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여행]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

문화산책/여행 2014.08.10 00:12

 '모퉁이에서'라는 여행 테마를 가지고 홀로 동남아 배낭여행 길에 올랐다. 한 달 중 4박 5일 동안은 캄보디아 씨엠립을 방문해 앙코르 유적지를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태국 방콕에서 버스를 타고 4시간을 달려 캄보디아 국경에 도착한 뒤, 국경도시인 포이펫(poipet)에서 또 다시 택시를 타고 3시간을 가면 앙코르 유적지로 유명한 씨엠립에 도착한다.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나를 반기는 것은 "헬로우 툭툭?"이라고 말하며 다가오는 툭툭이(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삼륜자동차)기사아저씨들이었다. '인간이 만든 신의 나라' '세계적인 불가사의' 등 그 동안 들어왔던 수식어로 인해 신비로운 도시일거라는 생각은 허상에 불과했다. 캄보디아는 확실히 자본이라는 경제적인 면에서는 변두리이자 변방이었다. 그런 점에서 캄보디아는 '모퉁이에서'라는 여행테마와 잘 맞아 떨어졌다.

▲ 국경도시 포이펫(poipet)

▲ 오토바이를 개조해서 만든 삼륜자동차 일명 '툭툭이'

 앙코르 유적지 여행은 이른 새벽 앙코르와트의 일출을 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캄보디아=앙코르와트'라는 공식이 성립할 정도로 앙코르와트는 캄보디아를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앙코르 와트가 수많은 앙코르 유적지 중 하나의 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눈에 띄는 이유는 그 크기와 신비로움이 다른 사원들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앙코르 와트의 일출을 보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여행객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앙코르 와트는 다른 사원들보다 더욱 일출을 중요시 하는 곳이다. 폴 뮈라는 학자에 의해서 앙코르 와트가 태양이 실제로 뜨는 방향에 맞춰 축성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다. 사면이 정확히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사원들과는 달리 실제 태양을 중심으로 약간 삐뚤어져 있다는 것이다. 앙코르 와트를 축성한 수리야바르만 2세가 태양왕이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 앙코르 와트의 일출

 앙코르 와트의 일출은 감동 그 자체였다. 연꽃 모양의 중앙 탑 뒤로 태양이 떠오를 무렵, 약속이나 한 듯 그 자리에 있는 여행객들은 서로 다른 언어로 탄성과 이야기를 쏟아냈다. 푸른빛의 하늘과 태양의 붉은 빛, 그리고 장엄한 앙코르 와트의 모습이 성전 앞 해자(연못)에 반사되어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였다. 이제야 앙코르 와트를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히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앙코르 와트의 일출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앙코르 와트의 일출을 보고 난 뒤, 앙코르 내부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출만큼이나 놀라게 했던 것은 성전 벽에 빈틈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가득 찬 부조들이었다. 특히, 2층 벽에 줄지어진 약 1500여점의 압사라 부조는 최고의 볼거리였다. 알 수 없는 미소와 여성의 머리카락, 봉긋이 솟아오른 가슴과 오목한 허리를 표현한 섬세한 솜씨에 감탄했다. 사포가 없었던 당시 끌과 모래와 흙만을 이용하여 정교한 조각을 완성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 압사라 부조 여인의 얼굴과 가슴을 만지면 복이 온다는 캄보디아 속설이 전해온다. 관광객들의 손길로 여인의 얼굴과 가슴부분이 반들반들해졌다.

 가장 성스럽고 아름답다는 공간으로 알려진 중앙 탑으로 이동했다. 오직 왕과 일부 신하들만이 갈 수 있는 곳으로 신들의 세계라고 불리는 연꽃모양의 중앙 탑은 신비로웠다. 오르기 힘들 정도로 가파른 계단을 보면서 왕들과 신하들이 신 앞에 머리를 숙이고 올라가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3층 성소는 보수 공사로 인해 관광객들에게 개방되지 않아 아래서 올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천상의 계단 중앙 탑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경사는 가팔랐다. 계단을 올라가면 신 앞에 자연스레 엎드리게 된다.

 앙코르 여행은 일몰과 함께 마무리된다. 프놈바켕에서 일몰을 보면서 고단했지만 즐거웠던 하루를 정리했다. 최고의 일몰 포인트로 꼽히는 프놈바켕의 해질녘은 앙코르와트의 일출처럼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다. 산이라는 뜻을 가진 이 사원 위에서 풍경은 시원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평평한 대지밖에 없기 때문이다.

