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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랩人side/안철수 창업자

안철수-김제동, 방송에서 못다한 이야기(3)

1 28에 방영된 MBC 스페셜 ‘2011 신년특집 안철수와 박경철편 두 번째 촬영은 12월 14일 김제동씨가 안철수연구소를 방문해 벽이 없는 안 교수의 업무 공간과 임직원 단체 사진 등을 둘러본 후 침해사고대응센터(CERT)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진행됐다. 이날 김제동씨는 바나나와 귤을 사가지고 말없이 놓고 가 안랩 연구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안철수연구소 촬영 온 김제동 선행에 놀랐다)

이날 촬영에서 김제동씨는 안 교수가 기업을 경영하는 동안의 우여곡절과 우리나라 산업 구조의 문제점, 우리에게 필요한 기업가정신 등을 화두로 던졌다. 다음은 대화의 전반부 내용.

김제동(이하 김) : 저도 몇 번 강의를 다녀보았지만 정말 어려웠습니다. 안교수님은 주로 어떻게 강연을 하십니까? 

안철수(이하 안) : 제가 말이 능수능란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냥 내용 자체에 충실하게 그동안 고민하고 생각한 것을 압축해서 많이 얘기하는 편입니다. 그러니 재미도 없고 듣기에 좀 버거운 분들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떤 분이 어느 웹사이트에 올리신 글을 잠깐 봤는데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이 만나 얘기하면 사람들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지고 스티브 잡스가 얘기하면 사람들이 다 거기에 매혹된다. 그런데 안철수가 얘기하면 전부 공책을 꺼내 필기를 한다.’라고요. (웃음) 그게 저를 가장 잘보신 것 같습니다. 

김: 전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이 강의한 것도 보고 같이 얘기 나누는 것도 보고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도 봤는데 안철수 선생님 강연이 제일 좋았습니다. 유일하게 한국말로 얘기하니까요. 저는 우리말 강의가 제일 좋거든요^^

안 : 하하

김 : 제가 오늘
 회사를 둘러보았는데요. ‘동료’라는 말은 안교수님이 굉장히 오래 써오신 말씀이겠지만 사내에서 서로 그렇게 표현한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습니다. 

안 : 제가 원래 성격 자체가 수평적인 사람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아래라고 생각하지 않고 진심으로 그렇게 믿다보니 수직적이고 계층적인 구조보다는 수평적인 관계가 편합니다. 회사에서 ‘누구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닌 그냥 ‘나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일을 할 때도 그런 마음으로 임합니다. 진심은 사람끼리 꼭 말로 하지 않더라도 전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것이 저에게 맞는 조직 관리 스타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저도 편하고 상대방들도 편하고요. 

김: 수직과 수평 구조. 저마다 장점을 가질 수 있겠지만 단점도 있죠?
 

안 : 많죠. 수직은 수직대로, 수평은 수평대로 특징을 가집니다. 조직을 경영해보면 어떤 것이 옳다는 정답은 없더라고요. 항상 장점과 단점이 있는 가운데 어떻게 하면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김: 저는 오늘 안연구소를 방문해서 놀란 것이, 동료 분들이 안교수님이 오시는데 느낌으로라도 어떤 긴장하거나 하는 모습이 전혀 없더라고요. 

안 : 네. 저한테 전혀 긴장 안 하죠.^^

김: 긴장이 없는 것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안 :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상대적이라 한 사람이 적극적이면 다른 한 사람은 수동적이게 되잖아요. 그렇다보면 한 사람은 따라가기만 하고 자기 능력의 80% 정도밖에는 발휘하지 못합니다. 반면에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이나 결정대로 하도록 존중하고 배려해주면 그 사람은 자기 능력의 100%를 지나 120%까지 발휘합니다. 이런 것이 수평적 관계의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 그러면서 인간적인 교감이 많이 늘 것 같습니다. 그런 게 힘이 되는 것이겠죠? 

