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연구소 아름다운 토요일에 만난 사람들

안랩人side/안랩컬처 2011. 12. 19. 09:23
12월 16일. 강한 찬바람이 불면서 올 겨울 들어 전국적으로 가장 추운 날이었다. 바로 다음 날 17일. 여전히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만큼은 따뜻했던 안철수연구소의 자선 바자 캠페인 '아름다운 토요일' 행사 현장을 다녀왔다. 2003년 시작해 올해로 아홉 번째를 맞는 이번 ‘아름다운 토요일’ 행사는 나눔과 재활용이라는 주제로 아름다운 가게 분당 이매점에서 열렸다.

자선 바자 캠페인 현장은 학교를 다니면서 몇 차례 가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아름다운 토요일' 행사 현장에 가면서 '어느 정도의 기증물품이 모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현장에 도착한 순간 과소평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증물품이 가게 안을 빼곡히 채우고 가게 밖까지 의류, 도서, 아동용품, 생활 잡화 등이 진열되었기 때문이다.

부서참여율 100%에 달해 대부분의 직원들이 지난 한 달 간 십시일반 모은 결과 이렇게 많은 기증물품을 모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안랩 임직원뿐 아니라 CEO 시절인 2003년 첫 행사 때부터 매년 참여해온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도 동참해 200점 가까운 기증물품들도 있었다.

행사는 오전/오후/저녁 3조로 나누어서 안철수연구소 임직원이 활동 천사(자원봉사자)로 직접 참여했다. 그래서 아름다운 가게 직원분들을 제외하고는 안랩 직원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많은 활동 천사 사이에서 안철수연구소의 직원으로 보기에는 앳되 보이는 이가 있어서 용기 내어(?) 다가가 말을 붙였다.

앳되보인 그 분은 두꺼운 패딩과 교복을 입고 있던 여고생.
 

"학생이신 것 같은데 어떻게 '아름다운 토요일' 행사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나요?"
작년(중학교 3학년)부터 아름다운 가게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어요. 처음에는 어머니를 따라서 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혼자 1주일에 한 번씩 아름다운 가게에서 자원봉사활동하고 있어요.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재미있어요.^_^

"어떤 점이 재미있으세요?"
실제로 동생 이름으로 기증을 한 적이 있는데 자신이 갖고 있으면 버리게 되는 물건일 수도 있는데 다른 사람에게 들어가 쓸모 있는 물건이 되는 점이 뿌듯하고 재미있어요.
 
또래 친구들과 한창 어울려 다니기를 즐겨할 중고등학생 때 주말마다 자원봉사 활동을 한다니 기특해보였다. 그리고 안철수연구소 직원이 아닌 다른 두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보여서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 만난 분은 현재 구직 중인데 마냥 집에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봉사활동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분은 자원봉사 활동을 통해 나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뿌듯하다고 한다. 그리고 함께 봉사 활동하는 분들을 만나면서 활력을 얻어서 좋다고 한다.

구직 중 자신 스스로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원봉사를 통해 깨닫는 점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혼자 있기 보다는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힘을 얻는다고 하니 조만간 좋은 소식이 들리길 바란다.
 
다른 한 분은 대학생이었다. 이전에 '녹색연합'과 같은 환경단체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재활용에 대한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오늘 '아름다운 토요일' 행사도 나눔과 재활용에 대한 연장선이라고 생각해서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농업학교에 들어가서 앞으로도 환경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고 한다.

모두들 환경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만난 학생은 모두가 하는 생각을 실천으로 옮겨서 환경단체와 '아름다운 가게'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었다. 지금과 같이 생각보다는 실천하는 자세를 가진 모습을 보면서 '미래 환경 분야 전문가 중 한 명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 하루 '아름다운 가게'에서 '아름다운 토요일'을 함께한 자원봉사자들은 다른 누군가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하기에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Ahn

대학생기자 김재기 / 한양대 안산 컴퓨터공학과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타고난 천재가 아닌 이상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겠지요.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항상 노력하는 대학생기자 김재기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가래떡 데이 처음 만든 안철수연구소 이벤트 현장

안랩人side/안랩컬처 2011. 11. 11. 20:30
11년 11월 11일을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가래떡데이를 처음 만든 안철수연구소는 올해도 어김없이 가래떡을 나눠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생기 넘치는 그 현장으로 지금 가보실까요?
한눈에도 다채로운 빛깔의 고운 가래떡이 보입니다. 호박, 쑥, 딸기 등 전통 재료를 통해 새색시 한복을 입은 것처럼 고운 가래떡이 탄생했습니다. 가래떡만 먹으면 심심할까 봐 특별히 식혜와 벌꿀, 그리고 맛김이 테이블 위에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다! 마주 앉은 자리에 가래떡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팀 분위기 급상승 중입니다.
식혜도 빠지면 섭섭하겠죠? 건배는 뭐니뭐니해도 가래떡데이에 팀원들과 함께하는 식혜 건배가 제일인 것 같습니다.
환경보호에도 앞장 서는 안철수연구소는 종이컵 사용 대신 팀원 개개인에게 텀블러를 지급했는데요. 환경도 보호하고, 팀원 간 분위기도 UP되고, 식혜도 더 많이 먹을 수 있어서 1석 3조의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농업인의 날이기도 한데요. 가래떡이나 식혜와 같은 우리 농산물을 먹자마자 벌써부터 다들 건강해진 모습이 보입니다. 역시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안철수연구소의 새내기 CERT팀 인턴들도 오늘만큼은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습니다. 이게 다 가래떡의 힘 아닐까요?
벌써 한 접시 뚝딱 비우고 소화까지 마친 안철수연구소의 젊은 피! 연수생들도 보입니다.
판교 사옥 이전과 함께 쌓였던 피로가 가래떡과 식혜 앞에서 사르르 녹아 내리는 현장도 보입니다.
지금까지 가래떡데이를 통해 웃음꽃이 활짝 핀 안철수연구소를 살펴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앞으로 11월 11일엔 가래떡으로 마음을 나누며 웃음꽃을 피워보시는 건 어떨까요?
Ahn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cfono1 2011.11.11 22:16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앗! 집들이 행사때 Q&A를 하셨던 PM님이 보이네요^^

  2. 카레 2011.11.11 23:57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자연식 그대로입니다. ㅎㅎㅎ

  3. ㅇㅇ116 2011.11.17 20:41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ㅎㅎ 저안철수연구소펜임

영혼이 있는 기업의 핵심가치는 무엇이 다를까

안랩人side/안랩컬처 2011. 6. 9. 10:42

안철수연구소에는 핵심가치라는 것이 있다. 핵심가치란, 조직구성원들의 공통된 가치관이자 안랩인으로서 지켜야 할 가치로서 영혼이 있는 기업으로 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이 핵심가치는 어디서 저절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없던 가치를 새로 만든 것도 아니며, 1995년 안랩이 창업한 뒤 5~6년의 기간 동안 자연스럽게 직원들에게 배어있던 생각과 행동을 명문화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가치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핵심가치를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닌 이미 내재되어 있던 가치들을 명문화했다는 사실이다.

 

2000, 안철수사장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안랩에 개인적인 기준이나 목표가 아닌 공통된 판단 기준이나 가치관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일명, "안랩 핵심가치 제정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핵심가치 제정 프로젝트 - 노력과 약속

 

우선, 전직원을 대상으로 핵심가치의 필요성과 제정에 관한 교육을 진행하는 한편 각자가 핵심가치 및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을 권장도서로 배포하는 등 사전작업에 들어갔다.