 프놈 바켕에 지어진 탑 뒤로 붉은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쓸쓸함을 느꼈다. 한때 최고의 번영을 누렸던 크메르 왕조 역시 찬란하고 화려한 과거로 남아있을 뿐이었다. 일출이 있으면 일몰이 있듯이 무심히 지는 해는 '영원한 것은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프놈바켕의 일몰

대학생 기자 김수형 / 경희대학교 경영학부

ksh5059@naver.com


캄보디아 봉사활동 후 행복을 다시 생각하다

문화산책/현장속으로 2012.11.04 12:51

지난 여름 방학 72일부터 718일까지 1517일의 일정으로 한양대학교 HONOR그룹의 해외봉사단 소속으로 캄보디아에 다녀왔다. 매일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는 교육봉사, 이후 1시간 30분 정도를 건축봉사에 할애했다.

캄보디아는 남방계에 속한 국가이기 때문에 매우 덥고 습도도 상당히 높다. 하루 중 가장 더운 날씨에 시작된 건축봉사는 사실 전체 봉사활동 중 가장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다. 우리가 지었던 집은 화려한 주택이나 아파트가 아닌 그냥 나무로 지어진 판자집이었다. 하지만 이 판자집 또한 이곳에서는 상당히 고급 주택에 속한다. 이 건축의 대상이 된 가정은 소위 우리나라로 표현 하면 로또에 당첨된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가 집을 지어드린 가정의 부부는 에이즈 환자로 8년째 약을 복용하고 있었다. 세 자녀가 중 첫째는 벌써 세상을 떠났고 다행히 둘째와 셋째는 아직 에이즈에 감염되지 않은 상태였다부부는 앞으로 5년을 더 살기 어려운 상태라 부모가 살아있는 한 아이들의 교육을 포기하지 않는 조건으로 이 집을 지어준 것이다

건축봉사는 기초공사부터 마무리 페인트 작업까지 전부 필자가 속한 팀에서 진행했다매일 30도가 넘는 날씨 속에서 맨땅에 집을 짓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신념이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아무런 투정도 하지 않고 오히려 누구보다 더욱 열심히 도와준 우리 팀원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캄보디아의 건축은 기본적으로 공법부터가 우리나라하고 다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나라는 집을 지으면 적어도 세 달은 걸려야 하지만 이곳에서는 2주면 충분히 지을 수 있다. 물론 그만큼 허점도 많지만, 야생과 비슷한 이곳의 형편에서 아주 화려한 집은 오히려 관리만 어렵다.

건축봉사 후에는 점심식사 후 다시 2시부터 4시까지 교육봉사를 진행했다. 그렇게 2주 동안 뜨겁지만, 열정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우리는 718일 무사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캄보디아에 가서 참 많은 것을 얻고 느끼고 왔다. 나눔을 실천하러 갔다가 오히려 많은 것을 얻고 온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학생들에게 미안했다. 현지 사정을 조금만 더 잘 알았다면 아이들에게 더 좋은 추억을 남겨주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으로.

캄보디아는 최빈국 중 하나다. 그렇다고 그들의 삶마저 가난한 것은 아니다. 물론 삶의 만족과 행복의 기준은 다양하고 개인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작은 것도 소중히 여기고, 도움의 손길에 감사하며, 있는 것에 만족하며 삶의 여유를 갖고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이 시대의 진정한 베짱이가 아닌가 싶다.

행복은 결코 가진 것이 많고 화려한 삶을 살아야 찾아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작은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고 내가 처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 하루하루의 보람찬 땀방울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사람에 따라 행복을 추구하는 방법과 기준은 다르겠지만, 우선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을 먼저 느껴보는 것이 어떠할까?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질 것이다. Ahn

 

대학생기자 성해윤 / 한양대 정보사회학과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배우고 그 안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좋은 경치 구경도 하고 자기 분야에서 정말 성실히 보람찬 삶을 살고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지친 일상에 단비와 같은 감동을 주는 다큐멘터리 PD가 되고 싶은 꿈 많은 20대 젊은이입니다.

