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외성.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날 것 같은 차가운 인상인데 알고 보니 매우 다정다감한 사람일 때, 둔해 보이는 사람이 매우 날카로운 식견을 드러낼 때, 완벽한 미모의 여배우가 매우 소탈한 성격일 때 그 의외성은 그 사람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여러 사람이 모인 기업에도 의외성을 가진, 알고 보면 독특한 경험과 개성을 지닌 사람이 가득하다.
600여 명이 모인 안철수연구소에도 눈길을 사로잡을 만큼 색다른 경력을 가진 이가 많다. 성장해 IT 업계에서 일하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을 어린 시절을 보낸 안랩인 2인을 만났다. 중학교 때 축구 선수로 활약한 정하권 주임과 초등학교 시절 패션 모델로 활동한 한규철 차장이 그들.
많고 많은 안랩인 중에서도 축구 사랑이 유독 남다른 남자, 서비스운용팀 정하권 주임.
훤칠한 키에 서글서글한 눈매가 매력적인 그는 중학교 시절까지 축구 선수 생활을 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이 축구였고, 가장 즐거운 시간이 축구공과 함께 하는 순간이었기에, 그가 축구 선수의 꿈을 키운 것은 당연했다.
잠자고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훈련에 훈련이 거듭됐다. 열네 살의 소년이 소화해내기에는 버거울 법도 한 훈련 강도였건만, 고단함 속에서도 그는 늘 즐거웠다고 한다. 공 하나만 있으면 온 동네가 운동장이 되던 소년에게, 어느새 축구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 되어 있었다.
본격적으로 축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맡게 된 그의 포지션은 중앙 미드필더. 문득, 진중하면서도 조용한 열정이 느껴지는 그와 매우 잘 어울리는 역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축구에서 중앙 미드필더의 역할은 팀의 살림꾼과도 같다. 공격수가 골을 넣지 못하면 다음 기회를 노리면 되고, 수비의 실수로 실점을 하면 만회할 여지라도 있지만, 미드필더가 무너진 경기는 승리하기가 어렵다. 흔히 축구 전술의 '허리’라 불리우는 중앙 미드필더로서 그는 팀의 조율자 역할을 즐겨 맡았다.
하지만 축구 선수의 길은 생각보다 녹록치 않았다. 오늘날에 비해 매우 열악했던 당시의 훈련 여건 탓에, 어린 선수들은 자신들의 꿈을 펼치기가 쉽지 않았다. 몇몇 축구 명문교를 제외하고는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기 일쑤였고, 제대로 된 보호 장비 착용이나 좋은 그라운드에서 뛰어보는 것이 하나의 꿈처럼 여겨지기도 할 때였다. 차츰 원치 않은 부상을 당하는 일도 잦아지기 시작했다. 축구에 대한 열정과 끈기로 뭉친 그였건만, 몇 달이 멀다 하고 찾아오는 부상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땀 흘리며 뛰는 것을 가장 좋아하던 소년이, 그럴 수 없게 되었을 때의 상처는 얼마나 컸을까.
늘 지친 몸으로 집에 돌아오는 아들, 이를 지켜봐야했던 어머니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 행여나 아들의 몸이 상하지 않을까 늘 걱정이 많으셨던 어머니셨기에, 웬만한 부상은 집에 알리지조차 않는 일이 많아졌다.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지원과 든든한 응원이 필요했을 시기였건만, 열악한 환경과 부모님의 반대는 그로 하여금 힘든 결정을 하게 만들었다. 그는 목표로 삼았던 축구 명문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포기하게 된다.
어린 마음에 상심이 컸을 것 같다는 나의 물음에, 되돌아온 그의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축구 선수의 길을 포기하면서부터 정말 축구를 즐기기 시작한 것 같아요.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큰 부담 없이, 내가 좋아하는 축구를 진정 즐거워하면서 할 수 있었거든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대답이었다. 생각도, 고민도 많은 사춘기 소년이 그토록 원하던 것을 포기해야만 했다면 자칫 엇나가거나 비뚤어질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럴수록 그는 더 묵묵히 운동장을 누볐다.
그때부터 친구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싸커’였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도 그는 늘 축구공과 함께 했다. 비록 그가 꿈꾸던 선수의 길은 아니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꿈을 사랑했고, 또 즐겼다. 대학에 진학해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할 때도, 군 복무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군 제대 후에는 두세 군데의 축구 동호회에 가입해서 일주일에 두세 게임을 뛰곤 했다.
축구의 무엇이 그렇게 좋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되돌아온 그의 대답이 '축구가 가진 소통의 매력'이란다.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자고로 승자와 패자를 가름하는 것이 스포츠의 본질이요, 그 중에서도 축구는 가장 치열하고도 격렬한 경기가 아니었던가? 그런데도 그는, 골을 넣는 순간의 쾌감도, 승리했을 때의 성취감도 아닌, '축구를 통한 소통'에 매료되었단다.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는 이렇다. "축구는 11명이 뛰는 스포츠입니다. 개중에는 세간의 주목을 받는 스타플레이어도 있고, 도드라지지는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선수도 있기 마련이지요. 제 아무리 뛰어난 선수가 있다고 해도 하나의 팀으로 거듭나지 못한다면 좋은 축구를 할 수 없습니다. 즐거운 축구, 재밌는 축구를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소통’입니다. 뛰어나든, 다소 부족하든 크게 관계가 없습니다. 함께 부대끼고, 함께 땀흘리면서 만들어지는 것이 ‘소통’이고, 그 ‘소통’이 축구를 더 매력적으로 만듭니다."
