줄 꿰는’ 분들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강렬한 호기심, 존경하면서도 드는 약간의 반감 이런 느낌 있잖습니까. 두 분 만나뵈면서 느끼는 것은 선의를 가지고 집중해서 좋아하는 뭔가를 이루어냈다는 느낌을 강렬히 받았습니다. 보시는 분들도 똑같이 느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인정하는 것, 다른 사람의 사정을 들여다보는 것, 관심을 갖는 것. 올 한 해 우리나라 사회에서 외치던 ‘정의’가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 : 힘들어서 그렇겠지만, 사람들이 너무 자기 자신에게만 매몰돼 있는 것 같거든요. '지금 이 세상에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같이 살고, 그 사람의 생각이 나의 생각만큼이나 소중한 것이다' 그런 생각이 제일 기본적인 건데요, 그런 생각이 부족하면 더 살기 힘들어지고 각박해지는 것 같아요. 새해부터라도 그런 생각이 널리 퍼졌으면 해요.

박 : 약점을 들키는 걸 두려워해서 그런 것 같아요. 생각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하면 내 허점이 드러나잖아요. 끼리끼리 하면 편하고 반대를 배척해야 내가 가진 컴플렉스가 드러나지 않고. 이런 게 우리의 모습이었던 것 같아요.

김 : 어떻게 하면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말 좀 잘 할 수 있을까요?

안 : 카이스트에서 학생들 가르칠 때 하는 게임이 있거든요. 간단하지만 혼동스러운 산수 문제를 풀라고 해요. 3분만 줘요. 다들 시간이 부족해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제가 3분을 더 줄 테니 자기 답이 맞는지 확인할 기회를 주겠다고 해요. 그럼 열심히 다른 사람과 맞춰보는데요, 같은 답을 얻은 사람끼리는 열심히 맞춰보는데 한 명도 다른 답을 얻은 사람과 맞춰보는 적을 못 봤어요. 아시겠지만 내 답이 맞는지 틀렸는지는 다른 답을 얻은 사람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거든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게, 자기가 맞다는 증거만 수집을 해요. 그러다 보니 이게 점점 맞다는 확신이 드는 거죠. 틀린 답인데도 자기 중심적인 생각 때문에. 그런 태도를 불식하고, 나와 다른 답을 가진 사람을 무조건 배척하기보다는 그 사람 나름대로 접근 방식도 들어보면서 ‘나도 틀릴 수 있구나’ 그런 걸 항상 열어두는 게 바람직한데, 우리 사회에서 참 어려운 것 같아요

김 : 이미 답은 정해두고 그 집단 안에서 투닥투닥하지, 전혀 다른 답 두 개를 가지고 가는 경우는 못 본 것 같아요.

박 : 사람의 중요성을 차별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문화가 생긴 것 같아요. 더 중요한 사람은 없거든요. 사실 인간의 가치는 모두가 중요하죠. 언젠가부터 우리는 더 중요한 사람, 중요한 역할을 구분짓기 시작한 것 같아요. 더 중요한 사람과 중요하지 않다고 평가되는 사람 사이에서 괴리가 생길 수 있어요. 전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더 중요한 사람은 없다, 가장 기본적인 천부인권의 관점에서 기본만 생각하면 돼요. 우린 다 같은 사람이잖아요. 그 생각을 참 펼치기가 쉽지 않고. 말은 이렇게 하면서 더 중요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싶고. 이런 모습들이 인간이라는 공통 가치를 자꾸 차별화하다보니 문제가 생기는 거죠. 아이들에게도 모두가 중요하다고 말해주어야 할 것 같아요. 진심을 다해서.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다.”

김 : 좋은 얘기만 하고 살기에는 녹록지 않은 세상입니다. 올 한해도 만만치 않을 것 같고. 그럴 때마다 아무에게나 찾아가서 물어보고 싶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어두운 길을 쭉 걷다가 제일 위로가 될 때가 “앞에 사람 지나갔거든요. 빨리 좇아가면 만날 수 있을 거에요.” 할 때 느껴지는 근본적인 안도감이 있지 않습니까. 혼자 걷는데도 덜 외롭거나 덜 무서울 때. 그런 의미에서 여쭤보는 겁니다. 올 한 해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안 : 실리콘밸리에서 굉장히 성공한 기업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회사를 만들 때 어떻게 사람을 모으고 팀을 구성하느냐, 어떤 사람이 나와 같이 일을 하기에 적합한 사람인가, 그게 항상 고민이 많이 돼서 물어봤어요. 어떻게 사람을 뽑냐고. 그랬더니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다. 다른 건 안 본다.” 그러더라구요. 그러면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이 대체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그 말이 굉장히 깊은 뜻을 가지고 있대요. 그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이 있는 사람이래요. 자신이 없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틀렸다는 말을 못 한대요. 그게 참 역설적이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처음에는 같은 선상에 서있을지러도 10년, 20년 지나면 완전히 달라진대요. 자기가 틀린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만이 게속 발전할 수 있고요. 다른 사람과 인간관계도 원만할 수 있어서 나중에는 반드시 성공한다는군요. 그러니 “지금 젊은 사람들 중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벌써 앞날이 보장된 사람이다.” 그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반대로 책을 읽을 때 자기가 맞다는 증거만 수집하는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어요. 어떤 친구가 책을 보는데 무릎을 탁 쳤대요. 바로 일주일 전에 다른 친구를 만났는데 말싸움을 하다가 결론이 안 났는데, 이 책을 보니 “이 말만 했으면 말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는데!” 하고. 그러면서 ‘나중에 만나면 이거 써먹어서 싸워서 이겨봐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요. 그렇게 책을 읽는 경우가 오히려 책을 안 읽는 경우보다도 더 나쁘게 되는 거죠. 평지에 있던 사람이 자기가 맞다는 증거만 수집하면서 주위로 벽돌을 쌓아서 어느 순간 자기가 만든 성 속에 갇혀서, 그 벽돌 틈 사이로만 세상을 보는 사람이 되거든요. 그게 어쩌면 한 사람의 문제일 수 있지만, 지금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어요.