 

아시아 최빈국 캄보디아 교육봉사의 의미

문화산책/현장속으로 2012.10.27 11:04

여러분은 캄보디아를 얼마나 알고 있는가? 캄보디아는 아시아의 최빈국 중 하나이다. 캄보디아의 1인당 GDP는 불과 900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가 2,1529달러임을 감안하면 캄보디아는 매우 가난한 국가이다. 캄보디아는 국가 연소득의 3분의 1이 앙코르와트의 수입에서 나올 정도로 관광과 농업 위주의 전형적인 1차 산업 국가이다. 또한 캄보디아의 전기 배급률은 전체 면적의 30%에 불과하다. 사실 캄보디아에는 발전 시설을 지을 설비가 없어 이웃나라 베트남에서 전기를 끌어 쓴다고 한다. 때문에 전기가 상당히 귀하고 비싸다. 심지어 학교에서 조차 전기를 구경조차 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필자는 지난 여름 72일부터 718일까지 1517일의 일정으로 한양대학교 HONOR그룹의 해외봉사단 소속으로 캄보디아 Siem Reap지역에 있는 SRAH KWAV 초등학교로 교육봉사와 건축봉사를 다녀왔다. 이번 기사에서는 제가 캄보디아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깨닫게 된 점과 동시에 느끼고 온 소중한 감정을 전달하고자 한다.

필자가 간 SRAH KWAV 학교는 필자가 머물고 있던 Siem Reap지역에서도 차로 1시간 30분정도를 지나가야 도착할 수 있는 캄보디아의 아주 시골에 있는 작은 학교이다. 이 학교는 Aisan Development Bank(아시아 개발은행)에서 2007년에 기증한 시골의 작은 학교이다. 학교는 6칸짜리 교실로 이루어진 건물 2채가 전부이다. 훗날 함께 지냈던 통역에게 들은 이야기이지만 이 학교는 캄보디아 교육당국의 125년 동안의 장기프로젝트로 지어진 학교라고 한다. 이 학교가 125년 동안 문을 닫지 않고 계속 학생들을 받는 다면 캄보디아는 반드시 발전 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아래 지어진 학교라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알 수 없는 사명감이 엄습해 왔다. 비록 우리는 2주밖에 아이들과 함께 있지 않지만, 이렇게 시간이 쌓여 아이들이 학습에 흥미를 갖고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캄보디아도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나라처럼 기적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캄보디아 아이들은 대개 초등학교 이후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농업 국가이기 때문에 굳이 고등교육을 받을 필요 없을 뿐더러 고등교육을 받을 여건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초등학교를 마지막으로 학생이나 학부모 모두 더 이상 교육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초등학교 교육조차 농사일로 인해 거르는 학생들이 태반이다.

이곳에서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우리를 An angel from heaven(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왜 우리를 이렇게 부르는지 잘 몰랐다. 나중에 듣고 보니 우리가 봉사를 오기 시작함으로 인해서 학교에 학생들이 공부를 하러 오고, 꿈을 갖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곳의 선생님들과 캄보디아 교육당국은 우리에게서 아이들의 엄청난 학습효과나 학력신장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우리가 이곳을 방문함으로 인해 아이들이 꿈을 갖고 학습에 열의를 갖게 되는 것, 이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캄보디아 교육청이 해외봉사자에게 발급하는 봉사수료증 

이곳의 아이들은 그늘이 없다. 전기도 없고, 음악도 모르며, 심지어 맨발로 학교를 다녀 발바닥이 성한 곳이 없는 아이들이지만 작은 것에도 감사할 줄 알고, 항상 해맑은 웃음을 지니고 다닌다. 세상 그 어느 곳에 있는 아이들보다도 밝고 활기차게 이곳의 학생들은 그렇게 생활한다입시교육에 힘들어 하는 우리나라 학생들과는 사뭇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교육봉사는 크게 과학, 예체능, 영어 이렇게 3개의 파트로 나누어 수업을 진행하였다. 물론 교육봉사 역시 처음부터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우리가 한국에서 준비할 때 우리는 초등학생이라고 해서 우리나라의 학생들과 수준이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자국의 글자(크메르어)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태반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글자 자체가 매우 어려웠다. 우리나라의 한글과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글자가 서로 너무 비슷해 구분이 어려울 정도였다캄보디아가 문맹률이 높은 이유이다.

나와 함께 수업을 진행해준 캄보디아 현지인 통역 사랏(Sarat)이다. 우리나이로는 26살인데 벌써 결혼까지 했다. 사랏은 항상 학생을 대할 때 먼저 말하지 않고 학생의 이야기를 듣고 답을 해주었다. 선생님인 나를 대할 때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육자로서 사랏은 전혀 손색이 없는 인재였다

우리는 현지에서 급히 교육안을 수정해 현지 아이들의 수준에 맞는, 아이들에게 필요한 수업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우리는 캄보디아의 지도 그리기, 세계 5대륙 찾기 게임과 같이 아이들의 흥미를 이끔과 동시에 최대한의 학습효과를 얻기 위한 방법을 택했다. 물론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차차 우리는 아이들과 호흡을 맞추며 통역의 협조아래 효과적인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교육은 단지 학생을 가르치는 것에 그치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눈빛으로 소통하고 아이들과 마음으로 대화하면서 진정한 삶의 만족과 행복이 무엇인지, 나아가 왜 교육이 국가의 가장 중요한 기반 산업인지 깨닫게 되었다.