안 : 그렇습니다. 각자의 정서에 대한 공감과 이해, 공유가 힘이 됩니다. 단점이 있다면 그러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는 것일 텐데요. 처음부터 ‘나를 따르라’는 식으로 되면 명령이 끝나는 동시에 일이 시작되고 시간상으로는 빠르게 진행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 시작하기까지 상대방을 설득하고 얘기를 나누는 데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지요. 저는 답을 알고 있는데 제가 결정을 하지 않고 계속 질문을 하는 편입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그것을 자기 스스로 답하려고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자기가 답을 찾게 되죠. 그 과정은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자기가 생각을 하고 판단을 해서 결정을 하면 그때부터는 정말로 그것이 ‘자신의 일’이 되고 '우리'가 결정한 일이니 전자보다 120% 능력 발휘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경우 후반부로 갈수록 훨씬 효율이 높아지고 장기적으로 더 크게 힘이 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야 사람들도 더 발전할 수 있고.

김: 그런 유혹은 없습니까? 사람이니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예를 들면 군대에서 고참이 되었을 때 갓 들어온 신병들에게 "야야-" 라고 부를 때의 쾌감이랄까?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것들이요. 이 정도 회사에 많은 직원, 동료가 있으면 앞에서 힘도 잡아보고 싶고 그런 마음이요. 

안 : ‘힘’이라고 하면 그에 따르는 권한과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권한보다는 책임에 대한 압박이 훨씬 크다보니 오히려 조그마한 힘을 즐기려는 마음보다 어떻게 해서든 일을 잘해서 사람들에게 골고루 혜택을 줘야겠다는 생각이 더 강합니다. 영화 '스파이더맨'을 보면 그런 게 나옵니다. With great power always comes with Great responsibility(위대한 힘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 스파이더맨이 자기가 원해서 힘을 가진 건 아니지만 자신은 그런 힘을 가진 유일한 상대고 다른 적이 나타났을 때 세상에서 스파이더맨밖에 그 일을 처리할 수 없으니 자기가 싫더라도 그 일을 해야 하죠. 그러다보니 자기가 원해서 얻은 힘은 아니지만 자기가 그런 힘을 가진 이상 거기에 따라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 스파이더맨의 철학적인 딜레마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게 우리 사회 모든 경우에 나타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도 높은 분이 가진 권력에는 거기에 따른 책임이 있는데, 책임을 훨씬 강하게 느끼면 느낄수록 전체적으로는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 누구나 다 스파이더맨처럼 되고 싶어하지만, 정작 스파이더맨에게는 그런 고뇌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안 교수님도 그런 고민 속에 좋은 방안을 계속해 찾아 나가는 거겠죠. 의무와 책임, 권한에 대한 고민이 버겁지는 않습니까? 

안 : 어떤 상황에 자기가 해야 하는 일이 주어졌을 때 선택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그대로 그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서 책임감을 가지고 일을 하거나 아니면 아예 그것을 벗어나서 자기 상황을 바꿔 버리는.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여기서 벗어나 제 3의 선택을 합니다. 상황을 바꾸지도 못하고 최선을 다하지도 못하면서 불평을 합니다. 그것은 그 사람의 인생에서 제일 시간을 낭비하는 일입니다. 본인도 불행해지고 조직 전체에도 불행을 야기하지요. 우리는 그런 오류에 빠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지 않고 앞서 언급한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어떤 선택이든 좋은 선택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 우스갯소리로 스파이더맨을 동경하고 좋아하는 대다수 시민도 있고, 질투하는 세력도 있습니다. ‘그 힘 내가 좀 갖고 싶다’ 하면서 ‘그 정도의 힘을 갖고 있으면 그 정도 책임쯤은 나도 짊어질 거야’ 하는 생각이랄까. 그런 질투 어린 시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잘난 소리 좀 그만해 왜 이래’ 이런 시선도 있을 텐데.
 

