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 읽어보니

안랩人side/안랩컬처 2009. 9. 9. 13:41

<안철수연구소>란 이름 아래 함께 한 14년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충분히 희망이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셨네요.
하지만 대한 민국의 희망을, 우리 회사의 영혼을 단순히 돈으로 계산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 中 -

 


- 비전은 스스로 창조하는 것
- 최선은 언제나 진실이다
- 남을 배려하는 것이 곧 나를 배려하는 길이다

여러 사람이 모여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도전 정신을 실천한 기업,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서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게 만든 기업, 그리고 무엇보다 정직한 기업! 

<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라는 책은 각각 가치관, 생각, 일하는 방식이 달랐던 안철수연구소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지금의 안철수연구소를 만들기까지의 스토리를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생생하게 전달한다. 총 7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떤 글귀도 그냥 넘어갈 수 없을 만큼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다.

특히, 내가 감명깊게 본 부분은 아름다운 기업 문화인데, 백신 회사답게 모든 직원이 줄지어 독감 예방 주사를 맞는다든지, 11월 11에 가래떡 데이란 이름으로 가래떡을 나눠먹는 행사, 신규 입사자를 축하하는 의미로 자리에 풍선을 달아주는 '축하 풍선' 이벤트는 직원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500명의 또 다른 안철수들이 활기차게 품은 희망의 메시지!
 

책장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안철수연구소에 대한 물음표는 느낌표로 바뀌었고, 안전한 세상으로의 날개를 펼치기 위해 노력한 안철수연구소 사람들의 순수한 열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안철수연구소가 지금의 자리에 서기까지의 과정과 에피소드, 전 CEO 안철수의 기업, 사회, 그리고 국가에 대한 신념과 철학, 기존 경영 관행에서 벗어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이란 타이틀은 분명 그냥 얻어진 게 아니다.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보니,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은 열정과 도전 의식이 피워낸 아름다운 꽃이었다.

영혼이 있는 기업, 안철수연구소


하나의 벤처기업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공하기까지 시행착오도 많았고, 순간순간 찾아오는 위기도 있었지만 좌절하지 않고 성공을 향한 설렘으로 한 없이 뛰었던 그들의 존재가 있었기에 아마 영혼이 있는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지 않았을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는 희망, 그 자체이다.
Ahn 

대학생
기자 정은화 / 동덕여대 데이터정보학과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소녀 감성의 소유자. 정신 세계 코드 불일치로 고개를 갸우뚱 하는 당신도 곧 말랑말랑 봄바람처럼 마음이 두-웅 해버리는 엄청난 바이러스에 감염될지 모른다. 나와 함께 있는 바람안에 온통 따스한 향이 스밀 때까지. 안철수연구소 대학생 기자 활동의 시작, 그리고 종결의 메타포는 내 안에서 꿈틀거리며 튀어나온 나의 의지와 희망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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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악랄가츠 2009.09.09 16:27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한국 IT계의 든든한 방패...
    항상 저희 곁을 지켜주세요!
    사랑합니다~♥

  2. 요시 2009.09.09 21:06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와우 ㅋㅋ
    읽어보고 싶은 책이네요^^
    자주자주 소개가 되서 볼때마다 반가와요^^

  3. 스마일맨 2009.09.10 13:14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아~
    읽어보고 싶었는데 아직 기회가 안되었네요.
    지금 읽는 책 다 읽구나서 읽어봐야겠어요 ^^

  4. 10대의비상 2009.09.15 16:12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훗. 전 이책이 집에있다는 ^^.........

    흠 뭐랄가.... 다른 책들을보면 '기업의이미지를 좋게보이게하려는' 의도가 풀풀 풍기는데.