대학생기자 성해윤 / 한양대 정보사회학과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배우고 그 안에는 감동이 있습니다.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좋은 경치 구경도 하고 자기 분야에서 정말 성실히 보람찬 삶을 살고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습니다. 지친 일상에 단비와 같은 감동을 주는 다큐멘터리 PD가 되고 싶은 꿈 많은 20대 젊은이입니다.

앙코르와트 말고 진짜 캄보디아 보려면

문화산책/여행 2012.07.29 07:00

캄보디아라고 하면 대부분 앙코르와트를 떠올린다. 그리고 사실상 많은 여행객이 이 나라에는 앙코르와트를 빼면 볼 것이 없다며 씨엠립에서만 단지 며칠 머물다가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말 그럴까? 사실 앙코르와트만 보고 떠나는 여행객은 캄보디아의 숨겨진 제국은 봤을지언정, 숨겨진 자연, 숨겨진 바다, 그리고 관광객에게 찌들지 않은 진짜 캄보디아인은 죄다 놓친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간직한 곳 바로 캄보디아의 꼬롱섬을 소개한다.

  앙코르와트에서 버스로 12시간, 배로 3시간

우리에게 잘 알려진 앙코르와트는 가는 방법도 돌아보는 방법도 쉽고 편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꼬롱섬은 가는 것도, 그리고 그곳에서 생활하는 것도 약간의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씨엠립에서 저녁 7시에 버스를 타면 다음날 아침 7시가 다 되어서야 캄보디아의 남쪽 해변, 항구도시 씨하눅빌에 도착한다

여기서 많은 배낭여행객은 갈림길에 선다. 그냥 이 곳 씨하눅빌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꼬롱섬에 들어갈 것인가. 필자는 꼬롱섬의 개발되지 않은 하얀 백사장과 그 해변을 거니는 물소들을 본 사진을 잊을 수가 없어 도착한 그날 바로 아침 8시 배를 타고 꼬롱섬으로 들어갔다.

꼬롱섬은 개발이 되지 않은 섬이기 때문에, 사진에서 보듯이 실제로 태닝을 하거나 바다에 들어가 있으면 가끔 물소도 지나가고, 현지 아이들도 와서 같이 노는 그런 광경이 펼쳐지곤 한다. 하지만 꼬롱섬에서 머물기 위해선 한 가지 감수해야 할 것이 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꼬롱섬에서의 3 4

필자는 이 원시 자연 속에서 3 4일을 지냈는데, 그 중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전기이다. 꼬롱섬에는 총 4개의 방갈로가 존재하는데, 모두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방갈로라는 것이 발리와 같은 신혼여행지에 있는 그런 초호화 방갈로가 아니라, 실제 현지인들이 나무를 엮어서 생활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갈로이기 때문에, 꽤(?) 환경친화적임은 물론이거니 여러 방면에서 몇몇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

일단 비가 오면 굉장히 습해져 현대문명 속의 숙소들의 뽀송뽀송한 침대 대신 쉰내가 나는 침대에서 자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해가 있을 때 씻지 않으면, 어둠 속에서 손 끝 말초신경에 의지해서 숲 속에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샤워를 해야하는 불상사가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랬던가, 이런 불편함 역시 이틀 정도 생활하고 나면 모든게 익숙해지고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 곳과 하나가 되기 시작한다.

 

 캄보디아 바다 속 들여다보기

아침에 느긋하게 일어나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산책을 하고,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클래식과 파도소리가 어우러지는 방갈로에서 여유롭게 아침을 먹으면 마치 내가 부자라도 된 듯한 기분이다

하지만 이런 휴양도 하루, 이틀이지 4일째가 되면 해수욕도, 태닝도, 넋 놓고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여유롭게 책을 읽는 것도, 하루종일 해먹에 누워 흔들거리는 것도 슬슬 지겨워오기 시작한다. 그럴 때면, 수상가옥에 위치한 다이빙샵에 가서 펀다이빙을 즐겨보자

필자는 특히 동남아 여행의 필수품 중 하나가 바로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이라고 생각한다. 지구상에는 육지보다 바다의 면적이 훨씬 넓은데, 고작 여행와서 새로운 땅과 땅 위의 것들만 보고 간다면 반쪽자리 여행이 아닐까? 새로운 곳에선 당연히 그 나라 바닷 속이 궁금해지는 것이 다이버들의 마음이다.

