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만 해도 좋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더 기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런 이를 한 명도 아니고 세 사람씩이나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도 그들과 함께한 시간과 대화가, 소박하면서도 풍요로운 삶의 위로가 될 것이다.
1월 28일에 방영된 MBC 스페셜 ‘2011 신년특집 안철수와 박경철’ 편에서는 그러한 꿈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전도유망한 의학도에서 벤처사업가로, 그리고 현재는 학생들의 조언자가 되어주고 있는 안철수 교수(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자상한 시골의사에서 최고의 경제/금융 분석가로 변신해 활약하는 박경철 원장(안동신세계클리닉). 날카로운 미소(?)와 촌철살인의 입담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방송인 김제동. 다른 듯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닮은 세 남자가 한 자리에 모여 나눈 얘기는 많은 이에게 감동을 주었다.
하지만 총 5회의 만남, 약 10시간에 걸친 대화를 50분에 담았으니 방송으로 볼 수 없는 내용이 훨씬 많다. 아쉬움을 달래고자 미방송 녹취 내용을 연재한다. 다음은 파주 헤이리의 한 북카페에서 이루어진 첫 만남의 첫 기록이다.
김제동(이하 김) : 말씀을 들으니 그 말이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내 아이가 행복하려면 내 아이의 친구도 행복해야 한다.’ 그 아이의 주위에 있는 아이들 중 그 누구도 관계없이 적어도 인간적인 존엄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요. 제작진이 처음에 저를 섭외할 때 재미있게 해달라고 부르신 건데, 제가 자꾸만 진지한 질문을 드리게 되네요. (웃음) 저도 궁금한 게 많아서요. ^^ 한 가지만 조금 더 진지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웃음) 왜 그런 결심을 하시게 된 겁니까? 아까 말씀드렸던 내용이지만 충분히 안정적으로 잘사실 수 있는데. 저도 사실 두 분을 TV에서 봤을 때 약간의 반감도 가지고 있었거든요. 어떤 것이냐면 ‘에이~ 좀 잘살고, 저렇게까지 됐으니까 그렇게 얘기할 수 있는 거지 뭘..’ 시청자도 이런 생각을 가질 수 있거든요. 그럼에도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잘살 수 있으면, 또 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면’ 등과 같은 생각을 이룰 수 있도록 훨씬 더 좋은 조건의 기업에서 인수하겠다고 했는데도 거절하고 남을 수 있었던, 또는 기득권 층의 틈을 조금이라도 열어보아야겠다고 결심하신 이유가 뭘까요? 저희에게는 그러한 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거든요. 사회적 나눔을 실천하는 안교수(출처 : 오마이뉴스)
김 : 그만큼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계셔서 그런 것 아닙니까?
안 : 정말로 능력이 좋았다면 예를 들어 회사에서 나오자마자 준비가 필요 없이 자유롭게 다른 일을 했겠지만, 제 스스로가 그렇지 않고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준비 기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더라고요.
김 : 저희들이 생각했을 때는 준비 과정 없이 그냥 편하게 된 것 같지만, 그것 역시 모두 준비가 되어있었던 거군요?
안 : 네. 3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준비를 한 다음에, 대학에 자리잡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도하고 그리고 산업 전반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된 것 같습니다.
김 : 네. 박경철 선생님이 생각하시기에는 어떻습니까?
박경철 원장(이하 박) : 누구나 결핍에 대한 추억이 있죠. 우리 또는 우리 어르신의 시대에는 그게 ‘상처를 갖고 살았다, 국수 먹고 살았다’ 등의 모습으로 확대되어서 나타났는데, 그것이 대개는 현재의 영광을 빛내는 과거의 이야기로 많이 회자되곤 하죠. 그것은 역으로 ‘결핍의 시대부터 오늘의 영광을 누리기까지의 기억이 공존하지 않았다면 현재의 내 모습을 어떠할 것인가’를 한번 더 유추해보게 되는 질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김 : 두 분 똑같은 말씀을 하시는데, 계속 가슴에 와닿는 비유라든지 재미있는 비유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웃음)
안 : 하하하 (웃음)
김 : 개인적으로 약간 질투 나시거나, 아니면 저는 더 웃겨야 한다는 그런 쪽에 관심이 많이 가는데, 두 분께서는 같이 강연하실 때 강의 내용과 상관없이 그런 생각이 드실 때는 없습니까?