    역시 안철수연구소는 다르더군요 ^.^
    다른 곳들의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다가오는 책 ㅎㅎ

보안 회사 다니는 남편, 그의 내조의 여왕

안랩人side/안랩!안랩인! 2009. 6. 16. 08:35


1999년 어느 날, 주간 경제지를 읽다가 인물 인터뷰 기사 한 꼭지에 문득 눈길이 갔다.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 소장 안철수’라는 제목과 함께 호빵맨을 닮은 어떤 신사의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의사로서 V3라는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하여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라는 회사를 세웠다, 이 회사를 미국의 어떤 큰 회사에서 매각하라고 했는데 그 제안을 단번에 거절했다, 그로 인해 큰 부자가 될 수 있는 기회도 버리고 V3라는 백신을 무료로 배포해서 우리나라 공익에 매우 큰 기여를 했다. ...”

컴퓨터에 대해 큰 지식이 없던 내가 그 글을 읽으며 기억했던 내용은 이 정도였던 것 같다. 그런데 소장이라는 분의 소신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판단을 할 때 돈을 빼놓고 생각한단다. 많은 사람이 살면서 얻기 위해 열중하는 그것을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 배제하고 생각한다니 ‘참 특별한 분이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런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날 저녁 귀가한 남편이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에 면접을 보러 간다고 한다. 너무 신기해서 “나 그 회사 알아요! 오늘 잡지에서 읽었어요! 그런 회사 다니는 사람 참 좋겠다고 생각했는데...”라고 했다.

정작 남편의 반응은 덤덤했다. 매출 규모가 너무 작다고. 그런데 1차 면접을 하고 돌아온 저녁 남편의 반응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잠자리에 누워서 조심스레 물어봤다.
“그 회사 가고 싶어요?”
그러자 망설임 없이
“응!”
하고 대답한다.
“그럼 우리 기도하고 자요!”
오랜 시절 한 교회에서 성장해 결혼까지 했는데도 처음으로 침대에 무릎 꿇고 앉아 두 손 맞잡고 기도를 했다. 그리곤 몇 번의 면접을 더 거쳐서 현재 안철수연구소의 한 가족이 되었다.

당시 30명 내외의 직원이 근무하는 회사였는데도 사람들은 안철수연구소에 다닌다고 이야기하면 대기업에 다닌다고 대답한 것보다 더 과한 반응을 보이며
“좋은 회사 다니네~!”
하고 이야기했다.

부모님께서는 일간지에 안철수연구소 관련 기사만 나오면 챙겨서 가지고 오신다. 컴퓨터 세대인 아이들은 친구들에게 아빠가 안철수연구소 다닌다고 하면 자기 컴퓨터도 V3를 쓰고 있다며 “너희 아빠 되~게 좋은 회사 다닌다!!!”라고 했다고 우쭐해한다. 무슨 백신 프로그램이 잘못 유포되었다는 기사가 났을 때는 마치 자기 자존심이 손상을 받은 듯 울그락불그락하기도 했다. 이렇듯 회사는 남편 한 사람이 다니고 있는데 온 집안 식구들이 모두 직원이다.^^*

그렇게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그 긴 시간이 속도 빠른 IT 회사를 다녀서 그런지 엊그제만 같다. 강남으로, 삼성동으로, 수서로, 다시 여의도로. 집은 직장과 가까워야 한다는 생각에 회사 이전에 따라 이사도 여러 번 하게 되었다.

그 세월 동안 깨끗한 기업의 이미지 덕분에 주위로부터 회사의 칭찬을 들을 때마다 뿌듯하고 행복했다. 회사의 매출이 달성되어서 성과급이 나왔을 때는 주머니가 두둑해서 더없이 흐뭇하기도 하고 자랑하며 밥 사는 즐거움도 쏠~쏠했다.^^; (매출 많이 올려 주세요~^^*)

이제 2년 뒤 판교에 사옥이 완공되어 입주를 하면 다시 이사할 일은 없을 것 같아 새롭게 열릴 ‘안철수연구소의 판교 시대’가 더욱 기대된다. 안철수연구소가 20년 30년 더욱 성장해서 세계적으로 기업 규모와 더불어 공익을 함께 실현해 나가는 선한 영향력 1위의 회사로 우뚝 설 수 있길 소망해 본다. 아이들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회사, 그래서 아이들이 부모의 뒤를 이어 입사해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품을 수 있는 회사, 규모 면에서만 커지는 회사가 아니라 좋은 기업 정신을 뿌리 깊게 내려서 커가는 대한민국의 대표 회사가 되길 바란다. 영속하는 기업을 꿈꾸는 안철수연구소이기에 가능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Ahn