                           

캄보디아에서 유명한 포인트는 꼬롱섬에서도 4시간 정도 더 떨어진 꼬탕이라는 섬 근처인데, 필자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기는 꼬롱섬 근처의 포인트에서 다이빙을 했다. 시간이 여유롭지 못하다면, 혹은 다이빙이 처음이라면 꼬탕섬 대신 꼬롱섬의 다이빙도 여러분을 새로운 세상에 빠져들게 만들 만큼 매혹적일 것이다. Ahn


대학생기자 최시준 / KAIST Mangement Science


안철수연구소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이라는 길을 향해 가고 있듯이,

저, 최시준은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이름'이라는 길을 향해 걸어갑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은 어떤 길을 향해 가고 있나요?



리빙필드로 탈바꿈하는 캄보디아 킬링필드

문화산책/여행 2012.03.24 07:00

세계 최빈국이라는 오명을 씻고 다시금 발돋움 하고 있는 캄보디아를 찾았다. 캄보디아는 북서쪽에는 태국, 북동쪽에는 라오스, 남동쪽에는 베트남과 접경하고 있는 인구 1500만 정도의 국가이다. 동남아시아 국가답게 우리나라로서는 가장 추운 12월~1월에도 따뜻한 기후를 유지하고 있었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온기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캄보디아의 뼈아픈 과거, 킬링필드..

캄보디아 하면 누구나 떠올릴 만한 킬링필드. 1975~1979년에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 루주라는 무장 공산주의 단체에 의해 저질러진 학살을 의미한다. 당시 그가 꿈꿨던 것은 최대의 농경사회였기 때문에 수도인 프놈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농촌지역으로 강제이주 명령을 내렸다. 만약 그 명령에 반항할 시에는 즉각 처형시켰다. 기존 정권이나 군에 종사한 사람은 가족까지 멸하였고, 의사나 교사처럼 학문을 익힌 사람들은 처형 대상이었다. 안경을 쓴 사람, 손가락에 볼펜을 사용한 흔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까지 모조리 죽였다. 당시 700만명의 국민 중 200만이 학살 당했는데, 그 결과 현재 인구의 70% 24세미만이라는 본의 아니게 젊은 국가가 되어 버렸다. 수도인 뚜어슬랭 박물관에 당시의 아픔이 고스란히 잘 남겨져 있다.

뚜어슬랭 박물관에 보존된 당시 수용소 모습..
  

남녀노소 불문, 명령 불복종은 즉각 처형

 
고문했던 침대의 모습, 상상만으로도 무시무시하다.

 
현지인과의 대화를 통해 직접 들은 사실이지만 한 가정에 한 명 이상씩은 킬링필드의 피해자로 살해됐거나, 신체 중 일부 장애가 있다고 한다. 과거 우리나라의 6.25전쟁을 생각나게 한다. 같은 민족끼리의 살인, 그리고 지울 수 없는 아픔... 많은 것이 흡사했다. 그래서 그 곳 청년들은 킬링필드 이후의 삶, 즉 6.25 이후의 삶을 사신 우리 아버지 세대 정도를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희생 당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묻히게 하기위해, 큰 소리를 내는 확성기를 매달았던 Magic Tree..
 

여기저기 움푹 패인 곳이 바로 매장된 시체들이 발견된 장소
 

캄보디아는 새로운 리더를 갈망한다~
 
국가의 역사적인 아픔 탓에 캄보디아 대학생들의 중요성은 엄청나게 크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캄보디아의 미래이기 때문이다. 과연 우리 대학생들의 삶과 얼마나 비슷할지? 다를지? 확인해보자!
 
첫 번째로 찾은 곳은 RUPP(Royal University of Phnom Penh)라는 대학교이다.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굉장히 수준 높은 인재들이 모이는 국립대학교라고 한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서울대 정도 되겠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교사를 꿈꾸고 오는 곳이다. 정말 중요한 캄보디아의 리더들이 길러지는 곳인 셈이다.
  
