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CEO와 함께 일했던 소중한 추억

[V3 개발 22주년] 전 안랩인의 '그땐 그랬지' (4)


안철수연구소의 선후배, 동료분들 안녕하신지요. 지난 2003년 4월부터 2006년 6월까지 안랩 커뮤니케이션팀에 근무했던 류동수라고 합니다. ^^*

어릴 적부터 여러 도시를 전전해도 항상 제 마음의 고향은 유년기 3년을 보낸 보물섬 ‘남해’인 것처럼 외국계, 대기업, 벤처기업, 공공기관까지 다양한 곳에서 회사 생활을 했음에도 제게는 늘 마음 속의 고향과도 같은 이름, 안랩 사보로부터 초청받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생각해 보니 저는 안랩의 전체 역사에서 수서동 시절의 마지막과 여의도 시절의 초반을 겪은 셈이네요. 많은 동료들과의 추억이 쌓인 여의도 사무실을 가끔 서울 출장길에 방문을 하고 싶어도 홍보맨인지라 주로 기자들의 바쁜 일정을 쫓아다니는 경우가 많아 쉽지가 않네요. 사실 좀 계면쩍은 것도 사실이구요. ^^;

반 년에 걸친 두 번의 면접으로 안랩인 되다


안랩에 처음 입사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거 아시나요? 저는 안랩에 합류하기까지 6개월에 걸쳐 2차례 면접을 봐야 했습니다. 처음 헤드헌터에서 이직 의사를 타진 받았을 때는 안랩의 해외홍보를 담당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설명이었지만, 막상 면접을 보고 난 후 ‘채용 의사는 있는데 회사의 미국 시장 진출이 연기되면서 채용이 보류되었다, 당분간 다른 곳에 가지 말고 기다려 달라’는 좀 당황스런 요청이었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안랩이었기 때문에 이직을 결심한 터라 별 생각 없이 기존 직장에서 계속 근무했는데, 정말 반 년 후 다시 연락이 오더군요. 하지만 면접을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한다는 인사팀의 설명에 좀 불만을 표시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면접에서 고인이 되신 김철수 전 사장(당시 부사장)께서 면접을 주도하셨는데 동석하신 안철수 당시 사장께서는 한 마디 말씀도 없이 들으시다가 나중에서야 ‘젊은 나이에 비해 좋은 경력을 가졌다, 비결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하신 기억이 어렴풋이 나네요. ㅎ

우여곡절 끝에 입사한 안랩, 안철수 사장님을 곁에서 매일 대하며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신이 났던 하루하루였습니다. 당시 회사와 팀의 여건상 참으로 다양한 업무를 맡았습니다. 언젠가 친하게 지내던 재무팀 김덕환 대리(현 차장)가 조직도를 그릴 일이 있으니 제 업무를 4자로 표현해 보라는 요구를 해서 난감해 했던 기억이 나네요.

박근우 팀장과 안랩 터줏마님(?)이신 황미경 과장(현 차장)을 도와 언론홍보를 비롯해 CEO 의전, 홈페이지 관리, 사보, 조직문화 정립, 사회공헌활동, 각종 협찬/광고에다 마지막 해에는 해외홍보,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및 IR 지원 업무까지 팀에서 하는 모든 업무에 참여를 했으니까요. 덕분에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어딜 가나 사보쟁이?

 

'보안세상' 창간준비호 표지

그 중에서 가장 보람이 있었던 것은 현재 제 글이 실리는 사보 <보안세상>을 처음으로 창간한 일일 듯합니다. 그 어느 곳보다 커뮤니케이션을 중요시하는 안랩이지만, 막상 당시까지는 임직원들의 소식을 전할 사보가 없는 상황이었죠.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도 사보 편집장 역할을 했기 때문에 입사 후 조직 문화 정립을 위한 사보 창간의 미션을 받았고, 경영진과 커뮤니케이션팀 선배들의 적극적인 지원 속에 지금 보면 촌스럽기 그지 없는, 안랩 최초의 사보 <보안세상>을 처음 선보였는데, 이렇게 모습을 바꿔가며 날로 발전하는 블로그 <보안세상>을 만나니 또 다른 감회를 느끼게 됩니다.

매년 연말 전 임직원 참여 하에 1400여 점 이상의 재활용품을 모집해 <아름다운가게>에 기증하고 명예판매원으로 자원봉사활동을 주관한 일도 기억에 남습니다. 쑥스러움 많은 안철수 당시 사장님도 직접 앞치마를 매고 <아름다운가게>에서 손님을 맞으며 봉사를 해서 화제가 됐죠.