박순희 / 경영지원본부장 김기인 상무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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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머글 2009.06.16 09:03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아이들이 부모의 뒤를 이어 입사해서 일하고 싶다는 꿈을 품을 수 있는 회사..... 이 표현 정말 와닿네요. 안철수연구소가 그런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2. blue paper 2009.06.16 09:19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저도 v3 잘 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3. 탐진강 2009.06.16 10:16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멋진 부부이신 것 같습니다.
    우리니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회사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세계에서 자랑할 만한 회사로 발전하길 바랍니다.

  4. 요시 2009.06.16 17:23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우왕~~사진배경이 멋있네요 ㅎㅎ
    제가 다 자랑스럽고 그래요..>.<

  5. nulonge 2009.06.17 08:50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스스로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이 정말 좋은 직장, 자기 소명의 자리겠지요.
    이제 안랩에 입사한지 2달이 되어갑니다. 안랩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좋은 일터라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안랩 화이팅! : )

  6. 고데깅 2009.06.17 22:02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주변에서 좋은회사 멋진회사 라고 하면
    정말 기분 좋을거 같애요~! ㅋㅋㅋ
    부럽네요!! ^^

인디밴드 '순이네담벼락' 보컬을 만나보니

안랩人side/안랩!안랩인! 2009. 5. 19. 11:38


과거 인디 밴드는 어찌보면 우리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반항이라는 요소에 고함이 가미된 것이 많았는데 요즘 인디 밴드를 보면 참 많이 좋아진 것(그 전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표현 방식이 다양해지고 감성이 넓어졌다는 뜻!)을 느낀다. 인디 음악 자체는 독립적이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확실히 할 수 있다는 좋은 점이 있다. 똑같은 사랑 이야기라도 다른 사람들이 다 생각하는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나만의 사랑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인디 음악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순이네담벼락'이라는 인디 밴드를 결성한 고객지원팀의 백수훈 사우. '순이네담벼락'의 리더로, 안철수연구소의 새내기로 하루 24시간을 알뜰하게 보내고 있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 궁금하다... 인디 밴드의 결성! 

Q. 왜 '순이네 담벼락'이라고 이름을 지었나요?
A. 예전에 저희가 광주에 있을 때 시골에서 연습을 했는데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담벼락의 낙서들을 봤어요. 그때 '아, 이쪽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구나.'라며 재밌어했죠. 그래서 담벼락이라는 이름을 지었고 순이네 같은 경우는 순이가 정겹고 편하잖아요? 편하게 다가가고 싶은 그런 뜻에서 담아봤습니다. 

Q. 어떻게 하다가 결성하게 되었나요?
A. 제일 친한 친구가 혼자 음악을 하고 있었는데 다른 친구가 "너희 더 나이 먹기 전에 빨리 같이 해봐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했어요. 그때 함께 하자고 결심했죠. 

Q. 다른 팀원들은 어떻게 구성되었나요?
A. 한 명은 친구의 교회 동생이었고 한 명은 개인적으로 제가 알고 있었던 드러머에요. 모두 뜻이 같아서 구성하게 되었어요. 

Q. 공연을 하면서 특별한 에피소드?
A. 대회에서 상 타거나 길거리 공연하는 것을 좋아해요. 차 소리도 들리고 네온사인 켜져 있는 그런 상태에서 공연하는 것도 좋고요. 비나 눈이 올 때도 좋지만 악기한테 미안해서. (웃음)   

Q. 요즘 '순이네 담벼락'에 많은 시간 투자 못 하겠네요?
A. 네. 예전만큼은 못하지만 그 친구랑 10년째 친구이고 그간 만들어놓은 곡들이 많아 특별한 연습 없이도 가능해요. 새로운 노래나 새로운 작업을 못한다는 아쉬움은 있지만요.

