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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서평

600명이 지켜가는 안철수스러움의 실체는?

지난 2008 V3 출시 20주년을 맞아 출간된 경영에세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 안철수연구소>가 개정판을 통해 올해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특히 이번 개정판에서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안철수연구소(이하 안랩)의 모습과 2009 7 DDoS 대란 당시의 긴박한 상황이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안랩 대학생기자로 활동하다 보면 재미있는 상황을 겪게 된다. Ahn 로고가 새겨진 명함이나 수첩을 꺼낼 때마다 부러움 반, 놀라움 반 섞인 시선을 받는 것이다. “너 원래 바이러스 같은 데 관심이 많았니?” 혹은 “안철수 만난 적 있어?”라는 물음도 자연히 따라온다. 이처럼 일반인에게 안랩은 “어렵고 복잡한 일을 하지만, 그래도 뭔가 좋은 일을 하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안철수'연구소? 안철수'연구소' 

 

▲ 안철수 교수가 직접 패키지 모델로 등장한 'V3 365 클리닉'

 

회사 이름에서부터 그러하듯, 안랩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단연 안철수 교수다. 지난해 6 <무릎팍 도사> 출연 이후로 안 교수가 청년들의 멘토로 떠오른 것도 한몫 했다. 아직도 안 교수를 안철수연구소 경영자(CEO)로 착각하는 이들이 있을 만큼, 안랩의 이미지에서 안 교수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대학생기자로 활동하면서 “안랩의 이미지가 안철수 개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아닌가”하는 걱정을 지우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 안철수연구소>를 읽으며 그 걱정이 기우라는 사실에 안도했다. 

2000년 통합보안기업으로의 변신을 준비하면서, 회사 이름을 바꾸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원들이‘안철수연구소(이전 이름은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라는 이름을 유지하기를 원했다. 왜일까? 아래 안랩의 핵심 가치와 비전을 살펴보자.


-
우리 모두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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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존중과 신뢰로 서로와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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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고객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96)

그동안 ‘인간 안철수’에게 느꼈던 이미지와 별 차이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 이처럼 안랩 사람들에게 ‘안철수’라는 이름은 단순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안랩의 핵심 가치를 포괄하는 이름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 안철수연구소>의 지은이는 안철수 교수도, 김홍선 대표도 아닌 ‘안철수연구소 사람들’이다. 노력, 존중, 정직과 신뢰라는 ‘안철수스러움’을 꼿꼿이 지켜내는 안랩인들이 아니었다면 안랩의 지금과 같은 발전은 없었을 터다. 책장을 덮으며 안랩의 대표 브랜드는 사실 안철수가 아니라, 안철수연구소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00만 달러를 줘도 팔지 않는다는 ‘이상한 회사’


일반인들에게 안랩은 ‘착한 회사’지만, 한편으로는 '이상한 회사'이기도 하다. 유료 제품만큼이나 무료 백신에도 계속해서 신경을 쓰고, 그 자신이 벤처 신화의 주인공이면서도 벤처 거품으로 덕을 보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시각장애인 고객 1명의 요청 때문에 직원들이 밤을 새워가며 시각장애인용 제품을 개발한다. 이 ‘이상한 회사’의 원동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 안철수연구소>에서는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서버용 백신 만드는 게 어디 쉬운 일이라야 말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야 어느 세월에… 요트 한 번 제대로 타보겠느냐고요. V3…파시죠!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만 달러를 지불하겠습니다.

(
중략) 짧은 긴장감이 흐른 뒤, 안철수의 입에서는 단호한 한 마디가 흘러나왔다.

“노!

(중략)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하는 M사 회장과 그의 직원들을 향해 안철수는 혼잣말처럼 나지막하게 되뇌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충분히 희망이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셨네요. 하지만 대한민국의 희망을, 우리 회사의 영혼을 단순히 돈으로 계산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54~55)

안 교수의 저서 제목 <영혼이 있는 승부>처럼, 안랩 사람들은‘영혼’을 강조한다. 애당초 회사 설립 초기부터 공익과 이윤 추구의 공존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었다는 것, 그래서 사람의 얼굴을 한 기업이라는 것은 안랩만이 가질 수 있는‘영혼’의 핵심이다 

1995 3 18일자 동아일보 기사. 개인 사용자를 위한 무료 서비스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랩이 7년 연속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에 선정되는 배경에는 바로 이 ‘영혼’이 있다. 이윤에 흔들리지 않는 ‘영혼’이야말로 어떤 떠들썩한 광고보다도 소비자에게 신뢰를 주는 까닭이다. 실제로 소비자들은 장수 브랜드를 마치 사람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태도가 변하면 당황하듯이, 브랜드가 가지는 이미지가 바뀌면 소비자 역시 불쾌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안철수연구소’ 역시 1995년 창사 이래 원칙과 신뢰라는 이미지를 일관되게 전달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자, 향후 지속해 나가야할 과제일 것이다 

 

최근 ‘윤리경영’‘상생’ 등의 화두가 기업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선언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기업의 근본적인 가치관을 바꾸는 작업부터 선행되어야 한다. 안철수연구소가 달려온 지난 16년간의 기록을 통해 이들의 성공 비결을 엿보는 것도 한 방법일 터다.Ahn 

대학생기자 양정민 /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