안 : 제가 직접 들은 적은 없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분이 있다고 해도 신경은 별로 안 쓰는 편입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어떤 선택을 하고 제 신념대로 행동을 하고, 말을 하고, 또 말을 하면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고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요즘 말이 너무 난무하는 것이 싫습니다. 저까지 여기다 말을 더 보태는 것 같아서 저도 싫은데요. 사실 행동이 정말 중요하지 않습니까. 행동이 중요하지 행동이 다르지 않는 말 또는 책임을 지지 않는 말은 우리 사회 전체를 좀먹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 교수님은 ‘제가 이렇게 해 봤는데’ 혹은 ‘제가 강의해 봤는데, 동료들과 있어 봤는데’처럼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항상 해본 것을 말하거나 말 뒤에는 진정한 행동이 뒷받침되는 것 같습니다. 

안 : 제가 책을 많이 쓴 편인데요. 전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일을 하다보니 새로운 것을 많이 깨닫게 되더라고요. 그것들을 메모지에 계속 써놓았다가 책으로 냈습니다. 그러다보니 CEO 할 때 그 바쁜 와중에도 책을 여러 권 쓸 수 있었던 듯합니다. 치열하게 살았고 실제로 현장에서 느낀 점이 많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정말로 바보 같은 실수를 했는데 다시는 반복하지 말아야지 하고 계속 정리하며 책을 썼고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책으로 정말 많은 것을 배웠죠. 그렇지만 그 때는 오히려 책을 쓰지 않은 이유가 이미 남들이 책으로 쓴 내용을 제가 다시 요약하고 정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사실 책으로 쓸 내용이 더 많았는데도 굳이 책을 쓰지 않은 이유가 그건 제가 직접 겪은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건 다른 사람 누구도 쓸 수 있으니까. 관념적인 것보다는 내가 부딪혀보고 실제로 현장에서 경험해봤던 것들, 적용 가능한 것들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20년 간 글을 써왔는데 쓸 때마다 항상 생각하는 것이 ‘아, 정말 책은 역사의식을 가지고 써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글을 쓸 때 조금이라도 스스로 멋있어 보이거나 밥그릇을 위해 글을 썼으면 10년 20년 후에 그 글을 보고 정말 부끄럽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역사의식을 갖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요. 이것은 어쩌면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것이 세상을 어지럽히고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거죠.
 

김: 치명적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그런 경험적 측면을 중시하는데, 그렇다면 안 교수님도 실수한 것이 있습니까? 

안 : 굉장히 많습니다. 저는 직업을 여러 번 바꾼 편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직업을 바꾸면 정신적인 고통, 육체적인 고통 그리고 그동안 만들었던 사람관계가 다 끊어진 상태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정말로 많은 힘이 듭니다. 또 그 과정에서 실수도 많이 하죠. 남들한테 말도 못할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정말 많이 하는데요. 저는 그것에 후회를 하는 편은 아닙니다.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것과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은 달라요. 저는 과거는 돌아보지만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다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는 관점으로, 교훈을 얻으려는 관점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편입니다. 감정 소비를 하는 후회를 하지 않고 나름대로 건설적인 후회를 합니다. 앞으로 교훈이 될 수 있도록. 

김: 어처구니없는 실수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안 : 적절하게 투자 받아야 하는데 받지 않았을 때, 아니면 받지 않아도 되는데 남들이 받으니까 받은 경우. 또 미리 시장을 내다보지 못하고 연구개발실 사람들 보충하지 못한다거나 너무 보수적으로 겁내다보니 하지 못한 것도 많습니다. 또 너무 빨리 결정했다거나 너무 늦게 결정한 것도 많습니다.

김: 혹시 생활에서 나온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있습니까> 가령 그런 실수로 인해 집안에서 사모님께 야단을 맞는다든가.

안 : 결혼 초반에는 서로 생활 스타일이 다르다 보니 그런 일이 많았습니다. 어릴 때는 집에 오면 속옷이나 양말을 아무렇게 던져놓아도 어머님이 챙겨 청소해 주셨는데 결혼한 후로 양말을 아무 데나 벗어둔다고 아내가 뭐라고 해서 그때 제가 그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웃음) 결혼 초에는 아무래도 저도 모르게, 어릴 때부터 해왔기에 깨닫지 못하는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건 다른 사람과 살아보면서 자기 자신을 알게 되는 것들이죠. 