 

Q. 인디 밴드 언제까지 할 생각이신가요?
A. 글쎄요. 몇 살인지는 모르겠지만 하기 싫다고 느낄 때에는 그만둘 것이라고 친구들과 얘기했어요. 무대에서 일하는 것이 의무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는 과감히 그만두자고요. 아직까지는 그러지 않으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웃음) 

Q. 동료들 간의 충돌은 없었나요?
A. 있긴 있었죠. 하지만 음악 이전에 인간적으로 만났기 때문에 다른 팀원들보다는 덜했죠. 

Q. 컴퓨터공학 전공인데 글을 쓸 때 그런 감성이 어디서 나오나요?
A. 책도 좋아하는 편이고 대학 다닐 때 전공 수업을 줄이고 철학이나 인문 수업을 들으려고 노력했어요. 학기당 두세 과목은 그런 과목을 들으려고 노력했죠. 또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런 자리에서 공학 얘기보다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그때 공학도로 크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상에 필요한 사람으로 크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요. 

Q. 전공 못 살린 것을 후회 안 하세요?
A. 네,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고 있잖아요. ^^ 

## 궁금하다... 안철수연구소와의 인연! 

Q. 어떻게 안철수연구소 입사하게 되었나요?
A. 서울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어요. 인터넷 구인광고 보고 지원해서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잘 안 될 줄 알았어요. 그런데 부장님께서 사람하나 살린다는 셈치고 불러주신 것 같아요. (웃음) 

Q. 입사하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텐데요?
A. 제가 대학 다닐 때 컴퓨터 전공이긴 했지만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우등생도 아니었어요. 하지만 사람 만나는 것 좋아하고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다행히 지금 있는 팀이 고객의 문제를 듣고 해결해주는 파트라 적성에 꼭 맞는 것 같아요.  

Q. 아무리 세상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다고 해도 스트레스가 많을 텐데요? 
A. 그런 것 사실 들어오기 전부터 예상했어요. 바 매니저 일할 때 그런 일 많이 있었거든요. 예전에 제가 어머니께 컴퓨터를 가르쳐 드렸는데 정말 답답했어요. 그런데 이걸 하루 이틀 뒤에 생각하면 정말 미안하더라고요. 그때 저는 내가 조금 안다고 해서 그런 식 으로 얘기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는 것을 느껴 조심하도록 주의했어요. 사실 저도 지금 배우고 있는 상태라 똑바로 안 하면 혼나죠. (웃음) 

### 궁금하다... 당신의 미래! 

Q.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연락 드렸나요?
A. 하루나 이틀에 한 번씩 전화해요. 어머니한테는 살갑게 대하려고 노력해요 늘! 

Q. 최종 꿈은 무엇인가요?
A. 저희 노래를 듣고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요. 구체적으로는 사람들이 저희 노래를 듣고, "이 노래를 들으면 기분이 좋아."라는 말을 했으면 좋겠어요. 장르는 피아노락이라고 하는데 피아노를 중심으로 하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Q. 마지막으로 안철수연구소에 한 말씀 자유롭게 해 주세요.
A. 안철수연구소에 처음 지원할 때 좋았어요. 이름과 기업 이미지가 참 좋잖아요. 사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지만 일에서 보람을 느끼기에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꼭 안철수연구소에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 보고 싶어 하는 사람 듣고 싶어 하는 사람 그런 사람 말예요.  

 
인터뷰 끝에 노래 한 곡을 부탁했더니 흔쾌히 불러주었다. '광대'라는, 무대에 서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로 여자친구를 앞에 두고 노래를 불러줄 때의 떨리는 느낌이라고 한다. 감동적이었다. 인터뷰를 재밌게 이끌어주어 시간 가는 것도 잊어버려 덕분에 집으로 내려가는 차를 놓치고 말았다. (ㅜ.ㅜ)

안철수연구소 고객지원팀의 일원으로, 인디 밴드의 보컬로 다채로운 색깔을 뿜어내는 백수훈 사우. 행여나 고객지원팀에 전화했을 때 따뜻하고 리듬감 있는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백수훈 사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자. 단 장난 전화는 안 돼요^.^ Ahn

