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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명사 인터뷰

서른넷에 직장 때려치고 여행가로 변신한 김남희씨

"저는 여행을 통해 '긍정의 힘'을 많이 배웠어요. 여행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나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발견하면서 나 자신을 긍정하게 되었고요. 여행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타인의 삶을 사랑하고 긍정하게 되었어요."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도보여행가'라는 수식어가 함께 따라다니는 여행작가 김남희. 그녀는 서른넷의 나이에 잘 다니던 터키 대사관을 그만두고 전세보증금과 적금을 털어 무작정 세계 여행길에 오른 '용자'이다. 그것도 여자 혼자, 걸어서. 최근에는 일본을 여행하고 일본 여행기를 출간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박차고 나서 지금까지, 여행을 하게 만드는 여행의 매력은 무엇일까. 햇볕이 내리 쬐던 평일 오후, 그녀의 자택이 있는 부암동의 한 까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출처: 다음 책>

안정적인 직장을 관두고 여행을 시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여행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제가 터키 대사관을 다닐 때 여름 휴가를 한 달씩 줬는데, 그 한 달 동안 저는 한 나라를 여행하고 다녔어요. 갔다 오면 내년에는 어느 나라를 갈지 정하고 그것으로 직장 생활 1년을 버티고, 여행 갔다 온 에너지로 1년을 버티곤 했어요. 그런데 여행을 끝마치면 돌아오기 싫어서 항상 비행기 안에서 울고, 회사에 거짓말을 해서 못 간다고 할까 그런 생각도 할 정도였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배낭 싸는 게 지겨워질 때까지 원 없이 여행을 하리라 마음을 먹었어요. 그런데 직장 생활이라는 게 마약 같은 중독성이 있더라고요. 안정적으로 월급이 나오니깐요. 그것 때문에 버티다가 어느 순간 더 이상은 여행을 미뤄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더 넓은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기 위해서 사표를 내고 여행을 떠나게 됐죠. 여행할 때의 내 모습이 제일 예쁘고, 또 여행을 하는 것이 내 가슴을 가장 뛰게 하는 일이고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여행'만 생각하게 돼서 자연스럽게 사표를 냈던 것 같아요.

 


제일 처음으로 여행했던 곳은 어디인가요?

유럽이요. 대학생 때 67일 정도 혼자서 배낭을 메고 여행을 했죠. 그 당시에는 밤차로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동하며, 씻지 않고 먹지 않고 잠을 안 자도 배부르고 행복했던, 놀라운 충격의 경험이었어요.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되겠구나, 인생에 정답은 없는 것이구나, 남의 눈치 안 봐도 되지 않을까 등등 제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좁은 세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제 눈앞에 펼쳐진 거였어요. 그 여행이 결국 제 인생을 바꿨죠. 이때는 미술관, 박물관 위주로 다녔는데, 먹는 것 자는 것 아껴가면서 많이 보러 다녔죠. 단 1초도 헛되이 보낸 시간 없이 두 눈을 반짝반짝거리면서. 온 몸의 세포가 다 활기차게 움직인다고 할까? 그때의 저는 세계를 마구 빨아들인 스펀지였죠.

 

여행이라는 것이 각 나라의 유명한 관광지만을 찾아다니는 방식도 있고, 혹은 시골이나 오지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면서 명소보다는 현지인들과 그들의 삶의 모습을 좀 더 구경하는 방식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굳이 미술관과 박물관을 여행 주제로 택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그 당시 유럽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했을 때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렇다면 유럽이라는 이 대륙이 쌓아온 역사, 문화를 만나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유럽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집약적으로 잘 드러내는 것이 미술관, 박물관이라고 생각했죠.

