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김제동, 방송에서 못다한 이야기(4)

2010년 12월 14일 김제동씨가 안철수연구소를 방문했다. 2011년 1 28 방송된 'MBC 스페셜 신년특집 안철수와 박경철편을 촬영하기 위해서였다. 12월 2일 박경철 원장과 셋이 첫 만남을 촬영한 후 이날은 안철수 교수와 단둘이 대화하는 내용이었다. 두 사람은 벽이 없는 안 교수의 업무 공간과 임직원 단체 사진 등을 둘러본 후 침해사고대응센터(CERT)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래에 정리한, 대화의 후반부 주요 화제는 빌 게이트가 우리나라에 와도 성공하기 힘든 이유 등이었다. 

김제동(이하 김) : 본의 아니게 빌 게이츠랑 많이 비교당하시는데요.

안철수(이하 안) : 제가 믿는 것 중 하나가 어떤 영웅적인 개인보다는 사회 시스템이 더 중요하다는 거에요. 역사관 중에서도 영웅의 존재를 믿기보다는 시대의 흐름에 가장 선두에 선 사람이 영웅이 된다, 그 사람이 없더라도 그 다음 사람이 영웅이 될 것이라는 역사관을 갖고 있어요. ‘빌 게이츠도 한국에 오면 성공할 수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빌 게이츠를 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천재적인 사람이 오더라도 우리나라 사회 구조가 새로운 창업을 하거나 창업한 기업이 성공할 확률이 낮다면 그런 사람도 그 뜻을 제대로 펼칠 수 없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도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을 배출하고자 한다면 전체적인 사회 시스템을 개선하는 노력, 정치하는 분이나 주위의 많은 이해관계자들이 같이 노력을 해야 되겠다.' 라고 생각해요.

김 : 하시는 말씀이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들릴 때가 있지만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게 몸으로 다 부딪쳐서 보여주는, 정직한 기업, 윤리적인 기업이기 때문이죠. 어느 순간부터 우리가 정서적으로 고리타분하다고 느낀 것은 오히려 그것에 대한 열망이 크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도 그런 증거를 보여준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증거를 가지고 얘기해라.'란 말에 반발심이 들었던 거겠지요.

안 : 제 책을 사신 분이 자기가 어른 된 이후에 처음으로 만원 내고 도덕교과서를 사 봤다고 제 책에 대해서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김 : 책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책들이 거의 위인전 수준이에요.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안 : 사실 부담스럽죠. 예전에 제가 사장할 때는 위인전 종류는 다 거절했어요. 제가 정직하게 살아왔다고 해서 위인전에 실렸는데 책이 나온 다음에 실패를 하면, 어린이들이 '정직하게 하면 망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요. 요즘엔 교수로서는 사업가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에 협조를 하는 편이지만, 마음이 완전히 편하진 않아요. 하하.

김 : 정직하게 해서 실패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죠?

안 : 그럼요. 만약에 그런 사람이 다시 기회만 가질 수 있다면, 다신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그 전 실패들을 다 보상하고도 남는 거거든요. 실리콘밸리가 성공했던 근본적인 이유고요. 초창기에 정부에서 실리콘밸리를 취재하러 갈 때 성공한 비결만 찾으려 했는데, 그것을 보면서 기가 막혔던 것이, 100개 중에 1개 성공하는 건데 그것만 보면 진짜 실체는 볼 수 없거든요. 망한 99개의 기업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진짜 실리콘밸리를 움직이는 힘인데, 그것은 보지 않고 극소수만 보다 보니 제대로 본질을 볼 리가 없는 것이죠.

김 : 교수님의 말씀을 듣다보면, 어떤 질문에도 답변이 명확하게 준비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다 준비를 하는 건가요?

안 : 아뇨. 제가 워낙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라서요. 대략 큰 범주의 고민은 많이 했던 거라 그래서 그런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거에요.

김 : '이런 질문은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다.'라는 질문 있나요?

안 : 왜 의사를 그만뒀나?.. 하하하

김 : 답은 뭐죠?

안 : 전 항상 중요한 게 매 순간마다 제가 의미를 느낄 수 있고 재미있게 할 수 있고 잘할 수 있는 길을 가고 싶거든요. 제가 의사를 하다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이 나와서 둘 다 같이 하는 시간이 7년이 있었는데, 그 시간이 지나다 보니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가 오더라고요. 어떤 선택이 의미있고 재미있고 잘할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보았더니,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분야는 그 당시 제가 없으면 그 분야가 없어지는 거였거든요. 그게 절 더 필요로 하고, 더 의미가 있다고 표현할 수 있고요. 새벽 3시에서 6시까지 백신 개발을 했는데, 3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없이 지나가더라고요. 그래서 더 재미있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결론은 전망도 안전도 안 보고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만드는 일에 내 인생을 바쳐야겠다고 선택한 거죠. 4년 내내 매달 직원들 줄 월급 걱정하면서 지냈던 이유가 전망을 전혀 고려해 보지 않았던 거에요. 그래서 고생은 했지만 결국은 좋은 결과로 남았어요.

김 : 기업을 하는 목적, 기업가정신,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즐겨라. 라는 정신을 여기에 계신 분들이 다 동의하는 건가요?

