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올해의 여름은 짧게 느껴진다. 생각해보니 제대로 된 여름휴가 한 번 가보지 않았기 때문. 맥주를 마시면서 새로 시작한 '꽃보다 청춘'을 보며 해외여행을 가겠다고 얼마나 계획했던가. 그러나 짧은 여름휴가와 돈, '취준생'이라는 타이틀로 인해 여행을 다음으로 미루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닐 거다. 다시 개학과 개강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니 국내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 감출 길이 없다. 여행을 가자니 사람들이 북적이고 커플들의 천국이니 조금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가보고 싶은 분들을 위해 준비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의 건축이지만 우리 민족이 보존해 온 목조건축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 건물임이 틀림없다.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멀찍이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 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무량수전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지체야말로 석굴암 건축이나 불국사 동계단의 구조와 함께 우리 건축이 지니는 참 멋 즉, 조상들의 안목과 미덕이 어떠하다는 실증을 보는 본보기라 할 수 밖에 없다.'
- 최순우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중에서 -
부석사는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에 위치해 영주시 관광명소로 손꼽힌다. 과거 인기 TV 프로그램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선정 도서 중 최순우 작가의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책 제목 안의 무량수전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1박 2일>프로그램에도 나오면서 유명 관광명소로 자리잡았다.
비교적 싼 값인 1,200원에 매표를 하고 천천히 올라가면 녹음이 우거진 길을 만나볼 수 있다. 가을에 단풍나무 길로 유명하지만, 여름에 잎이 무성한 나무들이 있는 길도 또 다른 느낌을 준다.
경사진 길을 조금 더 올라가면 석탑과 오래된 건물을 볼 수 있다. 좌우 삼층석탑과 그 사이 누각을 발견하면 제대로 부석사 사찰로 들어온 것이 맞다.
무량수전으로 향하는 길에서 첫 번째 누각인 범종각. 범종각이라는 글자는 없고 '봉황산부석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누각은 웅장한 모습이지만 전혀 위압감이 없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자로 잰 듯이 일정하고 안정적인 처마와 살짝 올라간 처마 끝은 자유로운 느낌을 준다. 이런 느낌이 건축가들도 다시 찾는 이유가 아닐까.
범종각 2층에는 용을 떠올리게 하는 얼굴과 물고기 몸통을 한 조형물과 커다란 북이있다.
범종각을 지나면 무량수전으로 가기 전 두 번째 누각인 안양루를 만나볼 수 있다. 안양루 처마 또한 일정하면서도 살짝 올라간 부분의 곡선이 아름답다.
안양루를 지나면 부석사의 상징인 무량수전을 만나게 된다. 무량수전은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면서 배흘림기둥 건축 양식으로 유명하다. 무량수전을 처음 대면할 때 무량수전의 명성과 아름다움에 의문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굳이 무량수전의 건축 양식의 아름다움을 꼭 찾을 필요는 없다. 시간이 지나면 그저 무량수전의 너그럽고 의젓한 자태에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무량수전 앞 석등은 국보 17호로 지정되어있다. 신라시대 석등 중에서도 걸작으로 꼽힌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투박해 보이지만 어느 다른 석등도 무량수전 석등의 교묘함과 비율을 따라올 수 없다고 한다.
무량수전을 천천히 보고 나서 내려오는 길의 풍경은 올라갈 때의 풍경과 또 다른 모습을 선사한다. 부석사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일품이다. 격식까지 갖춰져 있으면서도 아기자기한 지붕들이 보이고 멀리 구불구불 겹겹이 산들이 보인다. 불교 화엄사의 발원지로 명당으로 꼽히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해질녘, 부석사에서 내려오면 그 고즈넉함에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시끌벅적한 곳에서 신나게 놀고 맛있는 음식들을 먹으면서 휴가를 보내는 것도 좋지만,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가끔씩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통해서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느림이 주는 매력이 아닌가 싶다. 얼마 남지 않은 여름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권한다.
더 많은 정보 부석사 http://www.pusoksa.org/
대학생 기자 김수형 / 경희대학교 경영학부
ksh505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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