안 : 저는 전혀 안 웃겨서요. (박 원장이) 도중에 정리해주고 좀더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하니까 제가 재미 없었던 게 돋보이는 거죠. 그래서 오히려 굉장히 고맙고, 뭐 경쟁상대로 보는 것은 아니고요.
김 : 하하하 (웃음) 에이 ^^
김 : 선생님하고 말씀 나누다 보면 생불이라고 하죠. 약간 부처님 같은 모습이 나오실 때가…(웃음)
박 : 그런데 정말 실제로도 그러세요.
김 : 네. 말씀 안 나누고 가만히 계시면 불공을 드려야 할 것 같은…(웃음) 웃음소리도 그렇고 귀도 그렇고.. 귀가 딱 부처님의 귀 모양이거든요. (웃음) 혹시 한 번도 질투나 이런 감정을 느껴보신 적 없으십니까? 연애하실 때도 그렇고요. 항상 평정심을 유지하는 모습이, 저는 진행자의 속성상 이런 걸 깨보고 싶은 마음(?)이 항상 들거든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으십니까?
안 : 저는 남하고 비교를 잘 안 해요. 왜 그런지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건 저한테는 별로 중요치 않거든요.
김 : 크크크 (웃음)
박 : 제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최근에 같이 밥도 먹고 강연하러 다니면서 계속 같이 뵀어요. 그러면 사람이 ‘한 번쯤은?’ 이럴 수도 있잖아요?
김 : 네. ‘한 번쯤은?’ 하고 생각하게 되죠. 평정심을 잃거나, 약간 욱하신다거나, 아니면 화를 내신다거나..
박 : 네. 그런데 정말 1초도 안 그러셨어요… 그래서 저도 어떨 때 보면 징해요^^; (웃음)
김 : 크크크 (웃음) 그럼 최근에 가장 욱하신 적은 언제입니까? 가령 어떤 대상을 딱 봤을 때, ‘아~ 저건 이러이러한 사정이 있었겠지’, ‘저건 그 점이 문제였으니까 그것을 고치면 될 거야’ 와 같은 이러한 논리적인 사고 말고, 감정적으로 ‘저건 안 돼!’ 라고 몰입하신 적은 없습니까?
안 : 음… 그러니까 그 ‘대상’이 남이 아니고 저에요. 그래서 '다른 조건이 안 돼’가 아니고, 제가 제 모습을 보면서 보기 싫은 모습이라든지 잘못된 부분 등을 볼 때면 혼자서 감정이 격해지는데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대상은 아닌 거죠.
김 : 음… 본인에 대해서 격해지실 때가 있다고요?
안 : 아.. 그럼요. ^^ (웃음)
김 : 그럴 때는 언제인가요?
안 : 그러니까 가끔 무언가 판단을 잘못하거나, 후회되는 일들이 항상 있기 마련인데요. 그럴 때면 저는 전적으로 제 잘못이니까 다른 사람 탓하지는 않고, 정말로 격할 때는 샤워하다가 갑자기 잘못된 일 생각이 나면 고함도 한번 질러보고요.
김 : 허… ^^; 웬만한 사람에게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거거든요. 또 제가 교수님 샤워하시는 모습을 보지 않는 이상은… ^^ (웃음)
박 : 아, 그리고 얼마 전에 사회 현상에 대해 굉장히 화를 내는 모습을 한 번 본 적이 있어요.
김 : 샤워하실 때요?
박 : 아니요. ^^ (웃음)
박 : 정말로 격분하는 모습을 제가 봤거든요. 그런데 그때 표현이 ‘그건 좀 그런 것 같아요.’였어요. (웃음)
김 : 하하하 격분하셨는데도 ‘그런 것 같아요.’ 라고... 당시 무엇 때문에 격분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박 : 요즘 사회 전체가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들에 대해 굉장히 고민하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 정부나 시스템이 대응하는 모습이 ‘이건 아니다, 이건 잘못됐다’와 같은 생각을 피력하시더라고요.
