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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컬처리뷰

조선 15대 왕 광해를 다시 봐야 하는 이유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광해군 시대의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팩션사극으로 민본주의를 추구한 광해군의 모습을 그린다. 왕위를 둘러싼 권력 다툼과 당쟁으로 혼란이 극에 달한 시대에 광해군은 자신의 목숨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으로 점점 난폭해지고 결국, 도승지 허균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위협에 노출될 대역을 찾을 것을 지시한다.

이에 허균은 왕과 똑같은 외모와 타고난 말솜씨로 왕의 흉내도 완벽하게 내는 하선을 찾게 된다. 영문도 모른 채 궁에 끌려간 하선은 광해군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가슴 조이며 왕의 대역을 하게 된다. 저잣거리의 한낱 만담꾼에서 하루아침에 조선의 왕이 되어버린 천민 하선. 허균의 지시 하에 말투부터 걸음걸이, 국정을 다스리는 법까지 배우게 된다. 예민하고 난폭했던 광해와는 달리 따뜻함과 인간미가 느껴지는 가짜 왕 하선은 점점 왕의 대역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민본주의 정치를 추구하게 된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에서 그려지는 왕이 된 남자, 광해는 지극히 인간적이다. 왕이 먹다 남긴 여식으로 배를 채우는 수라간 궁녀들을 위해 일부러 밥을 남기고, 백성의 억울한 사연에 친히 귀 기울이며 위로한다. 또한 백성의 세금부담을 완화시키기 위해 대동법을 실시하고, 명에 강제 징용되는 조선군대가 걱정되어 자신의 백성의 안전을 당부한다는 내용의 친서를 명에 전달하기도 한다. 위엄한 군주의 모습을 버리고, 때로는 우스꽝스럽게 때로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따뜻한 감동을 전한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광해군이 인간이 넘치는 왕이었다면 실제로 역사에 평가되는 광해군은 어떤 모습일까. 역사책에 따르면 조선 15대 왕으로 등극한 광해군은 민생 안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민본주의자이자 실리 외교론을 추구한 실리주의자였다. 기존의 불공평한 공물제도를 타파하기 위해 그는 등극하자마자 1608년 경기도에 대동법을 실시하여 세율을 토지 결당 일정하게 정하여 민중의 고통을 완화하였다


또한 그는 국제정서의 흐름을 올바르게 읽으며 실리주의적인 외교론을 펼친 현명한 왕이었다. 광해군 시대에서는 동북아 국제 정세가 급변하고 있었는데, 만주에서 여진족의 세력이 커져 후금이 건국되자 이에 대비해서 적재적소에 군대를 파견하여 국방을 강화하는 한편, 명나라의 원병 요청에 따라 명목적으로 1만 군사를 내주었다. 부차싸움에서 명나라가 후금에 패하자 적당히 싸우는 체하다가 후금에 투항해 누루하치와 회의를 맺도록 하는 능란한 양면 외교 솜씨를 보임으로써, 후금의 대대적인 침략을 예방하였다. 또한 1609년 일본과 송사약조를 체결하고 임진왜란 후 중단되었던 대일외교를 재개하면서 악화되었던 일본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는 정책을 실행하였다.


한편 광해군이 모습이 긍정적으로만 역사에 기록되는 것은 아니다. 조선의 사관들은 광해군을 폭정을 일삼은 폭군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인조반정에 성공한 사대주의적 명분론자들이 자신들의 반란을 합리화하는 측면이 없지 않아 있다. 물론 광해군 역시 조선의 대다수의 왕들이 겪어야만 했던 왕위쟁탈의 두려움에 벗어나기 위해 무리한 정적 세력 제거를 강행하여 했으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수반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부분만을 과대하게 비추어 광해군이 군주로서 추구한 애민정치와 실리적인 외교정책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는 기득권에 맞서서 백성의 어려움을 살필 줄 아는 인간적인 왕이었으며, 중립 외교 노선을 표명하여 대명 사대주의에서 벗어나는 자주적인 외교를 추구한 실리적인 정치가였다. Ahn

사내기자 방지희 / 안랩 세일즈마케팅팀

지금 20대의 청춘을 사람들과의 소중한 만남으로 채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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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통해 타인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자가 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