대학생기자 구슬 / 충북대 경영정보학과

서툴지만 열정과 도전 정신 그리고 많은 꿈을 가졌다. 편지쓰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니 '안철수연구소' 사보기자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아직은 작은 수족관에 살고 있지만 안랩을 통해, 그리고 사회를 통해 수족관을 깨뜨리고 바다로 나아가려 한다. '대통령 앞에서는 당당히, 문지기 앞에서는 공손히'를 모토로 삼고 열정과 발품으로 '보안세상'에 감흥을 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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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곽승화 2009.05.19 12:37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슬이야 ㅋㅋ 잘읽었어 ^^

  2. 요시 2009.05.19 18:13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우왕~~~~~~멋있어요~~~~~~~~~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노래도 불러주시나요?^^;;;;ㅎㅎㅎ

[서평]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

안랩人side/안랩컬처 2009. 5. 19. 09:59


V3는 올해 만 21살이 됐다. 많은 사람의 관심 속에서 탄생해 질풍노도의 시기도 만만찮았던 V3가 이렇게 장성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단 한사람의 노력도 아니요, 운만 좋았기 때문도 아니었다. 보안을 향한 사명감을 가진 안랩 식구들의 노력과 국민의 뜨거운 성원이 오늘의 V3를 만들지 않았을까. 안철수연구소가 CCMM 빌딩에 위치하기까지, 지금처럼 성장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수고와 노력을 감내했는지 땀방울 송골송골 맺힌 이야기를 단행본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김영사, 2008)에서 자세히 들어보자.

1. 세상에서 가장 도전적인 이름 안철수연구소
 
고립된 원자가 꿈을 품었다. 그 누구도 개척하지 않은 황무지를 개척하겠다는 꿈을 말이다. 그런데 그 원자에게는 특유의 점성이 있었는지 그것에 필요한 것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고,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쳐 변화 없을 것만 같았던 황무지를 개척했다. 바로 그 원자가 안철수 의장이다. 안철수 의장처럼 다이나믹하게 놀람 교향곡을 지휘하는 마에스트로도 없지 싶다.

1995년 3월 서초동 한판빌딩에서 7명으로 출발한 안철수연구소의창립기념식.


안정적인 의대 교수라는 자리를 박차고 앞이 불분명한 CEO의 길을 택했다. 안철수연구소를 위해 형형색색으로 염색을 하는 것도 마다치 않았고, 안철수연구소가 크게 성장했을 때 유학 길에 오르고 자신의 주식을 나눠주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는 등 파격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 안철수 의장의 성향을 고스란히 닮았는지 안철수연구소, 그리고 그 직원들 역시 자신의 발전과 회사의 성장을 위해 도전을 마다하지 않았다.  

책 본문에 나와 있듯이 복은 하나씩, 화는 쌍으로 들어온단다. CIH 바이러스, 외국 기업의 유혹 등 끊임없는 시험이 있었지만 그 성장통을 극복했기에 오늘날의 안철수연구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안철수연구소. 내일의 도전도 기대가 된다. 

2.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이름 안철수연구소

아직 부모가 아니라 잘은 모르겠지만 내 자식만큼은 나보다 더 잘되었으면 하는 것이 부모의 바람일 것이다. 안철수연구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자기 자녀들도 안철수연구소에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내 자녀가 안철수연구소에서 같이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한 가장 큰 요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안철수연구소가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가장 중요시 여기고 투명경영, 윤리경영을 몸소 실천하는 깨끗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매년 가을이면 전사원이 독감 예방 주사를 맞는다. 백신 맞는 백신 개발자의 모습.


물론 사우들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제시하는 기업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안철수연구소에는 특유의 따뜻함이 있다. 책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보물찾기 하듯, 그 따뜻한 보물들을 발견할 수 있는 기쁨을 다른 사람들도 함께 발견했으면 좋겠다.
 