김 : 네. 뭔지 더 자세히 여쭤보기는 조금 그럴 것 같습니다. 여기서 얘기 하시기에는… 저희는 보통 이런 일이 일어나고 나면 욕을 하죠. 그렇게 혼자 있을 때는 욕을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근데 혼자서는 욕을 하신 적이 한번도 없으십니까?
안 : 네. 욕은 안해요. 들어서 이해는 하는데요…
김 : 알겠습니다. 포기하시죠(박경철 원장을 가리키며). 하하하 (웃음). 그럼 ‘그건 좀 그런 것 같애’ 말고 본인이 최고로 격분하셨을 때 ‘나는 이런 표현까지 해봤다!’ 하는 거는 어떤 게 있을까요? 너무나도 화가 나서…
안 : 음… 나쁜 사람?
김 : 근데 제가 요 근래 읽었던 책 중에 그런 구절이 있었거든요. ‘사람의 영혼은 자기 생각의 빛깔로 서서히 물들어 간다’. 교수님 만나 뵈니까 그런 느낌이 드는 것 같아요. 생각하시는 게 평소에 소위 저희들이 말하는 손발 오그라들게 바른 그런 게 아니고, 마치 성자를 뵙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들어서…
안 : 아이… (아닙니다)
김 : 그렇죠? 그건 아니죠? (웃음) 그렇게까지 하면 너무 사람 사는 맛이 없어져서.. (웃음). 옆에서 보시기에는 어떻습니까? (박경철 원장님 가리키며) 저희들이 하는 말로 ‘아~ 이 사람 이러다가 화병 걸리는 거 아닌가?’ 이럴 때는 없습니까?
박 : 크게 유연성이 있으셔서 화병이라기보다는, 교수님이 생각을 너무 깊이 하시니까 사리(奢利. 부처의 법신의 자취인 경전)가 나오겠다는 생각은 들죠.
김 : 아이고.. 사리^^ (웃음)
안 : 하하하 (웃음)
박 : 네. ‘나중에 사리나 한번 세워둘 필요가 있겠다’ 뭐 이런 식으로…
김 : 사리는 조금 민감한게, 저도 육시(六時. 하루를 여섯으로 나눈 염불 독경의 시간. 신조, 일중, 일몰, 초야, 중야, 후야 이다)를 조금 알아가지고 산 좋아하고, 절에 가는 것 좋아하고. 기독교이긴 하지만 절에 가서 점심도 많이 먹어 버릇해서… ^^ (웃음)
김 : 다른 질문 한 가지만 더 여쭤보겠습니다. 10년 전 자료를 보다가 안 교수님 소재로 했던 ‘성공시대’를 봤어요. 그 때 혹시 ‘나를 제일 화나게 하는 것은?’ 이란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셨는지 기억하세요?
안 : 음… 교통위반 아니었나요?
김 : 네. 교통위반 그리고 질서 안 지키는 것.
안 : 네. 그리고 끼어들기 그런 류였던 것 같아요. 근데 그게 그냥 끼어들기가 아니고요. 평소 줄서 있을 때는 누가 서로 얼굴 보고 끼어들겠어요? 그런데 차에 시커멓게 코팅을 해놓고 자기 익명성을 이용해서 함부로 그런 것을 하는 게 굉장히 비겁해 보이더라고요. 저는 비겁한 것은 굉장히 싫어하거든요.
김 : 아… 그럴 때 가장…(화가 나신다는) 그럼 그럴 때 이제 차 안에서 ‘나쁜 사람(이라고)’ ^^ (웃음)
안 ‧ 박 : 하하하 ^^ (웃음)
김 : 그럼 혹시 상대방 바로 앞에서 ‘당신 참 나쁜 사람이야!’ 하고 말씀하신 적은 없으신가요?
안 : 아… 네 ^^
김 : 박경철 선생님은 어떠십니까? 최대한으로 표현하신 것.
박 : 그런 표현을 쓸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사회적으로 기회가 없어요. 아무래도 점점 자기가 속한 사회 속에서 조금씩 정돈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놓여있잖아요? 그래서 그럴 기회가 거의 없고 가끔 이제 고향 친구들 만날 때 모임에서 그런 말을 하죠.