비관적인 말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사실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시작은 '문제가 있다'는 공감대에서 시작되거든요. 우리가 지금 이런 상태라는 것을 인식하고 공감대 형성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벽돌을 깨부수고 성을 허물 수 있는 동인이 생기는 거죠. 그런 작업이 필요한 한 해가 아닌가 싶어요.

안철수, 박경철, 김제동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다

김 : 작년 한 해는 ‘정의’가 화두였습니다. 정의, 잘은 모르지만, 자기에게 필요한 정의만 갖다가 쓰면 안 되는 거죠. 공감된 정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씀이신 거죠.

박 : 의사라는 직업의 전제는 인간의 생명이 존엄하기 때문입니다. 금융가가 존재하기 위한 전제는 사회가 공정하다는 것입니다. 공정하지 않으면 금융이 필요 없거든요. 반대로 구호는 그 전제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컴플렉스에서 출발하죠. 우리가 정의를 외치는 것은 사회정의에 대한 결핍을 느끼고 있다는 것의 반영이죠. 얼마 전에 법륜 스님이 저한테 이런 질문을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사시는데 스케줄의 주인이 누구에요?” 말문이 막혀버렸어요. 그 말이 머릿속에 빙빙 돌아서 생각해봤어요. 내가 주인이라는 것을 암암리에 사회가 은밀하게 잊게 만들었던 건 아닌가. 그것을 잊게 하고 직원으로서, 국민으로서, 가장으로서 이런 것만 자꾸 부여받으면서. 그런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다 부족하고 아쉬움이 남거든요.

내가 주인되는 사람으로서 생각하면, 앞으로 내가 엄청난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사람으로 바뀌는 거니까. 우리 청년들도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결핍감이 있지만 '앞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입장을 바꾸는 순간 희망적이지요. 지금 가진 것이 아니라 앞으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줘야 하는데, 그것을 덮어버리고 의무, 죄의식, 책임만 강조하는 것이 현재 우리 모습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어요. 주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김 : 영화배우 황정민씨, 뮤지컬배우 박건형씨 이렇게 셋이 ‘놀러와’라는 프로그램 촬영을 마치고 소주를 마셨는데요. 옆 테이블에 취하신 분이 시비를 걸었어요. “연예인 별 거 아니네. 연예인도 못 생겼네.” 그랬더니 황정민씨가 벌떡 일어나더니 “우리 제동이 욕하지 마세요!”하는 거에요. 셋 중에 누구라고 콕 집어서 말하지 않았는데! (웃음) 저는 이런 암묵적인 컴플렉스를 없애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박 : 과잉된 배려를 가장해서 약점을 들춰내는 이런...(웃음)

김 : 정의, 서민, 이런 얘기를 하면서 정의롭지 않거나 서민을 생각하지 않거나 이런 것도 과잉 배려죠. 예를 들어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하면, 제가 안구검사 할 때 의사나 간호사가 “이 검사 (눈이 작아서) 힘드시죠?” 합니다. 이렇게 아무런 대책이 없을 때 “원하는 걸 해주든가, 말로만 왜 이래!”하는 느낌이 들어요.

박 : 막연히 생각하고 있던 컴플렉스를 기정사실화하는 순간 진짜 나의 결함으로 바뀌는 거죠.

조직의 운명, 의사결정구조에 달렸다

김 : 주인의식도 그런 것 같아요. 진짜 주인으로서 대우해 주는.

박 : “우리가 알아서 해줄게, 따라와.” 이렇게 말하지 말고 “어떻게 할까요?” 이래야 하는데. “생각하기 힘드시죠, 우리가 결정할게요.” 하는 게 과잉 배려죠.

김 : 회사도 마찬가지죠.

안 : 회사도 사실은 의사결정구조가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굉장히 중요한데요. 안 좋은 것 중 하나가 혼자서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거에요. 처음에 작은 회사일 때 각자가 120%씩 능력을 발휘해도 모자랄 판에 한 사람이 독단적으로 결정한 다음에 급한 마음에 빨리 따라오라고 할 경우에 사람 관계는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한 사람만 앞으로 가고 나머지는 능력있는 사람인데도 80%밖에 발휘하지 못 하게 만드는 거죠. 그런 의사결정 구조가 조직의 힘을 약화시키는 거고요. 반대로, 무조건적인 다수결. 그렇게 되면 일관된 결정을 못 하고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결정을 해서 우왕좌왕하게 돼요. 모든 사람이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해서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고 전체가 합의해서 한 방향으로 가면, 설령 다른 방향으로 가더라도 의견 냈던 사람들은 충분히 자기 의견이 반영된 상태에서 결론이 났기 때문에 자기 일처럼 120%의 능력을 발휘해요. Ahn

대학생기자 양정민 /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사진. 사내기자 황미경 / 안철수연구소 커뮤니케이션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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