또한, 각자가 생각하는 안랩의 핵심가치에 대한 설문을 전직원을 상대로 실시한 뒤 정리된 내용을 바탕으로 워크숍을 진행하여 몇가지 키워드를 도출했다. 그때 가장 많이 공감을 얻은 단어 중
'정직' '성실'이라는 키워드가 있었다. 창업자의 평소 가치관이 담겨있고, 직원들의 생각과 행동 곳곳에도 배어있었던, 안랩과 가장 가까운 단어임에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개인적인 품성을 의미하는 두 단어를 조직원 모두의 가치로 공유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다.
고민에 빠진 필자는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안랩에서 발간한 컴퓨터바이러스뉴스
라는 격월지를 조사했다. ‘컴퓨터바이러스뉴스는 안랩이 유료고객들에게 우편으로 보내주었던 정보성 잡지로 과연 그동안 안랩이 고객들에게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자 했는지 알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조사 결과, 발간 이래 4년여의 기간동안 고객에게 전달한 잡지 안에는 '정직'이나 '성실'이란 단어는 거의 없었다. 대신, 안랩은 다른 표현으로 정직과 성실을 고객에게 전달하고자 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단어들은 한마디로 
'노력' '약속'으로 함축될 수 있었고, 필자는 이것이야말로 안랩인 모두가 함께 공유해야 할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정직'이나 '성실'이라는 창업자의 가치관을 그동안 안랩에서는 '노력' '고객과의 약속'이라는 가치를 통하여 고객에게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다. 또한, 안랩에서 가장 중요시 여겨지는 우리는 끊임없는 연구 개발을 통하여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기여한다.’존재의미에도 반영이 되어 핵심가치와 함께 존재의미도 명문화되었다.


세 가지 핵심가치


그렇게 1년여를 전 직원이 함께 고민하고 연구하여 명문화한 안랩의 핵심가치는 아래와 같다.
- 우리 모두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 우리는 존중과 신뢰로 서로와 회사 발전을 위해 노력한다.
- 우리는 고객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고객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이 핵심가치를 처음 전 직원에게 발표를 했을 당시, 직원들은 크게 두 가지의 반응을 보였다. 기존 직원들의 경우에는
"평소에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었던 것들이라 별도로 해야 할 일들은 없네!"
"많이 들어왔던 단어들인데 글로 표현할 필요까지 있었나?"
등 기존에 미리 몸에 배어있던 가치들이었기에 핵심가치들이 너무도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새로 입사한 직원들은
"
이건 무슨 도덕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단어들인데
..."
"
조금 더 강한 자극이 필요하지 않나?"
라며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했다
.
 

1995년 안철수연구소 창립 이래 6년 동안 동고동락해왔던 조직원들이 마음속으로 깊이 공유해오며, 제품이나 서비스로 고객에게 전달했던 가치들이 글로 표현된 것임에 틀림이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이 핵심가치는 현재도 신입사원 입사 시 필수 교육 코스로 운영되고 있으며, 매년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강조되고 있다. 또한, 이 핵심가치는 이후 안랩의 인재상인 'A자형 인재'로 구체화조직문화에도 알게 모르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2001
년부터 시작을 했으니, 어느새 핵심가치와 안랩이 인연을 맺은 것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모든 안랩인이 핵심가치를 소중히 여기고 계속 지키고 있는 한 국내 최고 기업을 넘어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일도 이제 머지 않은 것 같다. Ahn

조시행 상무 / 안철수연구소 연구개발총괄


창립 초창기부터 악성코드 등 보안 위협에 대응해 각종 보안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했으며
, 1.25 인터넷 대란, 7.7 디도스 대란 등과 같은 국가적인 사이버 재난 발생 시 신속한 대응으로 우리나라를 안전하게 지키는 데 큰 공헌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하나뿐인지구 2011.06.10 11:01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1995년이라...인터넷 거의 없고...통신망 bbs 같은 거 있던 시절이네요...^^
    ...
    바이러스에게...주사 맞히는 그림이...재밌네요...^^

V3의 V는 무슨 뜻? 한눈에 보는 우리 백신 역사

안랩人side/안랩컬처 2011. 6. 2. 08:46

“우연히 책에서 ‘컴퓨터 바이러스’라는 단어를 접하고 그 단어가 눈에 확 들어오는 것을 경험했다. 내가 좋아하는 컴퓨터와 당시 업으로 삼고 있었던 의학 쪽, 양쪽의 개념이 모두 들어가 있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발동해 그 글을 전부 읽고 집에 와서 내 컴퓨터를 뒤져보았다. 디스켓을 살펴보니 두 장에 (c)브레인 바이러스가 들어있었다. 컴퓨터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터라 등골이 오싹했다.” 
 
88년 의대 박사 과정에 있던 의학도 안철수가 처음 컴퓨터 바이러스와 운명적으로 만난 때를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괘씸하다는 생각에 즉시 분석에 돌입, 그 정체를 완전히 해부하기에 이르렀다. 당시에 그는 컴퓨터의 가장 복잡한 언어인 기계어 실력이 국내 최고 수준이었기에 어렵지 않게 치료를 하고 이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뒤 찾아온 후배가 인생 전환점의 단초를 던진다. 그 후배는 컴퓨터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고 있는데 치료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후배에게 컴퓨터 언어로 치료하는 방법을 여러 번 설명했으나 이해를 못했다. 대신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차라리 프로그램을 만들면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리지 않겠습니까?”하고 제안을 했다.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 안철수 박사는 하룻밤을 새워 프로그램을 만들고 ‘백신(Vaccine)’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 나아가 세계 보안 업계에 새 역사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현재 글로벌 안티바이러스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업체들이 백신을 개발한 것도 이즈음이다.

그렇게 만든 프로그램을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88년에는 인터넷 사용자가 없었고 PC통신 보급도 활발하지 않아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당시 컴퓨터 전문지로서 가장 권위 있었던 ‘마이크로소프트웨어’를 통해 바이러스 분석 내용, 백신 제작 방법을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고 백신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8월호에는 바이러스 방역 센터가 설립 공지문이 실리고, 이후 사용자가 바이러스 샘플 디스켓을 잡지사에 맡기면 안 박사가 방문해 가져가고 한 달 간 백신을 개발해 디스켓을 맡기면 사용자들이 잡지사에 가서 백신 프로그램을 복사해 가는 일이 반복됐다.

아무 대가도 없는 이 일을 위해 안 박사는 본업인 의대 박사 과정, 군의관, 의대 교수를 거치는 7년 간 새벽 3시에 일어나 백신 개발을 지속했다. 그 덕에 국내 사용자들은 예루살렘, 미켈란젤로 등의 바이러스가 창궐할 때마다 무료로 치료할 수 있는 혜택을 누렸다.  
 

V3라는 이름은 어디서 나온 걸까 


‘백신(Vaccine)’이라는 이름은 LBC 바이러스 퇴치 기능이 추가됐을 때 ‘백신 Ⅱ’로, 예루살렘 바이러스 퇴치 기능을 보충하면서 ‘백신 Ⅱ PLUS’가 되었다. 새로운 컴퓨터 바이러스가 나올 때마다 개정을 거듭했으며, 91년 초에 프로그램을 전부 바꿔서 ‘백신 Ⅲ(V3)’로 재탄생했다. 1995년 안철수연구소가 설립되고 ‘V3’는 고유 명사임에도 안티바이러스 소프트웨어를 대신하는 일반 명사로 굳어질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V3' 때 'Vaccine'의 이니셜을 따서 축약했고 이때부터는 'V3'를 모(母) 브랜드로 하고, 치료할 수 있는 바이러스 수를 버전으로 표기해 뒤에 붙여 썼다. (예 : V3 Ver.143)

1995년 3월 우리회사가 설립된 후 IT 환경의 패러다임 변화에 맞추어 발전을 거듭하고 'V3'라는 이름도 조금씩 달라졌다. 도스용은 'V3+'로, 다시 1999년에 'V3+ Neo'로 발전했고, 윈도용의 경우 1995년 12월 ‘V3Pro’를 시작으로 1996년 3월 국내 최초의 윈도우 95용 응용 소프트웨어인 ‘V3Pro 95’가 나온 데 이어 현재까지 V3 Lite(개인용 무료 백신), V3 365 클리닉(개인용 유료 백신), V3 Internet Security 8.0(기업용 통합백신), V3 Net(기업 서버용 통합백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해졌다.