2009년 안철수연구소에 입사한 후 가장 기뻤던 일 중 하나가, 바로 안랩의 축구 동호회 <Sky Eleven>의 존재였다. 바쁜 업무 속에서도 축구를 즐기고 좋아하는 안랩인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함께 유대를 쌓아가고 있었던 것. 공식적으로 큰 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었건만 <Sky Eleven>사람들은 부족한 시간을 쪼개고, 사비를 털어 그들이 좋아하는 축구를 하고 있었다.
“게임이 있으면, 일주일 내내 그날이 기다려져요. 다들 바쁜 일상을 보내겠지만, 한바탕 몸을 부대끼며 뛰고 나면 그날의 피로가 다 사라지는 것 같거든요. 함께 웃고 땀흘리면서 선후배 간의 유대도 더욱 돈독해지는 걸 느낍니다. 무엇보다 제 생활 전반에 최고의 활력소가 되거든요.”
정하권 주임은 서비스운용팀에서 사내 서버의 전반적인 운용 및 개발을 맡고 있다. 팀의 살림꾼으로 그라운드를 누비던 한 소년은, 어느새 듬직한 청년의 모습이 되어 이제 안랩의 살림꾼 역할을 자처한다. 바쁜 회사 생활 속에서도 대학원에 진학해 자기개발을 게을리하지 않는 노력파 이면서, 요즘 최고의 관심사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결혼’이라며 수줍은 미소까지 지을 줄 아는 매력남이다.
그는 아직도 축구를 몹시 사랑한다. 어쩌면 축구 하나만 생각하며 살았던 어린 시절의 그때보다 더 많이 축구를 사랑할지도 모른다. 그가 사랑하는 축구처럼, 그가 그리는 미래 또한 늘 열정적이고 순수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언젠가 나이가 들어 할아버지가 되더라도 꼭 축구와,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는 안랩의 ‘싸커’! 그의 앞날이, 드넓은 그라운드처럼 늘 푸르고 밝은 빛이기를 바란다.
"차승원이 제 까마득한 후배입니다."
모델 협회 초창기 회원이었던 인사총무팀 한규철 차장의 경력은 아쉽게도 대과거형이다. 1970년대 후반 7~10살에 연예계(!) 활동을 했는데 당시에는 꽤 주목 받는 모델이었다.
그가 평범하지 않은 일을 시작한 계기는 오디션이 아니라 소위 '캐스팅을 당해서'였다. 부모님 주변의 사진 작가가 추천해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최고의 광고기획사 소속으로 활동했다. 매니저는 다름 아닌 어머니!
그는 각종 패션쇼를 비롯해 가족이 테마인 달력, 럭키그룹(현 LG) 이미지 광고에까지 등장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당대 최고의 배우인 신성일씨, 장미희씨와 달력 사진을 찍고, 요즘으로 따지면 송혜교 정도 되는 임예진씨, 드라마 '아이리스'의 대통령 역으로 나온 이정길씨와도 작업을 했다. 드라마에도 출연했는데, 그 당시는 요즘처럼 숙련된 아역 연기자가 필요한 때가 아니라 별 대사 없이 가만히 있으면 됐다.
그러나 남이 보기에 좋아 보이는 패션 모델 일이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재미가 없었다. 끼가 없고 내성적이라 적성에 맞지 않았던 탓이다. 웃어야 하는데 웃기가 힘들고, 10분 짜리를 위해서 하루 종일 기다리는 것이 싫기도 했다. 경제적으로는 도움이 많이 되었지만 스트레스도 만만찮아 자연스레 고학년이 되면서 중단하게 됐다. 그래도 돌이켜보면 추억할 거리가 있어 좋단다.
한규철 차장은 내년 9월경 완공될 판교 신사옥 건설 실무를 맡고 있다.
“자기 집을 짓고 나면 10년 정도 늙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신경 쓸 일이 많아서지요. 하물며 회사 사옥을 짓는 일이니 걱정이 많이 됩니다. 어떻게 인테리어를 할지, 벽에 어떤 유리와 돌을 쓸지부터 벽지, 스위치를 어떤 것으로 고를지까지 세세하게 신경 써야 합니다.”
다행히 꼼꼼하게 챙기는 일은 그의 강점 중 하나란다. 그의 목표대로 무사히 완공되어 안철수연구소가 '자기 집'에 문패를 달고 입성하는 날을 기다려보자. Ahn
대학생기자 전아름 / 서울여대 미디어학부
컬처 커뮤니케이션 컴퍼니 'SunnySideUp'의 대표로서 문화를 생활화하는 사회를 꿈꾸고 있다. 문화라는 것은 감동과 행복만 주는 것이 아니라 나와 사회에 변화의 씨앗이 될 수 있다. 안철수 박사가 강조하는 기업가 정신, 앙트러프러너십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행복한 무한질주 중이다. @sun_nyside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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