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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속으로/세미나

개그맨 김경진, 퇴출 위기 딛고 재기하기까지

'무한도전-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 준비 과정이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방송되었다. 대세인 정형돈-정재형 팀 외에 눈에 띄는 팀이 유재석-이적 팀이다. 이적은 유재석이 들려준 무명 시절 이야기를 간결한 가사로 정리해 '달팽이'처럼 마음을 울리는 곡으로 만들어냈다. 곡을 듣는 유재석의 얼굴은 좀처럼 보기 힘든 진지한 표정이었다. '내일 뭐 하지' 생각하며 잠을 설치던 그 시간의 아픔이 언뜻 보이기도 했다.

유재석의 개그맨 후배로서 그와 비슷하게 서러운 20대를 지나고 있는 김경진. 단 1주일 준비로 당당히 수석 합격했지만 한순간 퇴출 위기에 몰렸던 지독한 반전의 경험자다. 고전을 거듭하다 고향 집으로 돌아가려던 그에게 기차표 값 8천원이 있었다면 우리 앞에 개그맨 김경진은 없었을 것이다. 발길을 되돌려 '결국엔 잘될 것'이라는 다짐을 주문처럼 되뇌이며 노력하던 그는 몇 번의 기회를 잡아 조금씩 상승 중이다.
 '청춘 페스티벌'에서 그가 들려준 아름다운 실패의 이야기를 전한다.

1등에서 한순간 애물단지로 곤두박질
'절대 포기하지 마라.' 라는 주제를 준비했다. 식상하다고 느낄 것이다. 재밌는 제목을 붙이려고 했지만 제목은 교과서적이어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가 없었다. 개그맨 되고 난 후 부터의 이야기를 준비했다. 

2007년도 개그맨 시험 딱 한 번 1주일 준비로 당당히 수석 합격으로 들어왔다. '지킬&하이드'로 반응이 좋았던 초반에는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하
지만 어깨에 들어간 힘은 한 달도 안 되어 빠져버렸다. '개그야' 앞 시간에 '주몽'을 해서 시청률이 괜찮았다. 하지만 '주몽'이 끝나자 '개그야' 시청률이 반 토막이 되었다. '개그야'가 힘들어지고 코너 검사를 받았다. PD들이 '김경진한테 속았다, 낚였다.' 라는 말을 했다. 다른 개그 프로를 모방해서 검사를 받기도 했다. 한 마디로 잘 안 되었다. 
 
가장 큰 문제는 '무대 울렁증'이었다. 녹화 날 아침에는 밥을 못 먹었다. '박달촌'이라는 코너가 있었다. 내가 맡은 역할은 단순히 삽질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긴장이 너무 되어서 삽질하다가 손을 떨었다. 결국 삽으로 동료에게 똥침을 했다. 그때 '대사 금지령'이 내려졌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얼굴로 웃기는 개그맨이 되었다.
 
새로운 코너를 만들었다. 다른 개그맨이 스케치북에 낙서를 했다. 눈, 코, 입을 그리고 머리카락을 대충 그린 뒤 눈 주변에 검은색 큰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런 다음 '이렇게 생긴 사람이 어디 있어?' 라는 말을 하면 내가 나오는 것이었다. 당연히 웃길 줄 알았는데 많은 관객들은 웃기는커녕 기겁을 했다. 그 때 크게 좌절을 했다. 혼자서 '나는 자질도 없고 울렁증 너무 심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기차표 없어 낙향 포기
MBC에 관두겠다는 통보를 했다. 그 길로 대전 집으로 내려가려고 영등포역으로 갔다. 대전 가는 무궁화 열차표가 8천원이었다. 표를 사려고 카드 결제를 하는데 카드 잔액이 3천원이었다. 결국 집에 못 가고 다시 MBC 코미디언실로 들어갔다.
 
아침 7시에 출근해서 선배들이 모두 퇴근한 새벽 4시에 퇴근을 했다. 택시 탈 돈이 없으니까 기다렸다가 5시 반 첫 차를 타고 집에 간 뒤 다시 아침 7시까지 출근을 했다. 이런 생활을 2주 동안 했다.

일산에 MBC 드림센터가 생긴 후 그 건너편
에 고시원을 잡았다. 그리고 개그를 짰다. TV를 보면서 다른 개그맨의 장단점을 적은 포스트잇을 고시원에 가득 붙였다. 방은 좁았지만 꿈은 컸다. 그러나 고시원 생활 두 달 만에 너무 우울했고 눈물이 났다. 고시원에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안마의자가 있었다. 천원을 넣고 의자에 앉았는데 진동에  맞추어 눈물이 나왔다. 이 때 모습을 기억하려고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보았는데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었다. 이 사진을 보면서 우울증이 나아졌다. 
 
그 뒤 '갈갈이' 박준형 형이 MBC로 넘어왔다. 지나가다가 복도에서 마주쳤다. 보자마자 하는 말이 "MBC에 너 같은 인재가 있었어?" 그렇게 다시 코너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9년도 '무한도전 돌+I 콘테스트'에서 했던 '손 안 대고 트레이닝복 입기'로 인지도가 높아졌다.

그러다 다시 한동안 침체기가 왔다. 그 뒤 '원숭이의 빵을 뺏어먹는 UCC'로 인기를 얻었다. UCC를 찍을 당시 조련사에게 물어보니까 그 원숭이가 신종플루에 걸렸다고 했다. 웃겨야 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빵을 뺏어 먹었다. 그 이후 유튜브에 '코리아 크레이지 가이'라는 이름으로 올라가서 세계적으로 대대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런 과정이 있고 난 뒤 2009년 MBC 방송 연예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해드리고 싶은 한 가지 조언은 '결국엔 잘될 것이다'라는 생각을 가지라는 것이다. 돈이 없거나 고통, 고민이 있고 힘든 과정 모두 결국엔 잘되기 위한 과정이다. 바로 앞에 놓인 컵 속의 물을 먹지 마라. 대신 지금 힘들 수도 있고 보이지도 않는 우물을 파라. 우물을 파기 위해 열심히 삽질하고 곡괭이질해라. Ahn

대학생기자 김재기 / 한양대 안산 컴퓨터공학과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타고난 천재가 아닌 이상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항상 노력하는 대학생기자 김재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