캠퍼스의 정경은 매우 아름답다. 호수도 있고, 여기저기에 잔디도 있다. 신기한 것은 학생들의 복장이다. 교복이 정해져있는 것은 아닌데, 교복처럼 위엔 푸른 셔츠, 아래는 짙은 남색 바지와 치마로 다들 맞춰입었다.




바로 이곳이 RUPP !!
 
두 번째로 찾은 NTTI(National Technical Training Institute). 이 곳 학생들도 비슷한 옷들로 맞춰 입었다. 캄보디아는 우리와 다르게 고등학교까지는 교복이라는 개념이 없다가 대학에 들어와서 교복처럼 맞춰 입는다고 한다.
 
각종 SNS로 우리에게 필수품이 되어버린 스마트폰이 캄보디아 대학생들에겐 아직 많이 보급된 것 같진  않았다. 국가자체가 빈부격차가 심하다 보니, 어떤 친구는 피쳐폰과 스마트폰 둘 다를 가지고 다니는 반면, 어떤 친구는 집에 PC조차 없었다. 또한 스마트폰이 있다고 하더라도 주변에 WIFI가 되는 지역을 찾아다니며 인터넷을 이용해야 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이 세계 언어임은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메일이 있는 친구들은 대부분 페이스북 아이디를 소유하고 있었고, 금방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덕분에 페이스북에 외국인 친구가 많이 늘었다. 

따스한 겨울 햇살(?) 받으며 ~ NTTI 캠퍼스를 구석구석 탐방해 보자!!

우리 캠퍼스도 이 정도 경치를 가지고 있다면 더 공부를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푸른셔츠에 짙은 남색계열의 바지... 고등학교로 돌아온 기분 ^^


그리고 마지막으로 고백하건데, 한국 가수가 부른 트러블메이커라는 노래를 프놈펜 지역 한 주유소에서 처음 들어보았다. 물론, 평상시에 노래에 많은 관심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같이 간 일행 말로는 이 노래가 한국에도 나온지 일주일도 안됐다고 했다. 이처럼 한국인보다 최신 한국노래를 잘 알고 있는 캄보디아인들과 주유소, 문구/팬시점, 백화점, 마트 등등 어디서든 심심치 않게 한국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을 보고 말로만 듣던 K-POP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사실, 큰 기대 없이 떠난 여행이었지만 예상 외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경험했던 오감 그 자체와 느낌들을 문자라는 그릇에 담기에는 그릇이 너무 비좁다. 캄보디아는 기회가 된다면 꼭 가볼 것을 권장하고 싶다.

또한 과거의 캄보디아를 보며 리더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깨닫는다. 올해 우리나라를 포함해 정말 많은 나라의 리더들이 바뀐다. 한 명의 리더가 현재 뿐 아니라 미래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잘 생각하고, 유권자 중 한 사람인 나 자신부터 현명한 한표를 준비해야할 것 같다.

어꾼 찌란 ~ Ahn

대학생기자 최태영 / 숭실대 컴퓨터학부


보 : 보람찬 대학생활의 마스터플랜

안 : 안랩소 대학생기자단 !
세 : 세계 어디서도 경험 못할,
상 : 상상 그 이상의 것을 기대합니다 !



불행한 역사 딛고 희망 키워가는 캄보디아 방문기

문화산책/현장속으로 2010.09.04 08:00

동남아시아 인도차이나 반도 남서쪽에 위치한 캄보디아. 면적은 우리나라의 약 2배, 인구는 1400만 명이 조금 넘는 개발도상국이다. 한때는 지금의 태국, 미얀마, 라오스,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까지 차지했을 정도로 강대했던 때도 있었고 근대화에 접어들면서는 프랑스 식민지로 전락한 아픈 역사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캄보디아에는 아직 아이들이라는 희망이 있다.  

식민지, 독재, 에이즈 등 불행 거듭된 역사 

프랑스 식민지에서 독립한 캄보디아는 1975년, 공산주의자인 폴포트가 독재 정치를 자행했다. 그가 조직한 크메르루즈는 반대파 학살을 이유로 약 30만 명이 넘는 캄보디아인을 무참히 학살했다.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을 비롯해 안경을 꼈거나 손에 굳은살이 없다는 얼토당토 않은 이유로 민족 학살이 자행되었다. 어린 아이들은 공산화 교육을 받아 고문, 살해 현장에 가해자로 투입되기도 했다.

이 같은 사건으로 인해 현재 캄보디아 전체 인구 중 한 세대가 사라져버렸고 그 부재는 캄보디아 회생의 발목을 붙잡는 일이 되고야 말았다. 4년 뒤 1979년, 폴포트 아래 있던 지금의 훈센 총리가 베트남과 손잡고 공산주의 이상을 품던 크메르루즈 정권을 무너뜨렸다.

