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빗물이 가을과 겨울의 경계로 스며들고, 비가 마른 자리엔 쓸쓸한 햇빛이 나뒹군다. 이틀 간의 컴컴한 하늘이 걷히고 나니, 부쩍 날씨가 쌀쌀해졌다. 너도나도 옷장에 묵혀 두었던 두꺼운 옷을 꺼내 입고, 저녁 뉴스에선 스키장이 개장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어느덧 우리는 2012년의 끝자락에 와 있다.
여름 태생이기 때문일까? 추운 것을 못 견디는 나로선 겨울이 오는 것이 달갑지만은 않다. 또다시 나이를 한 살 더 먹어야 할 시기를 피하고 싶다는, 내면의 욕심일런지도 모르겠다.
날이 추워지니, 길거리를 배회하는 고양이와 강아지들이 부쩍 눈에 띈다. 골목길마다 쓰레기 더미를 헤집는 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어제는 집 앞에서 강아지 한 마리에게 손에 쥐고 있던 붕어빵 하나를 건네었다. 낯선 사람을 보고도 경계를 하지 않고 꼬리를 살랑거리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예전에 집을 잃었거나 혹은 버려졌거나, 사람의 손길을 탔던 강아지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얼마 전, 영화 '늑대소년'을 보며, 나는 '하치 이야기'가 생각났다. 굳이 비교해보자면, '하치 이야기 의 사람 버전이 '늑대소년'이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최근에 흥행 중인 송중기, 박보영 주연의 '늑대소년'과 리처드 기어 주연의 '하치 이야기'를 리뷰해보고자 한다. (스포일러 있음)
<출처: 네이버 영화>
떠난 주인을 10년 동안 기다린 하치
<출처: 네이버 영화>
우연히 기차역에 홀로 남겨진 하치를 파커 윌슨 교수가 발견한다. 하치에게 주인을 찾아주려 하지만, 뜻대로 일이 되지 않고 맡아 키워줄 사람도 찾기가 힘들다. 교수의 가족은 얼마 전, 키우던 반려견을 하늘로 떠나보낸 터라,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까지 반대를 하던 아내를 설득하는 데 성공한다.
그는 하치에게 유독 각별하게 애정을 준다. 하치 역시 교수를 무척이나 따른다. 교수가 출근할 때마다 하치는 그를 따라나가 배웅을 하고, 교수가 퇴근할 시각에 맞추어 기차역으로 간다. 교수는 이렇게나 알뜰살뜰 자신을 챙기는 하치가 무척이나 사랑스럽다. 이렇게 평화롭고도 따뜻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어느 날 강의 도중 교수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작스레 닥친 죽음으로, 하치와 교수는 작별 인사조차 하지 못 했다.하치는 매일같이 주인의 퇴근 시각에 맞추어 기차역으로 간다. 돌아오지 않을 주인을 기다리며 같은 자리, 같은 시각에 서 있다.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어 어느새 10년이 흘렀다. 하치는 이제 늙고 쇠약한 노견이다. 그러나 여전히 하치는 주인만을 기다린다. 마을에서 유명인사가 된 하치를 10년 후, 교수의 부인이 찾아온다. 그녀는 하치를 보며, 슬픔에 잠긴다. 대견한 한편 미안하다. 그녀는 하치에게 말한다. “오늘은 함께 기다리자.”
하치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사랑해주었던 주인만을 기다리다가, 결국 죽음을 맞는다.
평생 한 소녀를 기다린 늑대소년
수컷 늑대는 평생 한 마리의 암컷만을 바라본다.
<출처: 네이버 영화>
폐병을 앓는 순이는 가족과 함께 요양차 한적한 시골 마을로 이사한다. 그들은 예전에 이리를 가지고 실험을 하다가 죽은 교수의 집에 살게 된다. 마을 사람들은 새로운 마을 식구가 생겨 좋아하지만, 순이는 지저분한 시골 마을 사람들이 탐탁지 않다. 그러던 중, 우연히 거지 꼴을 한 소년을 발견한다. 소년은 사회성이 결여되어 있고, 말도 하지 못 하며, 먹는 것 외엔 관심이 없다. 그는 흡사 개와 비슷하다. 순이 엄마는 소년을 ‘철수’라 부르며 잠시 그들은 함께 살게 된다.
“기다려!”
순이는 철수를 마치 개를 훈련하듯 가르친다. 밥을 먹을 때, 수저를 쓰는 법, 양치하는 법, 옷을 입고 글을 쓰는 법, 말하는 법 등을 차차 가르쳐준다. 소년은 처음으로 자신에게 관심을 쏟으며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순이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폐병 환자로 사회로부터 격리당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온 소녀와 전쟁용 무기로 사용하기 위해 정부의 실험으로 만들어진 늑대소년은 그렇게 서서히 서로에게 황홀한 빛이 되어간다.
<출처: 네이버 영화>
그러나, 평화는 곧 깨지고 만다. 순이를 짝사랑하지만 뒤틀린 한지태의 등장으로, 철수의 늑대 본성이 깨어나고, 철수는 늑대인간이 되고 만다. 체온 46도, 혈액형 판독 불가, 골밀도 측정 불가. 늑대인간을 공동 실험했던 교수팀과 지시했던 정부의 군인팀이 철수를 잡기 위해 시골 마을로 내려오고, 순이는 철수를 보호하기 위해 그를 떠난다. 달랑 쪽지 한 장만 남겨놓은 채로.
“기다려, 나 다시 돌아올게.”
47년이 지났다. 한 남자의 아내이자 어머니이고, 이제는 할머니가 된 순이는 시골 마을을 다시 찾는다. 추억에 잠겨 하룻밤 머물고 가게 된 순이는 철수가 갇혀 있던 창고 방에서, 놀랍게도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여자만을 기다리고 있던 늑대인간, 철수를 만난다.
필요에 따라 만들어내고, 필요가 없어지니 죽임으로써 은폐하려 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돌아보게 된다. 즐거움을 채우는 용도로 쉽게 길러지다가 흥미가 떨어지면 쉽게 버려지는 유기견과, 신뢰 관계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의 모습...
반려견 하치와 늑대소년 철수는 똑똑하고, 계산적이며, 현실적으로 산, 곱게 늙은 순이의 모습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순이 역시 한때는 순수했던 시절이 있다. 철수가 늑대인간이라는 것을 안 후에도, '네가 뭐라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대사가 이를 잘 반영해준다.
추운 날씨에 몸도 마음도 차게 식어가는 요즘, 마음이 따뜻해지는 영화, '하치 이야기'와 '늑대소년'을 보며, 잊고 있었던 우리의 순수함을 오랜만에 불러보는 것은 어떨까? Ahn
대학생기자 송주연 /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그래도 웃고 어쨌든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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