한편 초창기 V3 로고 디자인은 회사 설립 직전, 당시 V3 사용자인 두 명의 대학 교수가 디자인해 무상 증정했다. 당시 수원여전 사무자동화과 주영철 교수가 안철수 박사의 의학계 선배인 이경용 박사로부터 연구소 설립 취지를 듣고 지인인 당시 단국대 산업미술학과 한백진 교수에게 제안해 공동 제작한 것이다. 두 교수는 백신 프로그램 이미지에 맞도록 V3 상표를 주사기 이미지로 형상화해 어떤 바이러스라도 물리치는 강력한 이미지를 담았다. 

23년 간 살아남은 비결


급변하는 IT 환경의 흐름에서 V3가 23년 동안 정상의 자리를 변함없이 지켜온 것은 기술적 진화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핵심 기술의 특허 획득을 시작으로 스마트 디펜스, DNA 스캔, V3 뉴 프레임워크 등 원천 기술의 혁신으로 높은 진단율과 빠른 검사 속도, 다양한 위협의 조기 차단 등 탁월한 성능을 제공하는 한편, 세계 보안 소프트웨어 중 가장 빠르고 가벼운 엔진을 보유하게 됐다.
 

또한 V3는 창의적인 연구개발 기술력에 기반해 다양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확장된다는 것이 특징이다. 스마트폰 백신(V3 모바일), 온라인 금융보안 서비스(안랩 온라인 시큐리티)를 비롯해 네트워크 보안 장비(트러스가드, 트러스와처), 망분리 솔루션(트러스존), 산업시설용 솔루션(트러스라인) 등에도 탑재돼 다양한 보안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장비로 재탄생했다.    

V3는 국내 IT 분야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지키며 국가 차원의 사이버 재난이 있을 때마다 앞장서 손실을 막았다. 2003년 1.25 인터넷 대란과 2009년 7.7 디도스(DDoS) 대란, 2011년 3.4 디도스 사태에 이르기까지 사이버 공격의 사전 차단과 예방, 암호 해독과 해결책 제시 등 신속한 대응으로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제 글로벌 무대에서 활약 중


V3 제품군은 장영실상, 대한민국특허기술대전 은상 등을 휩쓸었고 조선일보 주관 '건국 후 과학기술 업적 50선', 서울경제신문 주관 '20세기 한국의 100대 기술', 구 산업자원부 ‘세계일류상품’에 선정되기도 했다. 

V3는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 전세계 정보보안 업계에서 매우 의미 있는 위치에 있다. 프리웨어였을 때부터 상용 소프트웨어로 거듭나 글로벌 기술력을 인정받은 지금까지 23년 동안 이어지는, 국내 최장수 소프트웨어이다. 또한 국내 백신 시장 점유율 50% 이상을 장악하고 있어 전세계에서 자국에서 개발한 보안 소프트웨어가 자국 시장을 지키고 있는 매우 드문 경우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V3는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되어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국내 유일의 보안 소프트웨어이다. 2003년 국내 제품 최초로 '체크마크' 국제 인증을 획득한 이후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인증을 받고 있으며, 2003년부터 꾸준히 'VB 100% 어워드'를 획득해 글로벌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이는 비서양권 업체 중 가장 많이 보유했으며, 북미, 중남미, 일본, 중국, 동남아 등 해외 각국에 자체 브랜드로 수출되는 거의 유일한 소프트웨어이다. 국가 대표로 빛난 지난 날보다 글로벌 대표로 도약할 앞날이 더욱 기대되는 소프트웨어이다. Ahn

사내기자 황미경 / 안철수연구소 커뮤니케이션팀 부장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두근두근 2011.06.02 16:24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V3의 발전, 앞으로가 더 기대되네요.^^

  2. 류하은 2011.06.09 08:51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V3에 대해 전반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 해외에서도 최고가 될 것 같아요ㅎㅎ

  3. 香格里拉 2011.06.15 04:52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V4는 안의장님 은퇴하시면 나오나요? ㅋㅋ

국가대표 SW V3가 외국 기업에 팔렸다면?

안랩人side/안랩컬처 2011. 6. 1. 05:00

올해 6월 1일은 V3가 23세 생일을 맞은 날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우리나라 IT 보안을 지켜온 V3가 외국 기업에 팔릴 운명에 처했었다면 어떤가? 역사에 가정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게 거의 진리인 터에 웬말? 하지만 놀랍게도 그건 그저 가정이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내게 영혼을 파십시오

1997, 안철수연구소에 글로벌 백신 업체인 M사에서 인수 제의가 들어왔다.
동양에서 요트는 부를 상징한다죠?"
라며 1천만 달러를 거론한 M사에 당시 직원들도 술렁술렁거렸다. 돈벌이, 비즈니스로만 생각하는 이가 경영자였다면 당연히 V3는 팔렸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CEO 안철수는 단번에 “NO"를 외치며 이를 거부했다. 그에게는 영혼을 팔라는 말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가 회사를 설립한 목적은 돈이 아니었다. 안철수에게 안철수연구소의 의미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혼잣말로 되뇌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충분히 희망이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셨네요. 하지만 대한민국의 희망을, 우리 회사의 영혼을 단순히 돈으로 계산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그에게 수익은 기업이 한 행위에 대한 결과였기에, 가만히 앉아서 1천만 달러를 버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수익은 기업의 목적이 아닌 결과란 확고한 신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그의 행동이다 

그러니, 최근 한 마케팅 관련 수업에서 기업의 최종 목적은 최대 판매를 통한 이윤 추구가 아닌, 고객만족을 통한 이윤 추구이다라는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며, 안철수 박사의 수익은 기업의 목적이 아닌 결과라는 경영 이념이 떠오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었다.

유독 사회적 기업, 윤리 경영 등의 말이 차츰 거론되는 요즘이다. 이윤보다는 공익을 추구한다는 이러한 기업들은 물론 착한기업임에 틀림없지만, 여전히 인식은 'They 이론'에 기반해 저런 사람도 있구나라며 한 발짝 뒤에서 지켜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돈벌이가 되지 않는 기업으로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경영을 하느냐고 많은 사람이 의구심을 품는다. 최근 대기업에서 트렌드로 내세우는 봉사활동 환경보호 캠페인 등은 그들의 브랜드 이미지를 좋은 쪽으로 구축하기 위한 것에 불과하다고 믿는 사람도 여전히 많다.

착한 기업은 일반적인 기업이 될 수 없 것일까. 윤리 경영은 결국 이미지 포장을 위한 것에 불과한 것인가. 사실 이 책을 읽기까지 안철수연구소의 윤리 경영을 그리 잘 알지 못 했다.
에이, 설마. 그래도 사람이 한 치 흔들림 없이 대나무처럼 곧바른 경영만을 했을까.
나 같은 사람이 지금, 이 시점에 있다면 꼭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를 읽어보기 바란다. 단순한 기업 역사책이 아닌 경영 지침서로 소설처럼 흥미롭게 구성되어 있다.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믿음과 신뢰다

마케팅은 Market+-ing로 시장을 움직이는 것이며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영업 전략이 아니라 고객을 만족시켜 평생 고객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란 가르침을 수업 시간에 받은 적이 있다. 괜한 되새김질이 아니라, 안철수연구소 책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그 교수님의 말씀이 안철수연구소 경영과 일맥상통한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그저 이론은 이론일 뿐, 현실과는 괴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처럼 이상적인 기업이 있을까. 그저 기계랑만 친해 경영과는 전혀 거리가 멀 것 같은 사람이 경영의 표본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었다.

