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뭐 대수냐. 같은 집에 살면서 같이 살고 같이 밥 먹고 또 슬플 땐 같이 울고 기쁠 땐 같이 웃는 게 그게 가족인 거지."
윤여정의 대사처럼 영화 <고령화 가족>에는 유독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엄마는 오랜만에 모인 자식들을 위해 아침에는 부지런히 찌개를 끓이고, 매일 저녁 고기를 굽는다. 자식들은 밥상 앞에 빙 둘러 앉아 된장찌개에 너도 나도 숟가락을 넣어 찌개를 건져 먹는다. 늘상 모여 살던 식구가 아닌, 뿔뿔이 흩어져 살던 가족이 아침 식사 자리에서 찌개 하나에 서로의 숟가락을 푹푹 집어넣는 장면. 그때만큼은 그들은 한 데 붙어 있기만 하면 불편하고 사건이 터지는 웬수들이 아닌 하나의 '가족'이다.
<출처: 네이버 영화>
천명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고령화 가족>의 영화화가 결정되었을 때, 이 개성 강한 역할들에 어울릴 배우들이 몇몇 생각이 났고, 나만의 생각이 아닌 듯 그들이 배역을 맡았다.
언제나 소동을 벌이는 자식들을 품어 안으면서도 그 따뜻한 모성 안에 여자로서의 이면도 가지고 있는 '엄마' 역에는 윤여정이 적역이었다. 또한 퉁퉁한 뱃살을 자랑스럽게 꺼내 놓으며 조카의 피자 한 조각을 얻어먹기 위해 뱃고동 소리를 내는 잉여인간 '한모' 역은 윤제문이 맡았다.
그런 형을 깔보고 못마땅하게 여기며 자신은 잘난 체 하지만 그 똑똑한 머리로 정작 조카의 용돈을 빼앗을 궁리하는 데만 쓰는 무기력한 룸펜 '익모'는 두말할 것도 없이 박해일 차지였다. 그 외에 화나면 욕설에다가 손부터 먼저 나가는 오빠들 사이에서 조금도 기죽지 않고 바락바락 대들며 하고 싶은 말은 속 시원히 다 하고야 마는 '미연'은 공효진이 맛깔 나게 살려냈다. 엄마 성질을 쏙 빼 닮은 딸 '민경'이와 미용실 원장 '수자'씨 등등 영화는 원작의 '쎈' 등장인물들을 가장 튀어 보이게 살릴 수 있는 안전한 배우들을 선택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영화에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가족끼리의 다툼이다. 외동이 아니라면, 누구나 살면서 형제 자매와 대판 싸워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가족이기에 오히려 더 폭언을 하고 가족이기에 육탄전을 벌이고도 엄마가 깎아놓은 과일 앞에서 금방 화해한다. 익숙한 경험이기에 영화는 쉴 새 없이 형제, 남매끼리의 기 쎈 싸움을 전면에 내세운다. 영화 초반에서 익모가 함모와 닭다리를 바닥에 던져 놓고 쥐어 뜯고 싸우는 한심한 장면에서 '잉여로 살지 말자'던 익모의 결심이 아이러니함을 유발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
또한 미연의 남자친구를 대동하여 바다 구경을 떠나 횟집에서 벌이는 난투극은 영화의 수많은 싸움 신 중에서도 압권이다. 당장이라도 손찌검을 할 것만 같던 익모와 미연이 ‘조용히 좀 하라’는 뒷 테이블 손님에게로 달려들어 싸움을 벌이는 장면. 남매가 합심하여 소란을 벌이는 와중에 엄마는 맥이 탁 풀린 얼굴로 소주를 들이켠다. 정신 없이 도망쳐서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 온 식구들이 질리고 지친 얼굴로 침묵하는데 별안간 엄마가 웃음을 터뜨리며 ‘이게 바로 가족이지!’라며 굳은 분위기를 풀어낼 때 비로소 관객들도 이 심각한 상황에서 크게 웃을 수 있게 된다.
말재간으로는 당할 길이 없어 그저 주먹으로 때려 눕히는 한모는 막내 동생 미연의 발길질에 가차 없이 당하고 만다. 여동생에게 조금의 반항도 못하고 밟히는 한모. 그런 미연에게 잔소리하며 꼼짝 못하게 만드는 익모. 이 세 남매는 서로가 서로의 꼬리를 쫓는 톰과 제리처럼 마주치기만 하면 쉴 새 없이 아옹다옹하고, 싸우다가 남의 가게를 뒤집는다거나 벽돌을 휘두르는 등 그야말로 부끄러워 견딜 수 없는 가족의 못난 모습을 대놓고 보여준다.
물론 영화는 15세 관람가 등급에 맞추기 위해 원작의 콩가루 집안을 조금 순화하는 과정을 거쳤다. 자식들이 그렇게나 험하게 싸울 때 묵묵히 고기를 구워 그릇 위에 올리고, 자식들이 어떤 잘못을 하든 얼마나 무기력하든 간에 모여 사는 그 자체로 빙그레 웃는 어머니의 속마음에 대하여 영화는 안전한 길을 택한다.
또한 한모의 어수룩함은 원작 속 과격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태연한 한모와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남매의 화합 중에서도 한모와 익모의 화해를 위하여 영화의 후반부는 다소 밋밋하고 박진감이 결여된다. 그렇기에 초반의 가족끼리 오가는 중구난방의 욕설과 폭력은 관객에게 큰 재미를 선사하지만, '가족'이라는 단어와 그 의미를 살리기 위해 신파로 몰고 가는 후반부는 해피엔딩에 집착하는 한국 영화의 한계로 보인다.
<출처: 네이버 영화>
<고령화 가족>은 원작의 막장스러움을 한 꺼풀 벗겨내고 코믹함을 살려내는 대신, 원작의 덤덤함을 훈훈함으로 바꾸어 놓았다. 이 작품과 더불어 생각나는 영화가 한 편이 있다. 영화 <가족의 탄생(2006년작)>은 <고령화 가족>이 그토록 재미있는 원작을 배경으로 삼고도 가지 못한 진짜 ‘화합’을 보여준다. 비교해서 보기를 추천한다. Ahn
대학생기자 노현탁 /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
'문화산책 > 컬처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웃집 토토로' 제작 과정 한눈에 볼 수 있는 곳 (1) | 2013.06.29 |
---|---|
바흐와 헨델이 음악의 아버지와 어머니인 이유 (2) | 2013.06.08 |
당신의 남자친구가 롤을 사랑하는 이유 (0) | 2013.04.13 |
발레를 처음 보는 이에게 백조의 호수란 (2) | 2013.03.31 |
한국보도사진전 '사람을 보다, 시대를 읽다' (2) | 2013.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