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도시’라는 별명이 있을 만큼 1년 내내 온화한 기후인 중국 운남성의 성도인 쿤밍은 인천 – 쿤밍 간 직항 비행기가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사람에게 각광받는 여행지 중 하나이다. 단지 우리나라 사람뿐 아니라 세계 각국 배낭여행자에게도 인기인 쿤밍은 이족, 후이족, 나시족, 하니족 등 12개 소수민족이 어울려 사는 복합문화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이다. 하지만 또 하나, 운남성의 성도인 쿤밍과 다리가 인기 있는 이유가 있으니, 바로 자연이 만들어 놓은 세기의 걸작이 있기 때문이다.
쿤밍에서 약 90km 떨어져 있는 석림은 ‘천하제일의 기괴한 경관’이라는 명성을 떨치고 있는 곳이다. 2억 7천만 년 전 바닷속이었던 석림은 지각 변동을 걸쳐 현재는 해발 1750m의 고도를 자랑하고 있다(한라산 해발 1950m). 기상천외한 모양의 3~30m 높이의 다양한 돌들이 5km에 걸쳐 펼쳐져 있는 것을 둘러보면 비현실적인 풍경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더군다나 위에서 바라보는 석림은 마치 하나의 오케스트라와 같은 느낌이다. 음의 세기(강약)가 마치 돌들의 높이로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어서 그 위에 서 있는 나 자신이 마치 이 석림의 지휘자가 된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하지만 경치에 빠져들어 무작정 돌아 다니면, 사방에 아무도 없는 석림의 돌감옥에 갇힐 수도 있으니 관광지라고 결코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
내가 선택한 것은 낚시배. 사실 관광객이 낚시 배를 타는 것은 엄연한 불법이지만,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동안의 여행 일정이 너무 빡빡했다면, 뱃사공이 노를 저어 주는 낚시배에 앉아 잠시 여유를 만끽하는 것은 어떨까? 혹은 자신이 계획했던 무언가가 잘 되지 않아 여행을 떠났다면, 끝 없이 넓은 호수와 푸른 하늘 아래에서 잠시 쉬어가는 것은 어떨까? 나는 브레이크 없이 달리기만 하는 기차보다는 쉼표에서 잠시 쉬어주는 음악이 우리의 삶을 더 풍부하게 해준다고 믿는다.
다수결,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이 다수결이라는 체제에 익숙해져 왔다. 소풍은 어디로 갈지, 반장은 누가할지 등. 하지만 언제부터일까? 다수가 항상 옳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여전히 사회는 소수보다는 다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여기 바이족의 도시 다리에서만은 그들, 소수의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자.
삼도차(三道茶)는 예전부터 내려오던 바이족의 대표적인 차 중 하나이다. 다리 고성의 많은 찻집에서 맛볼 수 있지만 많은 관광객이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적인 차와 달리 세 개의 잔에 따로따로 담겨져 나오는 삼도차는 그 맛이 모두 다른 것이 특징이다.
첫 잔은 무척 쓴 맛으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의미이다. 많은 여행객이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일부러 고생을 하러 떠나는 것이 바로 이 첫 잔의 의미가 아닐까?
둘째 잔은 분유와 설탕을 넣어서 무척 달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자성어 고진감래(苦盡甘來)가 바로 이 둘째 잔의 의미이다. 아직 고생을 하고 있는 나에게 인생에서의 둘째 잔은 시기상조가 아닐까? 하지만 내게도 둘째 잔은 달디 달았으니, 달디 단 인생의 제 2막이 궁금할 뿐이다.
셋째 잔은 일명 회미차(回味茶)인데,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생의 황혼에서 지난날을 회상한다는 의미이다. 아직 첫째 잔에 머물러 있는 내가 선뜻 다가갈 수 없는 대추와 생강의 무척 깊고 그윽한 맛이다.
비록 이 글이 바이족의 삼도차를 대신하지는 못하지만, 독자에게 한 번쯤 자신이 현재 인생의 어느 잔을 마시고 있는지, 혹은 다음 잔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면, 이 여행은 그것만으로 의미 있지 않을까?
민족과 국경을 넘어, 타인이 자신의 문화에 가져주는 관심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도 찻집에서 삼도차를 주문할 때, 바이족 현지인이 나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며, 삼도차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하던 그 순간을 잊지 못 한다. 예전 우리가 우리 문화를 빼앗길 뻔했던 그 순간, 우리 문화에 관심을 가져주는 한 외국인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 외국인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다수의 논리에 의해 점점 힘을 잃고 문화마저 잃어가는 그들 역시 똑같은 심정이 아닐까? 항상 약자의 편에서 스스로를 희생하며 살아가기는 어렵지만,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그들의 입장을 여행에서나마 한번 더 생각해보면 어떨까. Ahn
안철수연구소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이라는 길을 향해 가고 있듯이,
저, 최시준은 '세상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이름'이라는 길을 향해 걸어갑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은 어떤 길을 향해 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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