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벙, 첨벙...
프랑스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 시사회는 첨단을 달리는 이 시대를 역행했다. 관객들은 4D 극장의 좌석이 아닌, 실제 물 위에서 영화에 나오는 구명보트를 타고 라이프 오브 파이를 관람하였다. 결국 기계가 인간의 감성에 다가가고자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라면 오히려 이것이 정말 살아있는 4D가 아닐까 싶다. 게다가 라이프 오브 파이는 화려한 색채와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수많은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출처: 네이버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영화는 겉과 속 모두가 매력이 있는 과일과 같다. '라이프 오브 파이'라는 영화를 단순히 쳐다본다면 ‘위기를 극복하여 함께 살아가고 포용하라’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지만, 그 겉에 있는 껍질을 조금만 들쳐서 안을 바라보면, ‘이성과 종교적 믿음 사이의 간헐적 줄다리기’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인생의 압축’이라는 면모를 보여준다. 넓은 바다는 인생에, 폭풍우는 절망에 비유되며, 배에 탄 다양한 동물들은 인간들을 나타낸다. 파이가 비극적인 상황에서 용기와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은 라이프 오브 파이가 담아내고자 하는 인생의 본질일 것이다. 리처드 파커라는 호랑이와 파이라는 소년은 대서양 한가운데서 믿을 수 없는 기간동안 생존하였다. 너무나 다른 서로의 존재 자체가 그들 각각에게 긴장을 갖게 한 것이다. 그런데 그 둘 사이에 흐르는 무언가를 우정이라고 보기에는 부족하다.
우정이 아니라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적정거리를 유지했기 때문에 생겼던 평화인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단편적인 예로, 리처드 파커는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정글속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 버린다.
여기서 한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이것이 과연 ‘동물과 인간의 관계라서인가’라는 점이다. 우리(사람과 사람이)가 서로를 이해하는 수준이란 딱 그 정도일 것이다. 내 입장에서 이해가 안 될지라도 받아들여야 하는게 우리 삶인 것이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기 보다는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을 존중해 줄 때야 비로서 함께 살 수 있는 것 아닐까? 이안 감독은 “영화 안에서 인물과 인물 간의 관계를 중시하려고 했다”라고 했는데, 그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는 그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관계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샤를르 드 푸코의 ‘나는 배웠다’라는 시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나는 배웠다
내가 아무리 마음을 쏟아 다른 사람을 돌보아도
그들은 때로 보답도 반응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신뢰를 쌓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려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임을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다.
같이 그 속을 들여다보자.
영화에서 종교는 어둠이라며 ‘이성’을 믿는 아버지와 그에 반해 ‘여러가지 종교’를 믿는 파이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어린 파이에게 잔혹한 현실이자 이성을 보여준다. 리처드 파커가 양을 잡아먹는 행위를 봄으로서 파이는 더 이상 현실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파이는 종교적 믿음에서 나왔던 흥미에 대한 대안으로 ‘아난디’라는 여자에게 빠지게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파이의 가족사정이 안좋아 지면서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아난디’와 헤어지는데 이런 말이 나온다.
「그녀와 마지막 날 모든 것이 기억이 나는데, 작별 인사를 하는 순간만 기억이 안 납니다」
이렇게 기억은 선택적이고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영화 속에서 그는 지구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를 지날 때, 폭풍에 의해 가족을 잃게 된다. 간신히 구명보트에 타지만 오랑우탄, 다리가 부러진 얼룩말, 하이에나, 리차드 파커라는 이름을 가진 호랑이와 같이 위치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있지 않아 좁은 배 위에서 다시 한번 일어나는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파이는 절규한다. 파이가 울부짖는 그 순간, 갑자기 구명보트의 천막 속에서 리처드파커가 튀어나와 하이에나를 먹어 치운다. 이 장면을 통해서 그가 믿고 있었던 종교적 믿음에 대한 절규의 폭발로 대변되는 호랑이는 그의 종교적 자아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출처: 네이버 영화>
# 보트 위의 천막
리처드 파커가 있는 보트가 종교적 자아가 있는 영역이고, 그와 별개로 리차드 파커로부터 도망친, 바다라는 벽으로 세워진 임시로 만든 뗏목은 이성이 위치한 곳이다. 그런데, 보트의 모든 부분이 종교적인 것은 아니다. 천막은 극중 초반에 리처드파커로부터 파이를 보호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천막은 보트위의 마지막 이성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 이성과 종교적 믿음을 넘나드는 파이
「배고픔은 나 자신도 모르던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게 해준다」
라는 말과 함께, 멸치 떼가 날아든다. 파이는 멸치 때 속의 참치를 리처드파커에게 빼앗는 대범함을 보이며, 호랑이를 굴복시킨다. 이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종교적 자아를 이성이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리처드 파커에게서 뺏은 참치를 채식 주의자이자, 모든 만물은 신이라고 하는 파이가 개걸스럽게 먹어치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극단적인 모습으로 그는 식인을 하게 된다. 그 모습을 영화에서는 식인섬에 도착하였다라고 표현한다. 밤이 되면 식인섬은 이상한 화학적 작용을 통해 동물들을 먹어버리고, 식인섬의 모양 자체가 죽은 사람이 관 위에 누워 있는 모양이라서 어느 정도 유추 해 볼 수 있다.
