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점점 더 완벽히, 혼자가 되어가고 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버스 안. 앉아있는 모든 이들은 요즘 유행하는 제각각의 휴대폰들을 두 손에 꼭 쥔 채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양쪽 귀에는 핸드폰에 연결된 이어폰을 낀 채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사람들. 이 날 핸드폰을 집에 두고 온 나는 이 공간 속에서 알 수 없는 외로움을 느낀다.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인 채 손 안의 네모난 세상에만 푹 빠져있는 모습이라니, 그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묘하게 무섭기까지 하다. 이미 핸드폰은 소유되는 물건이라는 개념을 뛰어 넘어 그들의 너무 중요한 일부가 되어버렸다.
아침에 눈 뜬 그 순간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핸드폰을 손에서 잠시도 떼지 못한다. 아니, 핸드폰이 없는 생활은 더 이상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핸드폰은 이미 우리의 모든 일상을 잠식해 버렸다. 낯선 타인들만 가득한 공간에 있을 때면 불편하고 불안하다. 습관적으로 주머니 속 핸드폰을 찾기 시작한다. 액정을 키고 내가 속해 있던 세계의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전화기 속의 음성들과 대화한다. 그렇게 주위의 현실 공간은 점차 의미를 잃은 채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더 철저히 우리 자신을 ‘혼자’로 내몰아 가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서 일어나고 있는 관계의 단절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극 <죽은 남자의 핸드폰> 이 극은 우리들에게 무언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가 기계를 통해 나누었던 수많은 대화들. 그 대화들은 모두 실존하고 있는 것들인가? 형체를 알 수 없이 허공을 떠돌고 있는 수많은 대화들. 이 연극이 말하는 ‘진정한 인간관계’란 과연 무엇일까.
연극 <죽은 남자의 핸드폰(Dead Man's Cell Phone)> |
당신이 어느 카페에 앉아 있는데 바로 옆 테이블 누군가의 핸드폰이 울리고 있다. 끊임없이 핸드폰이 울리는데도 전화를 받지 않는 그. 그를 대신하여 전화를 받고 보니... ...
...그 남자는 이미 죽어 있었다.’
연극 <죽은 남자의 핸드폰>은 죽은 남자(고든)의 핸드폰이 울리면서 시작된다. 조용한 카페에 끊임없이 울리는 남자의 핸드폰. 허나 그 핸드폰의 주인인 남자는 미동조차 없다. 옆 테이블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진은 계속해서 울려대는 벨소리에 계속 신경이 쓰인다. 결국 그녀는 남자에게 전화를 좀 받아 달라 부탁하게 된다. 계속되는 그녀의 말에도 묵묵부답인 그를 살짝 건드리자, 힘없이 옆으로 무너진다. 휴대폰이 울리기 한참 전부터, 그는 이미 죽어있었다.
그렇게 <죽은 남자의 핸드폰>은 죽은 남자 ‘고든’을 대신하여 그의 핸드폰으로 오는 수많은 연락들에 답신하는 ‘진’이라는 여자를 통해 전개된다. 그녀는 죽은 고든의 핸드폰을 통해, 그의 불행한 결혼생활과 오해로 가득한 가족관계, 곁에 있던 이들과 소통하지 못한 채로 살았었던 그의 삶을 알아 간다. ‘진’은 일면도 없던 죽은 남자의 인생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 죽은 그의 ‘대변인’으로서 그의 삶을 확장시킨다.
