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공 월드컵을 맞아 인터넷 공간의 열기도 뜨겁다. 차두리 선수가 사실은 차범근 해설위원이 제작한 로봇이라는 ‘차두리 로봇설’을 필두로 네티즌은 월드컵을 소재로 수많은 패러디물과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스의 카추라니스 선수는 경기 도중 자신의 발에 파헤쳐진 잔디를 다시 심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돼 ‘지중해 매너남’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곱게 잔디를 정돈하는 그의 모습은 수많은 패러디물을 낳았다.
▲ 명화 '이삭줍기'가 '잔디심기'로 재탄생했다.
이어 17일 아르헨티나전에서 한국이 1:4로 패하자, 네티즌의 분노는 엉뚱하게도 디시인사이드의 과학 갤러리와 수학 갤러리로 옮겨갔다. 이날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이과인(HIGUAIN) 선수의 이름이 마치 '이과인(理科人)'처럼 들린다는 이유에서였다.
경기가 끝나자 수학 갤러리 게시판은 분을 삭이지 못한 네티즌의 “여기가 이과인이 거주한다는 수학갤인가요?” “골의 각도와 방향을 벡터로 해석해주세요” 등의 장난 섞인 글로 도배되었다. “정부는 뭐하냐. 이과인 무시하니까 지잖냐”와 같이 이공계 홀대와 아르헨티나전 패배를 엮은 기발한 글도 있었다.
▲ 아르헨전 경기 직후 수학 갤러리의 모습
나이지리아전이 끝나자 이번에는 가전 갤러리가 때아닌 뭇매를 맞았다. 교체 투입 직후 반칙으로 페널티킥을 허용한 김남일 선수의 별명이 진공청소기이기 때문이다. 가전 갤러리에는 “진공청소기가 고장나서 반품하러 왔다”는 글들이 올라왔다.
가전 갤러리가 갑자기 뜨거워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올해 초, E-스포츠 빅매치인 리쌍록(이영호-이제동 대결)이 온풍기 과열로 인한 정전 때문에 심판진 판정으로 승부가 갈리자, 네티즌은 온풍기를 최고의 프로게이머로 추대하자는 글로 가전 갤러리를 도배한 바 있다.
나이지리아전 종료 직후 다른 한 편에서는 16강 진출을 자축하기 위해 1 더하기 6은 7이라는 이유로 가수 세븐의 갤러리에 도배글을 올리는 네티즌도 있었다. 세븐 갤러리는 앞서 그리스전에서도 전반 7분, 후반 7분에 한국의 골이 터졌다는 이유로 몸살을 앓은 바 있다.
▲ 나이지리아전 직후 가전 갤러리의 모습
이렇게 갤러리의 주제와 전혀 다른 성격의 글이 도배되는 것을 네티즌은 '갤러리가 털렸다'고 표현한다. 대상으로 정해진 갤러리는 순간적으로 수많은 네티즌의 울분이나 기쁨을 분출하는 해방구가 된다. 우천으로 야구 경기가 취소되는 날에는 가수 비(정지훈)의 갤러리가 분풀이 대상이다. 가수 세븐 갤러리는 숫자 7과 관련된 사건만 생기면 단골 공격 대상이다. 베이징 올림픽 여자 양궁 단체전에서 이탈리아 마지막 선수가 7점을 쏘아 한국의 금메달이 확정되던 날도 몸살을 앓았다.
물론 해당 갤러리에 오랫동안 정을 붙이고 활동하던 이에게는 네티즌의 '털기'가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반례도 있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장미란 선수가 금메달을 따자 장미꽃을 떠올린 네티즌은 식물 갤러리에 도배를 시작했다. 식물 갤러리 이용자들은 대부분 텃밭 가꾸기, 산행, 꽃 사진 찍기가 취미인 40~50대 어르신들. 젊은 네티즌의 장난에 어르신들이 오히려 장미꽃 사진을 올리며 화답하자, 네티즌 역시 도배를 멈추고 어르신들의 넓은 마음 씀씀이에 감화되었다는 이야기는 디시인사이드의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오늘 열릴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는 부디 분노의 글로 '털리는' 갤러리가 없길 간절히 기원해본다. 한국 대표팀의 8강 진출에 대비해 가수 세븐의 팬들에게 다시 한번 너그러이 갤러리를 내어주시길 부탁드린다. 우리 대표팀이 7골을 넣거나, 7번인 박지성 선수가 골을 넣거나, 그것도 아니면 7 더하기 1은 8이니까.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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