사람이 주인공인 이야기에서는 파이가 요리사한테 얻어맞아 이빨이 부러졌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이야기(동물이 주인공인이야기)에서 그는 식인섬이 소화한 결과물인 이빨을 보게 된다. 이는 역으로 파이가 요리사의 이빨을 가지고 있다는 뜻으로 식인 섬에 도착했다는 것은 파이가 식인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와중에도 리처드 파커는 밤에 식인섬에서 떨어져 구명보트 위로 올라간다. 이것을 보았을 때도, 리차드 파커는 종교적 자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시체를 먹는 파이의 이성이라는 것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는 것이다.
「신이 당신을 머린 것 같을 때에도 그는 다 보고 계십니다.
내 고통을 내버려 두는 것 같을 때에도 그는 다 보고 계세요.
내가 그 모든 삶의 희망을 뛰어 넘었을 때, 그는 제게 휴식을 주었어요」
그는 과거 식인섬을 떠날 때를 생각하며 이런 말을 한다.(=식인을 한 후 이런 말을 한다). 종교적 신념을 필요할 때만 믿는 식의 말투다. 황당하기까지 하다. 간헐적 믿음을 통해 변질된 모습의 종교로 비춰질 수 있지만, 그는 끝까지 종교적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출처: 네이버 영화>
# 바다 위의 폭풍우
그는 가족을 집어삼킨 그 폭풍을 마주하며 이런 말을 한다.
「신이시여, 그리스도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배려와 자비로움을..
아름답다. 나를 완전히 놓았을 때, 우리에게 올 것이다.
-
내가 졌어요. 뭘 더 원하는 겁니까?」
그는 이런 말을 하며 구명보트 위의 마지막 천막조차 걷어버린다.(=마지막 이성을 걷어버린다.) 그리고, 리처드 파커에게 뭘 그렇게 무서워하냐고 말을 한다. 하지만, 파이가 그 자신을 완전히 놓았을 때, 그가 마주한 것은 다가오는 ‘신의 그림자’가 아니라 ‘죽음의 그림자’였다. ‘이러다가는 죽겠다. 살아야 한다’라는 생각에 다시 허겁지겁 구명보트에 천막을 친다. 종교적 믿음으로부터 이성으로의 대피인 것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 무한함
이 영화에서는 제한이나 한계가 없음을 의미하는 ‘무한함’을 많이 보여준다. 파이의 이름, 크리슈나의 입 안, 바다 속 이라는 공간에서 무한이라는 것을 각각 수학적으로, 시각적으로, 환상적으로 보여준다. 도대체 이 영화에서 무한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맨 처음에는 종교적인 웅장함과 그것의 무한함을 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종교적 믿음과 이성을 아우르는 한 차원 높은 것을 무한함이라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이는 이성과 종교적 자아를 왔다갔다 한다. 그런데 오히려 이는 파이에게 어울리는 행동 같다. 종교를 3개나 믿는 파이가 이성에게 지배당하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종교를 3개씩이나 믿는 파이이기 때문에 이런 유연한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종교적 믿음 아니면 이성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바탕을 두고, 이성에 의한 변질된 종교로의 타협이라고 치부하는 대신, 종교적 믿음과 이성 모두 무한함이라는 마음속에 있는 하나의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마지막에 결국 아버지가 말한 이성 때문에 살았다고 인정하지만, 두 이야기 중 동물이 나오는 이야기가 신과 더 잘 어울린다고 말하는 그의 모습은 이를 대변하는 것 같다. Ahn
대학생기자 이승건 / 성균관대 전자전기컴퓨터공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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