여행기를 쓸 때 롤 모델 혹은 벤치마킹 하는 작가가 있나요?
벤치마킹이라기보다는 나도 언젠가 이런 사진을 찍고 이런 글을 쓰면서 여행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작가가 있어요. 일본의 '호시노 미치오'라는 동물 사진 작가인데 굉장히 전설적인 분이에요. 그는 어느 날 우연히 알래스카 사진을 보게 돼요. 1970년대 일본에서 알래스카는 전혀 알려진 곳이 아니었어요. 호시노 미치오는 그 사진을 보고 감명을 받은 나머지 무작정 그 사진에 나온 알래스카 동네 주소로 편지를 보낸 거에요. 그 마을에 너무 가고 싶다고. 그런데 정말 1년 후에 그 마을에서 답장이 온 거에요. 그래서 이 사람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 때인가 돈을 모아서 알래스카에 갔어요. 결국 알래스카에서 20년 넘게 살고, 거기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죠. 알래스카에 살면서 책도 여러 권 쓰고 사진집도 내며 살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알래스카 캄차카 반도에서 곰 사진을 찍다가 곰에게 물려 죽어요. 가장 자기답게 죽은 거죠. 그런데 이 사람의 글과 사진이 매우 담백해요. 그 어떤 꾸밈이 없으면서 담백하고 힘이 넘치고 아름다워요. 그래서 언젠간 나도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내공을 쌓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죠. 한때는 제가 이 사람한테 너무 빠져서 이런 남자와 결혼해서 이런 남자를 닮은 아들을 낳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에요.

 

여행에서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아주 많아요. '피스앤그린보트'라고 한국과 일본이 같이 띄운, 평화 환경 교육을 하는 크루즈가 있어요. 거기서 환경 운동, 평화 운동을 함께 하는 '스지 신이치'라는 선생님을 만났는데, 일본에서 '슬로우 라이프'라는 말을 처음 만든 분이에요. 그 이후로 일본 갈 때면 신이치 선생님 댁에 머물기도 하고 같이 여행을 하기도 했는데, 그 선생님에게 매우 많은 것을 배웠어요. 그는 "지금의 경제 시스템과 사회 시스템이 결국에는 붕괴하고 말 것이다. 그런 시스템이 붕괴되었을 때, 우리가 현재 찾는 대안적인 삶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까. 우리가 그걸 대체할 거대한 힘이 되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사람들에게 다른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지 않을까."라는 말씀을 하셨어요. 저에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은 것을 가르쳐주시는 선생님이에요. 그래서 작년에 선생님과 같이 부탄도 여행했고 일본은 물론이고 다음 책도 같이 준비하고 있고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분이에요.

예전에 마흔 살까지는 유목민으로 살고, 그 이후에는 한국에 정착해서 외국인 여행객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여행학교를 운영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아직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신가요?
인생을 80년 정도까지 살게 되었으니 전반전 40대까지는 유목하고, 그 후에 정착을 하겠다는 거였어요. 아무래도 이번에 중남미를 갔다 오고 나면 제가 가고 싶었던 나라는 대충 다 둘러보게 되는 거니깐 내년 후반이나, 내후년부터는 정착해서 살아가게 될 거 같아요. 그렇다고 정착하고 나서 전혀 외국 여행을 가지 않고 우리나라에서만 지내겠다는 것은 아니고요. 지금보다 여행을 하는 횟수는 줄어들겠지만 여행은 평생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돈이 없는 대학생, 20대에 값진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여행지가 있다면?
저는 인도를 많이 추천해요.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도, 한 달에 50만원으로도 여행할 수 있는 곳이고 제가 1년 간 인도와 네팔을 여행했을 때 비행기 값 빼고 450만원을 썼거든요.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을 할 수 있는데다가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에요. 나라가 워낙 커서 대륙과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어서 다양성도 굉장하고 여러 가지 성장할 수 있는 경험의 기회를 많이 줄 수 있는 곳이에요.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어떤 여행 방식을 추천하시나요?
저는 자기만의 주제와 스타일이 있는 여행을 많이 하라고 해요. 나한테 별로 의미도 없고 관심도 없지만 단지 유명하다는 이유로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사진만 달랑 찍는 그런 여행은 하지 않았으면 해요. 유명한 여행지라도 나한테 의미가 없으면 그냥 과감히 포기하고 나만의 주제, 예를 들면 미술관 탐방, 음식 탐방, 영화의 소재와 배경이 되었던 곳 탐방 등. 혹은 여행 가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면, 뒹굴면서 책을 읽어도 되는 거고요. 즉,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주제와 스타일이 있는 여행을 창조하길 바래요.