김: 안 교수님과 이야기 나누다 보니 '아, 기업가정신이란 것은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과 정신에서 나오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안 : 그것이 기본이 됩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여러 가지 위험이 있는데도 정말로 고민 끝에 과감하게 도전을 해서 지금까지 세상에 없었던 가치를 창출하고, 여러 사람들 일할 수 있는 새로운 자리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 기업가정신입니다. 사람들이 많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기업가들은 경영자 아닌가’, ‘기업가 마인드라면 경영자 마인드겠지’ 하는 것인데 그게 아니거든요. 

김: 저도 처음에는 ‘기업가 마인드’ 최고의 목적, 최후의 목표는 이윤 추구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만. 

안 : 이윤은 ‘내가 열심히 한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은 기업가정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윤추구가 목적이 되면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힘을 갖게 될 위험이 생깁니다. 그러다보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목적만 달성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고 위험을 만듭니다. 그런 것이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요. 사실은 철학적인 차이라서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저는 ‘일을 열심히 한 결과가 이윤으로 나타나고 보답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김: 일자리 창출의 궁극적인 목적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안 : 일자리 창출 목적은 각각의 개인에게 발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생활을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대기업이 만들 수 있는 일자리 숫자가 굉장히 적습니다. IMF 이후 더 줄었고요. 기업들의 덩치는 더 커졌지만 효율적인 경영을 하느라 공장도 해외 이전을 많이 하고 그러면서 창출 가능한 일자리가 더욱 줄었습니다.

그러니 유일하게 남은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많이 생기고 잘되어서 그 곳에서 나머지 사람들이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그것이 잘 되지 않으니 중산층이 무너지고 빈부격차가 갈수록 심해집니다. 오늘날 여러 가지 사회갈등, 빈부격차나 청년실업 같은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결국 사람들이 새롭게 도전해서 창업을 할 수 있게 하고, 일단 창업된 회사들의 성공확률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것만 해결되면 우리나라 모든 문가 다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왜 그 쪽을 안 보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김: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 : 우선순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대기업이 잘되면 우리나라 전체 경제가 부흥할 것이다’ 하는 생각들. 그건 이미 몇 십 년 전에 맞았던 논리고 지금은 아니거든요. 옛날 같으면 여러 가지 특소세 인하나 환율 정책 등으로 대기업이 자라게 되면 여러 모로 자연스레 중소기업에서 배당받는 주주들도 이득을 챙길 수 있었죠. 또 다 한국 사람들이니까. 그렇게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다 잘되니 좋은 거죠.

그러나 요즘 세상은 그런 방식으로 잘되더라도 그 배당을 받는 사람들 절반 이상이 대부분 외국으로 나가고, 또 같이 일하는 중소기업 절반 이상이 외국 기업이니까 예전과는 효과가 많이 다릅니다. 이제는 그런 방식과 관점에서 벗어나 중소기업이나 벤처기업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하면 성장하고 더 잘될 수 있게 해주는가 하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지금은 좀더 현장에 밀착해 실질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때인데 아직도 너무 거대담론 쪽 이야기만 나오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행동으로는 연결되지 않아 답답하지요.
 

김: 제일 먼저 벤처로 시작하셨잖아요. 지금도 안연구소가 벤처기업이라고 볼 수 있습니까? 

안 : 지금도 벤처라고 봐야 하는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새로운 것을 찾아서 지금까지 없었던 것들을 끊임없는 찾아나가야 하는 정신들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김: 보통 덩치가 커지면 커질수록 안정, 적당히, 이윤, 주가 관리에 더 무게 중심을 두는 기업들이 많지 않습니까. 

안 :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면 그 기업은 오래 버티지 못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마음가짐은 현상유지도 못 하고 추락하기 시작해서 결국은 바닥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요.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에 자기 몸을 던지고 새로운 기회를 찾고 지금까지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려는 정신이 기업을 살아남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습니다. 현상유지하려는 마음 자체가 벌써 추락의 시작이고. 

김: 어떻게 그 원리와 원칙, 소신을 지키는 경영이 가능했습니까.
 