책에는 고객만족센터는 인재사관학교라는 장이 있다. 고객만족센터를 만족시키라는 것이 그 핵심 주제다. 고객과 맞상대를 하는 직원이 만족스러워야 고객 만족도도 덩달아 오를 거란 믿음으로 사무실을 옮길 때마다 로열석(창가, 휴게실이 가까운 곳)은 당연 고객만족센터 차지라고 한다.

또한 고객만족센터 주관으로 마련한 역할 연극도 고객 중심의 회사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의 하나였다. 역할 연극은 고객만족센터 직원뿐 아니라 전 직원이 고객의 목소리를 더욱 생생하게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이벤트다. 제품 기획에서부터 개발까지, 개발자가 아닌 고객 중심 마인드로 참여해야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온다는 발상에서였다. 최고의 제품을 만들면 고객이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을까란 생각을 뒤집어 고객과의 간극을 좁혀 최고의 제품을 만든다는 마인드가 안철수연구소에 대한 호감 이미지를 형성한 것이다 

365일 스탠바이, 민간 사이버수사대

3.4 디도스 공격이 있었다. 처음에는 알파팀이 출동했고 그리고 베타팀, 결국 전 사원이 출동하는 대응 체계가 가동됐다. 안철수연구소의 ASEC(시큐리티대응센터), CERT(침해사고대응센터)에는 밤이 없다. 국경을 초월해 실시간으로 확산되는 해킹 및 악성 프로그램의 피해를 최단 시간 내에 차단하기 위해서 언제나 두 눈을 부릅뜨고 세상을 지켜보는 것이다. 덕분에 이번 3.4 디도스 공격에도 비교적 빠른 대응을 할 수 있었고 많은 국민은 역시 안철수연구소하며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직원의 입장에선 웬만한 애사심이 없다면 참 힘든 직장이다. 비상 경보가 울리면 휴일 반납은 기본이고 야근은 거의 필수이기 때문이다. 이번 3.4 디도스 공격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술과 관련된 부서가 아니라 전혀 관련이 없는 홍보 업무를 맡고있는 커뮤니케이션팀까지 전직원 모두 안철수연구소에 집합하는 것이다. 모두들 밤 늦은 시각, 귀찮을 법도 한데 다들 국민의 안전한 인터넷 환경을 위해 모두 모인 것이다.

민간 기업이지만 그 업무는 공익을 위한 것이다. 그 존재가 참 남다르다. 민간 기업이지만 기업의 이익이 아닌 공익을 위한 목적이 더 강하며, 직원들도 회사를 위함에서 나아가 국가를 위함이란 마인드로 이 곳을 다닌다 

빠른 길보다 바른 길을 가라

기업은 영속체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업의 평균 수명은 날로 짧아지고 있다. 데이코쿠 데이터뱅크의 조사에 따르면 바로 이웃인 일본은 1천년 이상 된 기업이 8개이고 그 외 100년 이상의 기업은 22,219개이다. , 경영만 제대로 한다면 기업은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을 웅변하는 것이다. 영속체가 되기 위해선 충분한 매출과 이익을 지속적으로 내면 된다. 이익이란 한 기업의 사회적 기여에 대한 시장의 인정이다.

평생 갈 것만 같은 대기업도 무너지고, 벤처 거품 등의 말이 유독 자주 거론되는 대한민국에서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선 그만큼 바른 경영이 필수적이다. 평생 날고 길 것만 같은 대기업이 활개치는 가운데, 조용히 바른 길을 고수하는 안철수연구소에서 그 희망을 기대해본다. Ahn

대학생기자 김마야 / 아주대 경제학과


'삐뚤어질 수 있으니 청춘이지'라고 항상 스스로 되새기곤 합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어른'이란 인식이 사회에 맞춰가는 바른 상(像)이라면
저는 아직까지는 사회를 남들과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청춘'이고 싶습니다. 저는 오늘도 제 청춘을 버라이어티하게 디자인하는 기자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v3 2011.06.01 06:20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국산 프로그램으로서의 v3의 자부심은 정말 높이 쳐줄만 합니다.
    하지만 현재는 외산 백신에 비해 그저그런 성능을 보여주는 안타까운 프로그램일뿐입니다.
    이제는 자부심도 좋지만 성능을 위해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퐈이야 2011.06.01 11:34  Address |  Modify / Delete

      최근 몇년간 V3의 발전은 가히 놀랄 만 하던데요.
      과거 2004와 2007은 좀 아쉬운 부분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이후 버전부터는 프레임워크를 비롯 스마트디펜스 기술 등 개발로 획기적으로 진단율과 성능이 개선된 데다가 가볍고 좋아졌지요.

      아마도 과거 5~6년전 옛날 선입견이 있는 듯 하네요. V3가 눈부신 발전이 있었고 대응력 등 여러 면에서 훌륭한 편이지요.

    • 보안세상 2011.06.02 09:14 신고  Address |  Modify / Delete

      읽어보시면 좋을 듯해 링크 안내해드립니다.^^ http://blogsabo.ahnlab.com/808

  2. 아마도 2011.06.01 12:11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M사가 맥XX 라고 하는거 같더군요.

  3. 두근두근 2011.06.01 14:52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과연 누가 V3를 사려고 했을까요?ㅋㅋ 지금 생각해도 큰일이네;;
    잘 읽고 갑니다.

  4. 검은피 2011.06.06 02:57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V3를 사가려고 한걸 보면 분명 그만한 기술력이 있었기 때문이었겠네요..

    아마 V3가 넘어갔다면 우리나라엔 외산 백신만 넘쳐났을겁니다.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관공서에서 V3를 사용하던데..

    안철수연구소가 없었다면 다른 백신 업체도 탄생하지 않았을 수 있었을수도...

  5. 쿨캣7 2011.06.13 15:43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이제 글 읽었는데.. 헉 . 사진이 1999년 CIH 대란 때군요. 10여년 전 사진이니 지금보다 다들 젊네요. 아... 저도 저때 23살 정도였으니 뽀송뽀송 할 때군요 ㅋ 이런 사진이 있는지도 몰랐는데.. 그런데, 제 옆에 있는 분은 누군지 모르겠네요. 흠...

    • 보안세상 2011.06.15 22:04 신고  Address |  Modify / Delete

      이재한 수석인데 못 알아볼 정도로 달라졌나요? ㅎ

    • 쿨캣7 2011.06.16 01:18  Address |  Modify / Delete

      맞죠 ?! 설마 했는데...
      예전에 저같은(?) 시절이 있었군요.

      흠.. 저는 별로 안 변했네요. (라고 믿고 있는 1인)
      지금은 이마도 20대보다 더 좁아졌고 ㅎㅎ
      몸무게도 10년 전과 비교해 3 kg 정도 쪘으니...

대학생 기자가 되어 엿본 영혼이 있는 기업의 실체

안랩人side/안랩컬처 2011. 4. 18. 07:16

'V3'라는 백신을 만드는 회사, 안철수라는 훌륭한 분이 세운 회사.

두 가지의 모습이 그동안 내가 안철수연구소에 대해 생각한 전부였다. 그런데 신기하기만 한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1월의 어느날 인터넷을 하는 중에 한 뉴스를 보았는데, 바로 '안철수연구소 7기 대학생 기자 모집'이라는 문구였다. 보자마자 문득 떠오른 생각은 '! 바로 이거야, 그냥 포장하지 말고 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자'였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나의 모든 것을 최대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진정으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실천에 옮기곤 했던 마음가짐대로 처음 글을 쓰면서 '내가 왜 7기 기자단이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그리고 활동 경험, 사보 아이디어, 에세이, 지원 동기 순으로 써내려갔다다른 것보다 지원 동기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되었다. 이것이 명확하지 않으면 합격하더라도 열심히 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같이 활동하는 동기들에게 물어보면 다 비슷한 얘기를 한다. 지원서를 쓰고 수 차례 다시 읽어보고 수정하기를 마감 날짜까지 반복한 우리의 열정으로 합격할 수 있었다. 

