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비한 로봇들의 공격으로부터 세상을 구할 수퍼 해커 여러분...! 역시 다시 와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제 곧 로봇들의 소굴로 진입할 것입니다. 그 곳엔 다른 모든 로봇들을 중앙에서 컨트롤하는 핵심 로봇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모두 물리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각각의 로봇은 모두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 네트워크를 통해 로봇의 취약점을 공격할 것입니다. 이제 인류의 운명은 여러분들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여러분들께서 분명 해낼 수 있을거라 믿습니다!"
영화의 시놉시스 같은 위의 글은 다름 아닌 청소년 해킹방어대회의 시나리오이다. 300명이 넘는 친구들이 모여 치룬 온라인 예선을 거치고, 지난 12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ETRI 주최 '제 1회 주니어 해킹방어대회'의 본선 현장을 다녀왔다. 본선에는 치열한 예선을 거쳐 올라온 30명의 중고생 화이트해커들이 모여 실력을 겨루었다.
본선에 올라온 30명 모두가 이 대회의 주인공이었지만 그래도 순위는 존재하는 법. 대회가 끝난 후, 난이도 높은 문제들을 돌파하며 금상, 은상, 동상을 거머쥔 친구들과 식사를 하며 대회 참가 후기부터 앞으로의 비전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아래는 금상, 은상, 동상을 수상한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은상 수상자는 동점으로 2명이다. 나머지 한 명은 일산동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진용휘 학생이다. 아쉽게도 인터뷰는 하지 못 했다.)
금상 - 임정원 (선린인터넷고등학교 2학년)
Q : 문제의 수준은 어땠나요?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재미있는 문제가 있었나요?
A : 마지막까지 풀었던 문제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스택의 데이터를 다 지워버리는 문제였는데, 결국 풀지 못 했습니다. 예선 문제 수준은 어렵지 않은 편이었는데 본선은 국제대회나 규모있는 대회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생각해요.
Q : 가장 자신있는 분야가 있나요? 특별히 흥미가 있는 분야가 있다면?
A : 시스템 해킹이 가장 재미있어요. 이렇다 할 이유는 없는데 그냥 재미가 있어요. 반면에 암호학이나 포렌식이 조금 어렵다고 느낍니다.
Q : 오늘 참가한 주니어 CTF와 다른 해킹대회의 차이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A : 보통 청소년 대회에서는 시스템 해킹 문제가 잘 나오지 않는데 이번에는 그 문제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좋았습니다.
Q : 대회를 참가하면 실력이 향상되고 있다,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걸 느낄 수 있나요?
A : 대회를 거듭 참여할수록 수월하게 풀리는 문제가 느는 것 같아요. 순위도 점점 올라가니까 실력이 늘고 있구나 하는 것이 느껴지죠.
Q : 이번 대회를 참가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나요?
A : 마지막까지 붙잡고 있었지만 풀지 못한 그 문제에 자꾸 미련이 남습니다.
Q : 이번에 우승했는데, 혹시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면?
A : 본선에 올라오신 분들 모두가 다 라이벌이죠. 저는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아요.
Q : 해킹과 보안 분야에 어떤 매력을 느껴서 공부하게 되었나요?
A : 이 분야는 어렵고, 그래서 하는 사람도 많지 않아서 특별하게 느껴져요. 그리고 방어를 뚫었거나, 반대로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을 때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게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Q : 나만의 특별한 공부 방법이 있나요?
A : 저만의 방법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우선은 컴퓨터를 많이 해요. (웃음) 다른 해킹대회의 문제를 풀어보기도 하고, 실제 프로그램에서 취약점을 찾으려고 하는 식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Q : 앞으로의 진로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어요?
A : 우선은 정보보호학과로 대학 진학을 해서 공부를 계속 하고 싶어요. 졸업한 뒤에는 국가기관뿐 아니라 어디에서든 사이버 안보를 지키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Q : 우승 상금으로 무엇을 할 거예요?
A : 저축을 할 거예요. 나중에 연구하고 싶은 것을 연구할 때 필요한 게 있으면 살 수 있도록. 그리고 우승할 거라고 미처 생각을 못해서 '우승하면 친구들한테 밥 쏜다'고 그랬는데. 진짜 우승을 해버려서 친구들과 약속도 지켜야 할 것 같아요. 부모님도 좀 드리고요.
은상 - 권혁 (과천고등학교 3학년)
Q : 문제 수준은 어땠나요?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재미있었던 문제가 있나요?
A : 이번 대회 수준은 여태껏 참여했던 청소년 대회 중에 가장 높았던 것 같아요. 독특했던 점이라면, 다른 청소년 해킹대회는 포너블이라고 불리는 시스템 해킹 분야의 문제가 거의 출제되지 않는데, 이번의 이 대회는 포너블 문제도 많이 나왔어요. 난이도 높고 수준 높은 문제들이 많이 나왔다고 생각해요. 포너블 문제 중에 '시크릿 메모'라고 해서, 기계들이 사용하는 비밀 메모 프로그램을 뚫어서 기계 안에 침투하는 시나리오를 가진 문제가 있었는데, 그게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흔히 말하는 버퍼오버플로우 취약점이 존재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보통이면 간단하게 뚫을 수 있었겠지만 문제에 현재 존재하는 모든 메모리 보호 기법이 적용되어 있었어요. 그걸 모두 우회하는 것이 조금 힘들었습니다.
