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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인터뷰/명사 인터뷰

드라마 작가가 파헤친 안철수연구소 진짜 모습

“꿈이 뭐예요?”

갑자기 날아든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 대학교 4학년, 친구들 사이에서 어느새이란 단어는 하나의 금기처럼 여겨진 지 오래였다. “네 꿈은 뭐야?”가 아니라공채 어디 썼어?”를 묻는 것에 익숙해져 가던 때에, 다시이라는 단어를 듣자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꿈? 내 꿈이 뭐였더라? 대기업에 가서 높은 연봉을 받는 것? 아니면 공무원이 돼서 안정적으로 사는 것?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인터뷰를 하러 왔다가 오히려 인터뷰를 당하는 것으로 박지영 작가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소설가, 번역가, 드라마 작가, 텍스트 디렉터출판과 영상 넘나드는 팔방미인. 사실작가라는 이름만으로 박지영 작가를 규정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0여 년 간 그녀는 때로는 소설가로, 때로는 번역가로, 또 때로는 드라마 작가로 다방면을 넘나들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 안철수연구소>의 초판에 이어 개정판 작업에도 텍스트 디렉터로 힘을 보탰다.

“텍스트 디렉터라고 하면 굉장히 낯선 직업인 것 같지만 사실 새로운 일은 아니에요. 자료를 수집하고 취재하고 정리하는, 그러니까 말 그대로 감독(director) 역할을 하는 거죠. 물론 책 지은이는안철수연구소 사람들이고, 저는 방대한 자료들을 교통 정리를 하는 사람이에요.”

겸손하게 이야기했지만 안철수연구소 15년의 이야기를 글로 엮어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작업이 아니었을 터다. 2007년부터 현대자동차 등 기업 관련 책을 집필해 왔던 박 작가였지만, 출판사의 추천을 받고도 한참을 고심했단다.

사실 IT 분야는 그전까지 저에게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이었거든요. (웃음)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호기심 반, 안철수 박사님에 대한 호기심 반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안철수연구소는 나를 긴장시키는 기업이다


기억에 남는 안랩인을 꼽아달라는 질문에 박 작가의 눈망울이 어린 아이처럼 빛났다. 한 명 한 명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는 박 작가의 들뜬 목소리에서, 취재원과 작가 이상의 끈끈한 애정이 느껴졌다.

“안랩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을 만난 것 같아요.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은 권진욱 차장님이에요. 우리가 흔히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하지요? 제게는블링블링’(박 작가는 꼭 이 표현을 써달라고 당부했다)하게 느껴지는 그런 분이고요. 이호웅 차장님은 정말 내 편이라는 느낌이 들어요. 조동수 전무님은 첫인상만 보고 잔뜩 기가 죽었는데, 인터뷰를 자청해서 더 길게 하실 정도로 적극적이고 친근한 분이어서 기억에 남네요.”

실제로 박 작가에게 안철수연구소와의 만남은 단순한 일 이상의 의미를 주었다. “당시에 드라마 메인 작가를 맡으면서 마음 고생이 심했던 시기였어요. 제작자와 배우, 작가라는 세 주체를 조율해야 하다 보니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엄청났죠. 그런데 안철수연구소 사람들을 만난 뒤로는 예전보다 적극적인 성격으로 변한 것 같아요.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도전하도록 만드는 긍정적인 의미의 압력을 받은 거죠.” 
 

안정적인 삶? 그런 건 없다


이후 박 작가는 기업가 정신과 관련한 벤처에 참여하고, 새로운 원고와 드라마를 준비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면서 남들처럼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아쉬움은 없었을까?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안 박사님 말씀처럼 안정적인 삶라는 건... 죽어야 안정적인 거죠(웃음). 저는 항상 오늘만 있지 내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삶은 언제나 도전이잖아요.
사실 전 스타 작가는 아니에요. 남들보다 빼어나지 않은 만큼 더 열심히 살아야 그나마 티가팍팍나겠죠. (웃음) 적어도 제 삶에서만큼은 주인공으로 살고 싶어요. 그래서 저는 제 삶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기가 아닌 투자로 생각하고 있어요.

꿈에 관한 질문을 받았을 때에 이어서, 다시 한번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저 막연하게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라고 생각했던 내 자신은 어쩌면 이미죽어있는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텍스트 디렉터의 작업은 기자와도 유사하다. 다양한 자료를 모아 정리하고, 취재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려면 먼저 해당 분야에 관한 준 전문가급 지식을 갖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집필하는 동안에는 온전한 몰입이 필요하다. 박 작가 역시 한의학에 관한 책을 쓰면서 한의사로부터침만 놓을 줄 모르지 반은 한의사나 다름없다.”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단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어진 식사 자리에서도 최근 준비 중이라는 유전자에 관한 책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다음에는 요리에 관한 책을 쓸 예정이라고 하니, 몇 주 뒤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이번엔 요리 이야기가 끊이지 않을 터다.

“안철수연구소 사람들의 공통점이요? 개성이 강하지만, 한 편으로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는 거예요. 각자가 자신만의 비전을 가지고 있어서, 타성에 젖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

그러고 보면 박 작가와 안철수연구소 사람들, 많이 닮았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 안철수연구소>의 지은이인안철수연구소 사람들이란 이름 속에는 이미 그녀도 함께 자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책이 나오는 대로 꼭 보내주겠다며 끝까지 배려를 잊지 않는 박 작가의 모습에서, 그녀가 안철수연구소에게 감염됐다는행복 바이러스가 내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앞으로 책과 브라운관에서 만나게 될 그녀의 새로운 이야기들을 기대하고 응원한다.  Ahn

 

대학생기자 양정민 / 서강대 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