하지만 이때 베트남이 캄보디아에 들어와 10년 간 캄보디아 정권을 통치하며 남은 경제를 무너뜨렸고 유엔군을 통해서는 에이즈가 퍼져나갔다. 한때 에이즈에 감염된 인구가 4%에 달한 적도 있었다. 갖은 치료 노력으로 현재는 1.5% 정도로 낮아졌다. 한편, 경제의 30%가 섬유 산업이지만 세계 경제 위기 때 캄보디아 경제도 무너져 섬유 공장의 60% 이상이 문을 닫고, 섬유 산업에 종사한 많은 여성 또한 도시의 유흥 산업에 몰려들면서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감사하게 하는 걸 감사해라?  

기자는 캄보디아를 다녀올 기회가 생겨 캄보디아가 어떠한 나라인지 취재함과 동시에 봉사 활동을 했다. 6월 28일, 캄보디아 프놈펜에 도착해 이철 선교사가 운영하는 헤브론 병원에 도착해 캄보디아가 어떤 나라인지 듣는 시간을 가졌다. 이철 선교사는 “캄보디아는 알다가도 잘 모를 파악하기가 어려운 땅”이라며 이는 아픈 역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인은 특히 ‘감사하는 것’에 있어서 우리나라와 정서가 매우 달랐다. 캄보디아 인들은 마음에서 정말 우러나와서 감사를 표시하는 우리나라 정서와는 달리 감사하다는 말은 ‘내가 너로 하여금 하늘에게 영광 돌릴 기회를 줬다’라는, 즉 '네가 나로 인해 하늘에 상급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정서를 담고 있다. 이 때문에 캄보디아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매우 익숙하고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정서는 사회 문제를 낳고 더 나아가서 이들 스스로 자립하며 발전할 수 없게 만드는 원인이 되어버렸다. 

해맑은 아이들, 아직 희망은 있다  

9박 10일 동안 우리 선교 봉사 팀은 캄보디아 여러 지역을 다니며 아이들에게 봉사 활동을 하고 캄보디아 여러 유적지를 돌아다니며 캄보디아 문화를 알아보았다. 
처음 사역지인 스와이렝에 도착해 노래와 율동, 부채춤으로 우리나라 문화와 기독교 복음을 알리는 시간을 가졌다. 수십 명의 아이들이 몰려와 함께 노래하고 색종이 붙이기, 클레이 만들기, 풍선 만들기, 사진 찍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은 매우 순수했고 우리 팀을 무척 신기해하며 모든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캄보디아가 지금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어렵지만, 이 아이들이 있기에 캄보디아가 회복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이 생겼다. 무엇보다 이 사회를 정말로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선 본질적으로 어떠한 것이 필요한지 알게 된 시간이었다. 물질적으로 풍요함과 안정된 직
장, 이러한 것이 본질은 아니고 서로 아껴주고 사랑하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기쁘게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말이다. 

한편으로는 소위 '88만원 세대'인 우리나라 20대로서 캄보디아 아이들 같은 순수한 마음, 어떤 좋지 않은 환경에서도 그것을 이겨내고 극복할 수 있는 믿음, 길이 없더라도 길을 만들면서 걸어갈 수 있는 의지만 있다면 20대에게 아직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Ahn
 

대학생기자 박건우 / 전남대 산림자원조경학부

캄보디아 키르키스스탄 대학생과 2박3일 <홈스테이 준비사항 4가지>

문화산책/현장속으로 2009.10.12 16:00

나는 지난 여름 방학을 맞아 보건복지가족부가 주최한 ‘미래를 여는 아시아 청소년 캠프(이하 아캠)’에 참여했다. ‘Future of Asia, Passion of Youth(아시아의 미래와 우리들의 열정)’이라는 주제로 열린 아캠은 22개국 한국 청소년 100명, 아시아 청소년 200명이 참여했다. 15일 간 진행된 캠프의 마지막 3일은 홈스테이 프로그램이었다.

홈스테이 멤버는 처음부터 알려주지 않았다. 혹 그들과 먼저 친해져 다른 친구들과 못 친해지는 등의 문제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의도였다. 멤버가 누구일까 몹시 궁금했지만 11일은 금방 지나갔고 홈스테이 명단 공개와 함께 2박 3일 홈스테이가 시작되었다.