행사 당일 <아름다운가게> 기증품의 하나로 내놓은 안철수 사장님의 자필 서명 저서를 매장에서 정리하고 있자니, 협약식을 위해 가게를 일찍 방문한 박원순 변호사께서 “안 사장님의 자필 서명 저서는 귀중한 건데, 매장에서 이렇게 한꺼번에 다 팔아버리면 안 되지” 하며 좋은 일에 별도로 쓰겠다고 따로 몇 권을 챙겨놓으시더군요. 다른 명사로부터도 인정받는 분을 대표이사로 모시고 있다는 생각에 자긍심이 절로 났던 기억이 납니다.

또 <아름다운가게>와 자매 기관인 <아름다운재단>과 기업 최초로 ‘아름다운일터’ 협약을 맺고 사내 봉사단 운영과 사회공헌기금 마련 활동을 주관했던 것도 의미 있었습니다. 봉사단 직원들과 직접 사랑 나눔 사과나무를 제작해 회사 로비에 붙이고 참가자의 이름이 적힌 사랑의 열매가 나날이 늘어가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기억과, 도자기 동호회와 연합해 회원들이 만든 도자기를 전시하고 판매수익금을 사회공헌기금에 적립했던 일도 생생합니다.

CEO는 운전기사, 홍보맨은 뒷자리에


그 밖에 재미있었던 에피소드도 많은데, 안철수 사장님과 관련된 것도 많습니다. 특히 홍보맨으로서 안랩에 합류하고 난 뒤 초창기 가장 곤혹스러울 때 중 하나는 바로 안 사장님과 함께 언론사 방문 등 이동을 할 경우였습니다. 당시 안 사장님은 다른 CEO들과 달리 운전기사를 두지 않고 손수 운전을 하셨습니다. 부서장들이 운전기사를 두라고 몇 번씩 건의한 적이 있다고 하나 안 사장님은 늘  "그런 돈 있으면 직원을 한 명 더 충원해드리겠습니다."라며 거절했다고 하네요.

그러다 보니 어쩌다 CEO를 수행해야 할 상황에선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어느 날은 교양 강좌 프로그램인 <KBS 특강> 녹화를 위해 안철수 사장님을 모시고 촬영이 있는 KBS 수원 스튜디오로 향했는데, 보통 이런 경우 제가 운전을 해야 할 상황이지만, 저는 다름아닌 '장롱면허’. 그런 제가 위험 운전을 하겠다고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죠. 결국 안 사장님이 지도를 찾아가며(당시 내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라) 손수 운전을 하고, 말단 직원은 뒷좌석에서 팔자좋게 졸다시피 수원으로 향하는 ‘아름다운’ 광경이 연출된 것입니다. ㅋ

그 이후 박근우 팀장은 가끔 제게 이런 말을 하시곤 했습니다. "류 대리도 알다시피 류대리 뽑을 때, TO가 없어 어렵게 뽑았잖아요. 내가 사장님께 그랬거든. 새로 오는 경력사원은 운전도 잘하니까, 동행하실 때도 편하실 거라고...그랬는데...ㅜ.ㅜ"  ㅎㅎㅎ

바이러스 발생에는 공휴일이 없어


업무들은 저를 자극하는 도전적이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지만 일인다역을 하다 보니 힘에 부칠 때도 많았습니다. 특히 아직 사보에 익숙하지 않은 직원들의 원고를 받아 사보 마감 일정을 맞추는 일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원고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다양한 분들에게 청탁을 했지만, 글쓰기가 익숙치 않은 분들이 일단 기고 자체를 꺼리는 경우도 많고, 각자 업무가 있다보니 과외 업무로 여긴 원고 마감 일정을 어기는 경우도 많았죠. 당시 제 개인 홈페이지를 보니 “이번 달 사보기자들이 한꺼번에 태업 수준이다. 마감일이 되도록 아예 원고 쓰는 걸 까먹고 있거나, 정제되지 않은 글을 휙하니 던져주곤 나 몰라라다…”라며 힘들어한 표현이 있네요.

바이러스가 발생하면 소개팅 하다가도 돌아오고, 공휴일에도 출근해서 하루 몇 차례씩 긴급히 보도자료를 배포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2003년 8월 컴퓨터를 저절로 켰다 껐다 하는 블래스터 웜은 자취방의 개인 컴퓨터도 피해를 입었을 정도였는데 성급한 언론은 제 2의 인터넷 대란이라는 표현까지 할 만큼 피해가 극심했죠.