회사, 직원, 고객이 삼위일체를 이루는 안철수연구소의 핵심 가치와 비전

우리 모두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우리는 존중과 신뢰로 서로와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고객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3.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

우리나라 보안 역사는 V3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안이라는 개념이 생소할 때가 V3의 시초였으니 말이다. V3는 21년 간 우리 곁에서 수많은 바이러스와 싸워주었고 부수적인 부분 또한 보완해주었다. 이제 V3는 세계적인 통합 보안 솔루션으로서 글로벌 무대에서 약진하고 있다. 일본, 중국은 물론 동남아, 남미, 북미 시장에까지 이미 상륙했다. 이젠 국내가 아닌 세계의 무대에서 활약할, 그리고 세계에 영향력을 끼칠 V3가 더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을 수가 없다. 
 
여름내 강렬한 태양빛을 받은 사과나무는 가을의 영근 사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것은 사과나무가 받은 여름빛을 감내한 당연한 결과일 것이기 때문이다.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고 만인의 안전을 위해 늘 힘쓰는 안철수연구소. 안철수연구소가 있기에 우리는 오늘도 별 걱정 없이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것이다.

P.S. 참, 이번에 세계의 트렌드를 잘 반영한 세계 무대의 초석 'V3 Internet Security 8.0'이 나왔는데  http://kr.ahnlab.com/b2b/productinfo/html/v3_is8.html
 또는 http://blogsabo.ahnlab.com/47 참고하길 바래요^^)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은 어느 노인의 노력으로 지구의 표면을 바꾼 실제 이야기를 문학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는 최신판 '나무를 심은 사람'이 아닐까 한다. 물론 안철수연구소는 '나무를 심은 사람들'이라 명명해야 옳겠지만 말이다.  

한 영혼을 가진 기업에 대한 그리고 우리 모두가 존경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에 귀 기울여 보라. 펜을 놓는 이 순간까지도 가슴 한 켠이 뜨거운 내 마음-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Ahn

대학생기자 구슬 / 충북대 경영정보학과

서툴지만 열정과 도전 정신 그리고 많은 꿈을 가졌다. 편지쓰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니 '안철수연구소' 사보기자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아직은 작은 수족관에 살고 있지만 안랩을 통해, 그리고 사회를 통해 수족관을 깨뜨리고 바다로 나아가려 한다. '대통령 앞에서는 당당히, 문지기 앞에서는 공손히'를 모토로 삼고 열정과 발품으로 '보안세상'에 감흥을 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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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시 2009.05.19 18:11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우왕... 21년이라니!! 대단한 역사군요^.^
    실감이 나질 않아요!!

대학생 안 기자, 안철수 박사와 소중한 만남

‘안철수’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뭘까? V3? CEO? 교수? 박사? 프로그래머? 칼럼리스트? 여러분들은 여러 칭호 중 어떤 것이 제일 먼저 떠오르시는지요?^^

지난 5월 8일, 대학생 기자들과 안철수 박사와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다들 긴장했던 표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자 그럼 안철수 박사와의 소중했던 시간 속으로 고고!!!

Q. '무릎팍도사'의 촬영이 끝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버라이어티 쇼에는 처음이셨을 텐데 어떠셨나요?

A. 버라이어티 쇼는 예전에도 나가본 적이 있습니다. '무릎팍 도사' 같은 경우는 1년 전부터 섭외가 계속 들어왔는데 이번에서야 방송에 출현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번 방송에 참여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특히 중고생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으면 합니다.

Q. 강호동씨한테 잡히진 않으셨는지?
A. 하하, 그러진 않았습니다. 촬영 내내 재미있었고, 생각보다 출연진들이 TV에서 보는 것보다 작더군요. 강호동씨 옆에 있던 두 친구는 방송 내내 말이 없던데. 항상 방송이라든지 인터뷰에서 질문할 내용들을 90% 정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어려움 없이 잘 마쳤습니다.

