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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러스트 앤 본, 살아 가게 하는 것

 

‘러스트 앤 본’은 벨기에 영화로 불어 원제로는 ‘De rouille et d'os’ , 우리말로는 ‘재와 뼈’라고 알려져 있다. 알리는 갑작스레 등장한 자신의 5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무일푼으로 누나의 집을 찾는다. ‘내 집’이 아니고 얹혀살지언정, 새로 정착할 곳을 찾고, 클럽 경호원이라는 새로운 직업도 얻었다. 그러던 중, 클럽에서 일어난 싸움을 말리다가 스테파니를 만나게 된다. 스테파니는 당당하고 매력적인 여성이고, 나중에 본인도 고백했듯이, 남자들이 자신을 보며 자극받는 것을 즐긴다. 범고래 조련사인 스테파니는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범고래를 사랑한다.

하지만, 스테파니는 근무 중의 불행한 사고로 두 다리를 잃는다. 스테파니를 연기한 마리옹 꼬띠아르의 초점 없는 눈에서, 소리 없는 통곡에서 그녀가 얼마나 큰 절망에 빠졌는지, 그 아픔이 그대로 전달된다. 스테파니는 모든 것을 잃었다. 다리를 잃었고, 사랑했던 것을 잃었고, 함께했던 사람을 잃었고, 삶을 잃었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바깥으로 나가는 것도 꺼리며 세상과 단절되어 살던 스테파니가 절망의 끝에서 찾은 사람은 뜻밖에도 알리였다. 하지만 알리는, 자상하고 배려심 있는 상대는 아니다. 오히려 순진한건지 나쁜건지, 무감각하고 무심한 사람이다. 사고 소식을 알면서도 “그래서 요즘은 어때요?”라며 아무렇지 않게 질문을 던지고, 물에서 사고를 당해 다리를 잃어 절망한 스테파니를 바닷가로 데려가서는 “수영할래요?”라고 묻더니, “나는 할래요.”라며 혼자 바다로 들어가 버린다. 두 다리를 잃었지만 잠자리는 가능하냐는 어이없는 질문까지 던진다. 하지만 알리는 스테파니가 다시 세상으로 나아오는 데에 큰 다리 역할을 해준다. 자신을 사고 이전과 다를 것 없이, 다른 사람과 다를 것 없이 그저 스테파니로 대해주는 데에 그녀는 잃었던 자신감을 서서히 찾아가고 다시 세상에 나아오고, 바다로 들어간다. 의족을 착용하고 다시 범고래와 직장동료들을 찾아가는 것은 모두 알리를 만난 이후에 가능해졌다.

알리 역시, 스테파니가 버팀목이 되어준다. 판돈을 거는 내기판에서 삼류 복서로 일하고, 어쩌다 생긴 5살짜리 아들이 있는, 친누나마저도 한심하다고 여기는 알리는 스테파니 앞에선 유독 듬직해 보인다. 남들이 보면 실패한 인생이라고 부를만도 하지만, 스테파니는 알리가 그녀에게 그랬듯, 그의 그런 모습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 서로 기댈 수 있는 친구로, 버팀목으로, 때론 잠자리를 함께하기도 하는, 우리의 정서로는 조금 혼란스럽다고도 느낄 수 있는 이들의 관계는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스테파니의 ‘우리 사이는 뭐야?’ 라는 질문에 더욱 복잡미묘해진다.

하지만 알리는 아직 사랑을 중요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떤 계기로 모든 것을 두고 도망을 치게 된다. 후에 아들 샘이 사고를 당해 죽을 뻔 했을 때, 자신의 손이 부러지는 것도 모르고 아들을 필사적으로 구해낸 뒤, 넋나간 얼굴을 하고 있는 알리가 속을 터놓은 상대는 스테파니였다. 아들을 잃을까봐 두려웠다며 흐느끼며 나를 버리지 말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면서 결국 이들은 해피앤딩을 맞는다. 스테파니는 알리에 대한 사랑으로, 알리는 아들과 스테파니에 대한 사랑을 깨달으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

 

알리와 스테파니는 모두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다. 사람들로부터 삼류라는 평가를 받던 알리와, 두 다리를 잃은 뒤 세상에 자신을 내보일 자신이 없어진 스테파니는, 둘 다 아픔을 가졌기에 서로를 더 의지하게 되었을 것이다. 각자 세상에 내보일 수 없었던 자신의 아픔을 공감해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 줄 알았고 그런 둘이 만나 상처를 치유하며 더욱 더 강해지고 단단해졌다. 비록 알리가 사랑을 중요한 것으로, 무거운 것으로 삶에 받아들이기까지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스테파니는 그 시간을 사랑으로 견딜 수 있었다. 이 영화에서 사랑한다는 말은 단 한 번 등장한다. 이들이 말하는 사랑은 단순히 말만을 내뱉는 가벼움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지키고, 그들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이 영화는 전반적으로 지나치지 않은 느낌을 준다. 구구절절한 아픈 이야기들을 잔잔하고 정적으로 담아내는데, 이런 분위기가 오히려 관객이 주인공들의 삶의 무게를 실감하게 하고, 그래서 더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또한 아름다운 영상미가 시선을 끌지만 마냥 아름답다고 느껴지기 보다는, 주인공들의 상황과 대조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또 장르가 로맨스임에도, 주인공들의 맹목적 사랑이나 해피엔딩에만 집착하지 않는, 삶의 무게를 담은, 하지만 그럼에도 사랑 또한 결코 가볍지 않음을 알게 하는 영화다. 흔한 노래와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사랑과, 현재 이 세대의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사랑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대학생기자 김도형 / 경기대학교 경영정보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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