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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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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연구소 역사관에 내 이름 올리려면 안철수연구소가 V3 탄생 23주년을 맞아 오는 10월 판교 사옥 이전에 앞서 ‘안랩 역사 발굴 프로젝트’를 추진합니다. 이는 8월 31일까지 판교 사옥에 보존할 역사 자료를 수집하는 사용자 참여 이벤트입니다. 이 프로젝트는 안철수연구소가 1995년 조그만 벤처로 시작해 세계적인 정보보안 기업으로 성장해 처음 자사 사옥을 마련하기까지 국민과 함께 해온 역사라는 점에서 첫 사옥에 역사적 기념관을 개설하고자 기획한 것입니다. V3 탄생 이후 23년, 회사 설립 후 16년 동안 한결같이 신뢰와 격려를 보내준 사용자들이 보유한 물품을 기증 받아 새로운 도약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겠다는 취지입니다. 아래 내용 참고하셔서 많이 참여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확대해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날 나의 V3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은 언제나 슛 동작에서 침착했다. 비록 공이 림을 외면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을 던질 때만큼은 자신감을 가졌고 이는 고도의 집중력을 가져다주었다. 1988년 5월 어느 날, 의대 박사 과정을 밟던 안철수 교수는 BRAIN이라는 세계 최초의 바이러스를 만난다. 바이러스가 뭔지도 모르던 시절, 안 교수는 새롭게 생겨나는 바이러스 앞에서 언제나 침착했고, 새로운 변종과 벌이는 끊임없는 싸움일지라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 생각하였다. 이에 바이러스를 연구할 때만큼은 누구보다도 강한 자신감을 가졌으며 마찬가지로 이는 고도의 집중력을 가져다주었다. 여기서 잠시 다소 억지스럽게 평행이론을 들이대볼까 한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등 번호는 23번, 안철수 교수가 만든 V3라는 백신..
안철수가 말한 기업가에 대한 잘못된 통념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인 안철수 교수가 아직 카이스트에 재직 중이던 4월 26일 포스텍(포항공대)에서 '기업가 정신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강연을 했다. 당일에는 비가 왔지만, 강연장인 포스코 국제관은 강연 시작 20분 전부터 북적이기 시작했다. 결국 바닥에 앉아 강연을 듣는 사람들도 상당수였다. 안철수 교수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보통 교내에서 외부 인사가 강연할 때, 외부인이 캠퍼스에까지 와서 강연을 듣는 경우가 많지 않다. 하지만 이 날은 외부인으로 보이는 사람도 꽤 보였다. 맨 앞줄부터 서서라도 강연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이 점차 늘어나 가장자리에 서 있는 사람들이 나타났고, 좌석 사이의 계단은 사람들에 가려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다. 결국 ..
깜놀 사진전! 노무현-김미화-양조위와 V3 23년 동안 우리나라 컴퓨터를 지켜온 V3!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방송인 김미화, 세계적인 영화배우 양조위, 개그맨 장동혁과 함께 한 V3, 야구 선수 박찬호와 엮인 사연 등 생일을 맞아 V3에 얽힌 별난 사진과 사연들을 소개한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V3 1997년 6월 IT 전시회인 ‘SEK’에 참여한 안철수연구소. 당시 선거에 실패하고 야인 신분이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시 중인 안철수연구소의 전시 부스를 방문, ‘V3Pro 97’을 구입한 후 직원들과 기념 촬영한 모습이다. 당시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던 야인 노무현과 설립 초기 회사의 기틀을 잡아나가던 안철수연구소 각자 심기일전하여 훗날 대통령과 국내 최대 정보보안 기업으로 거듭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듯하다. "양조..
V3의 V는 무슨 뜻? 한눈에 보는 우리 백신 역사 “우연히 책에서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접하고 그 단어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을 경험했다. 내가 좋아하는 컴퓨터와 당시 업으로 삼고 있었던 의학 쪽, 양쪽의 개념이 모두 들어가 있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발동해 그 글을 전부 읽고 집에 와서 내 컴퓨터를 뒤져보았다. 디스켓을 살펴보니 두 장에 (c)브레인 바이러스가 들어있었다. 컴퓨터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터라 등골이 오싹했다.” 88년 의대 박사 과정에 있던 의학도 안철수가 처음 컴퓨터 바이러스와 운명적으로 만난 때를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괘씸하다는 생각에 즉시 분석에 돌입, 그 정체를 완전히 해부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에 그는 컴퓨터의 가장 복잡한 언어인 기계어 실력이 국내 최고 수준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치료를 하고 이후 신경을 쓰지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