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99, 면회' 스무 살 우리의 자화상

문화산책/컬처리뷰 2013.03.31 07:00

1999, 면회. 스치며 지나가듯 듣는다면 죄수번호가 1999인 사람의 면회 이야기로 착각할 수도 있겠다. 이 영화는 강원도 산골짜기의 한 부대로 향한다. ‘군대’라는 소재가 언뜻 보기엔 여자들과 교집합이 없고 (군대간 남자친구를 기다려본 이들은 예외) 먼 얘기로 느껴질 수 있지만 모든 영화가 그러하듯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로 결국엔 사람이 주제이고, 소재다. ‘군대 얘기야?’하고 돌아선다면 후회할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였던 상원(심희섭 분), 승준(안재홍 분), 민욱(김창환 분)은 20살이 되어 대학생, 재수생 그리고 군인으로 제각각의 길을 걷게 된다. 졸업하고 1년 후 상원과 승준이 군인인 민욱을 면회하러 가는 길 그리고 면회하면서 생기는 에피소드들이 이 영화의 맥이자 줄기이다. 스무살이 다 저물어갈 무렵, 그 노을을 등지고서 그들이 겪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을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20살의 나도, 너도 우리 모두가 지나온 시간들에 그 감정들은 똑같이 숨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영화 속에서 만나고 느끼는 감정은 고스란히 내게로 내려앉아 마치 내가 겪고있는 것처럼 마음이 동하게 된다.




집안사정 때문에 재수를 포기하고 군대에 가야 했던 민욱. 여차저차 무난하게 대학생이 되었던 상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이를 보며 멋지다고 부러워했던 승준. 이 셋 중에 승준에게 눈길이 자주 닿은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나와 같은 재수생 출신이라는 은밀한 동지애가 형성된 걸지도 모른다. 


민욱을 만나러 가는 길에 승준은 종종 카메라를 들고서 차에서 내린다. 쌩쌩 밟아도 시원찮을 시간에 민욱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모르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저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휘젓고 다닌다. 사진학과에 가겠다며 포트폴리오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설쳐댄다. ‘예쁜 여자’와 술을 마시기 위해 들어간 철원의 한 다방에서 펼쳐진 술자리에서는 술에 거나하게 취한 채로 눈물을 훔치며 가수가 되고 싶었다고 말한다. 


어제와 오늘 하고 싶은 것이 전 뒤집듯 바뀌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도 무얼 좋아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헤매고 있다. 그 고민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으로 나를 괴롭히고 있는데, 1999년에 20살이었던 지금의 승준은 어떤 선택을 해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도 사뭇 궁금해지기도 했다.




20살, 상실의 시대를 걷고 있었다. 

승준과 같은 재수생 신분이었던 나는 친구들이 저마다 꽃피우던 그 시절을 그늘 속에 살며 마음속의 이끼들만 키워갔다. 그 때 나는 참 많은 걸 잃고 있었지만, 동시에 많은 걸 얻어왔다. 고등학교 때부터 꽉꽉 채워나갔던 20살에 이루고팠던 나의 위시리스트들을 잃었지만, 언제나 10분 대기조가 되어주는 지금의 친구들을 얻었다. 


나의 20살이 그러했듯 <1999, 면회> 속 주인공들도 저마다 무언가 하나씩 잃는다. 그리고선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최상급의 우정이 그 빈자리를 메워준다. 아픈 만큼 성장한다는 것, 그 성장에는 결국엔 그 상처를 공감해주고 매만져주는 사람이 옆에 있기 때문에 성립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톨스토이가 내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 묻는다면 ‘사람’이라고 답하고 싶다. 더 나아가 사람을 얻는 일. 짧지 않은 25년을 살면서, 온몸으로 느끼고 겪은 결과물도 그러하다. 이 순간 또한 지나가겠지만 사람은 남는다. <1999, 면회>도 그것을 말하고 싶었으리라 생각된다.



이 영화는 저예산으로 진행된 독립영화지만 흔히 생각하는 독립영화의 속성들을 다 갖추고 있진 않다. 힘이 바짝 들어가 있거나 무게감만 더해져 바닥으로 가라앉을 것만 같은 기존의 것들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물론 그 영화들도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가 있다.) 


어느 영역이든 다양성이 더해지면 더 윤택하고 풍성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1999, 면회>가 독립영화계에서 그 역할을 도맡았다. 골머리를 써가며 해석할 필요도 없이 편안한 자세로 영화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다 보고 난 뒤 싹 잊어버릴 만큼 깃털처럼 가볍지도 않다. 유쾌함 속에 진지함을 담아 적당한 무게 균형을 유지하며 영화를 밀고 나간다.


안타까운 건, 이 영화가 큰 주목을 받지 못 했다는 점이다. 이 영화를 재밌게 본 관객으로서 아쉬움이 짙게 남는 대목이다. 1000만 영화들이 속속 나오는 가운데, 작은 영화들의 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는 것 같아 쓸쓸하다. 


하지만 아직 개봉관이 남아 있다. 홍대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31일까지 상영한다.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들이 접근성이 떨어져 보러 가기가 조금은 수고스럽지만, 작은 영화들이 계속 나오는 데에 조그마한 돌 하나 얹는다는 심정으로 발걸음을 해본다면 더욱 뿌듯하고 상쾌한 마음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더 볼 만한 좋은 영화들이 상영 중이다. 자신이 독립영화와 궁합이 잘 맞을지는 또 모르는 일이다. 포털사이트에서 '독립영화관'으로 검색하면 많은 극장이 사람들의 손길을 기다리듯 얼굴을 빼꼼 내밀어 보일 것이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Ahn



대학생기자 하수정 /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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