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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컬처리뷰

러시아 고려인에 우리 문화 전하는 이색 봉사활동

러시아 남부 중앙아시아 카프카스 산맥 서쪽 끝에 아디게야 공화국이 있다. 1991년 구 소련의 해체와 함께 자치주에서 러시아연방의 자치공화국이 된 곳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이 곳으로 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러시아에 봉사 활동이라니? 조금 생뚱맞기도 하다. 하지만 러시아에는 우리 동포인 수많은 카레이스키(러시아를 비롯한 독립국가연합에 사는 한국인 교포를 통틀어 일컫는 말)가 산다. 한국인이 러시아로 이주하기 시작한 것은 1863년으로, 당시 농민들이 한겨울 밤에 얼어붙은 두만강을 건너 정착했고 이어 4,500여 명에 달하는 한인이 이주했다. 이후 수많은 우리 민족이 러시아로 넘어갔으나 스탈린의 대숙청 당시 유대인, 체첸인 등 소수민족들과 함께 가혹한 분리·차별 정책에 휘말려 끊임없는 강제 이주의 고통을 당했다.

배타적 민족주의 운동 확산으로 고려인들은 국가와
직장에서 추방당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자 거주 한인들을 중심으로 자치회가 형성,
현재까지 자치 지역 실현 및 모국과의 교류 확대 등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는 한민족의 피가 흐르는 이들을 방문해 우리나라의 문화와 민족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출국 한 달 전
부터 태권도, 사물놀이, 탈춤, 한복 패션쇼 등의 다양한 공연을 준비했다.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해 22시간을 버스로 이동해 도착한 아디게야 공화국. 우리가 도착한 후 이 곳 시내 한복판의 한 레스토랑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소식을 듣고 모인 고려인들. 그들은 영락없이 이방인처럼 보이는 검은 머리에 검정 눈동자를 가진 한국
인들이 파전과 우리나라 전통주를 앞에 놓고 인사하는 모습에 무척 당황하는 듯했다.
 
나이 50의 천클림씨는 "나의 할머니로부터 한국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지만, 한국 사람을 보는 것은 생전 처음이다."라며 감격스러워했다.

이들 사이에 서툰 우리말 질문이 나오면 우리는 천천히 또박또박 답변하는 상황이 쉴새 없
이 이어졌다. 
 

"김범을 좋아해요. 꽃보다 남자"
"김범을 아는 거야? 꽃보다 남자는 한국에서도 아주 유명했어!"

핸드폰
에서 김범과 이민호 사진을 보여주는 16살 제냐와 우리는 '꽃보다 남자'의 삽입곡인 'stand by me'를 함께 부르며 손뼉을
치기도 했다.

아디게야의 수도인 이 곳 마이코프에는 꽤 많은 고려인이 살았지만 하나둘씩 대도시로 떠났고 현재는
20∼30 가족 정도가 곳곳에 흩어져 있다. 대개 사할린에서 이주한 부모를 따라와 정착한 고려인 3,
4세들이다. `우리의 뿌리는 한국'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한 채 서로 의지하고 뭉쳐 살면서 TV로나마 조국을 배우지만 이렇게 한국인을 직접 본 것은 모두가 처음이라고 했다.

식당 벽면에 전통 문화와 현재 서울의 모습을 소개하는 영상을 틀고, 그동안 열심히 연습한 태권도와 사물놀이, 민요와 한국 아이돌의 댄스를 선보였다.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한국에 대한 얘기만 들어왔던 이 곳 사람들은 하얀 태권도복을 입고 기합과 함께 돌려차기로 송판을 격파하거나, 한복을 입은 학생이 남도민요 `성주풀이'를 목청 높여 부르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리가 합창으로 아리랑을 부를 때는 들어본 적이 있는지 콧소리를 내며 노랫가락을 흥얼흥얼 따라부르기도 했다. 가장 신이 난 이들은 바로 어린 학생들이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구해 한국어를 공부해 온 이들은 `대학생 선생님'에게 질문 세례를 퍼부었다. 어른들도 결혼이나 제사, 돌 잔치, 환갑 잔치 등 우리 관습을 소개한 손때 묻은 책자를 챙겨 와 한글 발음을 묻느라 정신이 없었다.

중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 옆에 앉은 서슬라바는 한국어와 러시아어가 함께 빼곡히 적힌 종이 뭉치를
꺼내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질문했다.
"이름 뭐예요? 나는 서(씨)입니다. 서(씨) 있어요?"
고려인 4세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 살다가 12년 전 러시아로 왔다는 그는 "한국인을 보니 감격에 피가 끓는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한국 전통 춤을 본 게 처음이라 인상적이었다. "탈춤이 특히 마음에 든다"며 "TV에서
한국 소식을 자주 접한다. 남아공 월드컵 때는 한국 팀을 응원했다."라며 웃었다.

우리는 고려인에게 조국에 대한 생생한 기억을 선물한 것 같아 매우 기뻤다. 말이
안 통하면 하이파이
브를 하고 손을 맞잡고 한글로 팔목에 글씨를 써 주면서 점점 서로 `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고려인들은 이 날 공연을 계기로 마이코프에 뿔뿔이 흩어져 살던 140여 명이 '고려인 연합회'를 만들기
로 논의를 시작했다. 또  공연에 대한 답례로 다음 날 우리를 식당에 초대해 나물무
침과 비빔국수 등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우리는 헤어지는 순간까지 이메일 주소와 스카이프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이들은 틈틈이 한국 소식과 안부를 알려줄 것을 부탁했다. 

다양한 활동 단체들이
 연계하여 서로의 해외 봉사 활동을 공유해서 같은 문화의 반복이 아닌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문화 교류 또는 봉사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대학생들이 주축인 만큼 현지인들과 대학생들의 사전 교류가 이루어져 우리의 능력과 노력이 그들이 진정
으로 필요한 곳에 쓰인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곳에서 인류애를 느꼈다고 한다면 너무 거창할까? 학생들 대부분이 러시아어
를 전혀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진심으로 헤어짐을 슬퍼하는 것을 보면서 나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글로벌 코리아', '세계 속의 위풍당당 한국'과 같은 거창한 단어들만이 인류애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우리 피가 흐르는 카레이스키들이 봉투에 담아주었던 과자, 함께 나누던 따뜻한 눈빛 속에도 그것은 담겨 있었다. 소중한 경험을 함께 했기에 우리의 만남이 잠깐의 인연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한다. Ahn

대학생기자 박미영 / 고려대 산업정보디자인과
언제나 가슴 속에 간직한 문구 "행복은 습관입니다^^"
습관이 모여 행동이 되고 행동이 모여 삶의 태도가 될테니 늘 건강한 미소와 흔들림없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행복하고 싶다. '보안세상'에서의 활동이 인생에 행복을 쌓는 또 하나의 활력이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