김 : 안 교수님은 친구끼리 만날 때 어떻습니까?
안 : 친구 만나면 자연스럽게 경상도 사투리도 나오고요. 근데 뭐 별 다른 건 없는 것 같아요. 억양만 조금 바뀌고요. 지금 이런 대화랑 크게 다를 바는 없는 것 같아요.
김 : 네. 이성교제도 하셨을 것 아닙니까? 어떻게 하셨습니까?
안 : 아, 캠퍼스 커플이었어요. 제 대학 2년 후배였거든요. 굉장히 자연스럽게 접근하기가 쉬워가지고 같이 다니다 보니 모든 사람이 다 알게 됐고요. 그 당시에 학교에서 가장 유명했거든요. 가장 유명했던 이유가 그냥 같이 다니다 보니 다른 사람이 신경쓴다는 것 조차 모르게 같이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결혼한다는 것도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김 : 가장 과격하게 해보신 애정 행각은 뭐였습니까? (웃음) ‘내가 정말 사랑해서 이 정도 표현까지 했어!’ 라고 할 수 있는…
안 : 하하하 (웃음) ^^; 아이 뭐 저기.. 과격한 표현이 있나요 근데?
김 : 예를 들어 ‘사랑한다?’
안 : 네. 그보다 더 과격한 게 있나요?
김 : …네 제가 나쁜 놈 입니다! (웃음) ^^
안 ‧ 박 : 하하하 (웃음)
김 : (웃음) 박 원장님은 어떠셨습니까?
박 : 글쎄요, 저도 뭐… ^^; (웃음)
김 : 더군다나 경상도 분이라…
박 : 요즘에는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더 궁극적인 표현 수단을 찾아가잖아요? 예전에는 ‘사랑해, 보고 싶어, 너 없이는 못 살 거 같아’ 등과 같이 말로 했는데, 요즘에는 그것이 안되니까 이벤트를 하잖아요? 이벤트도 꽃으로만 안 되니까 악기 연주도 나왔다가 심지어 나중에는 기구 타고 올라가는 것까지, 그야말로 소위 ‘쇼(Show)’와 같은 일이 벌어지는… 이렇게까지 해야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죠. 왜냐하면 그것은 서로가 느낌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을 잃어버려서 그런 것 같아요. 저희 시대에는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수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의 문제는 그런 눈빛으로 알 수 있는 직관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말과 표현이 많아지고, 그렇게 표현이 많아지다 보니 진실성이 비교적 약해지면서 내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과격한 이벤트를 해서 또 이벤트가 많아지고. 결국 사랑에 대한 행동이 과격하면 과격할수록 사랑에 대한 진실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역설적인 현상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래서 저희 시절까지만 해도 지금과는 다른 원시적인 낭만이 있었는데, 요즘은 조금 다른 모습인 것 같아요.
김 : 네. 이번에는 조금 다른 질문을 드려볼게요. 우리 사회의 흐름에 대해서는 두 분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안 : 저는 사회적인 현상도 많이 중요하다고 보거든요. 제가 베스트셀러 리스트에도 관심이 많은데요. 그걸 보면 시대 흐름이나 사람들의 생각을 많이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베스트셀러 1위로 올랐던 책이 ‘정의란 무엇인가’이지 않습니까? 그 책이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를 정도로 그렇게 대중적인 책은 아닌데도 굉장히 많은 사람이 그걸 찾는 다는 건 어쩌면 우리 사회에도 정의가 너무나 결핍되어 있다는 문제의식 때문에 1위에 오른 게 아닌가 생각되고요. 그리고 작년에 큰 흥행은 아니었지만, 영화 ‘굿모닝 프레지던트’를 보면 거기에는 자기 신장을 이식해서 국민 한 사람을 살리려는 대통령이 나오거든요. 그리고 최근에 여자 대통령이 나온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정말로 국민을 사랑하는 도지사나 또는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가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 드라마가 인기를 얻는 점을 봐도 정말로 우리가 현실 사회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 그렇지만 갈망하고 간구하는 것들에 대한 강렬한 표현인 것 같고요. 근데 이런 부분이 최근 들어서는 더 증폭이 되고 심상치 않게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것을 외면하고 그냥 놔둔다면 정말 사회적으로 엄청난 갈등이 어디선가 표출될 여지가 많을 것 같아요. 그래서 기득권층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이 부분을 정말 진정성을 갖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아요.