여행을 하면서 무엇을 배우셨나요?
저는 '긍정의 힘'을 많이 배웠어요. 여행하면서 그동안 몰랐던 나의 예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발견하면서 나 자신을 긍정하게 되었고요. 여행에서 만난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타인의 삶을 사랑하고 긍정하게 되고, 너무 거창할 수도 있지만 지구시민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았어요.

여행 후 충만함이 굉장히 클 거 같아요.
성장하는 즐거움이 있죠. 이 여행을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끝없이 낯선 환경에서 생활을 함으로써 늘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은 많이 하죠. 내가 그대로 살았으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았을지. 그것은 단순히 세상에 대한 지식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정신연령이나 세상을 판단하고 보는 나의 눈조차 얼마나 좁고 얕았을까를 생각하면 아찔할 때가 있어요. 그나마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여행 덕분이에요. 그래서 여행은 저에게 그 어떤 교육보다 훨씬 뛰어난 스승이자, 학교였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여행을 통해 환경주의자,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어떤 소비 행위를 할 때 매우 꼼꼼하게 따지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싸고 마음에 드는 물건이면 그냥 샀는데 지금은 이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혹시나 제 3세계의 아이들이나 여성을 착취하지는 않는지,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는지, 이 회사가 환경을 파괴하거나 아주 나쁜 일을 벌이는 회사는 아닌지. 그래서 혼자서 보이콧하는 물건이 매우 많아요. 너무 피곤하게 사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세상을 바꾸는 거대한 힘은 다 개인의 작은 변화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세상이 다 그런데'라는 말이에요. 스스로가 세상을 바꾸기 위해 전혀 노력하지 않는다는 말이잖아요. 세상 탓이나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기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하면서 살아가는 게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을 여행을 통해서 배웠어요.

 

단행본 <인생기출문제집>에 20대 때 고민해 볼 질문으로 '당신 삶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미래를 위해 오늘을 생각하는 것을 미루고 있진 않나요?" "실패를 기꺼이 맞을 수 있나요?" "불편한 진실을 목격한 적이 있나요?"를 들었는데요. 어떤 생각을 거쳐서 그 내용을 넣게 되었나요?
강연에서, 여행에서 만난 대학생들을 보면서 20대의 활력과 도전의식, 용기가 없이 너무 경직되어 있고 안정적인 길을 가려고 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어요. 여행을 하면서 그렇지 않은 20대의 친구들도 많이 만났지만, 우리나라에서 만난 평범한 대학생들을 보면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연애든 일이든 마음껏 도전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20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마음껏 썼어요.

김남희씨의 20대는 어땠나요?
저의 20대는 비교적 제 마음대로 살았던 것 같아요. 대학생 때는 집에서 반대했지만 열심히 데모하면서 길거리에서 대학 시절을 다 보냈어요. 그 이후에는 제가 원하는 길로 가고 싶었던 저와, 주변에서 원했던 제 모습 사이에서 왔다갔다 하면서 보냈어요. 그러나 남들이 바라보는 내 모습이 안정적으로 보이고 좋아 보여도 그것이 결코 나의 행복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결국 30대가 넘어서야 남들이 원하는 삶이 아닌,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나올 수 있었죠. 그래서 전 20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나이 들어서 점점 행복해지고 있고 제 삶에 만족하게 되었거든요. 그러나 그렇게 방황했던 20대의 모습이 지금의 저를 만든 밑거름이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20대의 시절도 그립고 소중해요. 하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김남희씨는 20대가 명예와 돈이 아닌,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길 바라시나요?
그럼요. 명예나 돈이라는 것은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다보면 자연스레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해요. 설령 따라오지 않는다고 해도 자신이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후회는 별로 없을 거 같아요. 그러나 그게 아닌 돈이나 명예만을 찾아가는 길은 너무나 많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망가뜨릴 위험도 내포하고 있고, 내 꿈을 포기한 상실감도 함께 따라올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20대는 명예나 돈이 아니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Ahn

   

 

대학생기자 박해리 / 성균관대 문헌정보학
사진. 사내기자 황미경 / 안철수연구소 커뮤니케이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