▲ 2011년 활동하는 안철수연구소 7기 대학생 기자단

대학생기자가 되어 처음 받은 선물은 안철수연구소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를 담은 단행본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2010, 김영사)였다. 3명에서 출발해 지금은 600여 명에 이르는 안랩인들이 '영혼이 있는 승부'를 펼쳐온 15년의 이야기가 소설처럼 구성된 책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만이 가진 무언가라고 생각되는 영혼!

예전에 '확실히 있는지도 모르는데 육체만 있으면 되지 영혼은 또 무슨 소용이람'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사람들이 생활해온 모습, 신념, 태도, 가치관 등이 모두 모여 자신만의 영혼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안랩인만의 영혼을 엿볼 수 있는 몇 부분을 발췌해 보았다.

어려울 떄일수록 지켜야 하는 것인 원칙이다


1997년 영업맨으로 안철수연구소에 입사한 고광수가 한 가장 크나큰 고민은 회사가 늘 경제적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백신이 유료 모델로 성공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할 뿐 아니라 더욱이 당시는 유학을 마친 안철수가 병상에 누워 있는 일이 잦았다. 어쨌든 총을 쏘려면 총알이 있어야 하는 게 인지상정! 회사를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탈세 아닌 절세의 방법이 담긴 결재서류를 갖고 당당히 안철수를 찾아갔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당연히 채택될 것이라 믿었는데... 돌아온 한 마디는
"
이러지 마세요!" 였다.
"
? ."

"원칙대로 해야지요. 많이 벌어서 번만큼 세금 많이 냅시다."(P66~67)

이 세상에 열정 없이 이루어진 위대한 것은 없다

 

▲ 24시간 밤낮없이 세상을 지켜보는 곳!

안철수연구소의 ASEC(시큐리티대응센터) CERT(침해사고대응센터)에는 밤이 없다. 국경을 초월해 실시간으로 확산되는 해킹 및 악성프로그램의 피해를 최단 시간 내에 차단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두 눈 부릅뜨고 세상을 지켜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임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종 및 구형 바이러스를 분석하고 신속한 대응책을 마련해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 곳의 컴퓨터 보안 전문가들은 휴일 반납은 기본에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있다. 설령 운이 좋아 퇴근을 할지라도 회사로부터 두 시간 내의 거리에 있어야 한다. 절대 휴대전화를 꺼놓지 않는 것은 기본이다. 언제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ASEC의 전문가 한창규는 "긴급 사태가 발생하면 몸도 마음도 힘들지요. 하지만 악성코드를 유포해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그대로 둘 순 없습니다. 분석하고 해결할 실마리를 찾아야죠. 누군가 내 주민번호나 신용카드 번호 같은 개인 정보를 유출하려 한다면 어떨까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소한 생활까지 공개가 되버린다면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생각만 해도 진땀나는 이 상황을 누군가는 대비하고 수습해야지요."라고 말한다.

"진땀을 흘리며 바이러스와 전쟁을 치른 뒤의 성취감, 바로 그 맛에 악성코드를 잡습니다!" (P164~169)

만약 누가 당신의 영혼을 산다면 파시겠습니까?

 

박준식은 미국 유학 중이던 안철수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M사 본사로부터 초청을 받았으니 회사 제품을 소개할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준비해 급히 미국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꿍꿍이가 뭐지?"

그러면서도 '혹시 제품을 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도 안고 있었다. 글로벌 백신 업체인 M사와 손잡고 새로운 판로를 개척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물론 안철수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결코 경계심을 늦출 상황은 아니었다. 미국의 경우 90년대 초부터 커진 백신시장이 97년을 정점으로 주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 중략.........)

드디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날!

서로의 사업 분야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에 들어갔다. 하지만 의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회의가 길게 이어졌고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할 무렵.. M사 회장이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동양에서도 요트는 부를 상징한다죠? 맞습니까?"

"일본의 J사 아시죠? 왜 있잖습니까, 우리에게 지분을 판.. 그 사장을 요즘도 가끔 만나는데 아주 잘 지내고 있습디다. 요트를 타는 재미에 푹 빠져 있더군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안철수연구소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어서 회장은 안철수 앞으로 다가가며

"서버용 백신 만드는 게 어디 쉬운 일이라야 말이죠.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야 어느 세월에.. 요트 한 번 제대로 타보겠느냐고요. V3.. 파시죠! 인수하는 조건으로 1000만 달러를 지불하겠습니다." 당시 안철수연구소의 경제 사정을 생각하면 엄청난 금액이었던 것이다. 짧은 긴장감이 흐른 뒤, 안철수의 입에서는 단호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연신 고개를 갸웃하는 M사 회장과 그의 직원들을 향해 안철수는 혼잣말처럼 나지막하게 되뇌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 충분히 희망이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셨네요. 하지만 대한민국의 희망을, 우리 회사의 영혼을 단순히 돈으로 계산할 순 없지 않겠습니까?" (P52~55)

 

대학생기자 두근윤 / 남서울대 광고홍보학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물음표로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물음표는 또 다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곤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안철수연구소와 함께

'?'를 '!'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두!근!윤! 세글자를 기억해주세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라이너스 2011.04.18 10:19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기업의 혼이라...^^
    잘보고갑니다. 행복한 월요일 아침되세요~

스카이블루 만년필에서 시작된 한국 보안의 역사

안랩人side/안랩컬처 2011. 4. 13. 09:30

“저기요, 선물 받으러 왔는데요.”

88올림픽의 열기가 한창이던 1988년 어느 날 오후,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 편집실의 적막을 깨우며 한 남자가 파티션 너머로 꺼낸 첫 마디. 늘 스카이블루 색 만년필로 독자 의견을 성심성의껏 채워 가장 돋보이는 독자엽서의 주인공이었던 그가 바로 훗날 국내 최고의 보안 기업 안철수연구소의 설립자인 안철수이다.

한국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인 V3는 이렇게 꼼꼼하고 성실한 어느 잡지 애독자이자, 막 등장하는 바이러스의 퇴치에 집념을 보인 그의 인사로 그 시작을 알렸다. 

의과대학의 교수로서, 지도학생을 받아야 할 때 사람의 병이 아닌 컴퓨터의 병을 치료하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보안에 대한 집념은 오늘날 국내 최고의 보안전문기업 안철수연구소가 되었다. 

지난 4월 1~2일 간에 걸쳐 남산 유스호스텔에서 열린 안철수연구소 대학생기자단 7기의 워크숍 중 보안서비스본부 본부장 임영선 상무의 특강을 따라 V3의 탄생에서 오늘날 최고의 종합 보안 서비스 회사로 거듭난 안철수연구소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초창기 - 시작과 탄생 

1988년 최초의 바이러스 ‘브레인’ 퇴치용 프로그램 백신을 개발한 안철수는 그후 2년여 간 매달 월간 마이크로소프트웨어의 독자들이 보내온 바이러스를 가져다 분석한 후 퇴치법을 소프트웨어로 만들어 무료 제공했다.

이렇게 처음에는 혼자서 바이러스와 씨름하고 퇴치법을 찾아내 왔지만 점점 발전하는 컴퓨터 기술과 바이러스의 도전은 거세져만 갔으며, 결국 1994년 안철수는 큰 결심을 하게 된다. 브레인 바이러스를 시작으로 온갖 바이러스를 퇴치하고 백신을 개발한 경험과 기술을 이제 공익을 위해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 이전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다. 그러나 당시의 보안에 대한 인식 부족과,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이유로 인해 여러 정부기관과 기업들로부터 번번이 거절당하고 만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처럼 굴하지 않은 안철수는 이에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찾아낸 돌파구가 바로 한글과컴퓨터사의 지분 참여였다. 이를 통해 국내 최초의 보안업체라 할 수 있는 '안철수연구소'가 창립된다.