김 :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표현들이 나온 것. 정의가 결핍된 사회이기 때문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주목을 받게 됐고, 또 국민 개개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드라마가 나오고 하는 현상들이 결핍에 대한 표현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요. 그런데 오히려 그러한 표현조차도 가로막히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예를 들면, 그런데 대한 풍자 또는 표현까지도 가로막아 버리는 것 같은데, 그것은 오히려 터지기 쉬운 분노를 앞당길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방금 선생님들 말씀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데요. 이런 표현이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만…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라고 구호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꾸 안 지키니까 그런 구호들을 만들어 내시는 것 같은데...
자유를 외치는 튀니지 민주화의 모습(출처 : 일요서울)
그리고 또 그 밑에 순치(馴致)가 되면 ‘반기업’ 이라는 말이 슬쩍 끼어드는데요. 기업도 좋은 기업, 나쁜 기업이 있고, 나쁜 기업은 지적해야 하잖아요. 그러한 기업을 지적하는 것은 그 위에 있는 반기업, 반사회, 반국가와 연결되는 하나의 맥락처럼 또 다른 두려움의 존재가 되죠. 반기업의 밑으로는 ‘반재벌’이 될 텐데요. 재벌 중에 좋은 분, 나쁜 분을 지적하는 것도 위로 가다 보면 나중에는 반국가와 연결될 수 있다고 보니까, 이 모든 것이 ‘반’자의 그늘 속에서 전부 통합되어서 피라미드처럼 하나씩 묵인하고 통제가 되는 것. 그래서 서구에서는 이러한 것을 5, 60년 전부터 우려하고 명확하게 연구를 했던 것인데, 우리는 6~70년의 시간을 그런 맥락의 함정에 스스로 빠져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을 하게 되죠. 그렇게 되니까 말을 삼키고, 조심하고, 분명히 나의 자유로운 생각이 있는데 그 생각을 말하는 것을 혹시 ‘반’자의 맥락 속에 일부러 분류해놓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게 되죠. 안 선생님도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데 ‘사람의 생각은 누구나 다양한 맥락에서 다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걸 굳이 좌. 우 또는 앞. 뒤로 분류하는 것은 정말 불필요한 행동이다. 사람의 생각을 뭣 때문에 그렇게 분류하는 것인지…’ 라고 말씀을 하신 적이 있죠.
김 : 네. 여기에 조금 더 들어가 보면 저는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방금 말씀하셨던 앞. 뒤의 문제…
박 : 뭐 위. 아래가 될 수도 있고요.
김 : 네. 위와 아래, 앞과 뒤, 또는 옆의 문제… 지금 벌써 이렇게 조심하고 민감해하는 것도 솔직히 저는 조금 짜증이 나거든요. 그런데 이것은 상식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안 : 일반적인 상식과 비상식의 문제요?
김 : 네. 상식과 몰상식의 문제요.
안 : 비상식보다는 몰상식이 더 맞겠네요. (웃음)
김 : 네 그래서 상식과 몰상식의 문제로 보면… 그러한 시각에서 볼 때 사실 문제들이 조금 더 명확해질 수 있는 것 아닐까요? 상식과 몰상식, 그리고 선의나 국익과 같은 분류로 말이죠.
박 : 어떻게 보면 그럴 수도 있는데, 그런데 사실 그것이 비겁한 의미가 될 수도 있어요. 왜 그러냐면 저스티스(JUSTICE. 정의란 무엇인가)만 보더라도 무엇이 정의인가에 대한 기준은 참 규정하기가 어렵거든요. 상식과 몰상식을 놓고 봤을 때 ‘상식이 뭐냐?’ 라는 질문에서 그 ‘상식’은 공감을 의미하는 것이거든요. 그럼 어떤 것이 공감이 되는 것인지를 서로 규정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과감하게 기준을 정하는 수밖에 없어요. 룰(Rule)을 정해야 하는 거죠. 그런데 그런 룰을 정하는 과정에서 기준이 앞과 뒤로만 나눠지면 자유로운 의견이 나올 수 없으니까, 우리는 그러한 시스템을 고민해야 하죠.
