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책에서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접하고 그 단어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을 경험했다. 내가 좋아하는 컴퓨터와 당시 업으로 삼고 있었던 의학 쪽, 양쪽의 개념이 모두 들어가 있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발동해 그 글을 전부 읽고 집에 와서 내 컴퓨터를 뒤져보았다. 디스켓을 살펴보니 두 장에 (c)브레인 바이러스가 들어있었다. 컴퓨터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터라 등골이 오싹했다.”
88년 의대 박사 과정에 있던 의학도 안철수가 처음 컴퓨터 바이러스와 운명적으로 만난 때를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괘씸하다는 생각에 즉시 분석에 돌입, 그 정체를 완전히 해부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에 그는 컴퓨터의 가장 복잡한 언어인 기계어 실력이 국내 최고 수준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치료를 하고 이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뒤 찾아온 후배가 인생 전환점의 단초를 던진다. 그 후배는 컴퓨터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데 치료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후배에게 컴퓨터 언어로 치료하는 방법을 여러 번 설명했으나 이해를 못했다. 대신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차라리 프로그램을 만들면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리지 않겠습니까?”하고 제안을 했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안철수 박사는 하룻밤을 새워 프로그램을 만들고 ‘백신(Vaccine)’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 나아가 세계 보안 업계에 새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현재 글로벌 안티바이러스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업체들이 백신을 개발한 것도 이즈음이다.
그렇게 만든 프로그램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88년에는 인터넷 사용자가 없었고 PC통신 보급도 활발하지 않아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 컴퓨터 전문지로서 가장 권위 있었던 ‘마이크로소프트웨어’를 통해 바이러스 분석 내용, 백신 제작 방법을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고 백신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8월호에는 바이러스 방역 센터가 설립 공지문이 실리고, 이후 사용자가 바이러스 샘플 디스켓을 잡지사에 맡기면 안 박사가 방문해 가져가고 한 달 간 백신을 개발해 디스켓을 맡기면 사용자들이 잡지사에 가서 백신 프로그램을 복사해 가는 일이 반복됐다.
아무 대가도 없는 이 일을 위해 안 박사는 본업인 의대 박사 과정, 군의관, 의대 교수를 거치는 7년 간 새벽 3시에 일어나 백신 개발을 지속했다. 그 덕에 국내 사용자들은 예루살렘, 미켈란젤로 등의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마다 무료로 치료할 수 있는 혜택을 누렸다.
‘백신(Vaccine)’이라는 이름은 LBC 바이러스 퇴치 기능이 추가됐을 때 ‘백신 Ⅱ’로, 예루살렘 바이러스 퇴치 기능을 보충하면서 ‘백신 Ⅱ PLUS’가 되었다. 새로운 컴퓨터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개정을 거듭했으며, 91년 초에 프로그램을 전부 바꿔서 ‘백신 Ⅲ(V3)’로 재탄생했다. 1995년 안철수연구소가 설립되고 ‘V3’는 고유 명사임에도 안티바이러스 소프트웨어를 대신하는 일반 명사로 굳어질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V3' 때 'Vaccine'의 이니셜을 따서 축약했고 이때부터는 'V3'를 모(母) 브랜드로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바이러스 수를 버전으로 표기해 뒤에 붙여 썼다. (예 : V3 Ver.143)
1995년 3월 우리회사가 설립된 후 IT 환경의 패러다임 변화에 맞추어 발전을 거듭하고 'V3'라는 이름도 조금씩 달라졌다. 도스용은 'V3+'로, 다시 1999년에 'V3+ Neo'로 발전했고, 윈도용의 경우 1995년 12월 ‘V3Pro’를 시작으로 1996년 3월 국내 최초의 윈도우 95용 응용 소프트웨어인 ‘V3Pro 95’가 나온 데 이어 현재까지 V3 Lite(개인용 무료 백신), V3 365 클리닉(개인용 유료 백신), V3 Internet Security 8.0(기업용 통합백신), V3 Net(기업 서버용 통합백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한편 초창기 V3 로고 디자인은 회사 설립 직전, 당시 V3 사용자인 두 명의 대학 교수가 디자인해 무상 증정했다. 당시 수원여전 사무자동화과 주영철 교수가 안철수 박사의 의학계 선배인 이경용 박사로부터 연구소 설립 취지를 듣고 지인인 당시 단국대 산업미술학과 한백진 교수에게 제안해 공동 제작한 것이다. 두 교수는 백신 프로그램 이미지에 맞도록 V3 상표를 주사기 이미지로 형상화해 어떤 바이러스라도 물리치는 강력한 이미지를 담았다.
급변하는 IT 환경의 흐름에서 V3가 23년 동안 정상의 자리를 변함없이 지켜온 것은 기술적 진화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핵심 기술의 특허 획득을 시작으로 스마트 디펜스, DNA 스캔, V3 뉴 프레임워크 등 원천 기술의 혁신으로 높은 진단율과 빠른 검사 속도, 다양한 위협의 조기 차단 등 탁월한 성능을 제공하는 한편, 세계 보안 소프트웨어 중 가장 빠르고 가벼운 엔진을 보유하게 됐다.
또한 V3는 창의적인 연구개발 기술력에 기반해 다양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확장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스마트폰 백신(V3 모바일), 온라인 금융보안 서비스(안랩 온라인 시큐리티)를 비롯해 네트워크 보안 장비(트러스가드, 트러스와처), 망분리 솔루션(트러스존), 산업시설용 솔루션(트러스라인) 등에도 탑재돼 다양한 보안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장비로 재탄생했다.
V3는 국내 IT 분야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지키며 국가 차원의 사이버 재난이 있을 때마다 앞장서 손실을 막았다. 2003년 1.25 인터넷 대란과 2009년 7.7 디도스(DDoS) 대란, 2011년 3.4 디도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사이버 공격의 사전 차단과 예방, 암호 해독과 해결책 제시 등 신속한 대응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V3 제품군은 장영실상, 대한민국특허기술대전 은상 등을 휩쓸었고 조선일보 주관 '건국 후 과학기술 업적 50선', 서울경제신문 주관 '20세기 한국의 100대 기술', 구 산업자원부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V3는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 전세계 정보보안 업계에서 매우 의미 있는 위치에 있다. 프리웨어였을 때부터 상용 소프트웨어로 거듭나 글로벌 기술력을 인정받은 지금까지 23년 동안 이어지는, 국내 최장수 소프트웨어이다. 또한 국내 백신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장악하고 있어 전세계에서 자국에서 개발한 보안 소프트웨어가 자국 시장을 지키고 있는 매우 드문 경우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V3는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되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국내 유일의 보안 소프트웨어이다. 2003년 국내 제품 최초로 '체크마크' 국제 인증을 획득한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인증을 받고 있으며, 2003년부터 꾸준히 'VB 100% 어워드'를 획득해 글로벌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는 비서양권 업체 중 가장 많이 보유했으며, 북미, 중남미, 일본, 중국, 동남아 등 해외 각국에 자체 브랜드로 수출되는 거의 유일한 소프트웨어이다. 국가 대표로 빛난 지난 날보다 글로벌 대표로 도약할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소프트웨어이다.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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