태동기의 백신시장을 형성하고 주도하며 안철수연구소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는 작은 회사였음에도 크고 작은 상들을 수상하며 일약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별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상용제품 출시에도 박차를 가했다.

발전기 - 시련과 발전

1997년에는 독자생존을 위한 활발한 도전이 많았던 시기였다. 새로이 파트너로서 삼성 SDS 투자를 유치하였고, 한글과 컴퓨터의 독점판매를 체결하였다. 이 시기, 한국 보안 시장에 눈독을 들이던 미국 보안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인수제의를 받는다. 하지만, 안철수 사장은 이를 단호히 거절한다. 이 당시의 이런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더라면, 우리나라 보안시장을 외국기업에 오롯이 의존하게 되는 끔찍한 상황에 치달아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안철수의 인수 제의 거절은 우리나라 보안의 역사와 미래를 있게 한 큰 연결고리인 셈이다.

다사다난했던 이전의 역경을 모두 씻어내 줄 계기가 1999년에 찾아온다. CIH 바이러스의 대 공습으로 국내 PC 100만 대가 하루아침에 먹통이 되는 큰 재앙이 닥친 것이다. 어려움을 겪던 많은 사람은 국내 보안업계의 터줏대감인 안철수연구소를 찾았고, 안철수연구소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기게 된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안철수연구소는 이름을 날리게 되고 하루아침에 백신시장의 규모는 4배 이상으로 성장한다. CIH 바이러스는 안철수연구소가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중흥기 - 도전과 도약

21세기 2000년을 맞아 안철수연구소도 많은 변신을 꾀했다. 백신 기업에서 통합보안 기업으로, 국내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을 시작했고, CI 또한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 연구소에서 안철수연구소로 바뀌었다. 당시 회사 이미지 교체와 함께 낸 기업 이미지 광고에서, 안철수는 기존의 범생이 이미지를 깨는 삐죽삐죽한 염색머리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이 염색머리는 종합보안업체로서의 도약을 꾀하는 안철수연구소의 새로운 도전 정신과 패기를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한편,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그동안 지켜왔던 핵심 가치가 조금씩 흐려짐을 걱정하던 안철수는, 2000년 9월 스탠포드 대학에서 <Built to Last>의 공동 저자 제리 로라스의 강연을 들으며 영속하는 기업의 조건을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는 기업의 내제되어 있는 문화를 찾아내는 작업을 시작하고, 그 결과 ‘자기개발, 존중과 신뢰, 고객만족’이라는 핵심가치를 정립하게 되었다.

이듬해 2001년에는 통합보안업체 선언과 함께 보안 컨설팅 사업을 강화하는 노력을 하였고, 2002년에는 벤처회사의 최고 영예인 동탑산업훈장을 수상한다.

2005년 3월 창립기념식, 안철수는 또 한 번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맞는다. 안철수연구소가 딱 10년째 되던 해에 모든 직원들 앞에서 안철수는 CEO직 사임을 발표한다.

그 이후 2008년 김홍선 CEO가 취임하게 되고 현재 2011년까지 꾸준한 신제품 출시와 7.7 디도스 대란의 성공적 방어 등으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굴지의 국내 최고의 보안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지난 20여 년 간 우리나라 IT 산업 발전의 산 증인이 되어준 안철수연구소의 지난 역사는 이렇게 새로운 도전과 창조, 패기로 가득 차 있다. 격변하는 오늘날의 기술과 시장 상황에서도 안철수연구소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Ahn

대학생기자 양소진 / 서울여대 콘텐츠디자인-언론홍보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라이너스 2011.04.13 09:54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보안의 역사가 그대로..^^
    잘보고갑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2. 2011.04.13 10:13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비밀댓글입니다

  3. 양또 2011.04.13 12:52 신고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아 첫 워크숍 기사가 이렇게 올라와서 너무 좋네요^^!

    2조 홧팅이에요♥

  4. 햏인 2011.04.13 13:48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 잘 봤습니다. 처음 알게되는 사실이네요!

  5. 쑤요일 2011.04.13 15:43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안철수 염색한 머리가 인상적이네요ㅎㅎ

2011년 이끌 안철수연구소 대학생기자 워크숍 현장

안랩人side/안랩컬처 2011. 4. 7. 05:00

개나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던 4월의 첫째 날, 남산에 반가운 얼굴들이 모였습니다. 그 주인공은 올해 초 선발된 안철수연구소 사보 '보안세상'의 대학생 기자단인데요~. 이날은 본격적인 활동의 시작을 알리는 기자단 워크숍이 있었습니다. 이공계뿐 아니라 비이공계까지 IT에 관심 있는 다양한 분야를 전공하는 30명의 대학생 기자들은 한 해 동안 안철수연구소 사보 '보안세상'을 7기만의 개성으로 이끌어갈 것입니다.^^
워크숍에는 안철수연구소의 사내기자를 비롯해 지난해 활약한 6기 대학생 기자들, 안철수연구소 출신 현직 기자까지 함께 하였습니다. 지금부터 생생한 워크숍 현장을 전해드립니다!
첫 순서는 한겨레신문 사회부 임지선 기자가 열었습니다. 임 기자는 한겨레21에서 노동자, 청소년, 빈곤층의 문제를 다룬 <노동OTL>, <인권 OTL> 시리즈 기사를 써 엠네스트 언론상, 한국 기자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안철수연구소에 근무하다 꿈을 찾아 기자로 변신한 스토리를 전하며 "열심히 하면 남는게 있다. 안철수연구소 기자 활동이 단지 스펙 한 줄이 아니라, '인연'으로 오래오래 남을 수 있는 의미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둘째 손님은 보안서비스본부 임영선 상무입니다. 안철수연구소의 초기 멤버로서 올해로 16주년을 맞는 안철수연구소의 길고도 짧은 스토리를 들려주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웨어'라는 잡지를 아시나요? 안철수 박사와 임영선 상무가 안랩과 인연을 맺은 것은 바로 이곳을 통해서 였습니다. 임 상무는 88년 당시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주 독자층인 '마이크로소프트웨어'의 편집장이었고, 의대 박사 과정에 있던 안철수 박사가 '브레인'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기고한 매체가 바로 이 잡지였습니다. 인연이 참 신기하지 않나요?^ ^ 
안철수연구소의 최초 로고는 바이러스로부터 컴퓨터를 보호한다는 의미를 담은 부적 모양이었습니다. 지금과 많이 다르지요?
'검은 목요일'이라는 메일 제목이 재미있습니다. 초창기 소수였던 안철수연구소는 직원들이 메일로 '우유를 찾습니다' '볼펜 가져가세요' 등의 내용을 주고받기도 했답니다. 요즈음도 사내 게시판에 '아이폰 잃어버리신 분~', '강 책임님 득남!" 등의 소소한 이야기가 올라오곤 합니다.   
3교시는 서비스운용팀 박제석 팀장의 '정보보안 상식'시간이었습니다. 정보보안의 요소인 기밀성, 무결성, 가용성을 설명하고, 보안 강도를 높이면 시스템의 성능이 저하되고, 비용이 높이지면 사용자의 편의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100% 완벽한 보안이란 있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왕이 사는 성의 각 방어 지점에 비유하여 정보보안을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어요.~
4교시는 '해피몰'과 '해피아이돌'을 만든 노리타운 스튜디오 송교석 대표의 강의였습니다. 노리타운 스튜디오가 안철수연구소의 사내 벤처팀으로 출발해 어엿한 벤처 기업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 모시는 분 없지요^ ^? 대학생 기자단은 소셜 게임에 익숙한 세대여서인지 SNS와 소셜 앱에 대한 강의에 높은 관심과 이해도를 보였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기자단의 소개가 진행되었습니다~ 강의를 들을 때는 공부만 할 것처럼 차분해 보이던 학생들이 입을 여니 대학생다운 끼와 개성이 발산됩니다. 양파같은 매력의 7기 기자단!
자신을 소개하는 표현도 참 다양했습니다. 막내가 특징인 친구, 몇 달 전에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지만 몇 달 후 또 다시 가고 싶다는 친구, 심슨 성대모사로 당황스럽게 했던 친구까지 이번 7기 기자단, 예사롭지 않습니다~+_+
지난 한 해 동안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굵직굵직한 기사를 써내며 '보안세상'에서 활약했던 선배 기자 둘이 워크숍에 함께 하였습니다. 선배로서 좋은 조언들을 해주었는데요~. 양정민 학생은 이공계와 비이공계가 함께하는 안철수연구소 기자단의 장점은 서로 '크로스 체크'하여 취약점을 보완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긴 글을 쓰기 싫어하는 이공계 친구의 약점은 인문계 학생이 도와주고, IT 전문가를 인터뷰할 때 어려운 용어는 이공계 친구에게 물어보면서 서로 도우면 좋겠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안철수연구소 '보안세상'에는 대학생기자뿐 아니라 사내기자, 즉 안철수연구소 직원들도 함께 합니다. 금요일 오후였기 때문에 다들 회사 일을 마치고 남산에 왔는데요, 한 주의 업무가 끝나는 날이라 피곤했을 테지만 대학생들의 풋풋함에 지지 않겠다는 밝은 모습으로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
여섯 시부터 10시까지 첫날의 일정이 끝나고, 숙소에 모여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공계 학생과 인문계 학생이 만나면 어떻게 놀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다들 잘 살아 남았네요.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마치고, 다시 모였습니다. 대학생들과 함께 밤을 지새웠으나 커뮤니케이션팀 직원 두분은 체력을 못이겨 실신했다는 후문이 전해집니다..
첫 시간은 파워 블로그를 초빙한 블로그 포스팅 재미있게 하기! 작년과 재작년에 연이어 티스토리 베스트 블로거상을 수상한 블로거의 노하우를 들어보았습니다. 전수받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직접 취재 아이템을 구상하고 작성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여기서 잠깐, 7기 대학생 기자단의 각 조를 소개해볼까요^^?





