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산책/여행

[동남아여행]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

 '모퉁이에서'라는 여행 테마를 가지고 홀로 동남아 배낭여행 길에 올랐다. 한 달 중 4박 5일 동안은 캄보디아 씨엠립을 방문해 앙코르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태국 방콕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 캄보디아 국경에 도착한 뒤, 국경도시인 포이펫(poipet)에서 또 다시 택시를 타고 3시간을 가면 앙코르 유적지로 유명한 씨엠립에 도착한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반기는 것은 "헬로우 툭툭?"이라고 말하며 다가오는 툭툭이(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삼륜자동차)기사아저씨들이었다. '인간이 만든 신의 나라' '세계적인 불가사의' 등 그 동안 들어왔던 수식어로 인해 신비로운 도시일거라는 생각은 허상에 불과했다. 캄보디아는 확실히 자본이라는 경제적인 면에서는 변두리이자 변방이었다. 그런 점에서 캄보디아는 '모퉁이에서'라는 여행테마와 잘 맞아 떨어졌다.

▲ 국경도시 포이펫(poipet)

▲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삼륜자동차 일명 '툭툭이'

 앙코르 유적지 여행은 이른 새벽 앙코르와트의 일출을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캄보디아=앙코르와트'라는 공식이 성립할 정도로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앙코르 와트가 수많은 앙코르 유적지 중 하나의 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그 크기와 신비로움이 다른 사원들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앙코르 와트의 일출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여행객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앙코르 와트는 다른 사원들보다 더욱 일출을 중요시 하는 곳이다. 폴 뮈라는 학자에 의해서 앙코르 와트가 태양이 실제로 뜨는 방향에 맞춰 축성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사면이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사원들과는 달리 실제 태양을 중심으로 약간 삐뚤어져 있다는 것이다. 앙코르 와트를 축성한 수리야바르만 2세가 태양왕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 앙코르 와트의 일출

 앙코르 와트의 일출은 감동 그 자체였다. 연꽃 모양의 중앙 탑 뒤로 태양이 떠오를 무렵, 약속이나 한 듯 그 자리에 있는 여행객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탄성과 이야기를 쏟아냈다. 푸른빛의 하늘과 태양의 붉은 빛, 그리고 장엄한 앙코르 와트의 모습이 성전 앞 해자(연못)에 반사되어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였다. 이제야 앙코르 와트를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앙코르 와트의 일출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앙코르 와트의 일출을 보고 난 뒤, 앙코르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출만큼이나 놀라게 했던 것은 성전 벽에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찬 부조들이었다. 특히, 2층 벽에 줄지어진 약 1500여점의 압사라 부조는 최고의 볼거리였다. 알 수 없는 미소와 여성의 머리카락, 봉긋이 솟아오른 가슴과 오목한 허리를 표현한 섬세한 솜씨에 감탄했다. 사포가 없었던 당시 끌과 모래와 흙만을 이용하여 정교한 조각을 완성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 압사라 부조 여인의 얼굴과 가슴을 만지면 복이 온다는 캄보디아 속설이 전해온다. 관광객들의 손길로 여인의 얼굴과 가슴부분이 반들반들해졌다.

 가장 성스럽고 아름답다는 공간으로 알려진 중앙 탑으로 이동했다. 오직 왕과 일부 신하들만이 갈 수 있는 곳으로 신들의 세계라고 불리는 연꽃모양의 중앙 탑은 신비로웠다. 오르기 힘들 정도로 가파른 계단을 보면서 왕들과 신하들이 신 앞에 머리를 숙이고 올라가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3층 성소는 보수 공사로 인해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지 않아 아래서 올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천상의 계단 중앙 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경사는 가팔랐다. 계단을 올라가면 신 앞에 자연스레 엎드리게 된다.

 앙코르 여행은 일몰과 함께 마무리된다. 프놈바켕에서 일몰을 보면서 고단했지만 즐거웠던 하루를 정리했다. 최고의 일몰 포인트로 꼽히는 프놈바켕의 해질녘은 앙코르와트의 일출처럼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다. 산이라는 뜻을 가진 이 사원 위에서 풍경은 시원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평평한 대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프놈 바켕에 지어진 탑 뒤로 붉은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쓸쓸함을 느꼈다. 한때 최고의 번영을 누렸던 크메르 왕조 역시 찬란하고 화려한 과거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일출이 있으면 일몰이 있듯이 무심히 지는 해는 '영원한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프놈바켕의 일몰

대학생 기자 김수형 / 경희대학교 경영학부

ksh5059@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