Q : 가장 자신있는 분야가 있나요? 특별히 흥미가 있는 분야가 있다면?
A : 방금 말했던 문제 유형의 포너블, 시스템 해킹이라고 불리는 분야가 가장 좋아요. 어떤 프로그램의 취약점을 찾아서 공격 코드를 만들거나, 방어하는 방법을 공부하거나 하는 것에 흥미가 많습니다.
Q : 이런 대회를 참가하는 것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나요?
A : 제가 지금까지 쌓은 실력은 거의 다 대회를 통해 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예요. 보통 사람들이 말하기를 실무랑 대회랑은 상관이 없다고들 하는데, 실무랑 상관이 없을지는 몰라도 어떤 분야를 연구하는 데 문제를 푸는 건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Q : 오늘 참가한 주니어 CTF와 다른 해킹대회의 차이점은 뭐라고 생각해요?
A : 다른 청소년대회와의 차이점이 있다면 포너블이란 분야가 많이 다뤄졌다는 점이고, 그래서 좋았습니다. 또 이렇게 본선을 진행하는 청소년대회가 많이 없어요. 거기다가 본선에 30명을 데려온 대회도 처음입니다. 예선에서 본선 진출자 30명을 선발할 때 문제 수준을 높게 해서 잘하는 사람만 선발한 게 아니라, 문제 수준을 다양하게 쉬운 것부터 어려운 것까지 배치를 해서 참가자들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도 인상 깊었어요.
Q : 해킹과 보안 분야에 어떤 매력을 느껴서 공부하게 되었나요?
A : 어떤 목적이 있을 때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서 여러 연구를 진행하고, 마지막에 그 목적을 성취했을 때의 성취감이 정말 좋아요. 그 성취감을 위해서 계속 공부를 하다보니까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Q : 나만의 특별한 공부 방법이 있나요?
A : 솔직히 특별한 공부 방법이라고 할 건 없어요. 일단 대회 문제를 많이 풀어보고, 연구 주제를 하나 잡고 거기에 대해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공부를 해요. 뭐든 꾸준히 하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해요.
Q. 상금으로 무엇을 할 건가요?
A : 대회에서 탄 상금은 모두 안 쓰고 저축을 해두고 있어요. 차후에 대학 등록금으로 사용하거나, 공부 관련해서 쓰려고 합니다.
Q : 앞으로의 진로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어요?
A : 고려대학교 사이버국방학과에 진학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대학을 간 이후에도 지금처럼 꾸준히 취약점을 찾고, 원하는 연구를 하려고 합니다.
Q : 존경하는 사람을 꼽자면?
A : 찰리 밀러라는 해커요. 제가 가장 관심있어하는 취약점 분야나 이나 시스템 해킹 분야에서 흥미로운 연구를 많이 해요. 예를 들면 맥북 배터리를 해킹해서 불을 붙게 한다거나 하는 독특하고 신기한 연구요. 그런 점에서 존경합니다.
동상 - 김희중 (선린인터넷고등학교 3학년)
Q : 문제의 수준은 어땠나요? 특별히 기억에 남거나 재미있었던 문제가 있나요?
A : 문제 수준은 전체적으로 청소년대회치고 꽤 어려웠던 것 같아요. 어려웠던 문제들이 정말 많아요. 딱히 기억남는걸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다 어려웠어요.
Q : 가장 자신있는 분야가 있나요? 특별히 흥미가 있는 분야가 있다면?
A : 역공학이요. 리버스 엔지니어링!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웃음)
Q : 이런 대회를 참가하는 것이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나요?
A : 대회 참가를 하면 확실히 실력 향상이 되죠. 개인적으로 혼자 공부를 하다보면 목표 의식이 떨어지기 쉬운데, 대회에 참가를 하면 문제를 시간 안에 풀어야 하고 남들과 경쟁도 해야 하니까 더 집중해서 하게 되거든요. 실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Q :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나요?
A : 모두 다 친구이기 때문에. 라이벌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는 특별히 없어요. 음, 눈여겨보는 친구가 있다면 이번에 대회에 같이 참가해서 1등한 정원이예요. 같은 동아리에 있는데, 제가 저 친구를 동아리로 섭외를 했거든요. 여러 가지 성장하는 모습들을 눈여겨 보고 있어요.
Q : 해킹과 보안 분야에 어떤 매력을 느껴서 공부하게 되었나요?