안철수연구소의 뉴페이스 7기 블로그 기자단, 앞으로 쭈욱 지켜봐주세요~~
글을 잘쓰면 말을 못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글을 잘 못쓴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도 요즈음은 아닙가봅니다. 글을 잘쓰면 춤도 잘춥니다.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안철수연구소 직원과 대학생기자단의 재능기부, 천원으로 집을 사게 해준다는 천원의 기적, 인문대생의 프로그램 인문기 등.
역시 양적으로 많은 아이디어가 질적으로도 좋은 아이디어일까요? 다섯 팀의 치열한 발표전 끝에 1등 상품을 거머쥔 팀은 가장 많은 아이디어를 소개한 변동3조였습니다^^!
대학생기자 명함도 생겼습니다.
기장으로 뽑힌 김재기 학생입니다.
앞으로 '보안세상'을 상큼하게 가꾸어 줄 7기 기자단! 화이팅!! Ahn

사내기자 이하늬 / 안철수연구소 커뮤니케이션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마야 2011.04.07 08:44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ㅋㅋㅋㅋㅋ분명 일주일도 안됐는데 왜이렇게 오래전일같죠? ㅋㅋㅋㅋ아 그리워 ㅋㅋㅋㅋㅋ

  2. 김재기 2011.04.07 09:11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사진과 글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지난주가 떠오르네요 ㅋㅋ 좋은 시작이었던 만큼 이 기분 그대로 활동했으면 합니다 ㅋㅋㅋ

  3. 김선용 2011.04.07 10:55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검은목요일 ㅋㅋㅋㅋㅋㅋ

  4. 누구게 ㅋㅋ 2011.04.07 14:57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다시 그때가 새록새록 !

  5. 수지니 2011.04.07 15:25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우와! 멋집니다 ^^

  6. crownw 2011.04.08 06:01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동삼이조 변동3조네 ㅋㅋㅋㅋㅋㅋㅋ 센스만점!ㅋㅋ

  7. 이재일 2011.04.08 18:53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7기 분들 화이팅 입니다~

  8. 최동은 2011.04.16 16:01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텔미 춤추는 거 아닙니다

글로벌 초일류 기업의 공통점은 핵심가치에 있다

안랩人side/안랩컬처 2011. 3. 31. 09:28

얼마 전 새해 첫 회사 전체 교육이 있었다. 그 중 한양대학교 송영수 교수의 교육은 이제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핵심가치에 대한 생각을 확 바꿔주었다. 업무의 중요도를 결정할 때 핵심가치가 기준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던 작년 업무들이 떠올라서 부끄러웠다. 초일류 기업의 직원이 되기 위해 핵심가치를 아침마다 읽고, 모든 업무의 기준을 핵심가치에 어긋나지 않는지 확인하겠다고 다짐하게 해주어서 유용한 강의였다.

송 교수는 위기 의식과 공포 의식의 차이점과, 위기 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과 같은 혁신기에는 핵심가치를 바탕으로 변화를 해야 기업이 도태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자들이 만들어준 동영상으로 본인 소개를 한 후, 강의 목차에서도 다시 한번 '2011년은 새로운 10년을 준비하는 해이기 때문에 더욱 핵심가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은 변화의 시대' 파트에서는 매년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레밍의 실제 사례를 들었다. 만약 절벽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레밍이 있었다면 죽지 않는 레밍도 나왔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화가 필요한 이 시대에 변화를 하지 않는 기업을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레밍에 비교하며 변화를 인식하지 못 해서 침몰한 기업의 사례로 두바이, 소니, 도요타를 들었다. 이런 기업은 기존 방식으로만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도태되었다는 것. 

다음으로 위기를 인식한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로 노키아와 애플을 비교했다. 변화해야 함을 인지하는 기업, 위기를 인식해서 변화해야만 살아남는다는 것을 아는 회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 안랩은 어떻게 변화를 해야 할까?' 생각하게 했다.

'초일류 기업의 조건' 파트에서는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 즉 초일류 기업들의 공통점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바로 독특한 기업문화(혼)을 가지고 끊임없이 변화하며(창) 소통(통)을 잘한다는 것.

"개인들도 연말연시의 많은 모임 중에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하는 모임은 그 모임에 자신의 존재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하물며 기업은 오죽하겠나. 경영철학이 담겨있는 혼이야 말로 기업의 존재 의미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하다."

'가치 중심의 경영' 파트에서는 역사 속에서 대제국을 형성한 나라에 대한 동영상을 보여 주었다. 대제국 건설이라는 똑같은 미션을 가지고 있었던 로마 제국, 미국, 몽골 제국 중 부족과 공유할 만한 핵심가치가 없었던 몽골 제국만이 금방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스파르타 제국의 최후 항쟁에서 300명이 1만명의 로마군에게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항쟁할 수 있었던 것은 스파르타 제국에서 어렸을 때부터 '스파르타인은 특별하다'는 가치를 교육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가치 중심 경영에는 비전, 미션, 핵심가치가 있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해줄 시스템이 있어야 한다. 비전이란 달성해야 할 모습(what), 미션은 조직의 존재이유/목적/임무/역할(why), 핵심가치는 조직원의 신념, 행동/경영 원칙(how)이다. 이 3가지 요소가 피라미드 형태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이때 제일 아래의 추춧돌 역할을 하는 것이 핵심가치이며, 이것이 제대로 정립되어 있어야 미션이나 비전은 흔들리지 않는다."

