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에서 들뢰즈까지 근대 철학의 경계들을 낱낱이 파헤치는 『철학과 굴뚝청소부』를 읽고 철학사를 압축적으로 그려보는 글을 쓰자는 애초의 목표는 책을 완독한 뒤에 의구심으로 남았다. 중세철학에 대한 반역으로 등장한 근대철학의 탄생과 성숙, 그리고 동요와 위기를 제한된 분량에 모두 담고자 하는 시도는 자칫 당대의 주요한 철학자의 이론을 단지 몇몇의 핵심단어로만 제한하여 설명하는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책 전체에 대한 표면적인 소개보다는 기억에 남는 철학자를 소개하는 것이 더 의미 있어 보이는 이유이다. 책에 언급된 여러 명의 철학자 중에서도 푸코를 선정한 이유는 경계 허물기를 제시하는 그의 사상이 다른 사상가들에 비해 유독 ‘특이하게’ 다가온다는 주관적인 판단 때문이다.
<출처: 다음 책>
이 책에서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푸코의 사상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된다. 첫째는 ‘고고학’의 시기이다. 푸코의 고고학은 진리, 과학이라고 명명되는 주류적인 지식에 의해 가려진 비주류들을 들추어 내는 작업을 의미한다. 주류에 의해 감추어진 것들을 침묵하는 소리라고 칭한 본 책의 저자는 침묵하는 소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문학이나 미술 등 다양한 문화적 유물을 통해 과학이나 역사책에 나오지 않는 잊혀진 과거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고고학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풀이한다.
둘째는 ‘계보학’이라는 시기이다. 여기서 말하는 계보학이란 사회의 모든 것들에 깃든 가치와 권력의지를 드러내고 그 권력의 효과를 분석하는 작업이다. 셋째는 권력과 자아의 관계를 규정하는 시기로서 권력을 통해 자아가 구성되는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시기이다(여기서 말하는 권력이란 어떠한 의지를 관철시킬 수 있는 힘이라는 점에서 우리가 평소에 사용하는 단어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각각의 시기에 푸코가 이룬 사상적 성과는 모두 고유한 의미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 남은 것은 첫째 시기인 고고학에서 제시하는 ‘침묵의 외침’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는 정상과 비정상, 동일자와 타자, 내부와 외부 사이에 만들어진 경계를 허무는 작업이다. 이성의 능력을 숭상하는 근대시기를 거치면서 인류는 과학혁명을 비롯한 수많은 업적의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하지만 소위 과학이라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영역에 과도하게 의존한 결과, 사람들은 과학/비(非)과학, 이성/비이성, 정상/비정상 등의 이분법적인 사고체계에 갇혀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는 것과 거부돼야 하는 것으로 나누는 근시안적인 시각을 습득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고는 과학영역뿐만 아니라 사회영역에도 적용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주류와 비주류를 의식적으로 나누며 비주류에 속한 타인을 배제의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실수를 범하게 한다.
푸코는 소위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환상에 깨어날 것을 강조하면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경계의 허위성을 고발한다. 이렇게 해야지만 그 동안 소외되었던 타자의 목소리, 그 동안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타인의 억압된 외침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푸코의 사상이 단지 ‘자신과 타인 간의 차이를 받아들이자,’ ‘차별은 부당하다’ 등의 도덕적인 당위성을 되풀이한 것이라면 그의 업적이 유독 ‘특이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의 사상이 매력적인 것은 비이성, 비주류 등을 수용하자는 의미를 전달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러한 차이를 생성하는 경계를 적극적으로 파괴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즉, 푸코는 이성/비이성을 나누는 경계 위해서 비이성을 수용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이성과 비이성이라고 가르는 기준 자체를 없애고자 한다.
나와 다른 타인을 인정하는 것조차도 어려운 일인데, 그 차이를 없애자고 하는 것은 너무 과격한 요청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차이가 차별로 변질되는 것을 막고, 차이를 인정/존중하는 자세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차이라는 경계를 지우고자 하는 푸코의 사상에서 우리는 충분히 성찰할 만한 가치가 있는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더욱이 타인과 자신을 구별하고자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견고한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경계 허물기’에 대한 의지와 실천의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Ahn
사내기자 방지희 / 안랩 세일즈마케팅팀
지금 20대의 청춘을 사람들과의 소중한 만남으로 채우고 싶습니다.
글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읽고, 글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자가 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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