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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서평

쿨한 척 대신 고민 거듭하라 주문하는 괴짜 교수

이제 곧 독서의 계절, 가을이 돌아온다. 조금 이르지만 '웰컴 투 폴' 인사로 책 한 권을 추천한다. 제목은 도쿄대 강상중 교수가 쓴 '고민하는 힘'(사계절, 2009)이다. 안 그래도 복잡한 세상, 고민할 일이 넘쳐나 머리털이 빠질 지경인데도 이 책의 저자는 “끊임없이 고민하라”고 주문한다.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 이 행위야말로 다른 생명체와 인간을 구분하고 인간이 괴물로 변하지 않도록 돕는 유일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출처: 다음 책>

성별과 세대를 통틀어 요즘 시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쿨하게'가 성행하는 시대가 아닐까 싶다. 사랑도, 이별도, 장래도 선택할 수 있어 자유롭지만 또 한편으로는 선택할 수 있어 괴롭다. 자유야말로 우리 삶의 전반을 뒤흔드는 딜레마가 아닐까.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학창 시절로 돌아가 보자. 질풍노도의 시기, 고민도 걱정도 많았지만, 학생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자유로운 시기였다. 그땐 '어린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을 어느 정도 유예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택이 적중하지 못할 땐 우회할 수 있었고 틀에 박힌 학교 생활은 단순해서 오히려 괴롭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를 보면 선택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을 때 고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며, 나를 둘러싼 구속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꾸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자유의 딜레마'를 저자는 학창 시절 자신에게 큰 영향을 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로부터 찾으려 한다. 그들은 현재보다 한참 전 세대의 위인이지만 근대를 맞이하여 물질 문명과 산업화의 병폐를 정확히 예견한 인물이기도 하다.
재일교포로서 정체성에 대한 의문과 고민이 들 때마다 저자는 이 두 인물을 통해 위안을 얻기도 하며 이들을 롤 모델 삼아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재일교포도 아니고 교수도 아닌 인생 선배라는 느낌이 종종 든다. 친근한 말투로 다가오는 저자는 갓 예순이 된 자신이 20대, 30대에 무수히 곱씹었던 고민들을 차분히 풀어놓고 그것을 해결하려 노력한 흔적들을 옮겨놓은 것 같다. 그는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변해도 인간이 맞이하는 근본적인 고민들은 순환한다는 것을 알고 현대의 문제점들 역시 이 두 인물을 통해 풀어나가고자 하는 것이다. 


나쓰메 소세키(작가, 1867-1916) 막스 베버(사회학자, 1864-1920)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책은 총 9가지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고민의 흔적은 다양하다. '나는 누구인가'부터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까지, 모두 결코 쉽게 답을 낼 수 없는 고민들이다. 예상했을지 모르지만 이 책에는 고민에 대한 해답이 나와 있지 않다. 약 170쪽의 비교적 짧은 책 안에서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물음표로 시작하여 물음표로 끝나는 챕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와 유인을 준다. 제목대로 이 책은 현대인에게 '오늘은 무엇을 소비할까, 내일은 무엇을 하며 즐길까'라는 층위의 고민에서 벗어나 한 번쯤 해볼 가치가 있는 고민들을 선사한다. 지나온 인생을 철저히 돌아보고 남은 삶을 새로이 정립할 수 있는 질 좋은 고민들을 던진다. 삶의 토대를 차지하는 사랑, 돈, 우정, 믿음 등의 가치를 자기 나름의 고민에 근거해 정립해 보고 그 가치관을 기준으로 더 나은 삶을 살자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저자는 어떤 이유로 조금은 상투적일 법한 주장을 펼친 것일까?

 

첫째, 근대화가 가져다 준 자유가, 그것의 고귀한 가치를 넘어 방종을 일삼는 사람이 늘어가기 때문이다. 자유가 있으므로 인내하지 않고 참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뜻대로 무엇이든 하겠다는 잘못된 자유의 정립이 법과 제도를 무력화하한다. 요즘 이슈인 성폭행 범죄가 그 단적인 예다. 그들이 단 한번이라도 인간이란 무엇인가, 배려란 무엇인가를 한 번이라도 고민해 봤다면 그런 잔혹한 일은 애초에 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로는 근대화가 가져온 현대의 삶이, 무엇인가 정작 중요한 것들은 놓쳐버린 '허상의 삶'이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 하던 일이 오히려 자신의 삶을 망쳐버리기도 한다. 산업재해가 그 단적인 예다. 일에 치여서 가족을 돌보지 못하고 사랑하는 이와의 교감조차 포기하는 악순환이 그 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저자는 과감하게 “답이 정확이 떨어지지 않더라도 고민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옳다고 믿는 가치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제안한다.

셋째, 이른바 언론의 표현의 자유처럼 어느 정도가 자유의 실현이며 인권의 보호인지 경계가 애매한 문제들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주기 위해서다. 국민의 알 자유, 개인의 사생활을 보호받을 자유 등 상호간의 자유가 곳곳에서 부딪칠 때 어느 편에 서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책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이 책을 읽고 난 뒤 조금 쌩뚱맞게도 나는 문득 영화 '청춘 스케치'(Reality bite,1994)가 생각났다. 20대 중후반, 대학을 졸업하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뭔가를 하기 위해 태어났는지 고민하는 중요한 시간을 그린 그 영화 속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
그래서 난 작은 것에서 기쁨을 찾아. 치즈 빻는 기계 정말 좋아. 비 오기 10분 전의 하늘 웃음소리가 점점 깔깔대는 소리로 변할 때의 순간 그냥 여기 앉아서 낙타 스트레이트 담배를 피면 감정이 녹아들지."

삶을 마무리할 때쯤 우리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은 정작 이런 아주 사소하면서도 행복한 일상의 단편이 아닐까. 산업화와 물질문명이 준 경쟁 가도 속에서 우리는 너무 많은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것이 내가 '고민하는 힘'을 읽으며 들었던 내 나름의 고민에 대한 답이다.

지금은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기보다는, 나보다 먼저 치고 들어올 옆 사람의 성장에 시달리기보다는, 타인이 세워놓은 행복의 순위에 맹목적으로 따르기보다는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 남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것에 귀 기울일 때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기준과 잣대에 휘둘리지 않으며, 아울러 그것이 타인의 행복과도 직결된다면 그것이 바로 자유의 실현이라고 믿는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의 힘'을 읽은 독자들의 뒷이야기가 새삼 궁금해진다. Ahn

 

대학생기자 김혜수 / 숙명여대 경제학과

소통과 공감이 부족한 이 시대에
이렇게 먼저 손 내밀어 악수를 청합니다. 
이 글을 보는 당신, 부디 제 손을 맞잡아 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