송 교수는 이 3요소를 기업뿐 아니라 개인에게 적용해서 5-10년 뒤의 나의 모습을 생각하며 나의 비전, 미션, 핵심가치를 생각하고 정립하면 영속하는 기업처럼 끊임없이 발전하는 개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핵심가치의 중요성' 파트는 본인의 직장생활 에피소드로 시작했다. 재직 당시 회사에 핵심가치가 없어서 유능한 글로벌 인재를 스카웃하지 못할 뻔한 사건으로 인해 회사에 내제된 핵심가치를 찾고, 그 핵심가치를 어떻게 교육했는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또한 핵심가치는 회사뿐 아니라 가정, 학급, 음식점, 조폭에도 있다며, 가정은 가훈, 학급은 급훈, 음식점은 준수사항이 핵심가치라고 했다. 재미난 급훈으로 '동방신기'를 들었는데, 이 의미가 '한국에서 나는 대단한 인재'라고 한다.
작은 음식점에서 아침마다 직원과 함께 '준수사항'을 복창하는 곳에 간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며, 그 음식점은 이미 '초일류 음식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음식점 직원들은 매일 아침 준수사항을 복창함으로써 숙지하고 체화하므로 그 음식점 직원들은 동종 업계에서는 '초일류 직원'이 될 거라고 말했다.

이후에 여러 기업의 핵심가치 발굴 과정과 적용 사례를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오래된 기업일수록 직원 스스로가 행동을 할 때 핵심가치를 벗어난 일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강의를 들으니 우리 회사가 탄탄한 핵심가치가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신혼여행 때 아내와 정한 가훈(이로운 사람이 되자)이 있다는 게 뿌듯했다. 한편으로는 작년에 핵심가치를 토대로 각자의 미션을 정했는데 제대로 실천을 못 한 것 같아서 많이 아쉬웠다. 핵심가치를 토대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히 알았으니, 다시 한번 새로운 부서에서 미션과 비전을 정했으면 하는 마음이 생겼다. Ahn 

사내기자 오주현 / 안철수연구소 웹플랫폼팀 선임연구원
사진. 사내기자 송창민 / 안철수연구소 커뮤니케이션팀 과장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조진희 2011.03.31 11:47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기사 잘 봤습니다~^^

악성코드와 싸워온 안철수연구소 16년 발자취

안랩人side/안랩컬처 2011. 3. 28. 05:00

안철수연구소 블로그 사보 '보안세상'의 대학생 기자단 오리엔테이션에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 안철수연구소'라는 책을 받았다. 처음엔 그냥 회사를 소개하는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읽어보고 감동을 받았다. 많은 부분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올해 3월 15일로 창립 16주년이 된 안철수연구소가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이름'이 되었는지 바이러스를 키워드로 알아보자.

1988년 5월 브레인 바이러스

창업자인 안철수 교수와 운명적인 브레인 바이러스의 만남. 의대 박사 과정에 있었지만 평상시에 기계어를 공부해둔 덕에 브레인 바이러스를 분석하고 치료할 수 있었다. 이후 의대 공부와 바이러스 치료를 병행하게 되었다. 마침내 의대 교수로 지도 학생을 받아야 할 시점에 안철수 교수는 바이러스 치료를 택하게 된다. 바로 안철수연구소의 시작이었다.

1999년 4월 26일 CIH 바이러스

전국의 PC 30만 대를 일시에 초토화한 CIH 바이러스. 이 일로 안철수연구소의 전화는 쉼 없이 울어댔다. 또한 직접 찾아오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피해는 미리 예견된 일이었다. CIH 바이러스가 제작된 시점은 1998년 6월이었다. 피해가 컸던 것은 불법 소프트웨어가 바이러스를 급격하게 확산시킨 원인도 있겠지만 당시 컴퓨터 보안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탓도 있다. 언론에 CIH 바이러스에 대비해야 한다고 보도자료를 돌렸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 했다. 비록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많은 사용자가 컴퓨터 보안의 중요성에 눈 뜨는 계기가 되었다. 안철수연구소도 이 일을 시작으로 고객의 요구에 빠르게 대응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응급대응팀을 만들었다.

2001년 7월 코드레드 웜

파일 형태로만 존재하던 기존 바이러스의 틀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메모리나 네트워크로 전파되는 코드레드 웜이 출현했다. 이 당시에 안티바이러스 업체는 이러한 바이러스를 진단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자연스럽게 많은 사용자가 항의 전화를 했다. 서둘러 신기술을 개발해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할 수 있었다. 코드레드는 파일 기반의 악성코드와 네트워크 기반의 악성코드의 경계를 허문 첫 사례로 기록됐다.

2001년 9월 님다 바이러스

코드레드의 악몽이 가시기도 전에 님다 바이러스가 출현했다. 안철수연구소는 님다 바이러스를 웜으로 진단하고 바이러스를 삭제하라고 했지만 엉뚱한 파일들이 지워졌다. 코드레드에서 진화한 좀더 복잡한 바이러스였다. 연구원들은 밤낮 없는 전쟁을 시작했다. 총만 들지 않았지 국민의 안녕을 위해 젊음을 바치는 군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2004년 4월 신종 웜들

악성코드의 약 70%가 이메일로 유입되는 상황에서 그에 최적화한 네트워크 보안 장비는 찾기가 어려웠다. 안철수연구소는 15년 간 축적한 V3 중심의 보안 기술력을 토대로 네트워크 상에 오가는 콘텐츠의 보안을 책임지는 네트워크 보안 솔루션 '트러스가드 SCM'을 출시했다. 2005년 7월의 일이다. 이후 지속적인 개발로 2007년 통합보안 장비인 '트러스가드 UTM', 2010년 디도스 전용 장비 '트러스가드 DPX'를 출시함으로써 네트워크 보안 시장에 안착하기에 이른다.

2009년 7월 7일 디도스 대란

청와대를 비롯한 주요 언론사가 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을 받았다. DDoS 대란의 시작이었다. 안철수연구소는 정밀 분석에 들어갔다. 이 공격은 단 하나의 파일이 아니라 10개가 넘는 파일이 유기적으로 조합되어 '좀비 PC'로 하여금 특정 웹사이트를 공격하게 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또한 8일 오후 6시에 동시 다발적인 공격이 다시 일어난다는 점을 알아냈다. 공격 타깃에는 안철수연구소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예측은 적중했다. 공격 받을 웹사이트가 분석되자 미리 대비할 수 있었고, 8일 6시 주요 사이트가 DDoS 공격을 받았지만 완벽하게 방어했다.

또한 안철수연구소는 9일 DDoS 3차 공격이 개인 PC의 하드 디스크를 손상시킬 거라고 예측했다. DDoS 공격에 미리 대비하라고 강조해도 별 반응이 없던 개인 사용자들이 PC의 하드 디스크가 망가진다고 하니 일시에 안랩닷컴에 접속해 전용 백신을 받으면서 서비스가 제대로 되지 않는 일까지 벌어졌다.
몇 시간 만에 3백만 명이 전용 백신을 내려받았던 것이다. DDoS 공격으로 인해 많은 일반인이 보안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2011년 3월 4일 디도스 공격

2009년 7월 7일 DDoS 대란 때보다 더 업그레이드된 공격 방식이 동원됐지만 빠른 대응으로 '대란'으로 번지는 것을 막았다. 이런 대응에 이번에도 안철수연구소가 큰 힘을 보탰다. 실시간 검색어엔 KISA(한국인터넷진흥원) 보호나라와 안철수연구소가 계속 노출되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바이러스 역사를 살펴보면 안철수연구소를 빼고 말할 수가 없다. 바이러스 역사가 안철수연구소의 역사이다. 끝으로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억 남는 문장이 있다.

"좌절할 틈을 주지 말고 그 즉시 해결하라"


대학생기자 김선용 / 강원대 컴퓨터정보통신과

"젊음이 아름다운 이유는 실패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항상 배움의 자세를 잃지 말자 !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권혁진 2011.03.31 08:01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기사도 잘 봤지만 기사 보다 기자님의 글이 더 눈에 보입니다.

    "젊음이 아름다운 이유는 실패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항상 배움의 자세를 잃지 말자 !

    기자님께 하나 배워 갑니다.

  2. 2011.05.24 21:06  Address |  Modify / Delete |  Reply

    비밀댓글입니다