김 : 그럼 선생님께서는 그러한 기준의 준거가 되는 과정에서 수준이나 기준은 다를 수 있다라고 생각하시더라도, 현 시점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정해져야 하는 기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은데요. 10대, 20대, 고등학생, 대학생 또는 초중학생들 모두 이제 출발선 상에 서야 하는 학생들인데요. ‘똑같이 잘하면 다 이룰 수 있어’ 라고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출발선이 이미 달라진 아이들은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럼 이 아이들에게는 대체 어떤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까요?
안 교수가 강조한 창의 교육의 중요성(출처 : 동아일보)
‘속도 위주’는 누가 먼저 1년이라도 빨리 조기 졸업해서 좋은 곳, 좋은 학교로 가느냐 이런 것들인데요. 사회적으로 과연 조기 졸업한 사람이나 영재교육 받은 사람 중에 우리 사회 전체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이 있는가. 저는 한 명도 보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사실 사회에 나와서 어떤 일을 할 때는 크게 3가지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자기 나름대로 재능을 가진 분야를 발견하는 것, 또 거기에 자기만의 노력을 보태는 것, 그리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자기와 함께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그런 능력 이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조기 졸업하는 학생들을 보면 그 동안 가졌던 친구관계 다 끊어져나가고, 그리고 또 어린 나이에 새로운 환경에 가면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요. 그럼 결국은 혼자 공부하고 혼자 계속 성적을 쌓는데, 그런 학생들은 자신이 아무리 재능 있는 분야에서 노력해도 다른 사람과 어떻게 함께 일하는지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대부분 그냥 혼자만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왜 한국에서는 많은 부모님들이 조기 졸업한 학생이나 자녀를 자랑스러워하는지, 제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안 돼요.
김 : 또래집단과 오히려 멀어진다고 볼 수 있겠네요?
녹화를 마친 후 밖에 나와서도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안 : 네 그렇죠. 그게 어쩌면 사회생활 하는 데 더 중요할 수도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 부모님도 많은 것 같아요. 그 다음에 ‘문제풀이 위주’를 보면 남들이 해놓은 정형화한 방법을 얼마나 능숙하게 쓸 수 있느냐만 많이 연습하고, 또 그런 능력 만을 그리게 되는 건데요. 그것은 창의력의 반대말이거든요. 그러다 보니 정말로 남들이 안한 부분, 궁금해하지도 않는 부분을 새로운 시각으로 질문도 던지고, 또 이미 어떤 방법이 나와있어도 자기만의 방법으로 풀려고 노력하고 그러한 점진적인 과정 속에서 창의력이 생기거든요. 그러니까 창의력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인재를 길러내는 게 한국 교육의 모습인 것 같고요.
셋째로는 ‘결과 위주’인데요. 과정에 있는 정당성이나 중요함을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결과만 나오면 된다고 믿는데, 아마도 그런 인재가 많아지다 보면 나중에 자기 자신은 잘먹고 잘살지 몰라도, 사회는 오히려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어떤 분께서 ‘만 명의 일자리, 만 명의 먹거리를 만들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렇지만 반대로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이 2만 명의 먹거리를 자기 혼자 독식하면, 그 사람은 사회에 아무런 쓸모가 없고 오히려 해가 되는 인재인 것 같아요. 근데 너무나도 그렇게 속도 위주, 문제풀이 위주 그리고 결과 위주의 인재만 이렇게 길러내고 있는 교육 시스템 하에서 과연 우리나라의 앞날이 있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인재들 때문에 처음 시작부터 기회를 못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은 기회를 박탈당하는 이런 구조는 정말 심각성을 가지고 고쳐야 한다고 생각해요.
'1%의 가능성만이 존재하더라도 도전할 수 있는 것이 20대의 특권이다.' 한 소설책에서 본 구절이 문득 떠오릅니다. 열정적이고 순수함으로 가득한 20대의 소중한 시간을, 영혼이 있는 기업 안철수연구소와 함께 할 수 있어 더욱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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