안 : 그 고민이 언제 시작됐냐면, 창업한 지 6년째 되는 2001년에 회사 직원이 100명이 넘으면서, 처음에는 작은 조직에서는 서로 공감대 형성하고 같이 일하면서 철학적인 가치관이 전파되었는데, 100명 넘어가니까 힘들어지더라고요. 그때, 전 직원이 워크숍을 가서 지금까지 자기가 어떤 기준을 갖고 일을 했는지, 그런 핵심적인 가치관이 뭔지 의논했어요. 그때 전직원이 공통적으로 믿는 가치관이 3가지가 나오더라고요. 가치관이 굉장히 상식적인 수준인데요. 먼저 자기발전을 위해서 스스로 노력, 같은 동료끼리 서로 존중과 배려, 고객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키는 일들이 가장 중요하고, 일을 할 때 가장 먼저 판단하는 요소라고 결론을 내렸고요. 저는 워크숍 안 가고 저 혼자서 써놓은 게 있었는데 워크숍 결과가 저랑 맞지는 않더라고요. 저는 단기적인 것보다는 장기적인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써놨는데, 그것이 사람들의 가치관에 적혀있지 않았어요. 현업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지금 일하는 게 중요하지 장기적인 가치는 경영자가 판단해야 할 몫이더라고요. 제가 믿던 가치관을 모두에게 믿으라고 할 수 없기에 사람들이 갖고 온 3가지의 가치관을 우리 회사의 가치관으로 도입했어요. 그것이 안연구소의 핵심 가치 3가지에요. 제 생각이 아니라 동료들의 생각인 거죠.

김 : 가끔씩 사람들이 저한테도 묻는 게 '인맥관리는 어떻게 하냐'인데, 제가 생각하기엔 인맥은 다 이어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안 : 인간사 많은 갈등들이 목적과 결과가 혼동돼서 빚어지는 게 많더라고요. '수익이 기업의 목적이냐 결과냐'와 '인맥도 관리냐, 일을 통해서 연결된 결과가 인맥이냐' 같은 것들. 혼동되면서 인간사 갈등이 많이 생기는 것 같거든요.

김 : 뭔가를 이용하고 결과를 얻는 것에 인맥을 활용하는 순간 더 끊기 어려운 거거든요. 진짜로 도덕 선생님 같네요. 그런데 도덕 선생님치고는 산전수전을 다 겪으신..하하

안 : 제가 만났던 한 사진 작가는 사진기를 내려놓고 저랑 3시간 동안 얘기를 했어요. 결국 제가 못 참고 왜 사진 안 찍냐고 물어봤어요. 그러자 자기는 그 사람과 친해진 다음에 사진을 찍는다더군요. 친해지면 자연스럽게 표정이 다 나타나고, 그 사람의 내면이나 생각을 잘 알아야 그 사람이 잘 나타나는 사진을 고를 수 있다네요. 그 말이 참 인상 깊었어요. 어떤 분야의 전문가는 그런 경지까지 가는 것 같고요. 영역이 달라도 전문가는 생각이 합쳐지는 것 같아요.

김 : 자,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카메라 내려놓고 3시간 정도 소주라도 한 잔.. 하하. 오늘의 마지막 질문인데요. 박경철씨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편하게 사실 수 있잖아요? 병원을 개원하셔도 되잖아요. 명문 대학 교수이기도 하고, 대한민국 일류 기업의 의장이고, 인물도 그만하면 평범하신 것 같고, 얼굴 크기도 키도 그만하면 됐는데, 편하게 살아도 되지 않아요?

안 : 왜 사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과연 이 인생을 어떻게 사는 게 올바르게 사는 것인가. 나는 내 인생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죽는 순간에 후회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 과정에서 정말로 제 진심을 알게 되더라고요. 그 중 하나가 '내 인생에서 성공의 의미는 뭔가.'에요. 삶의 흔적을 남기는 게 가장 중요한 목적인데요. 제가 죽고 나서 이름이 남지는 않겠지만 결국은 저로 인해서 좋은 생각, 영향을 받는 사람이 생긴다든지, 책이 남겨진다든지, 좋은 조직으로 남아 있다든지, 제 건의로 제도가 바뀐다든지 등이 삶의 흔적인 것 같거든요.

크로마뇽인이 동굴에서 벽화를 그렸는데 후세에 우리가 거기에 누가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그 사람들이 살았던 삶의 흔적이 동굴에 남아 있는 거잖아요. 저도 그런 흔적을 남기고 싶어요. 어떠한 선택이 좀더 흔적을 많이 남길 수 있을까가 저의 가장 큰 보람이고 행복이고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선택인 거죠. 어떤 존재, 의미에 대해서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이 반대로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우리 가족에게 내가 어떤 의미를 가진 사람인가?' 라는 질문에서 '만약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우리 가족이 무엇을 잃어버릴까?' 라는 질문으로 던지는 거죠. '차이가 없다.' 라면 참 허무하지 않겠어요? 차이가 많을수록 정말 의미있는 인생이거든요. 이 세상에 뭔가 조그마한 좋은 흔적을 남기고 죽으면 그건 그 사람의 삶의 목적을 다 했다는 게 저의 생각이죠. 그 생각이 저를 편안한 삶보다는 적극적인 삶, 좀더 노력하는 삶으로 밀어가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Ahn

대학생기자 윤소희 / 순천향대 정보보호학과


윤소희가 '보안세상'에 왔습니다. 아직도 절 모르신다구요 ? 더 강한 파워, 더 색다른 매력, 더 불타는 열정으로 ! 풋풋함과 눈웃음까지 겸비한 여자! 그리고 뻔뻔함까지 ! 누구라도 기억할 만하지 않나요?


사진. 사내기자 황미경 / 안철수연구소 커뮤니케이션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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