A : 원래 처음에는 나쁜 짓 하려고 배웠어요. 아, 물론 처음에 시작할 때요. 게임 핵 같은 것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엄한 것들을 찾아서 배웠는데, 계속 대회에 나가고 공부하다보니까, 그런 짓으로 이득 봐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았어요. (웃음)
Q : 나만의 특별한 공부 방법이 있나요?
A : 공부를 좀 이상하게 시작했잖아요. 게임 핵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시작한 거니까요. 남들은 리버싱 공부할 떄 보통 'Crack Me' 문제를 풀거나 하면서 공부하는데, 저는 게임 핵을 만들어보고 싶어서 '그걸 만들기 위해서는 뭘 알아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하나' 이렇게 생각하고 찾아가는 식으로 공부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리버싱을 처음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애초에 게임 핵을 만들어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밤새서 공부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공부하다가 지금까지 오게 되었고요.
Q : 앞으로의 진로는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요?
A : 우선은 제가 지금 하는 공부와 관련있는 학과에 진학하고싶어요. 그 후에는 창업을 하고 싶어서 지금 돈을 모으고는 있는데 창업에 돈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일단은 보안 관련의 직업을 가지고 일을 하고, 일을 하면서 모은 돈으로 차후에 창업을 하고싶습니다. 특히 보안 솔루션에 관한 일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 대회의 수상자들과 인터뷰가 끝난 후, 이번 대회를 운영한 그레이해쉬(GrahHash)의 운영진과도 이번 대회와 관련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Q : 이번 주니어 해킹방어대회의 취지나 목적을 말씀해 주세요.
A : 해킹과 보안을 공부하는 어린 친구들 보면 공부를 어떻게 해야할지도 잘 모르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또 이쪽 공부를 하면서 나쁜 짓을 하는 경우도 발생합니다. 그래서 이런 친구들과 함께 서로 만나서 이야기도 좀 나눠보고, 부족한 친구들에게 조언도 해주고 꿈을 더 심어주고 싶어서 대회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자신감을 심어주자는 목적도 있었습니다.
Q : 예선 문제가 쉬웠다는 말이 있어요. 예선 문제 출제의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A : 보통 해킹대회는 쉘을 따거나, 권한 상승을 시키거나 하는 문제가 주류예요. 하지만 저희는 예선에서는 그런 기술적이고 어려운 문제보다는, 조금만 생각하면 금방 풀 수 있는 문제들을 많이 만들어 냈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알지 못해도, 머리만 조금 굴려서 생각해보면 쉽게 풀 수 있도록요. 무조건 난이도 있는 부분들을 포함시키기보다는 논리적인 부분을 문제에 많이 포함시키려고 했습니다.
Q : 이번 대회를 운영하면서 특별히 어려웠던 점이 있나요?
A : 문제 난이도를 정하는게 가장 어려웠습니다. 청소년 해킹대회는 청소년들이 자신감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너무 쉬우면 변별력이 없어지는 문제가 생기거든요. 어쨌든 본선에서는 순위를 매겨야 하니까요. 어디에 맞춰야 할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본선은 1,2,3,등을 가리는 대회니까, 조금은 어렵게 낸 것 같습니다.
Q : 해킹을 공부하는 어린 친구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 윤리적인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중요한 정보를 테러리스트나 다른 업체에 파는 경우, 그런 경우가 있어서는 절대로 안 되니까요. 취약점을 찾았을 때는 악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기관에 신고를 하는 것, 그런 윤리적인 부분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리고 '사회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내가 지금 공부하는 것이 IT 발전, 더 나아가 국가와 사회에 도움이 된다, 사회에 기여를 한다는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Q : 해킹대회 참가자에게 조언해 주고 싶은 것이 있나요?
A :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면 다른 대회의 문제를 최대한 많이 풀어보세요. 과거의 문제를 많이 풀어보면서, 유형도 파악하고 그러면 자연스럽게 경험도 많이 쌓이는 거니까요. 문제 자체를 잘 풀기 위해 많은 문제를 풀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초지식을 탄탄히 하는 것이 중요해요. 프로그래밍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또, 해킹대회와 실무가 다르다, 도움이 안 된다 하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제가 느낀 바로는 해킹대회 문제를 잘 푸는 사람들이 문제 해결 능력이 좋고, 그래서 일도 잘하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많이 문제를 해결해본 친구들이 사회에 나가서도 일을 잘 해결합니다. 해킹대회를 겁먹지 말고 참가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비록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서로 다른 개성의 입상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들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이가 어린 것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입상자뿐 아니라 본선에 진출한 30명, 그리고 예선에서 대회의 문제를 풀면서 자신의 기량을 발휘한 모든 참가자의 무한한 잠재력을 기대해보자. 그들은 아직 어리고,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기에, 지금보다는 그들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미래의 화이트해커를 꿈꾸는 청소년의 자신감과 실력 향상의 발판을 마련해준, 그리고 앞으로도 마련해줄 다음 주니어 해킹방어대회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도 바로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그들 때문이 아닐까. Ahn
대학생기자 강정진 / 숙명여자대학교 컴퓨터과학과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멍청해지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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