내 홈스테이 친구는 17세 대학 신입생인 캄보디아 캐마와, 7개 국어를 하는 키르기스스탄 18세

아이다이였다. 다행히 여러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안면이 있었던 터라 크게 어색하진 않았다. 언어 장벽이 클 것이라 예상했지만 아이다이가 다행히 한국어를 잘해 소통에는 큰 지장이 없었다.(^-^)

경남이 고향인 나는 그곳까지 내려갈 시간이 없어 청주에 머무르기로 했다. 짐을 풀고 중국집의 풀코스 ‘자장면+잠봉+탕수육’을 먹으러 갔는데 11일 간 먹은 호텔 음식보다 더 맛있다고 연신 칭찬이 아닌가!

배부르고 더운 우리는 에너지를 소비할 뭔가를 선택해야 했다. 결국 선택한 것은 아이스 스케이팅. 하지만 우리는 아이스 링크의 추위를 간과해서 30분도 채 놀지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만약 감기라도 걸렸으면 단체로 신종 플루 감염을 의심 받을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 날

화성 바다, 비가 와서 맘껏 못 놀았지만 그 나름대로 즐거웠다.

, 아이다이가 바다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해서 바다를 보러 화성에 갔다. 엄청나게 비가 쏟아져 걱정을 했는데 캐마의 짐들이 더 걱정이었다. 어리고 조그마한 캐마의 육중한 짐가방을 건실한 내가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산에 캐마의 가방과 내 가방... 노트북과 엄청난 짐들이 든 가방을 들어주었는데 그 후유증으로 물놀이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 ㅠ

한국 친구와 만난 후 친구 할머니댁에 가방을 풀어 놓고 바다로 향했다. 다행히 그 때 실비가 내려 바다에 발 담그는 데 무리가 없었다. 소라 껍데기를 줍고 게를 잡으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아이다이를 보니 마냥 좋았다. 

비가 너무 많이 와 바다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바지락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칼국수는 맛있는데 바지락이 입에 맞지 않았나 보다. 그래서 그 많은 바지락은 나와 친구 둘이서 다 먹었다. +.+
피곤에 지친 우리는 수박과 식혜를 먹으며 게임을 했고 '긴급출동 SOS'를 보며 잠들었다.

그 다음 날 서울로 떠나기 전, 캐마한테서는 코끼리가 그려져 있는 가방을, 아이다이에게서는 핸드메이드 말가죽 액자와 키르기스스탄 정보가 담긴 책자를 받았다. 해준 것도 없는데 받아서 미안하고 고마웠다. 처음 해보는 홈스테이라 미숙하고 서툰 부분이 많았지만 어떻게 처음부터 잘할 수 있겠나. 이번엔 그냥 그 어설픈 추억을 품고 다음 이런 기회가 생기면 완벽하게 즐기고 싶다.

끝으로 조금은 낯선 캄보디아, 키르기스스탄  사람을 만난 것도 신기한데 나와 홈스테이의 인연을 맺은 캐마와 아이다이. 정말 고맙고 다음엔 캄보이아에서 그리고 키르기스스탄에서 만나자고 해야겠다. 

내가 생각하는 홈스테이 참고사항

1. 먼저 종교를 물어볼 것.
- 종교를 물어보는 것이 실례가 될 수도 있지만 음식을 선택할 때 무슬림이나, 힌두교일 경우 맞지 않을 수 있다. 잘 고려해 볼 것.

2. 두 사람 이상일 경우 성향을 빨리 파악할 것.
- 나는 맞춰줄 수 있지만 두 사람의 성향이 달라 힘들 수가 있다. 두 사람이 성향이 다르다면 적절히 맞춰줄 것.

3. 선물은 실용적인 것이 최고.
- 인사동에 파는 한국적인 열쇠고리보다는 조미 김이나 액세서리가 더 실용적일 수 있다.

4. 동선을 잘 짤 것.
- 함께 움직이는 일정의 동선을 계획적으로 짜는 것이 효율적이다.
 
 

Ahn

대학생기자 구슬 / 충북대 경영정보학과

서툴지만 열정과 도전 정신 그리고 많은 꿈을 가졌다. 편지쓰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니 '안철수연구소' 사보기자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아직은 작은 수족관에 살고 있지만 안랩을 통해, 그리고 사회를 통해 수족관을 깨뜨리고 바다로 나아가려 한다. '대통령 앞에서는 당당히, 문지기 앞에서는 공손히'를 모토로 삼고 열정과 발품으로 '보안세상'에 감흥을 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