안랩에 근무하는 동안 커뮤니케이션팀 소속이라 모든 부서와 두루 친분을 유지했습니다. 굳이 꼽으라면 그 중에서도 형처럼 든든했던 재무실의 김덕환 대리, 투정 부리는 여동생 같았던 해외사업부의 조연주 대리, 막내 동생 같았던 ASEC의 정관진 대리(현 선임연구원) 등과 친하게 지냈는데, 심지어 이들과 주말 영어 스터디 그룹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온라인사업부의 김현영 대리나 남후남, 박아연 씨 ‘무리’들도 저를 많이 “괴롭”혔고, 안랩에서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자며 만들었던 입사 동기들의 모임 ‘서밀당’ 회원들과의 추억도 가슴에 남아 있습니다. 
 


무엇보다 정관진 대리가 회장으로 있던 인라인 스케이트 동호회 활동은 안랩 생활의 가장 큰 낙이었고, 제게 잊지 못할 많은 추억도 선물했습니다. 회원들과는 여러 대회를 참가했는데, 특히 동해고속도로 오픈 기념 인라인 마라톤 대회를 1박 2일로 참석했을 당시 전날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바람에, 회원들이 정작 인라인을 타면서 토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완주를 했던 기억, 안랩 깃발을 들고 나선 덕분에 강원MBC 촬영팀을 비롯해 많은 참석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기억도 새롭네요. 가끔 야근이 힘들면 인라인을 싣고 나와 여의도 공원을 몇 바퀴 돌다가 한강변으로 향했는데, 방화대교까지 신나게 달렸다 돌아오면 거의 30km 가까운 거리를 달린 셈이 됐죠. 귀를 간지럽히는 시원한 강바람과 한강다리의 조명, 인라인과 자전거를 타며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 돌아오는 길에 한강 포장마차에서 즐기던 얼음 둥둥 뜬 시원한 냉면 맛… 너무나 그립습니다. ^^

정관진 대리와는 동호회 활동으로 다진 친분으로 업무적으로도 많은 파트너십이 있었지요. 언젠가 V3의 취약점을 발견한 유럽의 모 업체가 일정 시점 후 취약점 발표를 하겠다는 연락한 것을 뒤늦게 발견한 정관진 대리의 귀띔으로 서둘러 유럽 현지에 전화를 해 설명을 하고 취약점을 보완한 다음 홈페이지에 패치와 함께 취약점 보고서를 발표한 일이 있습니다. 이때 취약점 발견 시 쉬쉬 하기에 바쁜 다른 보안업체와는 역시 다르다는 평가를 얻었던 기억도 납니다. 

참신성에 대한 관심과 반영 그리워


안랩은 당시 10여 년밖에 안 된 벤처기업으로서 여러가지 제도가 미비하거나 충분히 자리잡지 않은 점, 평균 연령이 30세에 불과할 정도로 젊은 직원이 많다보니 직장인으로서 기본이나 자세가 세련되지 못한 점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떠나온 지금,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면서 많은 차이점을 경험하고, 또 새삼 안랩만의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현재 있는 곳은 공공기관이라 규정과 절차가 일의 효율성보다 우선시되는 터라 가끔 업무 스피드를 떨어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필요하면 말단 직원도 언제든 사장실의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안랩만의 신속한 커뮤니케이션, 자율적인 사내문화, 젊은 직원이 많아 활발했던 분위기도 안랩만의 장점이지요. 특히 언제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하고, 또 다소 엉뚱한 아이디어일지라도 진지하게 귀 기울여주고, 하고자 하는 일에 적극 힘을 실어주었던 선배들에게 새삼 감사의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덕분에 그 어느 곳에서보다 많은 일을 경험하고 새로운 일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저도 그러한 선배가 되고 싶은데 막상 쉽지만은 않더군요.

더 많은 분들과의 추억을 떠올리고 싶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는 듯해 이만 줄여야 할 듯합니다. 마지막으로 몸담고 있는 동안 모두가 저마다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 안랩을 발전시켜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OB 멤버라면 모두 공감하실 것입니다. 자신이 몸담았던 직장의 발전과 성장이 향후 자신의 커리어에 얼마나 큰 자산이 되는지, ‘안랩 출신’이라는 타이틀이 얼마나 자신을 소개하고 브랜딩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지를요. 비록 몸은 떠나 있지만 전현직 동료들과 소식을 공유하고 늘 언론보도 등을 통해 응원하고 있는 OB 멤버들에게도 안랩의 발전 소식은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제 직장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한때를 보낸 안랩의 모든 임직원의 앞날에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멀리 창원에서 류동수 드림.  Ahn

류동수 / 한국전기연구원 홍보협력실 언론홍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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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7.07 10:10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2. 박근우 2010.07.09 14:44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멀리 창원이라서 자주 볼 수 없어 아쉽습니다.
    나중에 서울 오면 연락주세요.
    아울러, 건승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