‘고든’은 카페에서 자신의 죽음이 눈앞에 왔음을 직감했을 때, 자신의 죽음을 누구에게 알릴지 고민했다. 한 명 한 명 떠올려보던 그는 결국,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던 수많은 연락처들 중 단 한 곳에도 연락하지 못한다. 그를 사랑했던 내연녀부터, 수 십 년을 한 집에서 함께 살아왔던 아내와 남동생, 어머니조차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 그가 건네는 작별인사를 들을 수 없었다.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그가 풀지 못했던 가족 간에 엉켜있던 오해와 원망을 ‘진’은 진심을 다해 풀어가기 시작한다. 그녀는 가슴 속에 오랜 원망, 미안함, 그리움 등의 복합적인 감정들을 품고 있던 가족들 한 명 한 명을 만나 진심어린 위로를 전달한다. 그녀가 위로를 전하는 과정에서 관객들은 진정한 ‘소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죽은 남자의 핸드폰> 작품은 진정성 어린 소통만이 잘못된 인간관계가 제대로 된 ‘인간관계’로 탈바꿈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핸드폰이라는 차가운 기계에서 전달되는 허공에 떠도는 이야기가 아닌 얼굴을 마주하여 눈빛을 전하며 나누는 ‘진심’이 담긴 커뮤니케이션, 이것만이 진정한 소통이 될 수 있으며 ‘진짜 자신의 모습’을 보이며 직접 마음을 다해 이야기를 전하는 관계가 제대로 된 ‘진짜’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출 감독 ‘박근형’이 말하는 <죽은 남자의 핸드폰> |
디지털 시대의 단절과 진정한 소통의 의미를 담은 블랙코미디 작품, <죽은 남자의 핸드폰>
이 작품을 만든 연출가 박근형은 극단 골목길 대표로서 ‘햄릿’, ‘청춘예찬’, ‘경숙이 경숙 아버지’ 등 많은 문제적 작품을 선보여 온 대학로 대표 연출가이다. 그는 극단 ‘맨씨어터’가 창단 5주년을 맞이해 완성해낸 이번 작품 <죽은 남자의 핸드폰>을 통해, 현대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소통 방식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언제 어느 순간 원한다면 이미 알고 있는 이들과 연락할 수 있어 모르는 사람들과 애기를 나눌 필요가 전혀 없어져버린 요즘, 휴대폰이란 기계를 통해 전해지는 대화들은 다 어디로 전해지는 것들인가.
그렇게 형체를 알 수 없는 대화들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지속되는 인간관계는 진정 의미가 있는 것인가? 전화기가 울리지 않으면 불안해하며 습관이 되어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 우리들. 박근형은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낸 이기로 인해 오히려 자신들의 존재 가치를 잃어, 급기야 그 물건의 노예가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작품 설명 때 나온 그의 말에 가장 잘 드러나 있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는 것이 아닌 전화기 속의 음성들과 만나 대화하고 그 존재를 확인한다. 직접 만나 함께하는 공간 속에서 대화하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전화로 해결한다. 전철 안에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전화기를 붙들고 그 작은 화면 속에 얼굴을 묻고 보이지 않는 상대와 교신을 하거나 그 작은 기계가 선물하는 세계 속에 파묻혀 주위를 돌아보지 못한다. 혼자 미친 사람처럼 크게 중얼거리는 사람이 있어 돌아보면 그 사람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다.
가끔 난 그 안에서 나 혼자만 동 떨어져 다른 차원의 세계로 들어와 있는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저들이 보는 저 안의 세상은 존재하는 것인가? 저들이 통화하는 사람은 과연 살아있는 사람일까? 서로의 눈을 보며 진심으로 대화하던 느린 아날로그의 시대 속에서 다들 뛰쳐나왔는데 나 혼자만 멈춰 있는 것은 아닐까?
내가 던진 의문들은 결국 나 자신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난 대답하지 못하고 휘청거린다. 빙빙 도는 세상에서 귓속의 달팽이관이 고장이 나버린 사람처럼 허우적거린다.
내가 죽을듯한 어지러움에 비명을 지르는데 사람들은 모두들 귀에 이어폰을 끼고 있어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다. 아니, 그들은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 내 목소리를 모른 척하고 있다.'
인간은 수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평생을 살아간다. 어릴 적 소꿉친구부터 시작하여 평생을 함께하는 가족, 중고등학교 동창, 대학 동기, 배우자, 그리고 일적으로 얽힌 수많은 사람들까지... 서로 복잡하게 얽힌 그 관계 한가운데 존재하는 우리는 그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한다. 손 안의 작고 네모난 기계를 통해 나누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들.
혼자인 것이 두렵고 외로운 우리는 사람과 소통하고 싶어 발버둥을 치지만 이런 방식의 대화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 보이지 않는 상대를 향해 전하고 있는 나의 이야기들은 전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가. 정작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못하게 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과연 누구와 어떤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을까.
우리, 오늘만큼은 손에 쥐고 있는 핸드폰을 잠시 내려두자. 그리고 더 이상 핸드폰 액정화면 속에 있는 이들이 아닌, 우리가 있는 이 공간에 서 있는 사람들, 내가 눈앞에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고 그들에게 집중하자. 진짜 나의 이야기가 그들에게 전해질 수 있게. Ahn
대학생기자 윤덕인/ 경희대 영미어학부
따뜻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안랩인이 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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