Q. 살아오시면서 선택의 갈림길이 있었을 텐데 아쉬웠던 점은 무엇이었고, 좋았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A. 아쉬웠던 점과 좋았던 점은 CEO가 되기로 한 것입니다. CEO는 본인이 경영하고 있는 그룹 내의 인원에 따라 그 역할이 달라집니다. 10명인 경우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직원들에 대해서, 회사의 경영에 대해서 다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시스템에 적응해가고 있을 즈음 회사의 규모가 커지게 되죠.

직원이 30명이 되었을 때에는 사사건건 간섭을 할 수 없고 위에서부터 아래로 권한 위임을 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CEO는 이런 시스템을 따라가려고 하죠, 50명의 규모로 커진 회사에서는 전략적 결정을 해야 합니다. 100명의 규모에서는 혼자서 하는 경영은 무리가 있고 임원진을 두어 경영을 해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10년 동안 이런 시스템에서 지내 왔습니다. 이렇게 회사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제가 변화된 시스템에 맞춰 나간다는 것이 힘들더군요. 하지만 보람도 많이 느꼈습니다. 여러 전문가들을 모아놓고 하나의 큰 작품을 만들었을 때 바라보는 그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 못하죠.

Q. 그렇다면 그런 변화 과정이 힘들어서 CEO를 그만두신 건가요?
A. 아닙니다. 저는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합니다. 나뿐만이 아니라 현재 한국에 있는 중소기업 및 여러 사람들에게 나의 경험과 실패의 예들을 보여주면서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Q. A자형 인재를 강조하시는데요, 안철수 박사님께서는 그러한 삶을 살아 오셨는지요?
A. A자형 인재의 모습은 5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다른 분야에 대한 상식과 포용력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긍정적 마인드가 있어야 하고 넷째, 끊임없는 학습을 통한 자기 개발. 마지막 다섯 번째는 한계를 이겨나가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저는 지금까지 위 5가지 실수를 했기에 깨달은 것입니다. 6년여 동안의 실패담을 솔직하게 적어서 저와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긴 <영혼이 있는 승부>라는 책에서도 나와 있습니다.

Q. 기업을 경영할 때 화가 나는 일이 있으셨는지요?
A. 안철수연구소에서 2000년에 전사원을 MBTI 조사를 해보니  16개 유형 중 14가지 유형이 나왔습니다. 보통의 기업이 8가지 정도 나오는데 비교적 다양한 성향의 구성원이 모여있는 셈이지요. 기업은 다양한 사람이 구성되어야 발전할 수 있습니다. 포용력은 기업에서 반드시 필요한 모습이죠. 즉,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Q. 의사로서 V3를 개발하셨는데, 프로그래밍 기술을 언제 배우셨나요?
A. 당시 저는 집에 애플 컴퓨터가 있었습니다. 이건 IBM 방식과는 달라서 운영체제와 베이직을 알아야 쓸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프로그래밍을 습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86년도에 IBM 컴퓨터가 대학원에 도입되었죠. 이후에 남들보다 제가 컴퓨터를 잘한다는 ‘특기’가 되어서 컴퓨터와 관련된 일은 제가 도맡아서 하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의학을 잘하기 위해서 습득한 것이었는데, 어느날 기계어를 다 읽을 수 있을때 이렇게 V3와 만나게 된 것 같습니다.

Q. 현재 이공계 및 컴퓨터 분야에서 노력하고 있는 학생들을 위해서 한 말씀 해주세요.
A. 많은 사람이 결정하거나 선택하는 것이 결코 안전한 것은 아닙니다. 예로 한의대를 들수 있겠네요. 5~6년 전만 해도 한의대를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해서 한의대가 인기였죠. 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최종 선택은 바로 본인에게 있습니다. 나에게 얼마나 이 일이 맞는지 알아야 한다는 거죠. 의미가 있고, 재미가 있고 잘할 수 있는 일로 진로를 결정해야 합니다.

Q. 왜 이공계 기피 현상이 증가한다고 보시나요?
A. 사회적 인센티브 구조에 문제가 있습니다. 이 구조가 변해야 하죠. 한국이 이런 문제가 심각하게 발생한 것은 무조건 선진국만을 따라가다보니 창의적 개발이 부족해졌기 때문입니다. 제너럴리스트들이 지배하는 사회 구조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한 것이죠.
 

