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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서평

여덟 번째 방, 불안한 청춘에게 건네는 위로

불안과 고단함 속에서 우린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20대,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라 하지만, 동시에 수없이 흔들리고 아플 시기다. '청춘'이란 시원하고 고운 단어 내면엔 몰아치는 수많은 걱정들과 불안들이 숨어 있는 듯하다. 떠안고 있는 과거, 현재, 미래의 문제가 한꺼번에 몰려 뒤섞이며 터져 나온다.


청춘이 머금는 특유의 향기와 빛을 가득 품고 있어야 할 20대의 얼굴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무엇 하나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시기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린,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한 채 늘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이 사회는 좀 더 빨리, 좀 더 많은 것을 성취해야 한다며 갈 길을 재촉한다. 그 과정 속에서 우린 진짜 일상 속에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망각해버렸다. 어지러운 마음을 미처 수습하지 못한 채 바쁜 현실에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는 우리


김미월이 쓴 소설 <여덟 번째 방> 일기장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이러한 현재 20대 청춘의 가슴 깊숙이 자리 잡은 내밀한 상처들을 고스란히 전한다 

                                                 


<출처: 다음 책>

 

책을 읽고 나서 한동안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길을 찾지 못한 채 혼란 속에서 오늘을 흘려보내는 영대의 모습은 항상 불안함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소설 속 주인공 영대는 신체적, 정신적으로 독립을 꿈꾸는 한 청년이다 하지만 집을 나선 그 순간부터 맞닥뜨리게 되는 경제적인 문제들이 주인공의 삶을 점점 더 조여 온다. 독립을 하고자 혼자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지만,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청년을 노려 더 많은 이득을 볼까 하는 어른들만 있을 뿐 도와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영대는 앞으로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스스로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내리지 못한다. 어른이 됨으로써 얻게 되는 자유와 동시에 짊어져야할 선택에 대한 책임’이란 무게가 지독히 무겁게만 느껴진다. 아래 인용문은 영대의 이런 불안한 심리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영대가 바라보고 있는 대기 속 물질의 아주 작은 알갱이들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둥둥 떠 있는 지금 우리들의 마음과 똑 닮았다. 불투명하고 형태 없는 수많은 꿈들이 갈 곳을 잃은 채 우리 주위를 뱅뱅 맴돌고 있다.


'저들에게는 꿈이 있을까. 있겠지. 그럼 저들이 전부 100명이라면 세상에는 도합 100개의 꿈이 있는 것인가? 아니, 일단은 나를 빼야 하니 99개라 해야겠지.' 역 안에 부유하는 먼지 속에서 영대는 99개의 무정형의 꿈들이 아이의 손을 떠난 헬륨 풍선처럼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았다. 그것들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었지만 외피가 불투명해서 속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본문 p56 中)

그러던 어느 날, 영대는 우연히 상자에 담겨 있는 노트들을 발견하게 된다. 집어든 노트 첫 장에 쓰여 있는 '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란 한 문장의 글이 그의 가슴에 깊은 인상을 남긴다. 스프링 노트 가득 쓰여 있는 '여덟 번째 방'이란 제목의 글에는 책 속 또 다른 주인공인 '지영'이 살아온 삼십년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지극히 평범했으나 자신의 삶에서 만큼은 주인공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지영의 모습은 영대와는 사뭇 다르다. 영대는 일기장 속 그녀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영대에게는 첫 번째지만, 일기장 속 주인공인 지영에게는 여덟 번째 방이었던 그 곳. 일기장을 발견하기 전까진 단지 발을 다 뻗고 눕기도 힘든 값싼 월세 방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영의 작은 일기장을 매개로 이루어지는 지영과 영대와의 교감으로 인해, 이 방은 가치를 지닌 의미 있는 공간으로 변화한다.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평범하다. 아니, 평범해 보인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지금 우리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저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지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사연들을 뉘라서 알겠는가. 액자의 뒷면을 궁금해 하지 않는 한, 우리는 평생 그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을 알 수 없을 것이다.' (본문 p25-26 中)


평범함 속에서 살아가지만 각자만의 이야기를 쓰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는 구절인 듯싶다.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 각각의 색깔이 발라진, 너무나 다양한 모습의 삶들이 존재한다. 스스로의 가치에 따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에 인생의 가치를 판단할 옳고 그름의 기준 따위는 없다. 한 번 자문해보길 바란다. 현재 난 내 가치에 따라, 지금 이 순간 행복한가?


소설 속에서 영대는 친구 현수에게 행복하냐는 질문을 건넨다. 그에 대한 대답이 참으로 인상 깊다

"행복이 별거냐. 너 아직 살아 있잖아." 


살아있기에 꿈을 꾼다는 그의 말이 가만히 가슴 속을 맴돈다. 그저 계속 앞으로, 앞으로만 떠밀려 가는 삶은 더 이상 그만하고 싶다. 시간의 외피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삶과 자신의 것을 비교하며 조바심을 느끼지 말아야겠다. 잊지 말자.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그만큼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란 것을. 우리의 평생은 꿈을 따는 과정들이 모여 이루어진다. 앞으로 만들어 갈 그대의 삶은 그대만의 가치에 따라 행복하길 바란다.  Ahn

 


대학생기자 윤덕인/ 경희대 영미어학부

항상 배우는 자세를 잊지 말고 자신을 아낄 것

온몸을 던져 생각하고, 번민하고, 숙고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