안 : 안연구소를 처음 만들면서 제가 꼭 이루려 노력한 세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그 당시는 ‘소프트웨어 회사’가 한국에선 불가능하다는 시절이었기에 전 한국에서도 소프트웨어 쪽에서 일하면서 회사로서 자리잡을 수 있다는 것, 일종의 워킹모델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둘째는 공익과 이윤 추구가 양립할 수 없다는 그 당시 상식을 뛰어넘고 싶었고요. 요즘 말하는 소셜 벤처가 16년 전 당시의 마인드와 비슷한 개념인 것 같습니다. 나머지 하나는 ‘한국에서 정직하게 사업해도 망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습니다. 나중에 CEO를 그만둘 때 생각해보니 그래도 처음 마음먹었던 것들이 어느 정도 다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당시 사임사도 굉장히 길게 썼는데 그 곳에 그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처음 안연구소를 만들었을 때도 제가 경영이나 조직 관리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라 기업 운영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게 되더군요. ‘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일하는가’, ‘왜 기업은 조직을 운영하는가’ 그러다 보니 ‘아.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이유는 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여러 사람이 모여 하나보다 더 커다란 그림을 만들고, 더 큰 가치를 창출하기 위함이다.’ 라는 기본적인 결론을 냈어요. 또 하나는 ‘기업의 존재 의미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 대한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기업 자체가 주주에게도 좋고, 직원에게도 자기 생활을 영위하는 터전이 되어 좋은 것 외에도 정말로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존재’까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수익 창출은 자기가 원래 하려던 일을 잘해내서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마인드는 자칫하면 사회 암적인 존재가 될 수 있어요. 수익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습니다. 그 마인드를 가지고 안연구소를 시작했는데 그것이 기업 운영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유혹을 뿌리치고 처음 마음 먹은 대로 심지를 갖고 일을 하니 좋은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안연구소가 존경받는 기업 10개를 뽑으면 그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이유가 처음에 가졌던 이 생각을 끝까지 잃지 않은 덕분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김: 존경받는 10대 기업으로 뽑힌 회사는 대부분 매출도 엄청나게 많고 역사도 오래됐습니다. 그럼에도 안철수연구소가 그 안에 속할 수 있는 것은 정말 '이 땅에서도 정직하게 기업 경영을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지켜내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안 : 이제는 한국 사회가 많이 성숙해졌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결과만 얻을 수 있다면 그 과정은 애써 외면할 수 있는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국민이 과정의 정당성에 대한 가치를 다들 이해하고 인정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나는 명성을 바라거나 돈을 벌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저 나에게 주어진 것에 책임감을 가지고 열심히 공부하고 사는 것이 내 일이었는데, 이렇게 혼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주위의 웅성거리는 소리에 문득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니 엄청나게 많은 분이 내가 공부하는 것을 쳐다보고 있는 느낌. 이런 느낌이 많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불편하고 어색하기도 하여 신경이 조금 쓰이는데 그래도 저에 대한 기대를 반영하는 것이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예전에 영광스럽게도 박완서 선생님과 함께 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이건 상이 아니라 벌"이라고 수상 소감을 말씀하셨는데 저는 그 말이 정말 이해가 됐습니다. 저한테 어떤 평가가 있다면 그건 지금까지의 평가라기보다 앞으로에 대한 기대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이렇게 더 잘할 것이다’ 라고 기대하고 상을 주시면 저로서는 정말로 힘이 듭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정말로 최선을 다해 힘을 썼는데 이제 앞으로 어떻게 더 잘해야 할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박완서 선생님도 그런 맥락에서 그런 말씀을 하신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요. Ahn

대학생기자 박미영 / 고려대 산업정보디자인과
언제나 가슴 속에 간직한 문구 "행복은 습관입니다^^"
습관이 모여 행동이 되고 행동이 모여 삶의 태도가 될 테니 늘 건강한 미소와 흔들림없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열심히 행복하고 싶다. '보안세상'에서의 활동이 인생에 행복을 쌓는 또 하나의 활력이 되길 기대한다.
사진. 사내기자 황미경 / 안철수연구소 커뮤니케이션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