Q. 정부 지원을 체감하지 못하는 게 현실인데요, 왜 그런 문제가 발생했다고 보십니까?
A. 현재 정부의 지원 방법은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렇게밖에 할 수 없죠. 당장 국민에게 정부가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업무 부서의 임기가 짧고 변동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단기간 내에 무엇인가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일본을 살펴보아도 한국처럼 짧은 업무 순환을 하지 않고 있죠.

Q. 새로운 것에 도전할 계획이 있으신가요? 하루의 일과는 어떻게 되시나요?
A. 현재 제가 맡은 일은 카이스트 석좌교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을 제외하고도 약 16가지 정도 있습니다. 이것만 해도 하루 일과가 빡빡하죠. 아침에 메일을 확인해보면 300여 통의 메일이 와있습니다. 강연을 요청하는 메일도 많고 학생들도 보내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다 그 부탁을 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거절을 할 수밖에 없는데 그 메일을 쓰는 데 1시간 정도 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에 대한 효율적인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카이스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 말고 틈틈이 이곳저곳을 방문하며 강연도 하고 있습니다.

Q. 스트레스 해소법은 무엇인가요?
A. 영화 보는 것입니다.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영화에 빠져들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근데 요즘 영화는 특수 효과를 많이 써서 너무 어지럽더라구요. 최근에는 미드 중 프리즌브레이크를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Q. 낭만을 즐기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A. 소설책 읽기입니다. CEO를 하면서 소설이 회사 경영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택한 것이 영어로 출판되는 소설이었습니다. 영어 공부 한다는 생각으로 하니 그나마 위안이 되더군요.

Q. 오늘이 어버이 날입니다. 의사를 그만두고 컴퓨터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을 때 부모님을 어떻게 설득하셨나요?
A. 당시 제가 의대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부모님께서는 반대를 하거나 그렇다고 찬성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많은 생각 끝에 결정한다는 것을 아셨기에 그때도 오랜 시간 끝에 결정했다는 것을 아셨던 것이죠. 지금도 부모님께 감사합니다.

Q. 살아오시면서 가장 안 좋은 일을 극복한 사례가 있으신가요?
A. 안 좋은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살다보면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생기거든요. 물론 후회하는 일도 있죠. 하지만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더 성장해 나갈 수 있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A. 카이스트에서 '기업가적 사고방식'이라는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과연 창업에 자질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할 수 있는 열쇠는 바로 “나를 얼마나 아는가”에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학생들에게 해법만 제시하고 있어서 이에 대한 것을 알아가기까지의 시간과 위험이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젊고 도전할 수 있는 나이에 리스크를 경험해 보고 그것에 대한 해결 방안을 찾다 보면 "내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은 이것!"이라는 답을 찾게 될 것입니다.

1시간 동안 안철수 의장님과 함께하는 시간은 너무나 짧고 아쉬웠네요^^; 그러나 그 짧은 시간에 많은 걸 느꼈습니다. 인터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안철수 의장님이 그동안 해온 인터뷰를 보면서 뭔가 '특별한' 질문을 만들어 보려 했지만 큰 성과는 없었던 것 같네요. 그래도 매우 소중한 만남이었기에 행복합니다^^/

아...끝나고 의장님과 대전을 같이 내려갔어야 하는 건데...Ahn

대학생기자 안현 / 대전대 정치언론홍보학과

"하루하루를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며 살자"라는 모토로 매일 열정을 불사르는 청년.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당당히 '보안세상'에 문을 두드렸다. 대학생활의 마지막이 아닌 또다른 시작으로써 오늘도 끊임없이 달려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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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bti 2009.05.16 11:03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v3요...
    ...
    대학생 기자님이...사진에...13분 정도(?) 있는 것 같은데...
    ...
    이번이 두번째니까...
    ...
    다른 분들(11분(?))의 글은...언제쯤 볼 수 있나요?...^^;...

  2. 하록 2009.05.16 12:59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무릎팍도사 안철수님편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사도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